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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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옴부티 날다6
블랙이 여자에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알랑거린다면 블랙이 아니다. 블랙은 거칠다.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남자다. 걸리적거리는 대상이 그 무엇이든 박살 낸다. 해일처럼, 폭풍처럼 밀어버린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아티 MSF 치료소에서 오만방자하게 굴던 리슐리외 대위를 묵사발 냈다. 발데그라스 병원을 습격한 무리를 개 잡듯이 두드려 잡았다. 정보국 간부도 병신을 만들었다. 프랑스 고위층이 블랙의 분노를 피해 용병의 유해를 수습하러 아프리카로 떠났다.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했다. 보니파스 DGSE부장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늘어놓은 다음 이렇게 말했다. ‘아니, 당신은 할 수 있다. 5일 이내에 내 요구를 처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배신한 자들은 끔찍한 응징을 당했다. 그때는 오줌을 지릴정도로 쾌감을 느꼈다. 폭력이 아름답게 보이는 자신의 이중성에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
허리케인 같은 기세가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지는 때가 있다. 레 미제라블을 대할 때다. 그는 불쌍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한다. 이런 남자를 한국에서는 사나이라 말한다고 들었다. 사나이는 성별로서의 남자가 아니라 가치로서의 남자다.
권력을 쥐고 타인을 밟는 자는 밟히는 고통을 알지 못한다. 부유한 자는 가난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많이 배운 자는 못 배운 자의 답답함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이다. ‘너의 고통을 내가 잘 아노라.’ ‘내가 너의 고통을 해결해 주겠노라.’ 떠드는 자는 모두 위선자다.
아프리카 독립 후 등장한 정치 지도자는 상아 의자에 앉는 순간 코끼리의 고통을 잊어버렸다. 식민지 시대만도 못한 시궁창으로 나라와 국민을 처박았다. 권좌에 앉는 순간부터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입만 살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눈높이로 사물을 보고, 그 사람의 생활을 경험해야 한다. 블랙이 그런 인물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인 에델은 무엇이든 좋게 보였다. 그녀는 블랙맘바가 보니파스를 협박해서 거액을 뜯어내고, 보석상 주인을 두들겨패서 보석을 강탈하다시피 들고왔음을 몰랐다. 억만장자인 그가 택시비를 아끼려고 DGSE 관용차를 부르는 쪼잔한 인간임도 몰랐다.
가슴에 붙은 귀를 통해 블랙의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사랑하는 남자의 거친 심장울림이 달콤했다. 블랙의 심장 박동은 초당 0.5회다. 자신의 심장이 두 번 뛸때 한 번 뛴다. MSF 치료소에서는 서맥이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로 느렸다. 반면에 강력하다. 혈류 압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드레날린과 디기톡신을 동시에 주사해도 불가능한 박동이다. 그때 알았다. 블랙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인간이라고.
인간이 아니면서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 입이 작고 눈과 귀가 큰 인간, 말하지 않고 행동하는 인간이 블랙이다. 에델은 굳센 손이 주는 편안한 느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런 남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여자처럼 부드러운 손이 콘크리트벽을 부수고 쇠파이프를 꺾는 모습을 볼 때면 신기하기만 했다. 인간을 벗어난 존재라 여겨 모든 의문을 접어버렸다. 껍질만 인간인 괴물보다는 알맹이가 인간인 괴물이 백배 천배 낫다.
“블랙, 아띠 MSF에서 내게 했던 말 생각나요?”
“내 약점은 기억력이다. 중상을 입은 상태라 제정신도 아니었다.”
블랙맘바가 여자를 이해 못 하는 부분 중 한가지다. 여자는 끊임없이 남자가 했던 말을 되새기려 한다. 초인적인 기억력으로 몇 년 전에 남자가 한 말도 토씨 한 개 틀리지 않게 기억한다. 혜영도 진순도 그랬다.
