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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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옴부티 날다3
선물을 고민하는 이유는 옴부티가 투아레그족 임모하렌이기 때문이다. 투아레그족은 미신도 많고 따지는 것도 많다. 귀족 계급인 임모하렌의 긍지와 자존심은 대단히 높다. 물론 옴부티는 바지 선물, 아니 치마를 받아도 와킬의 은혜라며 기쁘게 입고 다닐 인간이다.
푼수 삼촌 같은 사람이자 충직한 인물인 만큼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죽음의 천사 아즈라일의 본체는 소심한 한국 남자 무쌍이다. 전장을 떠난 블랙맘바는 정 많고 어른을 챙길 줄 아는 한국의 젊은이일 뿐이다.
서아프리카는 프랑스의 안마당이다. 아프리카에 정통한 DGSE 요원이 많다. 투아레그족 임모하렌은 어떤 선물을 좋아하지? 한 마디만 물어보았어도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놈의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잊어버리는 정신머리가 문제다.
“황금 싫어하는 놈은 없겠지. 금은방을 찾아야겠어.”
블랙맘바가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마땅한 선물이 없으면 현금을 주면 된다. 투아레그족은 돈을 주면 모욕으로 여긴다. 옴부티가 그럴 리야 없지만, 주인의 재산 어쩌고 하면서 짱박아 두기 십상이다. 현금 중의 현금은 황금이다. 묵중한 배기음이 은자메나 중심가인 톰발바예가를 울리고 다녔다.
“이거야 원, 금은방 찾기도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구마.”
한참을 발발 거리며 돌아다녀도 금은방이 눈에 띄지 않는다. 꽃집도 못 찾고 금은방도 없다. 눈에 띄는 가게는 전부 옷가게와 식료품 가게다. 하긴 당장 입을 옷과 먹거리가 아쉬운 판에 사치품을 찾을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옴부티도 곡물과 직물을 취급하는 회사를 차렸다. 망할 놈의 나라는 파리와 모기, 모래바람만 넘치도록 많을 뿐,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차드란 나라가 정말 싫어졌다.
“에이 썅, 금괴나 몇 개 가져올걸.”
후회해도 늦었다. 금괴는 BNP파리바 은행 지하 금고에 얌전히 쉬고 있다. 블랙맘바는 품속에 든 핑크빛 다이아몬드를 만지작거렸다. 어머니께 드릴 선물만 아니라면 옴부티에 줘 버리고 싶었다.
‘아차, 에델!’
옴부티와 함께 있을 에델을 깜빡했다. 옴부티는 둘째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여자에게 선물 없이 면상을 들이밀기엔 낯가죽이 간지럽다.
“아이고, 내가 미친다.”
세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금은방을 찾느라 눈이 사팔뜨기가 될 지경이다. 9시에 파리에서 출발한 닷소 팔콘은 오후 2시에 은자메나 공항에 착륙했다. 지금 시각은 오후 5시다. 심리적으로 지쳐버린 블랙맘바는 건물 계단에 털썩 앉아 코히바지골로를 빼 물었다.
‘도대체 내가 뭐하는 짓이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도넛을 피워올리는 모습이 한심했다. 자가용 비행기로 아프리카까지 날아와서 하는 짓이 가관이다.
‘엉?’ 고개를 치켜들고 연기를 푹푹 뿜던 눈동자가 딱 정지했다. 건물 기둥에 동판이 박혀있다. 동판에 새겨진 불어에 눈동자가 포획되었다.
[TOTAL Bijoutiers/atelier de métal précieux]“토탈 보석상! 세상의 모든 귀금속 취급이라고라?”
블랙맘바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후다닥 뒤로 물러나서 건물 아래위를 살펴보았다. 3층 석조 건물은 아무리 봐도 금은방이 아니다. 벽체 화강석은 75mm 야포를 튕겨낼 만큼 육중하고, 창문은 손바닥 크기다. 굳게 닫혀있는 목재 출입문은 쇠 격자와 징이 박혀있다. 보석상이 아니라 요새다.
그가 아는 한 금은방이든 보석상이든 전면을 통유리로 처리하고 조명을 환히 밝힌다. 구매 욕구를 유발하기 위해서다. 이놈의 가게는 반대다. 여기 보석상 없소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러니 보석상을 찾지 못할 수밖에. 차드의 형편무인지경인 치안을 고려하더라도 심했다.
쿵쿵쿵- 느낌상 현관 두께가 한 뼘이다. 달칵- 손바닥 크기의 창이 열렸다.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백인의 하악골만 겨우 보였다.
“골드를 구입하러 왔다.”
“돈을 보여 줘.”
쿠크리로 썰면 한 접시는 나올 두꺼운 입술이 밉살맞게 이죽거렸다.
“돈을 보여달라고?”
손님에게 돈을 보여 주라니! 이놈이 장사하는 건지 시비를 거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가라.”
지체없는 축객령이다.
‘허이구, 이 망할 새끼 말하는 꼬라지 보소.’
블랙맘바는 뒤집어지는 속을 필사적으로 진정시켰다. 하마터면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주둥이에 주먹을 꽂을뻔했다. 할 수 없이 주머니에서 프랑 뭉치를 꺼내 흔들었다.
