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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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나쇼날 트레조르4
“뚜바이부르파님을 찬양하라. 소인은 압둘 이브라힘입니다. 모하메드 형제로부터 뚜바이부르파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소인은 번개 치듯 알라의 계시를 들었습니다. [동방에서 온 마흐디가 너희를 이끌어 주리라. 의심없이 따르라.]”
“잠깐, 나는 마흐디가 아니다. 당신과 같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내가 마흐디라면 당신들이 도살자라 부르는 아사드도 마흐디라 불릴 것이다.”
뜬금없는 알라의 계시와 구원자 타령에 당황한 블랙맘바가 말을 끊었다.
순진함일까? 간절함일까?
정교도와 마찬가지로 쿠르드족도 너무 쉽게 자신을 구원자로 여긴다. 민망하기 이를데 없다.
알고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레반트 지역은 수 천년간 동서양 이민족의 침입을 받고 역내 세력의 전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끝없는 박해와 고난에 시달린 사람들은 구원자를 갈망했다. 구원자 개념은 생활과 교리에 깊숙이 스며있다. 미륵 신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블랙맘바는 본인의 특별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행동과 능력이 일반인에게 미치는 임펙트의 강도를 알지 못했다. 불쌍하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을 통째로 망명시킨다? 일국의 대통령도 불가능한 발상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을 판에 이적을 일으키는 마흐디가 나타났다. 쿠르드족이 광분할 만했다.
이브라힘이 펄쩍 뛰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정교도는 뚜바이부르파님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모르는 이의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 일신의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희망을 주신 분이 마흐디가 아니라 하면 알라를 부정하게 됩니다. 저희는 오스마니예 산록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쿠르드족입니다. 어느 날 총 든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마을을 불태우고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설명 한마디 없이 막무가내였습니다. 항의를 하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습니다. 터키어를 모르는 동족도 가차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터키어를 모르는 쿠르드족은 터키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분노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는 즉시 일족을 이끌고 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했습니다. 더러운 세상이 평범한 양치기 목동을 무장 게릴라로 만들었습니다.”
감정이 복받친 듯 이브라힘이 숨을 골랐다. 모하메드가 바짝 다가섰다.
“뚜바이부르파님, 이브라힘은 오스마니예의 링크스(스라소니)라 불린 인물입니다. 이브라힘 일족은 3년에 걸쳐 터키군에 대항해서 싸운 역전의 용사들입니다. 여자들도 게릴라전 경험이 풍부합니다. 이슬람 남자는 여자에게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미신이 있습니다. 쿠르드족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억셉니다. 저들은 목축 전문가이자 전투의 달인입니다.”
모하메드가 블랙맘바의 귀에 속삭였다.
‘얼래? 이 양반이 여우구마.’
블랙맘바는 모하메드의 속셈을 짐작했다. 전투력이 없는 교도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쿠르드족을 슬쩍 끌어들였다. 모하메드는 정교도를 지키는 호위대장이다. 직책에 충실한 그의 행동이 밉지 않았다.
“이브라힘, 할 말이 있으면 계속하라.”
“한 줌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탈출했습니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 이곳 마단끼 호수에 정착했지만, 차별과 박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쿠르드족의 삶은 정교도만도 못합니다. 정교도는 재판이라도 받지만, 저희는 재판권도 없습니다. 농토를 개간하고 과실수를 심어도 시리아인에게 뺏기기 일쑤입니다. 노동을 해도 시리아인이 받는 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리고, 나이 든 어른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유도 없이 체포당하고, 아내와 딸은 강간당할까 두려워 집밖에 나가지도 못합니다. 저희도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부디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뚜바이부르파시여, 우리의 자식이라도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쿠르드족 남녀가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마흐디시여,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불쌍한 쿠르드족을 이끌어 주십시오.”
이브라힘이 땅바닥에 머리를 쾅쾅 찧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가 가슴을 시리게 했다. 켜켜이 쌓인 한이 느껴졌다. 그렇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엎드린 무리를 쓰윽 둘러보았다. 곤궁함이 줄줄 흐르는 무리다. 여자들의 거칠어진 볼에 눈물이 번들거리고, 아이들의 커다란 눈은 불안에 흔들린다. 내침을 당할까 두려워 공황상태다.
‘이것이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과 고통인가!’
가슴이 싸했다. 삶이 지옥인 사람들, 한국에 태어난 자신은 그래도 축복받은 부류다. 적어도 나라는 있으니까.
