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81
x 281
제31장 나쇼날 트레조르11
“아랍인이 진실하다고? 착각이다. 아랍인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거짓말을 잘한다. 그들은 거짓말을 나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 거짓말이 폭로되었을 때 나쁘다고 여긴다. 거짓말이 생활화된 나머지 말끝마다 왈라히(알라께 맹세한다), 우끄시무 빌라히(알라를 두고 맹세한다), 쌋띠끄니(내 말을 믿어줘)를 덧붙여 진실임을 강조한다. 그만큼 거짓말이 생활화되었다는 뜻이다.”
“하부츠, 내가 경험한 시리아인들은 진실한 사람들이었다. 자존심 강하기론 자네들 터키인들이 세계 최강 아닌가?”
하부츠의 비난에 블랙맘바가 톡 쏘았다.
“하하하, 그렇긴 해. 섹스 경험이 없는 총각을 병신 취급하면서 여성 순결은 엄청나게 따지는 웃기는 인간들이지. 내가 알기엔 한국인도 허풍세고 마초 기질이 강한 걸로 이는데.”
역공을 당한 블랙맘바가 입을 다물었다.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저 사람들은 ‘신에게 맹세한다.’ ‘내 말을 믿어달라’ 따위의 말을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다. 자네를 절대적인 지도자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자네는 공작원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가 돼야 할 사람이다.”
“무슨 소리, 터키와 시리아의 편협된 종교적, 인종적 정책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타크피르(아랍의 배교자, 이단자 참살 관행)에 후달리는 삶이 너무 처절했다. 오지랖이 넓은 탓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뿐이다. 일시적인 변덕일 뿐이다.”
블랙맘바가 펄쩍 뛰었다. 정치 지도자라니! 소름이 돋았다. 한국에 제대로 된 정치인이 있던가? 선거철만 되면 책임지지 못할 공약을 쏟아내고, 당선되면 제 잇속 챙기기에 바쁜 인간이 정치인이다. 말만 들어도 벼룩이 옮은 듯 근질거렸다.
“나도 정부의 인종 정책은 별로 동의하지 않아. 타크피르는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자네는 누구도 못할 일을 해치웠네. 정치인이 싫으면 신이라고 하지. 버려진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그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바로 신이 아니겠나.”
“어이구 그만하자. 닭살 돋는다. 하부츠,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블랙맘바가 손사래를 쳤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친구의 비밀은 지켜진다. 자네의 특이한 능력을 목격한 요원들도 입을 다물걸세. 떠들어봐야 술집의 가십거리에 불과하겠지.”
하부츠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파괴 공작원은 인간이 아니라 냉혈 동물이다. 작전에 들어가면 차마 언급하기 힘든 비인간적인 행위도 거침없이 저지른다. 007 시리즈 같은 로맨스와 낭만은 영화에나 존재할 뿐이다.
하부츠는 자신도 모르게 막내 동생뻘인 동방불패에 끌렸다. 공작원으로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초인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선대의 인연이 있어서인지 한국은 호감이 가는 나라다. 터키와 인종적 공통점도 있다. 하부츠는 급상승하는 호감이 강화된 간섭장의 효과임을 꿈에도 몰랐다. 물론 블랙맘바 본인도 모른다.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원의 입을 믿느니 여자의 입을 믿는다는 말도 있지만, 하부츠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 정보계에는 미국, 소련, 이스라엘이 운용하는 초능력자도 다수 있다. 자신의 능력이 일부 알려져도 어쩔 수 없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프랑스의 비밀병기 아쥐 레머는 각국 정보기관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한국인 무쌍이라는 최후 비밀만 드러나지 않으면 된다.
“친구, 어서 가자고. 하타이 공항에 제트기가 대기하고 있다. 프랑스 당국자들은 행여나 우리가 자네를 가로채지 않을까 두려워서 조바심을 내고 있을걸세.”
“그건 그쪽 사정이지. 일주일이 두 달로 변해버렸군. 시리아에 정이 들 지경이야.”
블랙맘바가 감회어린 눈으로 햇빛에 반짝이는 나홉의 민둥산 바위 덩어리를 돌아보았다.
1984년 10월 10일,
1만 5천 톤급 여객선 파리야 호가 시리아 탈주민 540명을 태우고 이스켄데룬 항을 출발했다. 승선 즉시 프랑스 이민부 직원 10명, 내무부 직원 20명이 달려들었다. 누더기는 깔끔한 새 옷으로 바뀌고, 즉석에서 시민권이 발급되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탈주민들은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들은 거듭된 기적에 뚜바이부르파가 신의 대리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입이 댓 발이 튀어나와 구시렁거리는 인간이 딱 한 명 있었다. 주인을 따라가지 못한 자말이다. 블랙맘바는 자말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했다. 사헬 작전 후 따라온 옴부티의 극성에 질려버린 탓이다.
