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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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나쇼날 트레조르6
“소이 디바, 돈트 스피드!”
엑조세가 무전기를 들고 복창했다. 부우웅- 선도 지프를 앞세우고 주민들이 분승한 12대의 버스와 트럭 3대가 꼬리를 물고 성채를 떠났다. 엑조세 소령이 선도 지프 운전대를 잡았다.
블랙맘바가 선도 지프에 선탑하자 자말과 아흐메드가 잽싸게 뒷좌석에 올랐다. 타이밍을 놓친 모하메드는 쓴웃음을 짓고 바크리가 탄 1호에 올랐다. MP5로 무장한 교도 호위대는 1호와 11호에 탑승하고, DGSE 작전부 요원 12명이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마단끼 호수 주위의 넓은 경작지, 수확을 기다리는 올리브와 종려나무가 멀어져갔다. 알리 노인이 눈물을 흘렸다. 알레포에서 쫓겨나 척박한 땅에 정착한지 40년, 호수 서안에 자리잡고 두 손이 기형이 되도록 황무지를 개간하고 양을 키웠다.
이슬람교도들의 박해와 무카바라트의 횡포를 피해 호수 동안으로 터전을 옮겨 고생한 나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먹구름 가득한 세상에 뚜바이부르파가 햇살처럼 나타났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뚜바이부르파의 가르침이 낡은 가슴을 쿵쿵 울렸다.
“아들아, 뚜바이부르파님을 성심껏 모셔라.”
“아버지, 그분은 명예욕도 없고, 재물욕도 없습니다. 정교도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손을 뻗었을 뿐입니다. 바람 같은 분을 어떻게 모셔야할지 고민입니다.”
“그분이 하고자 하시는 바를 따르면 된다. 세상의 추함에 물들지 않은 분이니 네가 그림자가 되어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면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바크리 역시 희망과 불안, 아쉬움과 속시원함, 회의와 설레임, 온갖 감정이 복받쳤다. 정원을 초과해서 48명이 탄 버스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아이들은 창문에 달라붙어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 여자들은 소리죽여 흐느꼈다.
버스와 달리 지프에서는 희극적인 대화가 오갔다. 알레포주 도로의 90%가 비포장도로다. 블랙맘바는 지프의 요동에 불구하고 고요한 자세를 유지했다.
‘대단한 운동 신경이다.’
엑조세는 선탑한 블랙맘바를 연신 흘끔거렸다. 지프가 요동을 쳐도 잠든 듯 고요한 자세는 변함이 없다. 차량에 볼트로 고정해둔 기관총 마운트가 따로 없다. 꼬레아의 고대 무예를 익혔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고문님,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볼 생각은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엑조세가 불쑥 물었다.
“분데스리가? 어느 나라 용병댄가?”
논두렁에 경운기 처박는 응답이 돌아왔다.
‘허걱!’
놀란 엑조세는 하마터면 지프를 계곡 아래로 처박을 뻔했다.
“파리 생제르맹이나 멘체스터 유나이트는 들어보셨습니까?”
“실력 있는 용병댄가?
“끄끄끄!”
멘유를 용병대란다. 엑조세가 운전대를 두드리며 낄낄거렸다.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데스리가도 모르고 셍제르맹과 멘유를 모르는 촌놈이 있을 수 있나! 축구광인 엑조세는 기가 막히다 못해 분노가 솟았다.
뒷자리에 앉은 아흐마드와 자말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감히 뚜바이부르파를 비웃다니! 아흐마드가 슬그머니 칸자르를 뽑았다. 버르장머리없는 백인 놈의 목을 따버릴 작정이다. 자말이 아흐마드의 손을 잡고 블랙맘바를 눈짓했다. 순간적으로 목숨이 저당잡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엑조세는 끅끅거리며 말했다.
“크루이프, 지코, 베켄바워, 마라도나는 아시죠?”
“축구 스타 아닌가?”