“이브라힘, 그만하라, 부모님께 받은 신체를 학대하지 마라. 나이 든 분은 없고 젊은 사람과 아이밖에 없구나.”
블랙맘바의 음성이 봄바람처럼 온화해졌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저희를 위해 자결하셨습니다.”
“뭐라 자결? 왜?”
놀란 블랙맘바가 되물었다.
“국경 탈주는 험난합니다. 체력이 약한 노인들 때문에 뒤를 잡히면 일족이 전멸당합니다. 후손의 짐이 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허,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블랙맘바가 탄식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 어디나 같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자손을 위해 자결을 한단 말인가. 이들은 배수진을 쳤다. 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자들이 유전자를 남기려는 몸부림이다.
“뚜바이부르파님, 저희는 젊습니다. 모두 40대 이하입니다. 전투 경험도 풍부합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칼이 되고 총이 되겠습니다.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칼과 총?”
뜬금없는 말이다. 블랙맘바가 모하메드를 돌아보았다.
“쿠르드족의 끈질김과 용맹은 네팔의 구르카족 못지않습니다. 굴종의 삶을 사느니 싸우다 죽더라도 뚜바이부르파님을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강단 있는 사람들이군. 나를 만났음은 저들의 운명이겠지.”
블랙맘바는 블랙홀에 끌려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애당초 정교도가 불쌍해서 일을 벌였다. 막다른 구석에 몰린 쿠르드족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정교도와 이어진 인연이 쿠르족으로 연결되었다.
“알았다. 인간이 짐승의 삶을 살 수는 없다. 너희를 거두겠다. 나 뚜바이부르파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들었느냐?”
“들었습니다. 인간을 얽매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종교의 역할은 마음의 치유다. 자신의 종교가 소중하면 타인의 종교도 소중하다. 구분하지 말고 특권의식을 버려라. 일한 만큼 가지고, 노력하는 만큼 얻어라. 쿠르드가 꿈속에서도 바라는 삶입니다. 충심으로 따르겠습니다. 알라 후 악바르! 뚜바이부르파여 영원하라.”
“뚜바이부르파님을 찬양하라. 알라 후 악바르. 뚜바이부르파여 영원하여라.”
40명이 환호하는 소리가 무너진 성채를 드르릉 울렸다.
‘이거야 원, 꼼짝없이 사이비 교주가 되었구마. 에이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블랙맘바는 언제나 그렇듯 편하게 생각했다. 460명이 540명으로 늘었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이브라힘, 일어나라. 당신을 쿠르드족 대표로 인정한다. 일족을 통제해서 12호 차에 올라라. 대사관 직원에게 전투식량을 수령하고, 그들의 통제에 따르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브라힘이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고문님, 대단한 인기입니다. 세상의 어떤 정치인도 고문님 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고문님이 존경스럽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엑조세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거 날 비웃는 거냐?”
블랙맘바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근질거리는 얇은 낯가죽을 박박 긁는 놈이 고울 리 없다. 아차하면 무치시바리아게를 베풀어 줄 기세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들은 생의 막다른 길에 몰린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고문님이 누구보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존경합니다.”
화들짝 놀란 엑조세 소령이 표정을 고치고 양손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뭘 존경씩이나. 소령이 차량 두 대를 추가 배치하지 않았으면 곤란해질 뻔 했다. 전투식량은 나도 생각지 못했다. 여러 가지로 고맙다.”
“별말씀을 하십니다. 소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부하들과 국경까지 모시겠습니다.”
“자네 임무는 여기까지다. 그렇게까지 않아도 된다.”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싶습니다. 고문님이 떠나기 전에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뭔가?”
“고문님께 무례를 범한 부하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부하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저를 강등시키고 부하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리베리 상사는 노부모의 생활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놈은 군대를 떠나면 아무것도 못 할 녀석입니다.”
“진심인가?”
블랙맘바가 소령을 노려보았다.
“진심입니다.”
“엑조세 소령, 리베리 상사가 벌을 받은 이유는 무례가 아니라 인종차별적인 태도 때문이다. 상사의 의식이 바뀔 수 있겠나?”
“아, 그랬었군요. 그놈은 확실히 인종적 편견이 있습니다. 제기 책임지겠습니다.”
엑조세는 젊은 고문의 말에 감명을 받았다. 젊은 나이에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은 공통으로 자의식이 강하다. 무례와 업신여김을 참지 못한다. 고문은 무례가 아니라 리베리 상사의 인종적 편견을 벌했다. 젊은 나이에 분별이 명확한 사람이다.