“당신은 샤넬 NO5를 뿌리지 않았고, 랑세 루주를 바르지 않았다. 엠마뉴엘 웅가로를 걸치지 않았고, 클로에의 스카프로 멋을 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 세상에서 세 번째로 아름다운 여자다.”
에델이 목소리를 쫙 깔아서 블랙맘바의 흉내를 냈다. ‘아이고, 역시나!’ 블랙맘바는 뒷목을 움켜잡았다.
“그렇게 말했죠. 내 껍질은 의사가 보는 소견으로도 우월해요. 수많은 남자가 찬사를 보내고 구애를 했죠.”
“그럴만하지.”
블랙맘바는 두말하지 않고 수긍했다. 에델 같은 여자에게 반하지 않는 놈은 고자거나 게이다.
“전부 개소리에요. 의학적으로 신체를 덮은 2mm 피부만 벗기면 여자는 똑같아요. 난 인간 에델이지 2mm 피부로 덮인 마네킹이 아니에요. 당신은 그럴듯한 피부로 덮인 여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에델을 칭찬해 주었어요.”
“흐흐흐, 그것참 시니컬한 평가구먼.”
“해헤, 오스텐시브한 평가죠. 당신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어요. 당신을 알고 싶었어요. 여자라면 누구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야수에게 호기심을 느낄 수밖에 없잖아요.”
에델은 ‘당신은 사나이다. 나는 사나이의 매력에 흠뻑 젖어버렸다’는 뒷말을 꿀꺽 삼켰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속내를 까발리면 정숙지 못한 느낌을 주게 된다.
“템스 강 변에 자갈처럼 늘린 게 남자다. 자갈이 많으면 수정도 있다.”
“진화론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현실적이에요. 눈앞에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수정을 찾아서 템스 강변을 헤맬 멍청한 여자는 없어요.”
에델이 말을 마치고 깔깔 웃었다. 블랙맘바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혜영과 노인송 아래서 나누었던 유쾌한 대화가 생각났다. 혜영도 비슷한 말을 했다. 여자가 종종 범하는 실수는 사랑해줄 남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를 택하기 때문이라 했다. 덧붙여 한 말이 가관이다. 동물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길이 좁으니 서로 몸을 붙이고 걸을 수밖에 없다. 에델이 좁은 길을 핑계로 팔짱을 끼고 몸을 딱 붙였다. 에델은 화장하지 않는다. 향수도 쓰지 않는다. 신선한 처녀의 원초적 체향이 훅 밀려들었다.
블랙맘바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냄새가 화장품 냄새와 싸구려 향수다. 후각을 마비시키고, 공간지각력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블랙맘바는 자신도 모르게 향기를 훅 들이마셨다. 혜영의 페로몬에 버금가는 최음제다. 이토록 맑고 진한 여자 본연의 냄새는 혜영밖에 없을 줄 알았다. 혜영의 친구인 최민숙은 미스코리아 출신이지만 여자의 향기가 없었다.
팔뚝을 지그시 누르는 말랑한 유방, 툭툭 부딪는 골반의 야릇한 느낌, 익소라 치넨시스 향기와 어우러진 체향이 수컷의 본능을 간단없이 자극했다. 방어할 수 없는 소프트 공격에 블랙맘바는 녹다운되었다. 정심법을 돌리지 않았으면 옴부티의 음모에 꼴깍 넘어갔을 것이다.
“에델, 내가 원망스러웠지?”
“원망? 왜요?”
“힘든 일을 시켰지 않나. 사헬은 거친 지역이다. 특히 엔네디 고원은 인적도 없는 황무지다. 사나운 짐승도 여러 번 만났을 것이다.”
에델이 걸음을 멈추고 말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연푸른 눈동자가 창창히 일어난 노을빛을 가득 담았다. 요요롭게 빛나는 눈동자가 최면을 일으켰다.
‘젠장, 풍덩 빠질 것 같구마.’ 블랙맘바는 진저리를 쳤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고 말한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었다. 미녀의 눈은 남자의 무덤이다.
