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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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옴부티 날다8
음식은 문화다. 한국인의 정서에 스며든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무엇일까? 김치와 쌀밥이다. 외국에 체류 중인 한국인이 그리워하는 음식 1위가 김치찌개와 쫀득한 쌀밥이다. 블랙맘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숭숭 썰어 넣은 김치, 희끄무레하게 익은 삼겹살, 불그스름한 국물까지, 제대로 만들었다. 대통령궁 수석 쉐프인 프레숑이 호텔에서 제법 각 잡힌 김치찌개를 끓여주었지만 야들야들한 여자의 손맛을 따를까. 맵짜한 냄새에 이끌려 한 스푼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욱!’
충격이다. 블랙맘바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펴느라 안간힘을 썼다. 이게 무언가? 칼칼함은 사라지고 시큼한 맛과 느끼함이 혀를 결딴내고, 목구멍 상피 세포를 화들짝 놀라게 하였다.
눈을 치떠서 에델을 슬쩍 훔쳐보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숙제를 제출하고 칭찬을 기다리는 국민학생 얼굴이다. 저 얼굴에 어찌 돌을 던지랴. 블랙맘바는 결사적으로 인상을 펴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오, 이거 대단하다. 루드리 어떻게 맛을 냈나?”
대단하긴 대단했다. 진심으로 조리법을 알고 싶었다.
“오우, 리얼리 해피 포 유! 김치찌개는 신맛이 강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식초를 치고, 토마토와 후추로 맛을 냈어요. 맛이 연해서 버터를 조금 추가했어요. 지난번에 뚜바이가 비린 음식을 싫어한다고 했죠. 멸치는 비리잖아요. 장쒼이 멸치를 우려낸 물에 김치를 넣으라고 했지만, 양고기 국물로 끓였어요.”
에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고생해서 만든 요리가 좋아하는 남자의 칭찬을 받았다. 김치와 함께 썰린 손가락 상처에 스며든 김칫국물을 원망하는 마음마저 사라졌다.
‘크윽, 양고기 육수에 식초를 치고, 토마토, 후추, 버터를 추가했다고? 어쩐지!’ 블랙맘바는 치를 떨었다. 말만 들어도 느끼함의 절정이다.
“원더풀, 엑셀런트!”
입에 가득 찬 건더기를 꿀꺽 삼키고 엄지를 번쩍 들었다.
“오우, 고마워요.”
에델의 턱이 들려지고 코가 높아졌다. 역시 장쒼이 알려준 요리법은 2% 부족했다. 자신의 실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는 자부심에 기분이 째졌다.
“좋아할 줄 알았어요. 많이 먹어요.”
에델이 블랙맘바의 앞 접시에 김치찌개를 듬뿍 퍼 담았다. 블랙맘바의 두 눈이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오, 알라시여! 에델은 진순이가 될 수 없는 것입니까?’
어떤 요리든 맛깔스럽게 척척 만들어내는 진순이 너무나 그리웠다.
블랙맘바는 시고, 느끼하고, 끈적한 국적불명의 요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차라리 보툴리누스 톡신을 퍼먹고 싶었다. 함빡 미소를 짓고 눈을 떼지 않는 루드리가 시리아 탱크 군단보다 더 무서워졌다. 흘끔 옴부티를 쳐다보았다. 맙소사! 태연하게 김치찌개를 퍼먹고 있다.
‘헉! 이건 또 머꼬?’
블랙맘바는 기름이 잘잘 흐르는 졸로프를 한 입 떠먹고 부르르 떨었다. 졸로프는 닭살을 잘게 찢어 밥에 섞고, 각종 볶음 야채로 맛을 낸 요리로 특별한 조리 기법이 필요 없다. 도대체 어떤 특수 비법을 썼기에 이처럼 비리고 모래가 씹힐까? 어떻게 조리를 했기에 이런 최악의 맛을 냈을까?
“루드리, 졸로프의 맛을 낸 비법이 있나?”
“정향을 넣고, 조갯살을 잘게 썰어 넣어 포인트를 줬죠.”
루드리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닭고기가 들어간 요리에 조갯살로 포인트를 줬다고?”
식겁할 일이다. 닭고기와 조갯살이 섞이면 최악의 비린 맛이 탄생한다. 정향은 그 비린 맛을 강화시킨다. 게다가 해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모래가 바삭거리니 미칠 노릇이다. 인간은 닭이 아니다. 모래 바삭 이는 졸로프를 씹는 블랙맘바의 눈꼬리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에델양, 고생했어요. 감격한 와킬께서 눈물까지 살짝 흘리는 모습을 보십시오. 정말 맛있습니다.”
옴부티가 느긋하니 김치찌개와 졸로프를 즐겼다. 눈을 지그시 감고 맛을 음미하는 모양새가 미각의 바다를 헤매는 미식가의 포스마저 풍겼다.
‘망할 영감, 비위도 좋구마.’
블랙맘바는 혀를 찼다. 45년 세월은 고스톱으로 따지 않았다. 보툴리누스 톡신에 버금가는 요리를 너끈하니 해독하다니, 놀라운 식신 공력이다. 옴부티가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와킬, 에델 양이 삼 일 전부터 직접 칼을 잡고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첫 솜씨인데 이만하면 성공적이지 않습니까?”
