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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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옴부티 날다7
옴부티는 속된 말로 기분이 째졌다. 와킬과 에델 양이 팔짱을 끼고 자갈길을 걷고 있다. 와킬을 올려다보며 재잘대는 에델양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다. 와킬의 길에 쏟아부은 전 재산 20만 프랑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옴부티는 뛰어 내려가서 와킬을 맞이하고 싶은 열망을 결사적으로 눌렀다. 저 분위기를 절대로 깨면 안 된다. 프랑스 병원에서 애써 만들어놓은 분위기를 쪼다 같은 에밀 녀석과 띨빵이 쫄따구가 망쳐버렸다. 와킬의 친구만 아니었으면 주둥이에 오피넬을 박아버렸을 것이다.
“흐흐흐, 나는 와킬의 대부이자 에델 양의 대부다. 나 옴부티의 인생이 활짝 피는구나.”
옴부티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와킬은 왕이 될 분이다. 에델 양은 왕비로 손색없는 아가씨다. 주인이 젊지만, 후사는 일찍 볼수록 좋다. 45년을 살아오면서 에델보다 기품있고 지혜로운 아가씨를 보지 못했다. 와킬은 바람 같은 분이다. 언제 또 훌쩍 떠날지 모른다. 밤이 길면 꿈도 많다. 남녀는 때가 되면 얼른 솥단지를 붙여야 한다.
또 한가지 기분 좋은 일이 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쫄따구다.
“흐흐흐, 쫄따구 주제에 고참 말을 비웃었겠다. 이젠 뒈지게 얻어터질 일만 남았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도바의 사마리아 농장을 다녀온 옴부티는 기가 막혔다. 쫄따구가 턱없이 완장 놀음을 하는 바람에 농장은 개판이 되었다. 완장을 차지 못한 인부들은 노예가 되고, 완장을 찬 놈들은 농장 주인인 양 거들먹거렸다. 그로 인해 발생한 폐해가 하나둘이 아니다.
와킬은 계급과 특권을 전갈보다 싫어한다. 와킬에 몽땅 일러줄 참이다. 하인 신참 주제에 고참의 충고를 귓등으로 듣는 놈은 몽둥이찜질을 당해 마땅하다.
“이크, 도착하셨군.”
쿠두두두- 구르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간 옴부티가 발정 난 황소처럼 돌진했다.
“어맛!”
기세에 놀란 에델이 팔짱을 풀고 후다닥 피했다.
“와킬! 야 일라 히, 라- 아쓰타띠-우 안 우싿디까!(세상에, 믿을 수가 없어요.) 살람 알레 쿰!”
옴부티가 고함을 지르며 블랙맘바를 끌어안았다. 뺨이 벗겨지라고 볼을 비볐다.
“옴부티, 별일 없었나.”
“와키일~”
옴부티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그리웠던 주인의 음성이던가. 티베스티가 무너져도 끄떡하지 않을 담담한 인사말 한마디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일거리만 던져놓고 소식없는 무심한 주인을 원망도 많이 했다.
“소인이야 무심한 주인님을 걱정하느라 머리털이 빠지는 불상사 말고는 무탈 합죠.”
“아저씨, 사업하느라 머리털이 빠졌잖아요. 블랙 핑계 대지 마요.”
에델이 톡 쏘았다.
“허허허, 그것도 그래. 에델 양이 고생을 많이 했지.”
옴부티가 귀여워죽겠다는 표정으로 에델을 돌아보았다. 딸바보 아비가 따로 없다.
“어디 봅시다. 상처는 다 아물었습니까?”
블랙맘바의 어깨와 옆구리를 확인한 옴부티가 땅바닥에 꿇어앉았다.
“비스밀라, 알라 시여 당신의 아들을 무탈하게 보살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알라 외엔 신이 없도다. 와킬 외엔 진정한 인간이 없도다. 만 백성이 우러러볼~”
길고 긴 감사 기도가 이어졌다. 블랙맘바는 어정쩡한 자세로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이젠 그러려니 했다.
