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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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초현 블랙맘바 5
“알았다. 신체는 온전히 남겨다오.”
포로가 단번에 풀이 죽었다. 옴부티는 이중적인 포로의 태도에 역겨움을 느꼈다. 알라의 이름을 빌려 온갖 추악한 짓을 하는 놈이 자신은 천국의 문턱을 넘어서 환생하고 싶어 한다.
“다시 합시다.”
부리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포로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 옴부티는 말 몇 마디를 했을 뿐이다. 손가락 한 개 잘랐다고 달라질 포로가 아니었다. 문화가 달라지면 이해의 폭도 좁아진다.
“묻고 싶은 게 뭐냐?”
오히려 포로가 채근했다.
“우리를 어디에서 발견했나?”
“무슨 소리냐? 이곳은 우리 숙영지다. 우리는 집결 하던 중이다.”
늙은 게릴라가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옴부티의 통역을 들은 부리머는 어이가 없었다. 이들은 팀의 행로를 포착한 것도 아니고, 공격하러 온 것도 아니다. 우연히 숙영지가 겹친 것이다.
“너희는 모두 몇 명이냐?”
“147명이다. 우리는 4개 조다. 동료들이 네놈들을 죽이러 올 것이다.”
포로는 무척 성실하게 답변했다. 포로의 답변 중에 섬뜩한 정보가 한 가지 있었다. 프랑스 특공대를 찾기 위해 하비브 군 전체가 차드 중북부를 들쑤시고 다닌다는 정보였다. 부리머의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프롤리나트가 어떻게 라텔 팀의 존재를 첩보 수준이 아니라 정보로 취득했을까?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일개 병사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부리머가 옴부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옴부티는 포로의 귓바퀴 뒤쪽에 베레타 총구를 밀착시키고 방아쇠를 당겼다. 퍽- 몽둥이로 매트리스를 내려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블랙맘바의 예민한 청각이 그 소리를 포착했다. 심문받던 포로가 모로 쓰러지는 모습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망막에 잡혔다.
에밀과 장쒼이 늙은 게릴라 시체를 들어다 구덩이 속에 던져 넣었다. 동료들이 죽은 게릴라 시체를 열심히 끌어다 구덩이 속에 집어 던졌다, 인간의 존엄 따위는 없다. 그냥 유기물 투척이다.
시체 절반이 어린 게릴라다. 기껏해야 백부댁을 뛰쳐나올 당시의 나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총을 든 녀석들이다.
죽음과 죽임, 두 가지 모두 피동이지만 죽임이 좀 더 피동적이다. 어린 소년병이 죽임이라면 늙은 게릴라는 죽음이다. 늙은 게릴라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비참한 죽임을 당했을까?
죽어 있는 43명의 게릴라는 43명만큼의 사연을 가졌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신념은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죽었을까?
자신이 그들을 죽일 권리가 있는가?
답은 한가지다. 죽지 않기 위해 죽였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존 투쟁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본능이다. 대다수 인간은 본인의 욕구가 아니라 타인 또는 집단의 욕구에 조정 받는다. 집단에 매몰된 개인의 의지는 티끌만한 가치도 부여받지 못할 때가 있다. 바로 죽어 있는 게릴라들이다.
자신은 용병이 싫으면 계약을 파기하면 된다. 금전적 손해를 보고 명예에 흠집이 나겠지만, 더 나은 기회가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이들은 아니다. 죽기 전에는 굴레를 벗을 수 없는 레미제라블이다. 자신도 레미제라블이다. 인간답게 살고자 했지만, 인간 백정이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의 가슴 아픈 기억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타의에 의해 휘둘리는 삶, 굶주림과 폭력에 길들여진 가치 없는 나날이었다. 자유의지에 반하는 가치 없는 삶을 강요하는 폭력이야말로 악 중의 악이다.
어린아이들이 알지도 못하는 군벌 지도자에게 권력을 쥐여 주기 위해 소총을 들었을 리 없다. 신념을 지니고 프랑스 특공대를 죽이기 위해 돌격 했을 리도 없다.
소똥과 진흙을 개어서 벽을 바른 움막에서 저녁을 먹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다. 부모 형제와 우갈리를 나눠 먹는 저녁 한 끼가 소중했을 아이들이다. 놈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총을 쥐어 지옥으로 내 몰았다. 내 나라 내 민족이 아니지만 근원적인 악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올랐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새삼 코에 들러붙었다. 자욱한 피비린내에 의식 속 깊이 숨은 짐승이 포효했다. 죽여라, 찢어라, 말살하라, 머리가 둥둥 울렸다. 피비린내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비진도 민박집 좁은 방이 생각났다. 그녀의 작고 도톰한 입술이 간절했다. 쾌감으로 진저리치게 하던 그녀의 몸이 간절했다. 살육의 욕구와 욕정이 한꺼번에 끓어 올랐다.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머리를 울리는 북소리가 점점 커졌다. 눈앞이 벌겋게 변했다. 파란트로푸스의 잔인한 공격성이 이성을 비집고 의식의 표층에 떠오른 현상이다.