“아빠를 잃고 농장까지 뺏겼지만, 블랙의 의도를 모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아요. 많은 것을 배우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어요.”
“어떤 결론을 내렸나?”
“내가 연약한 여자란 사실만 뼈저리게 느꼈어요. 옴부티 아저씨가 딸처럼 보살폈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블랙이 시킨 일이 아니었으면 포기했을 거예요.”
“농장을 운영할 각오는 되었나?”
“전혀요.”
에델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지난 일 년간 블랙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아저씨에게 열심히 배웠다. 결론은 참담했다. 자신은 결코 타인을 다스릴 재목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쫄따구 아저씨가 반란을 제압했다는 소식은 옴부티 아저씨에게 들었어요. 사마리아 농장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에요. 블랙의 농장이에요.”
“무슨 소리!”
블랙맘바가 펄쩍 뛰었다. 철없는 아가씨의 투정도 유분수지! 900만 평 농장은 마음 내키는 대로 주고받을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다. 지게를 지고 한나절 올라가는 다랑이 밭 한 두락을 두고 형제간에 칼부림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공짜는 아니에요. 에델의 지참금이에요.”
에델이 배시시 웃었다.
“뜨헉!”
블랙맘바의 눈이 커졌다. 에델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스쳐 갔다.
“라고 말하면 블랙이 기절하겠죠? 어머, 벌써 기절 직전이네. 호호호!”
짜랑한 웃음소리가 메마른 대기를 흔들었다. 블랙맘바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에델의 웃음은 처음 듣는다.”
‘이 양반아 내가 웃고 싶어 웃는 게 아니야.’ 에델의 가슴에 비가 내렸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농장이에요. 지분 90%는 닉 삼촌, 10%는 이브라힘 무타파 주지사가 가지고 있어요. 닉 삼촌의 뒤를 봐주는 대가겠죠.”
“내가 정리하지.”
블랙맘바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에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역시 거침없는 사나이 블랙이다.
“말씀만 들어도 시원해요. 옴부티 아저씨가 날마다 블랙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무기를 들면 아즈라일, 무기를 놓으면 구원자, 자신의 신앙이고 삶의 의미라고 하셨죠. 프랑스 대통령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분이 나쁜 놈 몇 정리하는 거야 어렵지 않겠죠.”
에델이 앙증맞은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아 놔, 이 양반이 순진한 에델에게 도대체 뭔 소리를 한 거야.’
“블랙, 닉 삼촌 지분은 블랙의 몫이에요. 주지사 소유의 지분은 저에게 주세요. 그 지분은 원래 엄마 지분이거든요. 사람은 각자 잘하는 일이 있어요. 나는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고, 블랙은 권력과 돈에 병든 사람을 치료해야 할 사람이에요.”
‘허, 말도 잘한다.’
블랙맘바는 감탄했다. 여린 줄만 알았더니 강단도 있다.
“아깝지 않나?”
“분수에 맞지 않는 재산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어요.”
“일단 그렇게 하도록 하지. 계속 옴부티와 함께 있었나?”
“네, 사헬 지역을 샅샅이 돌아보았어요. 블랙이 지원해 준 픽업트럭 3대가 모두 망가질 정도로요. 투아레그족도 많이 만났어요. 아저씨는 무섭게 생긴 키갈리 대장이란 사람과 싸움까지 했어요. 아저씨가 ‘나는 아즈라일의 대리인이다.’ 하고 고함치니까 키갈리가 칼을 팽개쳤어요.”
“흠, 알만하군.”
하비브 군벌의 키갈리 중령은 야심이 많은 인간이다. 기득권을 포기할 인간이 아니다. 키갈리의 병력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다. 쿠르드 전사를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블랙, 다치진 않았죠?”
“너무 건강해서 탈이다.”
“이마에 흉터가 새로 생겼네요. 제발 다치지 마요.”
