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89
x 289
제32장 옴부티 날다5
‘에델이 베사베무초를?’
블랙맘바의 귀는 보통사람보다 수백 배 밝다. 에델이 자박- 자박- 자갈 밟는 소리로 박자를 맞추며 걸어오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리듬 간극이 자신과 비슷하다. 뻬르데르떼(두려워요)에서 엇박자가 나는 것도 같다. 발데그라스 육군병원에서 익힌 모양이다.
에델의 영혼은 고귀하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여자다. 복수에 매달리는 자신과 달리 원한을 헌신과 봉사로 삭이는 천사다.
애절한 음색이 잉크가 물에 번지듯 메마른 가슴에 스며들었다. 죽음의 천사 아즈라일을 사랑하는 사랑의 천사 루드리 에델,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다. 에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고귀한 여자가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아수라를 좋아하는 이유를 모른다.
여자의 마음은 신도 모른다더니, 알 길이 없다. 혜영의 고상함과 진순의 순수함을 갖춘 여자, 흔들리는 자신이 두려워 1년이란 공백을 두었건만 노래에 담긴 절절한 감정이 시간을 뛰어넘었다.
눈앞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가! 에델이 소리 없이 파고드는 만큼 혜영이 밀려난다. 가슴이 아릿하게 아팠다. 자가용 제트기를 타면 지금이라도 캘리포니아로 날아갈 수 있다. DGSE나 벨맨에게 전화 한 통화만 던져도 혜영의 주거지와 연구실은 한 시간이면 알 수 있다. 왜 못하는가?
두렵다. 4년 동안 편지 한 통 없는 그녀가 두렵다. 그녀의 룸에서 남자의 체취가 풍긴다면? 그녀의 가슴이 식었다면?
겨우 딱지가 앉은 상처를 건드려 피를 줄줄 흘리고 싶지 않다. 혜영은 말 한마디, 몸짓 한 번으로 자신을 시궁창에 처박을 수 있다. 사랑하는 만큼 너무 두렵다.
아니다. 혜영이 아니라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 그녀를 잊어가는 마음이 두렵다. 피 묻은 손으로 그녀를 안을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흐려지는 기억이 두렵다.
사랑은 한 번뿐이라고 피를 토했건만, 자신도 그저 그런 장삼이사에 불과하다는 자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블랙맘바는 반복되는 ‘당신을 잃을까 두려워요.’ 에 멍하니 귀를 기울였다.
에델은 자박- 자박- 자갈 밟는 소리로 리듬을 맞추었다. 발데그라스 군사병원에서 블랙이 창밖을 보며 간혹 부르던 노래, 베사메무초를 흥얼거리던 쓸쓸한 모습이 화인처럼 가슴에 박혔다. 가사의 의미가 자신의 마음과 어찌 그리 비슷한지, 몇 번 부르다 보니 입에 붙어버렸다.
‘이번엔 그이가 오셨을 거야.’
정문에 확인차 나간 지 일곱 번째다. 외롭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일생을 바치리라 했건만,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블랙의 심장은 경주용 말보다 튼튼하지만, 마음은 풀꽃처럼 연약하다. 그의 정신은 강철보다 단단하지만, 속살은 사춘기 소녀보다 여리다. 블랙의 친구들과 옴부티 아저씨조차 강렬한 포스에 빠진 나머지 블랙의 여린 속을 모른다.
아티 병원에서 블랙을 처음 만난 날 얼마나 놀랐던가? 난치병인 기니웜과 필라리아 감염을 완치시키는 기이한 능력보다 당장 응급실에 가야할 몸으로 아이를 치료해주는 그 마음에 놀랐다. 군인들은 그이를 두려워했지만, 아이들은 그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사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때 ‘이 남자를 따르고 싶다.’는 영혼의 울림을 느꼈다.
그이가 ‘Courage!(용기를 내요!)’라는 문구가 새겨진 마카롱을 선물했을 때 순수한 영혼을 가진 남자의 향기에 듬뿍 취해버렸다. 고귀한 영혼을 가진 아버지의 꿈은 추악한 배신과 폭력에 무너졌다. 고귀한 영혼은 원초적인 폭력에 아무런 대응 수단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와 달리 블랙은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할 힘을 가졌다. 그이가 얼마나 큰 인물이 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싶고, 돕고 싶다.
발데그라스 병원에서 블랙을 돌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병들고 불쌍한 사람을 돌보는 것도 즐겁지만, 그이를 돌본 시간은 천배 만배 즐거웠다. 그때만 생각하면 절로 베사메무초를 흥얼거리게 된다.
“아주 가까이 당신을 갖고 싶어요 라니 망측해라. 하지만 그이의 숨결은 달콤했어. 난 욕심부리지 않아. 그이는 잘 다치잖아. 너는 의사고. 난 그이를 보살펴주고 싶을 뿐이라고. 루드리 힘내. 아자!”
루드리는 작은 주먹을 휘둘렀다.
“어, 천사님이 또 나오신다.”
