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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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옴부티 날다10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다소곳이 경청만 하던 에델이 처음으로 호기심을 드러냈다.
‘여자는 여자구마. 묻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
블랙맘바는 속으로 웃었다. 여자의 호기심은 고양이에 버금간다고 했다. 영국 귀족 집안의 영애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인종을 불문하고 남자가 여자의 대화에 끼어들기 쉽지 않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의 대화에 쉽게 끼어든다. 물론 여자든 남자든 제삼자가 대화에 끼어들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금발에 눈이 푸른 며느리를 인정하실까?’
블랙맘바는 객쩍은 상념을 얼른 지웠다. 어머니가 어느 하늘 아래를 헤매고 다닐지 모르는 판에 여자 문제에 얽혀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옴부티가 폴딩 스토퍼를 눌러 칼날을 고정하고 검첨을 손가락으로 탁 튕겼다. 태앵- 마치 유리컵을 두드린 듯 맑은 음이 울렸다.
“에델 양, 여기 칼날의 물결 문양과 상아 손잡이의 구름 문양이 보입니까? 물결 문양은 최상의 다마스커스 강, 손잡이의 구름 문양은 아마지드 최대 부족인 켈 아이르 타워시트를 상징합니다. 나머지 아홉 개의 오피넬 진품은 손잡이에 문양이 없습니다.”
“아, 예쁘네요! 골동품적 가치도 높겠어요.”
“실용적이고 날카롭습니다.”
옴부티가 탁자 모서리를 내리쳤다. 삭- 2인치 두께의 호마이카 상판이 매끄럽게 잘려나갔다. 에델이 움찔했다. 칼날의 예리함이 상상 이상이다.
“타센조터는 본래 아마지드(투아레그족이 자신의 부족을 일컫는 명칭)전사가 얼굴을 가리는 복면을 뜻합니다. 요즘은 리탐이라 부르지요. 오피넬이 단검을 100개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본인이 직접 만든 단검은 10개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그의 제자가 만든 모조품입니다. 진품은 프랑스 왕실과 고위 귀족에 진상되고, 타센조터만 그가 손님으로 머물던 켈 아이르 타워시트의 아메노칼에 전해졌습니다.”
“아메노칼이 뭐에요?”
“아메노칼은 아마지드족의 연방집단인 타워시트의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대족장인 셈이죠. 켈 아이르는 니제르 북서부에 거주하는 아마지드의 타워시트입니다. 아메노칼은 선물 받은 오피넬을 자신의 신물로 삼고 타센조터라 불렀습니다. 그때부터 아마지드의 상징이 복면에서 오피넬로 바뀌었습니다. 타센조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지 못합니다. 키갈리가 타센조터의 행방을 알게 되면 눈이 뒤집힐 겁이다. 그래 봐야 와킬이 겁나서 침만 삼키겠지만요. 흐흐흐!”
옴부티가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타센조터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상 밉살맞은 키갈리는 끝장이다. 와킬의 은혜임을 모르고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던 개잡놈의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선했다.
“헐, 낡은 사냥 칼이 아메노칼의 신물 타센조터라고?”
살짝 놀랐다. 켈 아이르 투아레그족 숫자는 40만에 달한다. 전생에 동네를 구했는지 손에 들어오는 물품마다 유니크 아이템이다.
“그렇습니다. 타센조터는 켈 아이르 아메노칼의 권위인 동시에 복면 전사를 움직이는 군령입니다. 과거 아마지드 전사는 타센조터 아메노칼의 명령에 따라 사막을 질주했습니다. 20년 전에 감쪽같이 사라진 타센조터가 와킬의 손에 들어오다니, 알라의 섭리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옴부티의 속셈이 짐작되었다. 옴부티는 타센조터를 이용해서 켈 아이르의 전사를 거두려는 야심에 차 있다.
“와킬, 타센조터는 소인이 가질 물건이 아닙니다. 돌려드리겠습니다.”
옴부티가 칼을 접어 공손히 내밀었다.
“무슨 소리, 나는 아마지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어봐야 과일이나 깎아 먹는다. 옴부티는 임모하렌이다. 그 칼의 주인은 옴부티다.”
옴부티가 벌떡 일어나 오체투지했다.
“와킬이여 영원하여라! 와킬 위에 사람 없도다. 소인은 와킬의 영원한 하인입니다.”
젊은 주인을 바라보는 옴부티의 눈에 부드러움이 가득했다. 과연 주인답다. 타센조터의 가치를 알고도 과도 취급할 사람이 주인 외에 있을까.
주인께 무엇이든 바치고 싶은데 오히려 끝없는 은혜를 받고 있다. 목숨을 살려주고 복수를 해 준 주인이다. 베풀어준 은혜가 너무 커서 평생 노력해도 갚을 가능성이 없다. 쫄따구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며 몸종 노릇을 하고 싶었다.