에델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자신이 다친 양 안타까워하며 흉터를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렀다. 마치 지우개로 지우고 싶다는 듯이.
“응, 그거? 호랑이 세배쯤 되는 표범의 대가리를 이마로 박은 흔적이야.”
“피, 말해주기 싫으면 관둬요.”
에델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진짠데.”
블랙맘바가 머리를 득득 긁었다. 하긴 깜둥이의 존재를 누가 믿겠는가. 녀석이 지상 적응 훈련을 마쳤는지 궁금했다.
“어서 들어가요. 당신의 몸에서 피비린내가 나요. 많이 피곤하실 거예요.”
“그래? 흠흠”
소매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토탈 보석상에서 피를 본 전력이 있어 은근히 켕겼다.
“어서 가서 샤워해요. 제가 저녁을 준비 중이에요. 깜짝 놀랄걸요.”
에델이 손을 잡아끌었다. 블랙맘바는 속으로 감탄했다. 귀족 집안이라더니 다르긴 달랐다. 에델은 자칫 어색해질 상황을 빠르게 수습했다. 화제를 바꾸어 부담을 덜어주었다.
지나친 감정 분출이 상대를 힘들게 함을 알고 있는 여자다. 행동과 말에 기품이 있다. 절제와 배려가 몸에 밴 아가씨다. 에델은 혜영의 열정, 진순의 청순함에 더해서 기품을 갖춘 여자다.
“옴부티는 회사에 있나?”
“네, 방적 공장 설계를 하느라 머리를 쥐어뜯고 있어요. 사업에 푹 빠져 있어요.”
“내가 생각지 못한 재주가 있었군.”
“셍크 프레어 에글러(독수리 오 형제)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셍크 프레어 에글러?”
독수리 오 형제라니? 뜬금없는 소리다.
“블랙의 동료들이요. 에밀, 장쒼, 벨맨, 폴, 에델. 헤헤헤!”
에델이 사헬 생존자 명단에 자신을 쑥 집어넣고 헤헤거렸다. 블랙맘바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보석 같은 여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풍덩 빠져버릴 여자다.
“하긴 그들도 주요 주주인데 당연히 도와야지.”
블랙맘바가 비시시 웃었다. 독수리 5형제는 각각 자신이 받은 수당에서 절반을 옴부티에 투자했다. 유일한 전액 투자자가 에밀이다. 물론 본인의 의사가 아니다.
잔느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옴부티는 혀를 찼다. 블랙맘바가 맡겨둔 에밀의 수당 40만 프랑을 몽땅 자신의 회사 자본금으로 집어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에밀이 악을 썼지만, 옴부티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억울하면 와킬에 항의하라는 말에 에밀은 조용히 찌그러졌다. 지은 죄가 있으니 블랙맘바의 몽둥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에델, 앞으로 동방불패라 불러라.”
보니파스는 CIA가 추적 중이라 했다. 번거로움을 피하려면 블랙맘바란 콜네임도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한다. 두려울 건 없지만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한 정체가 밝혀지면 주변 인물이 위험해 질 수 있다.
“알았어요. 뚜바이도 루드리라 부르세요. 세 번째 부탁하는 거예요.”
에델은 계속 에델이라 부르는 블랙맘바에게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러지. 뒤끝 있는 루드리!”
에델이 눈을 하얗게 흘겼다.
“에델양, 잘한다.”
2층 집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옴부티의 입이 찢어졌다. 와킬과 에델 양이 하얀 자갈길을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푸른 숲, 붉은 꽃, 하얀 자갈을 깐 좁은 오솔길, 아무도 발 디딘 적 없는 하얀 오솔길을 주인과 마님이 될 두 분이 나란히 걷고 있다. 생각보다 하루 당겨서 올 줄 몰랐다.
“으흐흐흐!”
묘한 웃음이 새나왔다. 그림이다.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최고의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무표정하던 와킬의 표정이 저처럼 부드럽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