반출 트럭을 조사하던 경비원이 소리 질렀다. 와킬의 길을 걸어 나오던 에델이 경비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못난 모습을 보였네. 어쩜 좋아.’ 에델은 고용인에게 추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지 걱정되었다.
해가 떨어지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덮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경비실 앞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남자, 수천 수만 명의 인파속에 섞여 있어도 절대의 존재감을 뿜는 남자, 에델은 눈을 비볐다. 블랙이다.
“블랙!”
맑은 소프라노가 칙칙한 공기를 휙 날렸다. 에델이 자갈길을 뛰었다. 팔랑대는 가운 자락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었다.
“아!”
마음이 너무 급했다. 발걸음이 꼬여 휘청하는 순간 강철같은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헝겊 인형처럼 가볍게 들어 올렸다. 20m를 공간 이동한 블랙맘바다.
“오우, 지저스! 더 베스트 데이 업 마이 라이프.”
푸른 호수에 맑은 물이 가득 고였다. 블랙맘바는 가슴이 찌르르했다. 강렬하게 전해지는 사념파가 너무나 순수하다. 단 한 가지 감정만 소용돌이친다. 그리움이다. 돌아갈 곳이 있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음은 행복한 현실이다. 묵직한 번뇌가 사라지고 따스함이 밀려들었다.
“에델, 나는 좋은 남자가 아니다. 나같이 피비린내 나는 남자를 왜 기다리나? 바보같은~”
블랙맘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블랙, 나쁜 남자와 좋은 남자는 없어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가 아니에요. 왜 사랑하느냐고 물어 주세요.”
“왜 사랑하나?”
바보처럼 물었다.
“공감과 열망이에요.”
“공감과 열망?”
블랙맘바가 뜨악하니 반문했다.
“여자는 공감하고 열망할 수 있는 남자를 원해요. 더 이상 묻지 마요. 여자는 논리적인 대화를 싫어한답니다. 내 대답은 이거예요.”
에델이 뒤꿈치를 들어 올려 블랙맘바의 볼에 입술을 붙였다. 키스하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쪽- 불같이 뜨거운 입술이다. 갸냘픈 허리를 당겨 안았다. 부드러운 여체가 답삭 안겨들었다. 블랙맘바는 현기증이 일었다. 내가 전생에 동네라도 구했나?
“와!”
경비실에 있던 경비원까지 몰려나와 함성을 질렀다.
“멍청이들!”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에델이 입을 삐쭉 내밀고 눈물 그렁거리는 눈에 웃음을 담았다. 남자의 간담을 떨어지게 하는 귀여운 모습의 절정이다. 장쒼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부른 블랙맘바마저 가슴이 철렁했다.
“와! 천사님 최곱니다.”
“기다리던 손님이십니까?”
“천사님의 애인이 오셨다.”
경비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이거 참, 쑥스럽구먼. 조장이 누구냐?”
블랙맘바가 경비원들을 둘러보았다.
“녭, 2조 경비조장 음지무입니다.”
단단한 체격을 가진 장신의 흑인이 나섰다.
“오늘 근무 자세는 훌륭했다. 경비 2조에 상을 내린다.”
블랙맘바는 지갑에서 100프랑을 꺼내 경비 조장에게 상으로 주었다.
“와아, 와킬 만세!”
인종을 불문하고 돈 싫다는 놈 없다. 이들의 월 급여가 20프랑에 불과하다. 경비원들이 좋아라. 날뛸만했다.
“어서 가요. 아저씨 목이 황새 목이 되었어요. 내일 온다면서도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어요.”
에델이 블랙맘바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옴부티 짓인가?”
블랙맘바는 ‘와킬의 길’이라 쓰인 표지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솔길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붙여서 걸을 수 있는 폭이다. 바닥엔 하얀 자갈이 깔렸고, 길을 따라 장미 덩굴을 올려 터널을 만들었다. 장미 터널 외곽엔 커다란 종려나무를 이식해서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다. 종려나무 사이에 키 낮은 꽝꽝나무와 익소라 치넨시스를 심어 시원함과 화려함을 더했다. 차드의 이미지와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떨어진 풍경이다. 블랙맘바의 입이 딱 벌려졌다.
“네, 와킬만이 걷는 길이에요. 옴부티 아저씨도 이 길은 걷지 않아요. 동화의 나라 같죠?”
에델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블랙맘바는 멈칫했다. 와킬만이 걷는 길을 강조하는 에델의 앙큼한 속내를 느꼈다. 동화 같은 길? 아니다. 루아르 계곡의 빌랑드리 성에서 본 장식 정원이다.
빌랑드리 성은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성으로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짜하다. 장식 정원의 두 번째 화원인 사랑의 화단은 프랑스는 물론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예비 신부들이 결혼식 장소로 첫손 꼽는다.
옴부티는 돈질해서 사랑의 화단 중에 축배의 길을 재현했다. 짠돌이 옴부티가 돈 지랄을 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에델이 이 길을 오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뻔했다.
“오우, 예뻐라.”