“좋다. 조피네 대사에게 내 말을 전하라. 리베리 상사의 처벌을 3년간 유예한다. 단, 인종차별적인 태도와 의식을 버리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 소령이 교육을 책임져라. 3년후 교육 성과를 보고하라. 인종차별 의식이 바뀌면 처벌은 없던 것으로 한다. 사병들도 마찬가지다.”
“관대한 처분에 감사드립니다.”
엑조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두말 않고 용서해 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흉중이 넓은 사람이다. 시리아인들이 추앙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블랙맘바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소령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쓸만한 장교다.
“소령, 인간의 삶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저들이 지금은 보따리 한 개 달랑 들고 정처없이 떠나는 신세지만,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될지 누가 알겠나. 훗날 소령의 인생에 문제가 있다면 레종 에뜨랑제 본부 보급대의 에밀 보급관을 찾아라. 나와 연결될 것이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제 생애에 고문님을 만나는 행운을 내려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블랙맘바가 흠칫했다. 엑조세 소령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암내를 맡은 황소 눈깔이다. 위험한 냄새가 푹푹 풍겼다. 옴부티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이는 인간이 한 명 늘었다.
“뚜바이부르파님, 이브라힘은 무임승차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쿠르드족의 전투력도 확인할 겸 이디아 구출을 맡겨보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지만 시간이 없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소인이 호위대를 풀어서 정교도 주거지에 콜레라가 창궐했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당분간 접근할 놈이 없습니다. 쿠르드족은 장차 뚜바이부르파님의 강력한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충성과 능력을 펼 기회를 줄 필요도 있습니다. 마을은 여기서 겨우 1.5km에 불과합니다. 소인이 주민들을 챙기는 동안 다녀오시지요.”
모하메드가 재차 권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브라힘을 불러라.”
블랙맘바는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자신은 늘 독고다이로 움직였다. 자치구를 염두에 둔 이상 군대도 필요하다. 하비브 군의 투아레그족 출신 대대장인 키갈리 중령을 염두에 두었지만, 신뢰성이 떨어졌다. 옴부티가 그를 제대로 설득했는지도 의문이다.
투아레그족 속담에 옆집 아가씨 짐들어 주다가 마누라 얻는다는 말이 있다. 충성심이 강한 쿠르드족은 맘루크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전사 블랙맘바가 정치에 눈을 뜨는 순간이다.
“이브라힘, 전사 다섯만 추려라. 나와 함께 불쌍한 처녀를 구하러 간다.”
“감사합니다.”
이브라힘의 얼굴이 환해졌다.
“뚜바이부르파님, 감사합니다.”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애면글면하던 아흐메드의 얼굴에 환희가 넘쳤다.
“주인님, 이곳에서 바렛으로 전부 쏴 죽여버릴까요?”
자말이 눈을 번득였다. 루만을 무지막지하게 쓸어버린 주인답지 않다. 이것저것 가릴 필요 없다. 저격지점을 잡아서 몽땅 쓸어버리고 처녀를 데리고 오면 된다.
“자말, 짐승에겐 짐승의 대접을, 인간에겐 인간의 대접을 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은 잘못된 관습에 물들었을뿐 평범한 시민이다.”
블랙맘바가 자말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테러리스트의 때를 완전히 벗지 못한 자말이다.
“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자말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에구, 이게 뭐야?”
블랙맘바는 날렵해 보이는 쿠르드인 다섯을 뜨악한 눈으로 보았다. 19세기 머스캣 장총을 들고 허리에 나무를 깎아 만든 곤봉을 질렀다. 제대로 된 19세기 산적이다.
“잘 들어라. 총기 사용은 허락하지 않는다. 죽여도 될 놈은 이슬람의전사라 칭하는 무뢰배다. 마을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반항하는 놈은 곤봉으로 제압하도록 한다. 바키르, 총은 두고 간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후려갈겨라.”
“옙!”
이브라힘의 지시를 받은 젊은이가 머스캣을 모아서 들고갔다.
“쿠르드족을 눈여겨 봐야겠어.”
명령 계통이 분명하고 행동에 절도가 있다. 어중이떠중이 게릴라가 아니다. 고난은 인간을 단련시킨다. 이들은 정교도처럼 박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부류가 아니다. 요건만 갖춰지면 척박한 사헬에서 너끈히 살아갈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