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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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나쇼날 트레조르13
보니파스는 사헬에 땅을 얻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도와주겠다는 말만 했다. 쓸데없는 호기심과 간섭은 좋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그 많은 돈을 어디 쓸 텐가?”
“다다익선 아닌가. 젊을 때 열심히 벌어야 늙어서 편해지는 법이거든.”
“나보다 20년은 일찍 삶의 진리를 터득했군. 크크크!”
보니파스가 낄낄 웃으며 금장 백합이 박힌 청색 카드를 내밀었다. 백합은 프랑스 국화로 고위 관료는 금색, 일반 공무원은 은색 문장을 사용한다.
“피용 내무 장관이 자네에게 선물을 보냈네. 정확히 말하면 잘 봐달라는 뇌물인 셈이지. 월 사용 한도액 5만 프랑, 현금 인출 한도 5만 프랑, 사용 기한은 30년일세.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신용카드가 현금보다 널리 쓰인다네. 한국에도 신용카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더군. 용돈으로 쓰게.”
보니파스는 아낌없이 풀었다. 소금 먹은 놈이 물을 켜게 되어있다. 보니파스, 아니 프랑스는 사람을 부릴 줄 알았다.
“메르시!”
블랙맘바는 사양 않고 카드를 받았다. 매월 한화로 1,300만 원을 카드로 긁고 1,30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면 적은 돈이 아니다. 2,600만 원이면 한국 중견 은행원 연봉의 10배다. 용돈이라기엔 지나치게 많은 액수다. 루만 작전을 통해 자신의 가치가 수직으로 올라갔음을 새삼 느꼈다.
정산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성과도 컸지만, 보상도 컸다. 노동의 대가는 넘칠 만큼 챙겼다. 보니파스도 만족하고 블랙맘바도 만족했다.
“피곤하지 않으면 몇 가지 묻고 싶은데?”
느긋해진 보니파스가 그제야 궁금증을 드러냈다. 써펀트다운 인내심이다.
“피곤하지만 물주의 궁금증은 풀어주고 쉬어야지.”
“카파루자 계곡은 어떻게 된 일인가? 보고서 기다리다가 숨넘어가겠네.”
“루만을 쓸어버리고, 동굴에 저장된 생화학탄을 발견했다. 200ℓ 드럼 수백 개에 금속용기가 수백개 있었다. 어설프게 폭파시켰다간 외부 유출이 될까 두려웠다. 대형 프로판 봄베 4개를 동굴에 집어넣고 컴포지션으로 증기운 폭발을 유도했다. 밀폐된 지역이라 폭발 압력이 대단했다.”
“허, 최선의 선택이었네. 독가스와 세균을 처리하는 방법으론 최적이네. 컴포지션도 부족했을 텐데 베르쿠트 기지는 어떻게 처리했나?”
“그게 문제였어. 120기나 되더군.”
“120기?”
보니파스가 화들짝 놀랐다. 베르쿠트가 한물간 미사일이지만, 레이더와 순간 회피 능력이 달리는 미라쥬에 쥐약이다. 120기라면 미라쥬가 시리아 국경을 넘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
“폭약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했지. 몽땅 한자리에 모아서 컴포지션으로 유폭시켰다.”
“겐트리에 거치 된 탄두를 뜯어서 한자리에 모아 폭발시켰다고?”
보니파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블랙맘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삽질하는 바람에 두 달 가까이 지하에 처박힌 쓰라린 기억이 떠올랐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군. 내 생애에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570kg인 베르쿠트 탄두를 한 자리에 모아서 불을 싸질렀단다. 입이 떡 벌어진 보니파스는 멀거니 블랙맘바를 바라보았다. 인간이 아닌 줄은 알고 있지만, 무식해도 너무 무식한 방법이다.
“그렇게 괴물 보듯 보지 마라. 나도 폭발력이 그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다. 댐을 처리하려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에 댐이 터졌다.”
“미사일 탄두 120개의 폭발력이 연약한 지반을 흔들어 댐을 붕괴시켰나 보군.”
“그렇게 되었다. 댐에 갇혀있던 호숫물이 50m높이로 벌떡 일어나서 발전소를 날려버리고 덮치는데, 어휴!”
블랙맘바가 말을 멈추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포의 순간이 새삼 아찔했다.
“지진이 벌려놓은 암반 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다음은 뻔하다. 끝없이 지하로 빨려 들어갔고, 끝없이 기어나왔다.”
블랙맘바는 지저 세계와 탈출 과정은 쏙 빼고 간단히 말했다. 미주알고주알 말하기도 싫고,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수억 년 전 고도의 과학 문명을 이룬 콘크레투스, 에피듐의 존재, 공룡 세계를 설명했다간 정신병원에 실려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고생이 많았군.”
“5억 프랑 벌기가 쉽나!”
뼈있는 말에 보니파스는 허허 웃었다. 블랙맘바만이 가능한, 블랙맘바이기에 살아온 작전이다.
“할리우드 영화도 못 따라갈 액션과 모험이군. 푹 쉬고 보고서는 내일 올려주게.”