와킬은 불가사의한 존재다. 한마디로 영혼이 자유로운 분이다. 뼛속까지 투아레그 전사인 옴부티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사헬에 식량을 보내라는 와킬의 말씀에 엄청난 정신적,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베풀어준 은혜를 떠나서 와킬은 고귀한 인격을 가진 분이다. 자신이 할 일은 와킬의 뒷받침이다. 돈을 벌어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고, 세력을 만들어 지저분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옴부티의 눈이 불타올랐다.
“와킬, 시간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약 한 달이면 사하라 이남 지역의 아마지드 각 부족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블랙맘바는 고개를 흔들었다. 곧 학력고사를 봐야 한다. 아니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 사부가 서두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다.
“옴부티, 내가 자치구를 오픈하려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겠지?”
옴부티의 얼굴이 곤혹스러워졌다. 와킬은 정의로운 분이다. 아마지드의 행보를 볼 때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가해자에 가깝다.
카다피에게 붙어서 차드 인민을 학살했고, 일부 부족은 말리의 원주민을 몰아내고 북부를 점거했다. 핍박받는 민족이라 하기엔 낯이 간지러웠다.
“키갈리의 병력만이라도 끌어들이고 싶습니다. 키갈리 중령이 부하의 신망을 얻고 있지만, 전사는 타센조터의 권위를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블랙맘바가 손을 저었다.
“서두를 필요 없다. 내가 자치구를 오픈하려는 목적은 나 자신이 권력을 쥐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번거로움이 끔찍하게 싫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노력만으로 고통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살아갈 의지와 최소한의 희망을 주고 싶다. 간절히 원하지 않는 사람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전사가 필요하면 내가 수만 명이라도 끌어들일 수 있다.”
“오, 역시 와킬이십니다. 하지만~”
블랙맘바가 손을 들어 옴부티의 말을 막았다.
“옴부티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있다. 투아레그족도 곤궁한 사람은 당연히 받아들인다.”
“감사합니다. 와킬께서 말씀하신 전사는?”
“인연이 닿아 시리아 정교도와 쿠르드족 일부를 거두었다. 그들은 터키와 시리아 양쪽에서 핍박받으며 죽지 못해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마흐디로 여기는 충직한 사람들이다.”
“마흐디라 하시면?”
“레반트 어로 구원자다.”
“아, 쿠르차!”
옴부티의 얼굴이 환해졌다. 구원자는 아마지드 전통 언어로 쿠르차다.
“대단하십니다. 역시 소인은 백 걸음 천 걸음 뛰어봐야 와킬의 한 걸음만 못하군요. 와킬께서 이미 손을 썼을 줄은 몰랐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우연일 뿐이다. 인연이 있는 사람은 만나기 마련이다. 자치구는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의 구제가 목적임을 명심하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은 당분간 사업 확장에 집중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내일 곧바로 에델 양과 사마리아 농장에 들러야겠다. 이제 에델도 자기 일을 해야지.”
“농장에 들렀다가 한국으로 가실 겁니까?”
“만날 사람 만났으면 돌아가야지. 내 개인적인 일도 급하다. 함께 갈 생각 있나?”
“생각은 간절합니다만 소인의 욕심대로 움직일 수는 없지요. 당분간 사업 확장과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회가 또 있겠지. 내가 한국에 들어가면 플랜트 건설 회사를 섭외해서 보내겠다. 필요한 공정과 공장 건설 베이스 도면을 준비해라. 한국인은 세계에서 최고로 빨리 공장을 짓는다.”
“감사합니다. 와킬을 모시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옴부티는 너무나 아쉬웠다. 사헬에서 주인과 함께 보낸 나날은 얼마나 스펙타클했던가. 주인을 따라서 한국이란 나라에 가고 싶지만, 자신은 생각 없는 쫄따구가 아니다.
“임무가 없으면 한국에 거주한다. 곧 초청하겠다.”
“아, 레종 에뜨랑제를 떠나셨습니까?”
옴부티가 깜짝 놀랐다. 프랑스는 와킬 같은 초능력자를 순순히 놓아줄 만큼 멍청한 나라가 아니다.
“아, 그건 아니다. 나는 특별군사고문이다. 한마디로 프리랜서인 셈이지. 외부엔 비밀을 지키도록.”
블랙맘바는 특별군사고문이 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오오, 잘되었습니다. 보니파스가 와킬을 프랑스에 붙들어 두려고 잔머리를 썼군요. 와킬은 그냥 편하게 지내시고 주는 돈만 받으면 됩니다. 목마른 놈은 프랑스입니다.”
역시 경험과 나이는 고스톱 해서 딴 것이 아니었다. 옴부티는 프랑스 정부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냈다.