‘맙소사, 그럼 이 재료가 전부 3일이 지난 재료란 말인가? 오 알라시여, 내 밥통아 오늘 고생 좀 하렴.’
슬프게도 하나님은 루드리 에델에 요리 능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루드리는 요리치다.
“루드리의 요리 본능이 꽃을 피웠구먼.”
블랙맘바는 피눈물을 삼키고 맞장구쳤다.
‘옴부티가 괜찮으려나?’
나이 45세면 신진대사가 떨어질 나이다. 자신의 위장은 하이에나 이상이다. 썩은 고기를 포식해도 문제없지만, 옴부티가 걱정이다.
한차례 모진 식사 고문을 받은 블랙맘바는 식사가 끝나자 잽싸게 주인의 방으로 피신했다. 어떤 기상천외의 후식이 나올지 겁부터 났다. 김치찌개에 놀라는 바람에 옴부티에 줄 선물마저 잊어버렸다.
“옴부티, 졸로프가 먹을만하던가?”
블랙맘바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쉿, 남자는 혀가 말리고 이빨이 다치더라도 여자가 만든 요리를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도량 넓은 남자는 여자가 만든 음식을 무조건 맛있게 먹어줘야 합니다.”
옴부티가 도어를 흘끔 쳐다보며 속삭였다.
‘니미, 남자 도량보일라 카다가 독살당하겠네.’
블랙맘바의 얼굴이 땡감 씹은 듯 찌그러졌다. 역시 하나님은 공평했다. 에델에 천사 같은 미모와 심성을 내려주셨지만 요리 능력은 허락하지 않았다.
“옴부티, 축하 화환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
“꽃이요? 와킬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개업했으니 큰일이군요.”
옴부티의 얼굴이 흐려졌다. 대다수 아프리카 부족이 그렇듯 투아레그족도 악귀와 관련된 미신이 많다. 주인은 아즈라일이다. 꽃으로 사악한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을 건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개업하면 화분과 커다란 화환을 보내서 축하한다. 사업을 꽃피우라는 의미다. 은자메나 시내를 두 시간이나 돌았지만, 꽃집을 찾지 못했다.”
블랙맘바의 설명에 옴부티의 표정이 밝아졌다. 악귀를 쫓는 주술이 아니라 단순한 축하라면 다행이다.
“오, 비스밀라! 좋은 관습입니다. 역시 와킬의 나라는 훌륭한 나라입니다. 와킬이 소인을 위해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만으로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은자메나에 꽃을 파는 가게는 없습니다. 꽃을 선물하는 풍습도 없고, 먹고 살기 바빠서 꽃을 살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더군.”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장 끼니가 걱정인 빈민이 꽃을 살 리 없다. 상류층도 꽃을 선물하는 풍습이 없단다. 삽질만 한 셈이다. 백팩에서 황금 당나귀와 미스바하를 꺼냈다.
“아쉽지만 이걸로 선물을 대신한다.”
옴부티의 입이 찢어졌다. 얼른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선물을 받았다.
“오오! 황금 당나귀와 블랙마노 미스바하! 와킬은 아프리카 사람이 다 되셨습니다. 당나귀는 부귀의 상징입니다. 미스바하는 알라의 축복입니다. 정말 귀하고 좋은 선물입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란다. 비스밀라!”
블랙맘바는 대충 현질을 한 주제에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이 거들먹거렸다.
“감사합니다. 미스바하도 진품입니다. 은자메나의 보석상 절반은 사기꾼입니다. 쿠리(중국인) 기술자를 고용해서 가짜를 만들어 사기를 칩니다. 눈 부릅떠도 코 베어 가는 놈들입니다. 특히 외국인은 조심해야 합니다. 주인이 강도로 돌변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속지는 않았다.”
약간의 트러블이란 병신을 만들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안 속기는 개뿔, 재수가 좋아서 속지 않았다.
“일이 있었군요.”
옴부티는 역시 눈치가 빨랐다.
“톰발바예가 2지구 토탈 보석상에서 구입했다. 양아치 두 놈이 흉기를 들고 설치길래 몇 대 때려주었다.”
“와킬께 덤벼요? 눈깔이 썩은 놈들이군요. 그런 놈들을 살려두시다니 와킬은 진정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당나귀 상은 오만 프랑이 넘겠습니다. 보잘것없는 소인을 위해 너무 큰 지출을 하셨습니다.”
옴부티는 황금 당나귀를 들고 어찌할 줄 몰랐다. 차드에서 오만 프랑은 엄청난 돈이다. 노동자가 한 달 꼬박 일해야 10~15프랑을 번다. 5만 프랑이면 노동자가 320년 벌어야 할 거금이다. 돈도 돈이지만 하인을 챙기는 주인의 자비에 감동했다.
‘에구, 이것도 5만 프랑씩이나!’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 놈에게 십칠만 프랑이나 뜯어낸 셈이다. 사기를 치고 강도질까지 시도한 보석상 주인이 나쁜 놈이지만, 그것과 정당한 거래는 별개의 문제다. 주인 놈은 사기를 치고 자신은 강도질을 한 셈이다.