“조금 피곤하긴 하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피곤했다. 두 달 이상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다. 파란트로푸스의 몸뚱이도 한계가 있다.
‘아차, 락샤샤!’
자리를 털고 일어서던 블랙맘바가 백팩을 뒤졌다. 홍수에 휩쓸렸을 때 고르곤을 분실했다. 락샤샤에서 발사라를 제거해서 보니파스에게 넘겼다. 보스사우루스 힘줄보다는 발사라가 백배 귀중한 아이템이다. 락샤샤는 현대 소재로 대체할 수 있지만 발사라는 대체 불가능이다.
“그걸 주재료로 채찍을 만들어라. 길이는 8m, 중량은 30kg이다.”
“이게 도대체 뭐지?”
묵직한 흑갈색 물체를 받아든 보니파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동물의 힘줄 같긴 한데 이처럼 길고 굵은 힘줄을 가진 동물은 없다.
“나도 모른다. 우연히 얻은 물건이다. 탄성을 살리고 편두는 1.5kg 중량물로 무게 중심을 맞춰라.”
“30kg 중량에 8m짜리 채찍이라, 용이라도 때려잡을 작정인가. 기술부에서 눈이 뒤집히겠어. 완성되면 연락하지.”
보니파스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할 블랙맘바도 아니다. 보니파스의 신기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블랙맘바는 지저 호수에서 공룡을 때려잡았으니 말이다.
“리노세로스(rhinocéros, 코뿔소. 11공정여단의 별칭) 작전참모 조프레는 잘 있나?”
집무실을 나가던 블랙맘바가 휙 돌아보았다. 보니파스는 가슴이 덜컹했다. 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헬에서 귀환한 블랙맘바는 배신자 3인방 중에 미구엘과 땅쉬 대령만 처치하고 떠났다. 무슨 변덕인지 저지섬에 금고된 조프레는 아랍식 타키피르를 면했다.
땅쉬와 미구엘의 처참한 최후는 DGSE 책임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블랙맘바에게 원한을 사느니 자살이 낫다는 말이 퍼졌을 정도다.
“조프레는 극심한 PTSD에 시달렸네. 끝내 미쳐서 자살했네.”
“행복하게 죽었군.”
‘살벌한 놈, 말려 죽일 심산이었군.’
보니파스는 섬뜩했다. 감옥에 가둬두고 블랙맘바 특유의 겁주기를 계속하면 차라리 죽음이 행복이다. 조프레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사헬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를 돌려주려는 의도임을 깨달았다.
11공정여단 작전 참모인 조프레의 진짜 신분은 DGSE 작전부 중동팀 소속이다. 블랙맘바가 백린으로 태워버린 미구엘 과장의 직속 부하다.
DGSE는 만성 독극물로 조프레를 암살했다. 블랙맘바가 조프레의 신분을 알아낼까 두려워 입을 막은 것이다. 성실히 임무를 수행한 조프레 소령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다. 공작원의 숙명이다.
리무진이 센강을 건너 샹젤리제 거리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으로 콩코르드 광장이 지나갔다. 겁먹은 프랑스 군부 고위 인사들이 사헬 출정식을 벌인 장소다. 픽- 웃음이 새 나왔다. 뒤이어 사막에 묻힌 샤트르와 동료들이 떠올랐다. 용병의 숙명이다.
“고문, 즐거운 기억이라도 떠올랐나?”
운전대를 잡은 아리바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무거운 침묵에 깔려서 질식할 뻔했다.
“하나님이 피에 쩐 인간에게 즐거운 기억을 허락할 리 있나. 시간 속에 녹은 정서적 잔재가 잠시 떠올랐을 뿐이다. 바쁜 과장이 직접 숙소 안내를 맡다니 별일이군.”
“명색이 담당 과장인데 프랑스 최고의 국보를 챙겨야지. 브리스톨 호텔은 숙박료가 비싼 만큼 아늑하다. 레스토랑에 한국 음식도 몇가지 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여자 요원이 옆방에 숙박한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여자 요원? DGSE가 안기부에 가서 한 수 배웠나? 이 자식아 고급 콜걸이 아니면 내 성을 간다.’
블랙맘바는 속으로 피식거렸다. 보니파스는 얄팍한 수를 쓰지 않는다. 아리바의 잔머리가 뻔했다.
“허, 대접이 달라졌군.”
“프랑스는 자본주의 사회다. 능력만큼 대접받는 거지.”
“능력만큼 대접이라~ 그만큼 무서운 말도 없다. 비싼 점심을 먹으면 비싼 밥값을 해야 하거든.”
쿵- 스위트룸이 울렸다. 무심코 백팩에 내려놓은 블랙맘바가 머리를 긁적였다. 400kg 금덩어리를 깜박했다. 띠리링- 객실 인터폰이 울렸다.
-고문님, 별일 없으세요?
-별일 없다. 프랑스에서 제일 신뢰받는 은행이 어딘가?
-BNP파리바 은행이에요. 지금은 은행이 아니라~
-알았다. 별일 없을 테니 신경끄고 푹 쉬어라.
-철컥
“지랄, 은행 출입문을 열지 말고 갈보 거시기를 열어라고?”