“옴부티, 건물을 잘 지었다. 차드에서 이런 고급 건물을 보다니 뜻밖이다.”
블랙맘바는 건물 외관에 감탄했다. 불란서풍으로 지은 벽돌조 2층 건물은 대지 600평에 건평 200평 남짓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와 차양을 길게 뽑아 개방성을 높이고 직사광선을 차단했다. 초롱나무와 무화과나무로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넓은 잔디밭을 갖췄다. 잔디밭엔 스프링클러가 칙칙 돌아가고 있다. 은자메나에서 보기 힘든 고급 주택이다.
“와킬의 은혜입니다. 1층은 자료실과 소인의 집무실, 2층은 와킬의 침실과 집무실로 꾸며져 있습니다. 직원 사무실과 식당은 별도로 건축했습니다. 이 건물은 와킬이 편히 쉬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옴부티가 나 잘했지요. 하는 얼굴로 설명했다. 블랙맘바는 기가 찼다. 연중 차드를 몇 번이나 올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한두 번이다. 방 하나만 만들면 될 것을 쓸데없이 건물에 돈질했다. 와킬의 길에 이어 건물까지, 효용성 없는 시설에 쏟은 돈이 아까웠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 한 사람의 휴식을 위해 이런 투자를 한단 말인가. 이 건물은 사장인 옴부티가 활용하도록 해라. 회사의 주인은 옴부티다. 나는 회사와 관련 없다.”
“와킬! 소인을 버리려 하십니까!”
옴부티가 비통하게 부르짖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왜 또 이러는 거요.”
놀란 블랙맘바가 팔을 잡아 일으켰다. 할리우드 액션, 아니 조선 시대 사극 드라마 수준의 액션이다. 옴부티가 한국의 사극 드라마를 수입해서 보지 않았나 의심이 들 만큼 리얼한 액션이다.
“와킬, 소인은 와킬의 하인입니다. 하인의 재산은 당연히 주인의 재산입니다. 하물며 와킬 상회의 자본금은 주인님이 투자하셨습니다. 이 회사는 주인님의 회사입니다. 소인은 관리인일 뿐입니다. 주인님이 회사와 관련 없다 하심은 소인을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아이고, 내가 미친다 미쳐.”
블랙맘바는 울고 싶어졌다. 옴부티를 만나는 순간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알았다. 내가 회사의 주인이다. 옴부티가 사장, 나는 회장이다. 됐지?”
“킥킥!”
에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뚜바이는 아직도 옴부티 아저씨를 제대로 모른다. 옴부티 아저씨는 가족이 없다. 뚜바이를 주군이자 아들로 생각하는 분이다. 재산에 욕심이 있을 리 없다. 지금 오버하는 모습도 뚜바이가 두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연극이다.
“저는 저녁 준비할게요.”
에델이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의 끈끈한 정과 신뢰에 울컥했다. 블랙과 아저씨의 모습에 아빠와 삼촌이 생각나 버렸다. 남도 저런데 삼촌은 아빠를 살해하고 농장을 삼켰다.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의 끝은 어딜까.
옴부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 년 전의 와킬은 굶주린 사자처럼 광폭한 기세를 뿜었다. 마주 서면 사하라 사막 풍을 맞는 듯 피부가 따끔거렸다. 지금은 리넨 천보다 더 부드럽다. 주인이 부상 때문에 약해지지 않았나 은근히 걱정되었다.
“와킬, 그동안 별다른 일이 있었습니까?”
“땅속을 두 달이나 헤매고 다녔다. 별일은 없었다.”
옴부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광산이라도 개발하셨나?’
“집 구경이나 해 볼까?”
“아이쿠 이런, 들어가시지요. 급히 짓느라 와킬을 모시기엔 부족합니다.”
“헐, 이런 넓이에 나 혼자 지내란 말인가?”
2층 거실이 광장처럼 넓다. 큰집 행랑방, 한 칸짜리 자취방, 칠성시장 쪽방, 천생사 작은방을 전전한 블랙맘바다. 소심한 젊은이에게 광장처럼 넓은 50평 거실은 어이 상실이다.
