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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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레종 에뜨랑제 3
무쌍은 동굴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정을 응시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퐁퐁 들렸다.
“동굴이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젠 차가운 동굴 바닥도 적응되었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잠든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머리가 오랜만에 청명했다.
“살아야 해!”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동굴에서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생리적 신체 리듬도 흐트러졌다. 납치된 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알 수 없다. 통나무집에 다녀온 지도 까마득했다. 여름인지 겨울인지조차 오리무중이다.
힘들게 살아왔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왜 이 꼴을 당해야 하는가! 분노와 울분으로 뇌와 심장이 백열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자꾸 괴롭히고 지랄이야.”
비통한 고함이 동굴을 우렁우렁 울렸다. 하늘을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날뛰었다. 정말 억울했다. 자신은 그저 공부하고 싶고, 엄마를 찾아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놈의 하늘은 편안한 꼴을 못 본다. 온갖 욕설과 한탄을 쏟아 내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차!”
폭주했던 감정이 가라앉자 현실이 깨어났다. 석실에서 의료 장비와 어린 소녀의 시체를 목격했을 때 이미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자들이 아니다.
이곳은 일본군의 731부대 같은 곳이다. 자신은 마루타 재료다. 머리 뚜껑이 열리거나 뱃가죽이 헤집어지지 않으려면 선수를 쳐야 한다.
무쌍은 급해지는 마음을 단단히 추슬렀다. 사이비 놈들이 보통이 아닌 만큼 아차 하면 끝장이다. 교주란 인간은 무서운 미친놈이다.
“아악!”
또 시작이다. 머릿속을 갈가리 찢고 헤집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네 번째 세혼술을 시술받은 후부터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의지로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무쌍은 머리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차라리 달군 송곳으로 찌르면 웃을 수 있다. 뇌가 온통 녹아내리는 원초적 고통은 인간으로서 버틸 수 없다.
한바탕 동굴을 구르던 무쌍이 길게 늘어졌다. 풀무처럼 거친 호흡이 정상을 찾았다. 입가에 버걱이던 거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니미 조또!”
힘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
다행히 정신이 나가기 전에 동굴 벽에 숨겨진 석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일호가 동굴에 한 발을 막 들이미는 순간, 맹수처럼 덮쳐서 일호의 목에 모스키토 가위를 꽂았다.
길이 20cm에 끝이 칼보다 날카로운 가위다. 강화된 일호의 목 근육을 저항 없이 파고들었다. 가위 끝이 목빗근을 파고들어 경동맥과 후두를 박살 내고 반대편으로 빠져 나갔다.
“끄르륵”
기습을 받은 일호는 저항할 틈도 없이 치명상을 입었다. 일호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들고 있던 음식 그릇이 툭 떨어지며 갈고리 같은 손이 무쌍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적면의 엄지와 검지가 목울대를 파고들었다. 적면들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 쇼크도 없다. 방심의 대가는 컸다.
적면 일호의 힘은 역시 놀라웠다. 단번에 호흡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쌍은 기력을 모아 목을 관통한 가위를 뽑아서 갈비뼈 3번과 4번 사이로 비스듬히 찔러 넣었다. 심장이 있는 곳이다.
단번에 손잡이까지 가위가 파고들었다. 피 거품을 버걱거리던 일호가 쿵 뒤로 넘어갔다. 어둠 속의 공방은 기합소리 한 마디 없이 순식간에 끝났다. 첫 살인이다. 미리 출구를 확보해 둔 한 수는 과연 훌륭한 조커가 되어 주었다.
“후하 후하”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폭발적인 힘을 쏟아 냈다. 한동안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드레날린이 급작스럽게 분비된 탓인지 피를 본 탓인지 머릿속이 맑아졌다.
소설 속에서 수차례 묘사된 살인의 충격이 없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해 치운 후련함이 느껴졌다. 미쳤거나 정신적 고통을 너무 오래 견뎌 온 탓이다. 마치 또 다른 자아가 자신의 신체를 조종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눈앞이 붉어지며 불끈 힘이 솟았다.
적은 아직 많이 남았다. 교주를 생각하자 분노가 머리를 태웠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무쌍이 석문을 빠져나갔다. 드디어 바깥세상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없는 캄캄한 밤이다. 달이 떴으면 흰 눈에 반사되어 행적을 들킬 염려가 있다. 어둠은 별 제약이 되지 못한다.