“나도 알고 있다. 과분한 대우를 해주는 만큼 밥값은 해야지. 성의껏 일해 줄 생각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와킬은 아직도 자신의 가치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와킬의 문제 해결 능력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분입니다. 와킬과 같은 능력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겁니다.”
옴부티의 눈이 자부심으로 번들거렸다. 주인의 매력이자 약점은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다는 점이다. DGSE가 어떤 놈들인가. 보니파스가 우는 소리 하며 매달리면 홀라당 들어줄 분이다. 은근히 걱정되었다.
‘늙은 쥐가 독 뚫는다더니!’
블랙맘바는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자신이 답답할 일은 없다. 프랑스 당국이 강압적으로 나왔으면 한바탕 휘젓고 튀어버렸을 것이다. 프랑스 당국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만큼 대우해준다. 보니파스의 말처럼 서로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프랑스가 원하는 만큼 나도 뽕빨 뽑는다.”
“뽕빠루?”
“한국 은어다. 상대방 의도를 털어낸다. 밑천 턴다.”
“우하하하!”
옴부티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와킬은 은근히 재미있는 말을 잘한다. 대화가 절로 유쾌해진다.
“그럼요. 와킬이 움직이면 그들이 알아서 뽕빨을 뽑아 줄 겁니다. 와킬의 가치는 군단급 이상이니까요. 와킬은 얼마든지 배짱 튕기고 갑질을 하셔도 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쌓인 이야기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았다.
“오우, 홍차가 또 떨어졌네요.”
“루드리, 이번엔 커피로 부탁한다.”
블랙맘바가 재빨리 메뉴를 변경했다. 에델이 우려낸 홍차 두 잔은 김치찌개에 이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펄펄 끓는 물로 장시간 우려낸 홍차는 타닌 차가 되었다. 소태처럼 쓴 홍차를 사약 마시듯 들이켰다.
“네, 좋은 커피가 있어요.”
에델이 엉덩이를 들었다. 뒤이어 옴부티가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떴다.
‘설마 이것도?’
블랙맘바가 흠칫했다. 커피 향이 기가 막히다. 자라 보고 놀란 놈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신뢰가 가지 않았다. 블랙맘바는 구정물일지도 모르는 연한 흑갈색 액체를 노려보았다.
“뚜바이, 흔한 브라질산이 아니랍니다. 에티오피아 원산 종인 알라타 모카에요. 향기부터 크게 들이키고 추릅 소리가 나도록 크게 한 모금 마셔보세요.”
블랙맘바는 시키는 대로 했다.
“시상에, 이기 머꼬? 여태까정 마신 커피는 구정물이가?”
블랙맘바가 비명을 질렀다. 놀란 나머지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지옥의 기대가 천국으로 바뀌는 심적 충격을 뇌가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 에델은 까먹은 점수를 커피 한잔으로 단번에 만회했다.
절묘하게 블랜딩된 단맛, 신맛, 쓴맛의 조화가 온몸의 세포를 올올이 깨웠다. 전율적인 맛과 향이다. 에델이 그것 보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고마워요.’
에델이 옴부티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노련한 옴부티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허허허, 전문 바리스타가 울고 갈 솜씨입니다. 투아레그족은 커피를 즐깁니다. 캐러밴은 해가 떨어지면 여정을 멈추고 낙타를 반원으로 앉혀서 모래바람을 막습니다. 스러져가는 사막의 석양을 보면서 낙타 가슴에 기대어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예술이지요.”
옴부티가 눈을 거슴츠레 뜨고 시를 읊듯이 사막의 서정을 풀었다.
“좋다. 그런 풍경과 여유로움이라면 구정물을 마셔도 갑빠가 살겠지.”
블랙맘바는 공감했다. 차 한 잔의 여유는 차 맛보다 분위기가 먼저다.
“그렇습죠. 긴 행상을 끝내고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할 때면 행복했었지요. 망할 놈의 프롤리나트!”
옴부티가 뿌드득 이빨을 갈았다. 와킬 덕분에 원수를 갚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은 흘러가 버렸다. 블랙맘바는 중늙은이의 공허한 가슴을 엿봤다.
‘홀아비의 트라우마인가? 가정을 빨리 만들어 줘야겠어.’
모하메드의 동생 바셀이 눈앞을 스쳐 갔다. 일족이 흠집난 여인이라 하여 죄인 취급하지만, 바셀은 참한 아가씨다. 45살 난 중늙은이 옴부티엔 과분한 아가씨다.
“으음, 가슴 아픈 사연은 그냥 묻어 두라.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없어진다. 인연은 그렇게 이어진다.”
“앗, 죄송합니다. 소인은 와킬을 모신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원수를 갚았으니 아내와 딸도 알라의 곁에서 편히 쉴 겁니다.”
옴부티가 고개를 숙여 사죄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차드는 강수량 때문에 커피 재배가 쉽지 않다. 와킬이라면 주술을 부려서라도 뾰족한 수를 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