“와킬의 지위와 체면을 생각하면 너무 소박합니다. 그리고 혼자 아닙니다. 에델 양이 있지 않습니까?”
옴부티가 슬쩍 눙쳤다.
“쩝, 그 이야긴 하지 마라.”
블랙맘바는 그렇지 않아도 싱숭생숭하다는 말을 꿀꺽 삼켰다. 불타는 청춘을 한 집에 밀어 넣어서 새끼 까는 작업을 하도록 만들려는 옴부티의 음모가 빤히 보였다.
“주인님의 방?”
블랙맘바가 [Maître de Maison] 명패가 걸린 방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와킬이 사용할 집무실입니다. 회사에 계시든 안 계시든 와킬은 이 회사의 주인이십니다.”
옴부티가 못을 꽝꽝 때려 박았다. 욕심 없는 주인을 붙들어 두려면 고삐를 단단히 죄어야 한다.
“파리 시내의 고급 빠이로(bureau, 오피스텔)가 따로 없구마.”
주인님 방은 집무실과 휴식룸으로 꾸며졌다. 책상과 일상용품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휴식룸에는 침실과 욕실, 간이 주방까지 딸려있다. 창문을 열었다. 종려나무 너머로 공장 전경이 훤히 보였다. 전망을 확보하고 생활 공간이 따로 없어도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했다.
“에어컨까지?”
집무실 구석에 에어컨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차드와 에어컨은 매치가 안 되는 조합이다. 은자메나의 외국인 전용 호텔 정도는 돼야 에어컨이 있다. 옴부티 본인의 방에도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간다. 블랙맘바는 살짝 감동했다. 언제 올지도 모를 자신을 위해 옴부티가 쏟은 정성이 대단했다.
‘마쓰시타? 쪽바리 물건 아이가.’
에어컨을 살펴보던 블랙맘바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일본 하면 씹어먹을 사이 도지쿠가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민족적 감정이 앞서는 블랙맘바다.
“에밀이 보냈습니다. 와킬의 집을 짓는다고 했더니 보급품에서 빼낸 모양입니다.”
옴부티가 누구의 책임도 없다는 식의 설명을 잽싸게 뽑아냈다. 눈치와 순발력이 백 단이다. 블랙맘바가 발사라를 슬쩍 꺼내 쥐고 에어컨을 죽 그었다. 서겅- 멀쩡하던 에어컨이 소리도 없이 절반으로 쫙 갈라졌다. 블랙맘바는 은근히 속 좁은 놈이다.
“오, 알라시여!”
옴부티의 눈이 커졌다. 신의 능력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강한 주인이 더욱 강해졌다. 이젠 주인을 해칠 존재는 없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노회한 옴부티는 잽싸게 감정을 수습하고 순발력을 발휘했다.
“와킬, 지팡구 제품은 역시 부실하군요. 꼬레앙의 제품을 구해보겠습니다.”
“그렇지. 한국 제품이 일본 제품보다 훨씬 좋다. 내가 돌아가면 필요한 가전제품을 몽땅 보내주겠다.”
블랙맘바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1980년대 한국의 전자 제품은 일본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오, 알라의 은혜입니다. 알라의 은혜는 만인이 누려야 합니다. 한국의 가전제품을 수입해서 돈 많은 놈에게 팔아먹어야 겠습니다.”
옴부티가 설레발을 쳤다. 그 주인에 그 하인이다.
“그거 사업이 될듯하다. 전기는 안정적인가?”
“웬걸요. 하루에 서너 번은 끊어집니다. 회사에서도 무라타 발전기를 예비로 돌리고 있습니다.”
옴부티가 슬쩍 블랙맘바의 눈치를 봤다. 무심코 말하고 보니 또 지팡구 물건이다.
“독자적인 발전 설비를 갖춰야겠군.”