18인승 제트기가 드골 공항에 착륙했다. 단 한 명의 손님이 주기장에 내렸다. 등판을 완전히 가리는 커다란 배낭을 멘 훤칠한 동양인, 블랙맘바다.
“몽 디우, 세 땅끄 화이아블로.(세상에, 멀쩡하군.)”
턱수염을 기른 빼빼 마른 남자가 환한 얼굴로 맞았다. 클로드는 긁힌 자국 한군데 없는 블랙맘바를 보고 놀랐다. 그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만신창이를 예상하고 엠블런스까지 대기시켰다.
“헤러 보스 페데 보트 트레비에.(당신 할 일이나 해.)”
냉정한 대답에 클로드가 움찔했다. 괴수의 기분이 좋지 않다. 경계경보가 웽 울렸다.
블랙맘바는 실제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태연한 상대방의 태도에 비위가 상했다. 자이툰이 정보부 중동과장이 KGB 끄나풀이라 했다. 클로드가 정보부 중동과장이다. 자신을 똥구덩이로 밀어 넣은 놈의 쌍판이 기분 좋을 리 없다. 자이툰을 은근슬쩍 안내인으로 붙인 놈도 클로드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이제이다.
기분이 가라앉은 또 한가지 이유는 인명을 너무 많이 죽였다는 자책감이다. 사람을 죽여도 너무 많이 죽였다. 사헬에서 죽인 숫자는 비교도 안 된다. 본의가 아니지만, 결과가 너무 파괴적이다. 막상 정산할 타임이 되자 새삼 기분이 더러워졌다.
프롤리나트 게릴라의 살상 숫자를 계산해서 수당을 받은 사헬 작전이 생각나 버렸다. 인간을 떼로 죽이고 그 값을 계산해 받는다? 애써 지운 피비린내가 다시 몸에 배었다.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극악한 ANO와 호라잔 테러리스트의 비틀어진 정의와 신념이야 알 바 아니다. 본의 아니게 시리아 정규군을 너무 많이 죽였다. 그들은 아사드의 야심과 상관없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다.
“차량이 대기 중이다. 곧장 본사로 간다.”
“아리바 과장은 애보러 갔나? 왜 당신이 나왔나?”
“그 친구는 아쥐레머 포비아 증후군에 걸렸다. 당신 얼굴만 봐도 식은땀이 난다더군. 내가 대신 나왔다.”
“난 보기보다 다정한 사람이다.”
‘망할, 다정해서 수천 명을 쓸어버리나. 나도 겁나 죽겠구먼. 망할 자이툰 새끼는 어떻게 된 거야. 이놈을 죽이지 못했으니 죽었겠군.’
클로드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은자메나에서 만났을 때는 한 마리 맹수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게 더 무서웠다.
“몽 디우, 나쇼널 트레조르!”
보니파스가 집무실에 들어선 블랙맘바를 끌어안을 듯이 달려들었다.
“남자는 취미 없다.”
블랙맘바가 손을 흔들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공작원이 정보부 수장 면전에서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특별군사고문은 명목상 차관급이다. 보니파스와 동급이다.
‘이 자식이 또 사람을 은근히 겁주네.’
보니파스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회의 테이블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정보부장 무사 카바에다.”
“블랙맘바다. 동방불패라 불러라.”
블랙맘바가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억수갑이 카바에의 손을 박살 낼 위험이 있다.
“동방불패, 잘못된 정보로 작전에 차질을 줘서 미안하다. 사과하겠다.”
카바에가 눈치 빠르게 사과했다. 블랙맘바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DGSE 정보부장이면 서열 삼위다. 정보수장이 직접 사과를 하다니 별일이다. 보니파스에게 따지려던 건수 한 개가 날아가 버렸다.
“부활의 날에 두고 맹세하사, 나무라는 영혼을 두고 맹세하나니……. 하느님은 인간의 뼈를 모으시리라. 그날에, 인간의 혀, 손, 발은 그것들이 저지른 대로 증언할 것이며, 그 날 하나님께서 그것들에 합당한 보상을 하시리라.”
블랙맘바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코란의 한 구절을 암송했다. 자이툰이 죽기 전에 암송한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자말이 프랑스어로 번역해 주었다.
‘헐, 이 자식 단단히 삐쳤구먼.’
보니파스와 카바에의 표정이 살짝 경직되었다. 저지른 대로 증언하고 합당한 보상을 한다는 문구에 가슴이 섬뜩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트레이트가 날아왔다.
“방공 미사일 건은 넘어가 주지. 안내인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자이툰은 DIA 중동지역본부 쉐도우 3호였다. 내 판단으로는 시리아 담당 DIA 컨설턴트다.”
“흐으!”
보니파스와 카바에가 동시에 신음했다. 암호통신을 통해 짐작은 했지만 보통 문제가 아니다. 거물급 DIA 스파이를 블랙맘바 안내인으로 붙이다니,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다. 미국이 시리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된다. 내부 정보 흐름을 다시 세팅해야 할 상황이다.
“놈은 죽었나?”