‘갈! 네놈의 신체가 아무리 굳건한들 마음이 허약해서야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느냐.’
스승의 노성이 머리를 쩡 울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겹다. 달콤하던 피비린내가 갑자기 역겨워졌다. 혜영의 싱그러운 향기에 비하면 이 얼마나 더러운 악마의 향기인가.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행복했던 한때다. 너무나 행복해서 겁이 났던 시절, 그녀의 맑은 영혼, 아련히 뿜어지는 영혼의 향기가 그립다. 미치도록 그립다.
수십 명의 인간을 갈가리 찢어 놓은 놈이 혜영의 알몸을 상상하며 욕정에 부들거리고 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가 끝없이 치솟았다.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거칠고 단단한 손이다. 수십 명의 피로 물든 손이다. 혜영을 안을 수 없게 된 손이다. 비통함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수많은 어린 소년병을 죽인 죄책감보다 혜영에게 돌아갈 수 없음을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이 가증스러웠다. 눈앞의 혜영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안녕, 내 사랑아!”
학자가 되고 싶어 했던 무쌍은 사라졌다. 피에 절은 악귀 블랙맘바가 자신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피에 절은 손으로 혜영을 안기엔 너무 염치가 없다. 한줄기 눈물이 볼을 가로질렀다.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가!
“으아아아~ 크아아아!”
블랙맘바가 온갖 감정이 깃든 울부짖음으로 토해 냈다. 어그러진 인생행로에 대한 비통함, 사랑하는 여자를 잊어야 한다는 자괴감, 자신을 인간 백정으로 내몬 더러운 인간들을 향한 복수심,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신에 대한 실망감, 온갖 감정이 내포된 울부짖음이다.
상처 입은 코끼리의 단말마가 얼디 하마르를 울렸다. 붉은 계곡이 부르르 울렸다. 굉량한 부르짖음에 작은 돌덩어리가 툭툭 굴러떨어졌다. 작업을 하던 팀원들이 기겁을 하고 귀를 막았다.
무쌍은 마음을 추슬렀다. 이곳은 죽고 죽이는 전장이다. 어차피 인간으로 살아남으려면 적을 죽여야 한다. 인간이란 존재로 남게 될지 다른 무엇이 될지는 뒤에 생각할 일이다.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하소서.”
그는 진심으로 기원했다.
블랙맘바가 장비를 정리해서 언덕을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깨비텐의 얼굴에 흰 선이 그어졌다.
“대충 정리가 되었나 보군. 대단한 정신력이야.”
“엄청납니다. 동양 무예에 사자후가 있다더니 직접 들을 줄은 몰랐군요. 계곡이 무너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깨비텐의 말을 부리머가 받았다.
“무서운 존재의 탄생이군. 세상이 뒤집어질 거야.”
깨비텐의 눈이 블랙맘바를 쫓았다. 블랙맘바는 전략 병기다. 극도로 단련된 육체, 예리한 전장 감각, 무시무시한 스나이핑 능력까지, 그야말로 꿈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완벽한 인간 병기다.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라면 경험이었다. 경험 부족은 때로 모든 장점을 상쇄하는 엄청난 핸디캡이 될 수 있다. 생사가 갈리는 전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죽음은 연습이 없기 때문이다. 연습으로 죽어 본 사람은 예수가 유일하다.
인간의 가치는 경험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군인은 더욱 그러하다. 역전의 용사라는 수식어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신병 열 명과 고참병 한 명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도 그냥 생긴 속어가 아니다.
첫 살인의 충격을 수습한 블랙맘바는 그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상식을 초월한 강함을 지닌 블랙맘바의 존재는 히든 에이스다. 깨비텐의 입이 귀밑에 걸렸다.
블랙맘바는 침음했다. 널브러진 43구의 게릴라 시체는 지난 일 년 동안 자신이 받은 삼만 프랑이란 연봉의 대가였다. 밥값을 했다는 이야기다.
자신은 용병이다. 많이 죽이면 많이 죽일수록 대가를 많이 받는 전투 용병이다. 전장에는 욕심과 욕심, 악의와 악의의 다툼이 있을 뿐이다. 자신도 악의에 오염된 욕심 덩어리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이미 좁은 굴속에 몸을 욱여넣었다. 끝이 빛으로 환하든 막혔든 돌아 나갈 방법이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어차피 인간은 모순적 존재다. 안간힘을 다해 존재의 모순과 생존의 갈등을 풀어 보려는 슬픈 존재다. 뒤엉킨 모순적 감상은 해소되지 않는다. 스스로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하는 정도가 인간의 능력 범위다.