“손님이 맞는군.”
육중한 출입문이 삐드득 열렸다. 백인 남자는 블랙맘바가 들어서자 잽싸게 문을 닫았다. 블랙맘바는 감금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금은방이 맞긴 맞았다. 전면에 기역으로 설치된 쇼 케이스가 보였다. 주인이 쇼 케이스를 덮은 철판을 치웠다. 황금, 백금, 다이아몬드, 오팔, 진주……. 각종 보석이 화려한 빛을 뿜었다. 불친절한 가게와 더 불친절한 주인이 운영하는 보석상치고는 상품이 많았다.
“보슈. 알라께 맹세코 전부 진품이요.”
“이자슥 이거 꼬롬한데.”
블랙맘바가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하부츠가 말하길 알라께 맹세한다는 말을 덧붙이는 놈은 거짓말쟁이라 했다.
“이거 얼마냐?”
묵직한 황금 당나귀 상을 들고 물었다.
“30,000프랑”
“25,000프랑”
“나가!”
“나가라꼬? 허이고, 내가 앓느니 죽는다.”
블랙맘바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프랑스에서 간단히 처리할 일을 사서 고생이다. 파리 쎙 오노헤가 명품 숍은 비싸지만 친절하고 품질을 믿을 수 있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한 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찾아낸 보석상이다. 다른 가게를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프리카 원주민 대부분이 유목이나 농경 부족이다. 가축을 동반자이자 친구로 생각한다. 축하 선물로 낙타, 염소, 당나귀 같은 가축을 선호한다. 가축 숫자가 사회적 위치이자 부의 척도다.
마사이족과 투아레그족은 가축이 없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다. 황금 당나귀 상은 투아레그족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극동 한구석 짚은다리 촌놈 출신인 무쌍이 알 리 없지만, 소 뒷발에 쥐 잡은 격이다.
“에델 선물은 뭐로 하지? 반지를 한 개 사줄까. 너무 쪼잔하려나.”
몇 푼 안 되는 지갑 선물을 받고 감격하는 모습에 얼마나 민망했던가.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 팔찌를 들고 물었다. 제법 비싸 보이는 물건이다.
“이거 얼마냐?”
“32,000프랑”
“알았다. 포장해라.”
귀금속을 사 봤어야 가격을 알지. 찜찜했지만 바가지를 감수하기로 했다. 변변한 가게가 없는 은자메나에서 제대로 쇼핑하기는 틀렸다. 그렇다고 민간인을 상대로 눈을 부라리기도 모양이 빠졌다.
“블랙 마노 미스바하(Misbaha), 봉 봉”
주인이 검은색 광택이 번질거리는 미스바하를 권했다. 아랍권에서 자주 보던 물건이다. 미스바하는 무슬림이 기도 시 사용하는 성물이다. 묵주와 비슷하지만, 십자가 대신 코란이 매달려 있다. 미스바하의 재료는 블랙 마노를 최고로 친다. 블랙 마노가 귀신과 사악한 짐승을 쫓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석가모니-예수-무함마드는 대략 500년의 세월을 두고 태어났다. 가톨릭의 묵주는 불교의 염주에 영향을 받았다. 미스바하는 염주와 묵주에 영향을 받아 등장했다. 3대 종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리가 확립된 부분이 많다. 인간이 제멋대로 나누고 구분해서 지지고 볶을 따름이다.
“얼마냐?”
“그냥 준다. 1,000프랑.”
블랙맘바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금 시세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마노 시세를 아는 사람은 없다. 시세는 모르지만, 마노가 그리 값비싼 보석은 아니다. 대략 자수정 수준이랄까.
1,000프랑이면 한국 돈으로 260,000원이다. 차드의 물가 수준으로 볼 때 턱도 없는 가격이다. 주인 녀석은 이방인을 물로 보고 사기를 치는 중이다.
“이 자식아, 내가 호구로 보이디?”
블랙맘바의 눈초리가 서늘해졌다. 꾹 참고 있던 성질이 폭발했다. 한 아름이 넘는 배를 출렁이는 주인을 노려보았다. 그냥 준다는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덜 얄미웠을 것이다.
진열장 프레임에 미스바하를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슬쩍 두드렸다. 퍼석- 먼지가 풀썩 일었다. 블랙 마노 알 십여 개가 박살났다. 흙을 구워서 표면에 검은 광택을 입힌 이미테이션이다. 솜씨도 좋았다.
“얼래?”
‘헉!’
배불뚝이 주인의 허연 얼굴이 마술처럼 검은색으로 변했다. 블랙맘바 본인도 놀랐다. 의심은 했지만 진짜로 가짜일 줄은 몰랐다. 본래 의도는 블랙 마노를 깨뜨려서 주인을 골탕먹일 계획이었다.
“이 자슥 바라!”
열이 뻗친 그는 황금 팔찌를 잡고 힘을 썼다. 뚝- 팔찌가 끊어졌다. 단면이 청백색이다. 납에 금을 도금한 가짜다. 납은 금과 비중이 비슷하므로 사기꾼이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뭐하는 짓이요?”