에델이 붉은 익소라 치넨시스 꽃을 한 송이 따서 머리에 꽂았다. 황금을 실로 뽑아낸 듯한 금발에 새빨간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금발과 붉은 꽃, 티 한점 없는 새하얀 얼굴이 절묘하게 어울어졌다.
블랙맘바는 자신도 모르게 에델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철판 가슴에 눌린 젖가슴이 비명을 질렀다.
“아음!”
에델의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머릿속은 ‘안 돼’라고 외쳤지만, 몸은 제멋대로 남자의 품을 파고들었다. 블랙맘바는 에델의 비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윽, 이건 옴부티의 음모야. 내가 미친다 미쳐.’
블랙맘바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익소라 치넨시스의 향기는 최음 효과가 있다. 옴부티는 발데그라스 병원에서도 자신과 에델을 엮으려고 온갖 음모(?)를 꾸몄다. 집요한 옴부티가 얼토당토않은 오솔길을 만든 목적이 바로 에델을 위해서다.
“에델, 밥은 잘 먹고 있지?”
블랙맘바는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 싶었다. 마음 여린 에델이 무안하지 않을 말을 던지려 했건만 입이 배신했다.
“오우, 지저스!”
화들짝 놀란 에델이 블랙맘바의 목을 감은 팔을 풀고 후다닥 물러났다. 블랙맘바는 하얀 얼굴이 마술처럼 빨간색으로 변하는 에델이 신기했다.
백인 여자들의 성 관념은 대체로 개방적이다. 처음 만난 남자와도 쉽게 섹스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진다. 에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한 별종이다.
“네, 블랙만큼 먹고 있어요. 한국 음식도 잘 먹어요.”
“한국 음식?”
블랙맘바의 눈이 커졌다. 병원에서 닭을 사다가 삼계탕을 끓이기도 했지만 그건 환자인 자신을 위해서다. 서양 여자가 한국 요리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
“장쒼이 요리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한국 소스와 음식 재료도 보내줘요. 이젠 고추장도 잘 먹어요.”
에델이 가슴을 쑥 내밀었다. ‘나 잘하고 있죠’라는 의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누가 이 여자를 스물여섯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가슴이 찡했다. 좋아하는 남자와 식성까지 맞추려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이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남자가 있겠는가? 백팩에서 사연 많은 황금 팔찌가 든 케이스를 꺼냈다.
“에델, 이거 선물이다.”
케이스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에델이 팔짝 뛰었다.
“오우 이럴 수가! 지갑에 먼지만 남았겠어요.”
“비싼 거 아니다.”
“모르는 말씀 마세요. 이건 까르띠에의 수석 디자이너 루이 까르띠에 컬렉션이에요. 15만 프랑은 지불해야 해요.”
“헐!”
헛바람이 새 나왔다. 보석상 주인을 혼내주고 30,000프랑에 들고온 물건이다. 그거도 황금 당나귀 상을 포함해서다. 본의 아니게 강도가 된 셈이다.
“끼워줘요.”
에델이 팔찌를 들고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턱 아래 말갛게 떠오른 그녀의 얼굴이 애처로웠다. 삼촌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재산을 강탈당한 비운의 미녀다. 루드리 에델 또한 레 미제라블이다. 행운을 가져온다는 미스바하를 잘 사왔다. 팔찌를 채워주고 목걸이형 미스바하를 꺼냈다.
“이것도 선물이다.”
“아, 미스바하!”
에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족쇄를 두 개나 받았다. 그녀는 속으로 하얗게 웃었다. 에델이 풍성한 황금색 머리칼을 모아쥐고 들어 올렸다. 손대면 툭 부러질 것 같은 하얀 목이 드러났다. 섬세한 쇄골이 노을빛을 받아 발갛게 물들었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어쩔 수 없는 수컷의 본능이다.
“옴마니 반메 홈!”
블랙맘바는 진언을 외어 마음을 다스렸다. 옴마니 반 메홈이 멀리 아프리카 땅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블랙맘바는 슬쩍 돌아서서 억수갑을 벗었다.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힘 조절을 못하면 큰일이 벌어진다.
새하얀 목에 까만 미스바하가 채워지자 섬세한 목선이 도드라졌다. 에델은 평소에 반지는 물론이고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지 않는다. 기껏 장식이라야 머리에 꽂은 핀이 전부다. 미인은 달랐다. 액세서리 한 개만으로 미모가 활짝 피어났다. 그녀는 여자가 왜 보석에 미치는지를 보여주었다.
“잘 어울린다.”
“정말이죠?”
“난 거짓말을 못 한다.”
“잘 알고 있어요. 여자는 뻔한 거짓말도 듣기 원하고, 뻔한 사실도 확인받고 싶어 해요.”
“그거 별로 좋은 버릇은 아니다. 시간 낭비고, 감정 낭비다.”
“큭!”
에델은 그만 웃고 말았다. 블랙만큼 무디고 여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남자가 있을까. 그것이 블랙의 매력이기도 했다. 여자에게 알랑거리는 블랙은 상상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