“바로 그겁니다. 고문님이라면 전무후무한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인이지만 축구만은 남성적인 독일과 화끈한 잉글랜드를 좋아합니다. 프랑스 최고 명문인 셍제르맹의 구단주가 제 삼촌입니다.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는 엄청난 피지컬을 왜 썩입니까?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연봉이 얼마나 되나?”
“전년도에 바르셀로나를 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이끈 마라도나의 연봉이 프랑으로 계산하면 2천만 프랑입니다. 어마어마하죠?”
“헐, 대단하군.”
블랙맘바는 일개 축구선수가 2천만 프랑을 받는다는 소리에 살짝 놀랐다. 뭐 그래 봐야 자신은 출장 한 번에 3천만 프랑을 버는 사람이다. 보니파스를 갈구면 추가 수당도 짭짤하게 챙길 수 있다.
“대단하죠. 인기와 돈을 단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
블랙맘바가 놀라자 엑조세가 들이밀었다.
“태클에 걸려 발목 부러지면 끝장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만 고문님 피지컬을 볼 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블랙맘바는 상대 선수를 걱정했지만, 엑조세는 블랙맘바 본인의 걱정으로 알아들었다.
“괴물이 사람과 놀 수 있나. 괴물은 괴물과 놀아야지.”
블랙맘바가 한숨 쉬듯 말했다. 자신의 신체는 흉기다. 축구는 몸싸움이다. 자신과 부딪힌 상대 선수는 박살 난다. 축구에 관심도 없지만 사람 잡을 짓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생각 있으면 언제든 소관에게 연락 주십시오.”
엑조세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늦은 입문이지만 그가 본 고문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엑조세의 사심은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블랙맘바가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탈주 행렬은 마단끼 호수에서 217번 공로를 따라 아프린(afrin)까지 남하했다. 아프린에서 다시 라조 로드를 타고 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국경까지 직선거리는 40km에 불과하지만, 시리아 북부 고원지대의 도로 사정은 극악했다. 교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이다.
시리아 국경 마을인 라조가 가까워지자 해발 고도가 800m로 높아졌다. 버스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아찔한 벼랑길이 이어졌다. 라조에서 국경까지 15km다. 직선거리 25km 이동에 무려 110km를 달렸다. 라조를 통과한 버스 행렬이 국경으로 향했다.
지프가 덜커덕 멈추었다. 차단봉이 길을 막고 있다. 엑조세가 지프를 세우고 검문소로 걸어갔다. 열 번째 검문소다. 매번 멈춰서 서류를 확인하고 다시 출발했다.
“웬 놈의 검문소가 이리 많아.”
블랙맘바가 투덜댔다.
“앙숙끼리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까요. 원수지간인데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나옵니다. 터키에서는 쿠르드족 이슬람이 국경을 넘고, 시리아에서는 정교도가 터키 쪽으로 탈주합니다. 양측 국경수비대는 자국 탈출민이든 탈출해오는 난민이든 즉각 사살해버립니다. 외부의 눈을 의식해서 일부 난민을 수용할때도 있지만 대부분 사살합니다.”
“망할 놈들, 사람 나고 종교 났지. 종교 나고 사람 났나.”
자말의 설명에 블랙맘바의 짜증 게이지가 수직으로 올라갔다. 차드에서도 북부 이슬람과 남부 기독교가 충돌하더니 여기도 종교가 문제다. 여기나 저기나 인간이 문제다.
설명하던 자말의 목이 쑥 들어갔다. 종교적 신념으로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인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다. 검문소 군인들과 이야기를 마친 엑조세가 지프에 올랐다.
“출발!”
엑조세가 힘차게 소리쳤다. 적십자를 사칭한 엑조세의 잔머리는 탁월했다. 콜레라 환자를 오지에 격리한다는 뻥이 기가 막히게 먹혔다. 적십자 가운을 입은 엑조세가 서류만 보여주면 상황이 정리되었다. 시리아 경찰과 군인은 차량 가까이 접근조차 않았다. 엑조세의 코가 하늘로 향했다.