가짜 황금 팔찌 단면과 안색이 비슷해진 주인이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아, 조용히 해.”
인간이 두툼한 납 팔찌를 당겨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생각 못 하는 멍청이다. 하긴 사기 행각이 뽀록났으니 정신이 없을 만도 했다. 짜증이 난 블랙맘바가 황금 당나귀 상을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막 손바닥으로 두드리려는 순간, 두툼한 손이 잽싸게 당나귀 상과 팔찌, 미스바하를 나꿔채서 내실로 사라졌다. 손동작이 시장판 야바위꾼을 능가했다.
“헛 참, 나보다 더 빠르데이. 저 자슥을 우예 혼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나겠노?”
블랙맘바는 실소를 흘렸다. 민간인에게 폭력을 쓸 수는 없지만, 이놈은 도를 넘었다. 철제 의자에 앉아 주인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놈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사기 행각이 괘씸하긴 하지만 죽을죄는 아니다. 사과하고 진품을 내주면 딱밤이나 한 대 때리고 용서해 줄 작정이다.
배불뚝이 사기꾼이 내실에서 나왔다. 상황은 블랙맘바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진품 물건 대신 인상파 흑인 덩치 둘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한 놈은 접이식 단도를 빙글빙글 돌리고, 손도끼를 든 놈은 도끼날을 혀로 핥고 있다. 전형적인 양아치 패거리다. 양아치 둘의 인상도 볼만했다.
내려앉은 콧날, 짓이겨진 입술, 얼굴에 새겨진 칼자국 몇 개. 선량한 손님은 오줌을 지릴 인상파다. 프롤리나트 패잔병이나 남부 민병대에서 도망친 놈들이 은자메나에 우글거린다는 말을 들었다. 이놈들도 같은 부류다.
“허, 매를 버는구마.”
“딸끼스 알 콰디러, 쿤타 짜바난!(더러운 이교도 놈, 죽여 주마)”
사기꾼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나구드, 도드 잉길 멜. 까투 유 메우드 엘모트.”
손도끼를 든 놈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지껄였다. 문장은 몰라도 나구드(돈)와 엘모트(죽음)는 알아들었다. 대충 돈을 몽땅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단 소리다. 험악한 인상과 말투만큼이나 무식한 양아치다.
“이 자슥 보게. 큰일 날 소리를 함부로 씨불이네. 손님을 죽이고 돈을 가로채겠다는 기가. 이거 영화에서 더러 보던 장면인데. 허허허!”
기가 막힌 블랙맘바가 허허 웃었다. 손 모아 싹싹 빌어도 용서할까 말까인데 죽이겠다고 나서는 놈들이다.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스토리다.
출입문이 요새처럼 튼튼하고, 가게에 창문이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돈 있는 외국인을 잡도리하는 특수 영업 목적이다.
블랙맘바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무기를 들고 살의를 보인 이상 두 놈의 운명은 바로 결정지어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탐욕은 얼마나 슬픈 자화상인가!
“네놈은 본래 강도냐? 필요에 따라 강도로 전업하는 놈이냐? 난 민간인을 죽인 적이 없다. 사과하면 이빨 몇 개 뽑고 살려주겠다.”
블랙맘바가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 배불뚝이 사기꾼이 주춤했다. 저놈은 도끼와 칼을 든 친구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뜻을 헤아린 배불뚝이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쿼틀랴!(죽여!)”
“흐흐흐!”
간단한 명령에 칼잡이가 까뒤집어진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놈의 눈이 가학적인 기대로 번들거렸다. 구취와 함께 피비린내가 훅 풍겼다. 후각이 아니라 뇌가 느끼는 냄새다. 살인을 수차례 해 본 놈이다. 블랙맘바의 눈이 스산하게 변했다. 피를 뿌린 땅에 씨를 뿌리겠다는 결심을 한 지 겨우 한 나절이 지났다. 가능하면 피를 보지 않으려던 노력이 무색해졌다.
도끼를 든 놈이 잽싸게 달려가서 출입문 빗장을 질렀다.
“헐!”
실소가 나왔다. 집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잡겠다고 대문을 잠그는 어리석은 놈이다. 가지가지 하는 놈이다.
쉭- 예고도 없이 칼잡이가 일직선으로 가슴을 찔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손 속이다. 제법 칼질을 해 본 깜냥이지만, 잡귀가 장군귀에게 덤비는 꼴이다.
턱- 칼날이 손에 잡혔다. 칼잡이의 눈에 득의함이 흘렀다. 손잡이만 돌리면 놈의 손가락이 끊어진다. 칼날을 홱 비틀었다.
“어?”
칼잡이의 눈이 커졌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상대방의 손에 자신의 칼이 넘어갔다.
“허, 오피넬!”
여러 번 감탄하는 블랙맘바다. 오피넬은 접이식 단도로 19세기 말에 프랑스 도검 명장 오피넬이 만든 명품이다. 칼날은 다마스커스 강, 손잡이는 상아다. 양아치가 소지하기엔 수준이 맞지 않는다. 보나 마나 손님을 죽이고 강탈한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