블랙맘바는 여자 요원(?)의 말을 뚝 자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영업용에 탑승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 파리바 은행은 이미 거래하고 있는 은행이다. 한국에 지점도 있다.
스위트 룸은 아리바가 장담한 만큼이나 아늑했다. 숙면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남자의 야망, 이 땅에 태어난 흔적을 남기고 싶어 시작한 일이 바쁜 다리를 움켜 잡았다.
벌여놓은 일 때문에 곧장 한국으로 날아가기는 틀렸다. 옴부티와 에델이 은자메나에 곡물 회사를 차렸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다. 아프리카는 한 마디로 골때리는 대륙이다.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면서 굶어 죽는 인간이 매년 수십 수백만이다.
“카사바는 별문제 없지만, 커피는 품종이 문제구마.”
사헬에서 재배할 주력 농산물은 카사바와 커피로 결정했다. 나름대로 식생과 기후를 연구한 결과다.
카사바는 덩이뿌리 식물이다. 줄기는 목화와 흡사하고, 덩이뿌리는 고구마 비슷하게 생겼다. 길이 30∼50cm, 지름 20cm로 고구마보다 훨씬 크다. 덩이뿌리에는 20∼25%의 녹말이 들어 있고, 칼슘과 비타민C가 풍부하다. 주식으로 손색없다. 카사바의 덩이뿌리에서 채취된 녹말이 타피오카(tapioca)다. 카사바는 몰라도 타피오카를 아는 사람은 많다. 타피오카 전분, 캐러멜, 과자 제조, 식용, 방직용 풀로 많이 이용되기 때문이다.
재배하기도 쉽다. 줄기를 30∼40cm 길이로 잘라서 1m 간격으로 심으면 뿌리가 내리고, 6∼12개월 이내에 고구마 같은 덩이뿌리가 달린다. 토질과 기후의 영향도 그리 받지 않으며 단위 면적당 소출도 많다. 단점은 소출이 많은 만큼 지력을 심하게 소모한다는 점이다.
양호한 식량 작물인 카사바가 널리 재배되지 못하는 이유는 물 부족 때문이다. 물만 해결되면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은 사헬 지역에 적합한 작물이다.
“물이야 내가 찾으면 되고, 한국의 지하수 업자를 몽땅 끌고 와서 관정을 박으면 되겠지.”
블랙맘바의 주특기인 어떻게 되겠지다.
문제는 커피다. 카사바가 먹고 살 식량 작물이라면 커피는 기호 식품으로 돈을 벌 환금 작물이다. 생산량이 중요하지 않고 품질이 중요하다. 생육 조건을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커피는 남북위 20° 이내가 최적의 재배 위치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생장 속도가 느려지는 대신 고품질의 커피 체리가 나온다. 꽃눈의 분화, 개화, 수분을 위해서 약 3달 정도의 건조 기후가 필요하다. 생장 시기엔 당연히 물이 필요하다.
후보지 중 하나인 엔네디 고원의 아그바야가 대략 북위 23°다. 해발고도 1,000m로 고도도 적당하고, 건조 지역이다. 물만 공급되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문제는 자신이 커피에 대해 개뿔도 모른다는 점이다. 커피라곤 컴컴한 다방에서 설탕과 프림을 듬뿍 쳐서 달달한 맛을 즐긴 게 전부다. 용병이 된 후에야 뻘짓임을 알았지만.
“아이구 모르겠다. 전문가를 붙이면 되겠지.”
블랙맘바답게 고민을 툭 끊어버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머니를 찾으러 가야할 놈이 얽힌 인연에 묶여 시간을 허송하고 있다. 깝깝한 노릇이다. 이것저것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자신은 전사다. 혁명가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모세는 더더욱 아니다.
이튿날, 블랙맘바에게 호출당한 아리바는 노동 착취를 당했다. 문서 작업을 극도로 싫어하는 블랙맘바다. 아리바는 장장 세 시간 동안 구술을 옮겨쓰느라 팔에 쥐가 났다. 특급 대외비를 직원에게 대필시킬수도 없다. 구술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하느라 추가로 두 시간을 잡아먹었다. 타자기에서 해방된 아리바는 만세를 불렀다. 옆방에선 일만 프랑의 거금을 놓친 여자의 한숨이 새나왔다.
사흘 후 베르사유 대통령궁 안보회의, 미테랑이 번질거리는 눈으로 참석자들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해외영토/자치/내무장관 피용, 국방장관 샤를 제르맹, DGSE 총국장 라고스, 참모총장 보르도, 옵저버로 DGSE 보니파스 부장과 카바에 부장, 헌병 총국장 마지프가 참석했다. 프랑스의 국방과 치안을 책임진 최고위 인물들이다.
“우리 프랑스의 국보는 편히 쉬고 있나?”
미테랑이 웃음 띤 얼굴로 보니파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니파스가 요약해서 올린 최종 보고서에 한껏 기분이 업된 상태다.
“네 각하, 현재 브리스톨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번거롭다고 요원들도 물리고 산책과 수영,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편함이 없도록 부장이 신경 쓰시오. 고생한만큼 푹 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