한숨이 나왔다. 차드는 한국의 1960년대 수준이다. 인프라가 이래서야 산업이 일어나기 힘들다. 일찍이 발전소와 철도, 고속도로 같은 사회 인프라망 구축에 국력을 쏟아부은 박통이 부패한 아프리카의 독재자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드는 인력만 넘쳐납니다. 모든 게 부족합니다.”
“시작이 반이란 한국 속담이 있다. 시작했으니 나머지 반은 어떻게 되겠지.”
블랙맘바 특유의 어떻게 되겠지 신공이 발휘되었다. 세상을 험하게 살다 보니 저절로 타임 솔루션을 체득하게 된 블랙맘바다. 복잡한 인간사의 최고 해법은 시간이다.
“뚜바이, 식사 준비가 되었어요. 아저씨 어서 가요.”
문앞에 앞치마를 걸친 에델이 나타났다.
“아!”
블랙맘바가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가슴이 덜컥했다. 에이프런 앞자락에 앞발을 치켜든 앙증맞은 분홍색 고양이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혜영!’
시냅스 코드가 과거의 방에 코드를 푹 꽂았다. 히라니와 정원이 있는 적산가옥, 찌링- 찌링- 초인종을 누르자 슬리퍼 끄는 소리가 찰찰 들렸다. 철커덕 쪽문이 열렸다.
“늦었네. 벌이닷.”
혜영이 무쌍의 상징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좁은 쪽문으로 몸을 욱여넣던 무쌍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아고고, 무쌍이 죽네.”
무쌍이 과장되게 엄살을 질렀다.
“호호호, 듬직하네!”
혜영이 상체를 흔들며 깔깔거렸다. 하얀 실내복 앞가슴에 자리 잡은 분홍색 고양이가 앞발을 할퀴듯이 흔들었다.
“아아, 이건 성희롱이야. 처녀가 못하는 짓이 없어.”
“흥, 종족 보존 준비가 된 주제에 말이 많아.”
혜영은 불쑥 커진 물건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누나 또 노브라지?”
출렁이는 고양이 앞발이 위치한 부분이 혜영의 유방이다. 혜영은 툭하면 노브라로 자신을 골렸다. 출렁이는 고양이 앞발에 가려진 소담스런 유방이 눈앞에 선했다.
“엥, 니가 기어코 투시술을 익히고 말았구나. 음흉스러운 놈!”
“아이구, 내가 앓느니 죽는다. 그렇게 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애인을 놀려먹으면 좋아?”
“즐기는 사람이 누군데? 고런 얌통머리 없는 언사를 하면 안 되지. 이 옷 어때?”
“잘 어울리네. 소녀틱한 분위기가 팍 살아나는구마.”
“그렇지, 나야 원래 인물이 옷을 살리는 좋은 사례지. 공부만 못했으면 모델을 하는 건데.”
혜영이 턱을 치켜들고 으스댔다.
“에이, 왕 재수!”
투덜대는 입과 달리 눈은 고양이 앞발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아침 햇살이 혜영에게 집중되었다. 눈이 부셨다. 어두운 흑역사에 한 줄기 햇살이 되어준 그녀.
“뚜바이!”
맑은 소프라노가 기억의 창고에서 블랙맘바를 덥석 끄집어냈다.
“응? 그렇지 밥 먹어야지.”
멋쩍은 웃음을 지은 블랙맘바가 급히 방을 나섰다. 에델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첫 번째는 엄마고, 두 번째는 역시 여자였어.”
에델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자는 슬쩍 흘리듯이 말한 남자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 초능력이 있다.
“우와! 이게 뭐야?”
주방에 들어선 블랙맘바의 입이 찢어졌다. 김치찌개다. 우갈리(옥수수와 카사바를 섞어 만든 죽), 나마초바(악어 꼬치구이), 챠파티(밀가루 전병 비슷한 차드 요리), 졸로프(닭고기와 밥, 야채를 섞어 졸인 요리)같은 아프리카 요리 틈에 김치찌개가 턱 자리 잡고 있다. 황송하게도 하얀 쌀밥을 담은 커다란 보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