새벽 4시 30분, 블랙맘바가 눈을 번쩍 떴다. 전장의 냄새다. 강중유 냄새, 화약 냄새, 인간의 배설물 암모니아 냄새가 공기에 섞여 있다.
“아흐마드, 국경이 얼마나 남았나?”
“코앞입니다. 대략 5km 남았습니다.”
“진행 방향의 지형은?”
“지형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이곳을 벗어나면 폭 1km 에르그가 나타납니다. 에르그를 지나 1km 전진하면 낮은 구릉이 연접됩니다. 구릉을 따라 국경 철책이 지나갑니다.”
“흠, 이제부터는 전염병 보균자를 격리 수용한다는 핑계가 먹히지 않겠군. 정교도 콜레라 환자를 터키에 수출하러 간다고 우겨볼까?”
“크크크,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시리아 국경수비대가 차량 기름을 보충해 줄 겁니다.”
블랙맘바의 농담에 자말과 아흐메드가 낄낄거렸다.
“잠깐, 소령 멈춰라. 1,000m 전면에 검문소다.”
지프가 덜컥 멈추었다. 엑조세는 기어를 중립 위치로 놓고, 블랙맘바를 돌아보았다. 먹물 같은 어둠을 뚫고 1,000m 앞이 보인단 말인가? 아니 산 모퉁이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험준한 길이다. 전조등이 지형지물에 가려져 시계가 50m에 불과한 상황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뚜바이부르파님입니다.”
자말의 대답이 날아왔다.
‘망할 놈! 무슨 말을 못하게 해.’
“쓰읍!”
엑조세가 혀를 차고 무전기를 들었다.
“전조등 꺼, 시동꺼.”
요란한 엔진음과 전조등이 일제히 꺼졌다.
“소령, 평화적으로 통과하기 어렵겠지?”
“마지막 검문소인 모양입니다. 지금까지는 격리 조치를 위한 이동이라고 둘러댔지만, 이곳만 넘으면 국경입니다. 서류에 격리 장소로 명시된 지점이 바로 이곳입니다. 변명하기가 난처합니다. 그냥 쓸어버릴까요?”
“소동을 일으켜서 좋을 것 없다.”
“주인님, 이놈으로 쓸어버릴까요?”
자말이 바렛을 들어 보였다. 출장 다녀온 주인이 실탄을 1,000발이나 제공했다. 자말은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써먹지 못해 쩔쩔매는 아이가 되었다.
“국경수비대를 부를 셈이냐? 실컷 쏘게 해주마. 잠시 기다려라.”
스스스- 지프에서 내린 블랙맘바가 어둠 속으로 스르륵 녹아들어갔다. 셋을 채 세기도 전에 흔적이 사라졌다.
“헉!”
엑조세의 눈이 커졌다. 이럴 수가 있나? 방금 눈앞에 있던 사람이 사라져버렸다.
“이봐? 고문님이 어떻게 된 거냐?”
“뚜바이브르파님이십니다.”
엑조세의 의문에 아흐메드가 닭 다리가 두 개라는 식의 대답을 했다.
‘쓰읍, 묻는 내가 미친놈이지. 도대체 정체가 뭐지? 광신도를 540명이나 거느린 특별군사고문이라니 기가 막히는군. 뭐 나도 슬슬 신도가 되는 기분이긴 하다만.”
엑조세는 공정여단 출신이다. 블랙맘바가 대통령 수석보좌관급인 특별군사고문이자 뛰어난 능력자라는 사실밖에 모른다. 그는 블랙맘바의 무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 이끌렸을 뿐이다. 특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능력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차량 엔진음이 들리지 않았나?”
“글쎄, 나는 듣지 못했다. 설마 이곳에 차량이 나타나겠어. 길도 없는데.”
“하긴, 어느 미친놈이 새벽에 차를 끌고 이곳에 오겠나.”