블랙맘바는 전장 정리 중인 동료들을 내버려 두고 언덕을 내려갔다.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블랙맘바는 잡일을 할 군번이 아니다.
계곡 바닥으로 내려간 블랙맘바는 연못에서 피비린내가 배인 몸을 씻었다. 껍질이 벗겨지도록 박박 밀었다. 몸에 밴 피비린내에 코가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살상용 병기를 손질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상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쩌다 보니 목탁을 들었던 손에 살인 무기를 들었다. 어쩌랴! 주어진 업보인 것을,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흘러왔다.
방수포를 펼치고 드라구노프를 분해했다. 스나이퍼에게 총은 자신의 생명과 같다. 항상 최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리해 놓아야 한다. 모든 부품이 사용자의 손가락 움직임에 한 치의 오차 없이 반응해야 원하는 스폿에 총알이 꼽힌다.
총을 거꾸로 들고 총강을 들여다보았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훅 풍겼다. 총강에 화약 찌꺼기가 눌어붙었다.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한 후유증이다.
총기의 기본 구조와 작동 원리는 그 다양한 종류에 불구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소총은 개머리판, 총열, 노리쇠 뭉치, 방아쇠 틀, 탄창 및 삽입구, 가스활대로 이루어져 있다.
멈치 못을 뽑고, 노리쇠 뭉치를 꺼내는 것으로 분해를 시작했다. 강중유로 총강을 닦아내고, LSA를 먹인 천으로 부품을 하나씩 정성 들여 닦아냈다.
긁힌 자국은 없는지, 작동부에 화약 찌꺼기가 남지는 않았는지, 이상 마모된 곳은 없는지, 샅샅이 살폈다. 점검과 수입이 끝났다. 번들거리는 부품을 의식을 치르듯 정성 들여 조립했다.
총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순간은 모든 의식과 감각이 작업에 집중된다. 마음이 더 할 수 없이 평안해진다. 암자에서 스승의 염불을 들을 때와 비슷했다. 목탁과 저격총은 어울릴 수 없는 아이템이지만 묘하게 합치되었다.
철거럭- 마지막으로 노리쇠 뭉치를 힘차게 밀어 넣고 벌떡 일어났다. 밥값을 할 타임이다. 동료들이 걱정하는 찌질이가 되려고 그토록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다.
“블랙맘바, 축하한다.”
깨비텐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와아!”
모여 있던 동료들이 환성을 질렀다. 루키가 스스로 추스르고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블랙맘바는 머쓱해졌다. 이들은 자신이 살인의 충격에 매몰된 줄 알지만, 전혀 아니다. 최도식으로 인해 내재된 짐승의 욕구가 촉발되었을 뿐이다.
“그렇다. 내게는 등을 지켜주는 동료가 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깨비텐이 싱글거렸다.
“블랙맘바, 이번 수당은 오만 프랑이 넘겠어.”
“그렇게 많이?”
“43명 사살에 저기 커다란 깡통 2개도 노획했잖아. 화기도 짭짤하거든.”
깨비텐이 전과 보고서를 흔들었다. 외인부대는 전투 참가 시 전투 수당을 받는다. 수당은 작전 부대의 전과와 함께 개인의 전과를 평가하여 책정된다. 폴의 말은 팀에 배정될 수당이 오만 프랑이라는 이야기다. 개인 수당은 다시 별도로 책정된다.
부리머가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놈들은 프롤리나트에서도 악질인 하비브 부하들이다. 블랙맘바가 첫 타로 박살 낸 놈이 무스타 중령이다. 저놈은 원주민 유아를 삶아 먹는다는 싸이코패스다. 내가 죽이고 싶은 놈인데 블랙이 가로챘단 말이다. 저놈이 저지른 역겨운 짓거리는 드러나지 않은 게 더 많아.”
블랙맘바는 흠칫했다. 아이를 삶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중세도 아닌 20세기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를 먹었다?”
“사실이다. 호전적인 부족 중에 황당한 생각을 하는 놈들이 더러 있다. 피그미족을 먹으면 신의 용기가 생긴다고 믿는 부족은 상당수다. 콩고와 가봉 쪽 오지의 피그미들이 상당수 더러운 놈들의 뱃속에 들어갔다. 이곳은 피그미족이 없다. 피그미족 대용으로 어린애를 잡아먹은 것이다. 자넨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악마를 죽였다. 이것들은 마음에 담아 둘 가치가 없는 짐승들이다.”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기 어렵다.”
부리머가 씩 웃었다.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컨디션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