“나는 와킬이다. 옴부티는 소중한 가족이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내 가족이 기뻐하면 나도 기쁘다.”
“감사합니다. 와킬의 은혜가 큽니다.”
가족이라는 말에 옴부티의 우멍한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을 하인이 있을까.
“장사는 잘 되는가?”
“옥수수와 대추야자, 땅콩, 면화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수단과 자이르 동부로 구매처를 늘리고 있습니다. 면화는 도바의 사마리아 농장에서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농장이면 에델의 농장 아닌가? 쫄따구가 잘하고 있던가?”
“그게 좀~ 닉이란 놈과 반란을 일으킨 놈들을 결딴냈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블랙맘바의 눈이 번득였다. 선우현은 과시욕이 강한 인간이다. 무력을 믿고 보냈는데 엉뚱한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한둘이 아닙니다. 추후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옴부티가 슬쩍 뺐다. 주인의 화를 돋우려면 점증법을 써야 한다. 슬쩍 찔러놓고 미주알고주알 풀어야 효과가 커진다. 잔머리라면 옴부티다.
‘옴부티가 심각할 정도면 제대로 사건을 친 모양인데, 이노무 자슥이 또 무슨 사건을 친겨?’
블랙맘바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주인의 얼굴이 굳어지자 옴부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쫄따구야, 명복을 빌어주마. 주인님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 못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왕처럼 군림하는 쫄따구가 얼마나 눈꼴시었는지 모른다. 충고해도 먹히지 않고, 피지컬에서 상대가 안 되니 때릴수도 없다. 와킬이 오기만 기다렸다. 옴부티는 호가호위를 제대로 써먹을 작정이다.
“다른 문제는 없나?”
“사헬 지역의 특산물인 대추야자와 땅콩을 구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드 중북부 지역은 어린애들이 굶어 죽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가뭄이 8년째다. 사하라 모래가 농토를 잠식하고, 대추야자가 꽃도 제대로 못 피우는데 수확이 있겠나. 지금은 더 악화하였겠지. 남부의 수수와 쌀을 공급하면 굶주림은 면할 텐데…….”
안타까웠다. 너구리 작전 당시에 목격한 사헬 지역의 기근은 심각했다. 말라버린 엄마 젖을 물고 있던 뼈가 앙상한 젖먹이가 생각났다. 샤리 강과 로곤 강이 흐르는 차드 남부는 비옥한 곡창지대다. 차드 주민 일천만이 먹고살기에 충분하다.
“정정 불안과 부패가 모든 걸 망쳤습니다. 분배 시스템도 없고 수송할 도로와 차량도 없습니다. 매점매석한 곡물 메이저가 식량을 내놓지도 않고 말입니다.”
“정부 구호 식량은 풀지 않나?”
“여력도 없지만, 권력다툼을 하느라 굶어 죽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와킬이 프랑스 보니파스를 겁줘서 받아낸 구호기금 5천만 프랑도 하브레의 뱃속에 들어가서 나올 줄 모릅니다. 그놈은 자신의 출신 부족인 앙헬족만 챙깁니다. 산더미처럼 들어온 외국 구호물자도 중간에서 방귀처럼 새버립니다. 정치인이 절반 잘라먹고, 관료들이 이리저리 떼먹습니다. 정작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에게 전달되는 양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망할 놈들!”
속에서 불길이 일었다.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 배고픔이다. 어린 시절 눈물겨웠던 배고픔이 생각났다. 한국도 전후 외국의 구호물자를 받아 연명한 시절이 있었다. 농토가 적은 가구는 매달 밀가루를 한 부대 지원받았다. 보릿고개 잔재가 남은 시절엔 큰 도움이었다.
자신도 미국에서 지원한 큼직한 소빵으로 국민학교 다니는 내내 점심을 해결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영양실조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배급 시스템이 엉망이면 원조를 해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아니 권력자 배만 불린다. 풍부한 남부 식량도 소용없다. 인간이 자연재해보다 더 문제다.
“하브레를 없애 버릴까?”
“제2의 하브레가 나오겠지요.”
“그렇겠지.”
블랙맘바와 옴부티는 둘다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브레를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옴부티는 와킬이 안타까워 한숨쉬고, 블랙맘바는 한국의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가 생각나서 한숨쉬었다. 어쨋던 받았으면 주어야 한다.
“옴부티 부탁이 있다.”
“와킬, 부탁이라니요. 명령하십시오.”
“일억 프랑을 보내겠다. 식량을 대량으로 사들여라. 와킬 상회의 순이익 삼분지 일은 알라의 것이다. 알라의 돈으로 식량을 사서 굶주리는 사헬 주민에게 공급하라. 당장 한국에 트럭 100대를 주문해라.”
“으헉, 일억 프랑!”
옴부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일억 프랑이라니! 능력이 대단한 주인이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내일 BNP파리파 은행에서 송금될 것이다. 어차피 자치구 사업의 중심은 와킬 상회다. 기업은 국민과 함께 커야 한다. 벌어들인 만큼 제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