블랙맘바는 검문소 양철 지붕에서 근무 중인 위병을 내려다 보았다. 녹색 헬멧을 쓴 시리아 육군이다. 막사밖에 둘, 일곱은 발아래 잠들어있다.
‘죽일 것까지야 없겠지.’
락샤샤를 꺼내 들었다. 이들은 임무 수행 중인 죄없는 군인이다. 전투 상황도 아니다. 특정한 사람을 살리고자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도 자가당착이다.
“내가 잘못 들었나?”
위병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쉭- 잠자리 날개 치는 미약한 소음이 울렸다. 짝- 짝- 회갈색 락샤샤가 위병 둘의 뒷목을 찍고 사라졌다. 위병이 동시에 퍽 쓰러졌다.
블랙맘바의 편술은 경지에 달했다. 힘을 조절해서 채찍 끝으로 대추혈을 쳐서 기절시켰다. 블랙맘바가 자신의 집인 양 검문소 출입문를 열고 들어갔다. 락샤샤가 허공을 휘돌았다. 짝 짝 짝- 침상에 나란히 누워 잠들어있던 군인 일곱이 잠자던 자세 그대로 맥을 놓았다.
“이놈이 소초장인가?”
침입자는 초승달이 두 개 그려진 견장을 찬 군인을 들쳐메고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블랙맘바가 그림자처럼 쓰윽 나타났다.
“헉, 고 고문님!”
엑조세가 비명을 질렀다.
“뭘 그렇게 놀라나? 검문소는 무력화시켰다. 이놈이 대장인 모양이다.”
툭- 체격 좋은 군인이 엑조세의 발치에 뒹굴었다. 엑조세는 할 말을 잊었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1km 떨어진 지점의 검문소를 무력화시키고 소초장을 잡아왔단 말인가? 절대로 믿을 수 없지만, 눈앞에 증거가 있다. 엑조세의 뇌가 혼란을 일으켰다.
“엑조세, 시리아 국경 수비대의 배치 상황을 확인하라.”
시리아는 아라비아 반도 최강의 육군 전력을 보유한 나라다. 터키와 초긴장 관계인 시리아가 국경수비를 허술히 할 리 없다.
포로를 엑조세에 맡기고 바위에 기대어 느긋하니 코히바지골로를 피워물었다. DGSE는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까지 챙겨 보냈다. 지하 동굴에서 헤맬 때 담배 생각이 간절했었다. 코베리카 마을에서 현지 주민이 재배한 담배는 쓴맛이 강해서 피우지 못했다.
공작에 들어가기 전에 피우는 담배 맛을 각별하다. 섹스를 마치고 피우는 담배 맛이 최고라는데 경험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짝- 뺨을 호되게 맞은 군인이 눈을 떴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동자가 멀거니 엑조세를 응시했다.
“여기가 어디지? 너는 누구냐?”
포로가 된 시리아 군인이 먼저 물었다.
“너는 포로다. 국경수비대의 배치를 털어놓으면 살려준다.”
“퉤, 개구리 뒷다리 같은 놈, 내가 말해 줄 것 같으냐.”
“순순히 털어놓으면 포로 대우를 해준다.”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라.”
엑조세와 포로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이그, 멍청한 새끼.’ 블랙맘바가 혀를 찼다. 군인이라고 같은 군인이 아니다. 실전을 경험한 군인과 그렇지 못한 군인의 차이다.
“귀찮네!”
자말을 부르려다 엉덩이를 들었다. 밤이 길어지면 꿈도 많아지는 법이다.
“엑조세, 비켜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엑조세가 물러났다.
“고개를 들어라.”
살기 가득한 나지막한 음성이 웅 울렸다. 포로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블랙맘바를 노려보았다.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블랙맘바가 포로의 눈을 노려보았다.
“으헉!”
포로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붉은 눈동자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괴수의 눈, 아니 지옥의 눈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