“동방불패에 대적한 놈치고 숨 쉬는 놈은 없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언사다. 보니파스는 블랙맘바가 굶주린 맹수임을 새삼 느꼈다.
“사과한다. 내 잘못이다.”
보니파스가 순순히 잘못을 시인했다. 블랙맘바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선을 잡았다.
“자이툰은 보툴리누스 톡신을 코팅한 피스켓 카우를 사용했다. 나는 미국이 그런 악랄한 독극물을 공작원에게 지급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그런 형태의 무기와 독극물은 KGB와 모사드 전문 아닌가?”
블랙맘바가 의문을 제기했다.
“으음, 보툴리누스 톡신! 모스크바 근교 세르기예프포사트 연구소다. 그곳에서 보툴리누스 톡신을 정제 배양하고 에볼라 혈청을 전문적으로 배양하고 있다. 자이툰과 KGB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KGB와 CIA 공조인가?”
보니파스와 카바에의 얼굴이 컴컴해졌다. 시리아에서 모종의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중동에서 프랑스의 국익을 침해하는 작전이 분명했다.
“맞소. 소비에트연방의 국방부와 KGB가 협력하여 생물무기 개발을 진행 중이요. KGB와 CIA 공작원이 다마스커스에서 접선한 흔적이 있소.”
카바에가 보니파스의 의문을 확인해주었다. 보니파스는 즉시 수화기를 들고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클로드가 정보부 중동과장인가?”
블랙맘바가 불쑥 물었다.
“그렇다.”
“첫 번째 선물이다. 클로드를 체포하라. 놈은 KGB 끄나풀이다.”
블랙맘바는 자이툰이 알려준 선물로 직격탄을 날렸다.
“뭣?”
보니파스와 카바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믿을 수 없다.”
카바에가 눈을 끔벅였다.
“부장, 자이툰이 실토한 정보다. CIA 몰도 있다는 눈치를 주었다.”
블랙맘바가 냉랭하게 말했다. 카바에의 얼굴이 탈색되고, 보니파스가 벌떡 일어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작전부는 DGSE 조직 내 오열을 색출하는 기능이 있다.
“아리바, 클로드를 즉시 체포해서 구금하라.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작동하라.”
“보니파스 부장, 이건 믿을 수 없소.”
카바에가 붉어진 얼굴로 항의했다.
“카바에 부장, 블랙맘바를 아직 모르시겠소. 그는 나쇼널 트레조르요. 자이툰을 안내인으로 붙인 놈을 족치면 연결 고리가 나올 거요.”
“빌어먹을, 이건 믿을 수 없어.”
카바에 부장이 부정했지만, 보니파스의 지시를 제지하지 못했다. 한숨을 푹 쉬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과장은 실무 핵심이다. 클로드가 몰이라면 DGSE 정보가 소련으로 대량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자리도 위태로워진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혹시, 블랙맘바의 정보도 KGB에 넘어가지 않았겠소?”
카바에가 불안한 눈으로 보니파스를 쳐다보았다.
“카바에 부장,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클로드의 암호 등급은 3급이오. 블랙맘바의 신상 정보엔 접근할 수 없소.”
보니파스의 위로에 카바에가 한숨만 푹푹 쉬었다.
“보니파스, 두 번째 선물이다.”
블랙맘바가 파우치에서 꺼낸 개인 물품을 차탁에 주르륵 늘어놓았다. 자동차 키, 필기구, 작은 수첩, 스위스제 다목적 칼, 열쇠고리, 소형 쿠크리다.
“이게 뭔가? 공항에서 퍽치기라도 했나?”
보니파스가 의아한 눈으로 블랙맘바를 바라보았다.
“퍽치기는 CIA가 했다. 루만 지하에서 고문 중에 사망한 인물의 유품이다. 특별한 사람인 듯해서 유품을 수습해왔다. 사이어와 다이슨이란 놈이 파스칼 벨몽이라 하더군.”
“파스칼 벨몽!”
보니파스와 카바에가 벌떡 일어났다. 와당탕- 소파가 뒤로 벌떡 자빠졌다.
‘아따, 그 인간들 방정맞네.’
“죽었나?”
“유품이라고 했다. 고문 끝에 죽었다. 범인은 사이어와 다이슨이란 암호명을 가진 CIA다. 비인간적인 고문에 화가 나서 목을 잘라버렸지.”
블랙맘바가 개미 목을 뜯었다는 식으로 덤덤히 말했다. 보니파스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망할 놈의 양키 새끼들, ANO와 붙어먹었군. 가만두지 않겠다.”
“파스칼 벨몽이 누군가?”
“DGSE 중동 지부장이다. 루만 작전 직후 납치당했다. 큰일이군. 정보가 넘어갔으면 중동 전략이 엉망이 된다.”
“흐흐흐, 놈들이 벨몽에게 무엇을 뽑아냈든 상관이 없다. 내가 싹 걷어왔거든. 세 번째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