사위는 적막했다. 켕켕거리는 여우 울음소리가 푸른 공기를 흔들었다. 온 세상을 뒤덮은 눈이 별빛에 반사되어 어슴푸레 빛났다.
‘바깥세상이다!’
다시 한 번 신선한 차가운 공기를 폐 한가득 쑤셔 넣었다. 정신이 맑아졌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뚜렷이 떠올랐다.
‘죽여라!’
지상 명령이 머리를 울렸다. 통나무집으로 그림자가 바람에 날리듯 접근했다. 구조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방이 네 개, 거실과 부엌이 있다. 열 평 남짓한 방은 적면 다섯이 사용한다. 그 옆방이 치료실이다. 최도식의 집무실 겸 침실은 적면들의 방 맞은편에 있다.
무쌍은 호흡을 고르고 신체를 이완시켰다. 그리고 띄엄띄엄 기억나는 어린 시절 버들 숲을 떠올렸다. 바람에 팔랑이는 아름드리 버드나무 잎들, 버들 숲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고목 밑에 수줍게 돋아난 하얀 버섯, 석양 노을에 붉게 물든 수면, 수면 위로 뛰어 오르는 물고기…….들끓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차츰 가라앉았다.
교주를 죽이겠다는 마음도 버렸다. 마음속에 떠오른 심상들을 차례로 지워 나갔다. 나는 바람이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미풍, 귀밑을 간질이는 훈풍이다.
나는 풀이다. 미풍에 흔들리는 여린 풀잎, 바위틈에 비집고 나온 할미꽃이다. 나는 바위다. 통나무집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 이끼가 끼고 바위 옻이 오른 바위다.
무쌍은 바람이 되고, 풀이되고, 바위가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중생유의 경지에 들어갔다.
무쌍은 엉겁결에 살수 최고의 수준인 무살(無殺) 수준에 올랐다. 히가시혼간지의 전통 살수 무예를 전수받은 최도식이 알았다면 피를 토할 일이다.
물론 일시적인 깨달음이다. 제정신을 찾는 순간 프로판 가스처럼 날아가 버릴 경지다. 최도식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방문은 걸려 있지 않았다. 하긴 누가 있어 최도식에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무쌍은 오른손에 종유석을 들고, 왼손에 23번 메스를 들었다. 캄캄한 방안에 허깨비가 움직였다. 교주는 다다미 바닥에 반듯이 누워 잠들어 있다. 무쌍은 공허한 중에 걸음을 옮겼다. 목표물이 교주라는 의식조차 없다. 현재의 무쌍은 기운을 발산하지 않는 무생물이다.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목표에 다가간 무쌍이 오른손에 든 종유석 송곳을 교주의 경동맥에 꽂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빠르고 단호한 손 속이다.
“끄윽!”
후두가 파괴된 최도식의 비명은 낮았다. 교주의 비명에 무쌍의 적정이 깨어졌다. 제정신을 차린 그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이 언제 교주의 목에 종유석을 꽂았단 말인가!
종유석은 교주의 목을 완전히 관통했다. 어릴 적 잔칫집에서 엄마가 손에 쥐여 주던 산적구이가 떠올랐다.
“식 시익”
최도식은 눈을 터질 듯 부릅뜨고,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그 순간 사태를 인식한 무쌍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왼손에 쥐어져 있던 메스가 일어서는 최도식의 배꼽 아래를 자루까지 파고들었다. 가슴을 찔렀지만, 최도식의 동작이 워낙 빨랐다.
그토록 강하던 최도식도 쇼크 상태를 이기지 못했다. 종유석이 목을 관통했고, 메스가 단전을 자루가 보이지 않을 만큼 파고들었다.
최도식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입에서는 피 거품이 버걱거렸다. 눈을 찢어져라 부릅뜬 그가 무쌍을 손가락질하며 웅얼거렸다. 후두가 파괴된 탓에 쉬익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최도식 목에서 피가 꿀렁거리며 새어 나왔다. 아랫배의 상처는 스스로 지혈했지만, 목을 관통한 종유석은 그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무쌍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미친놈은 곧 죽는다.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놈을 죽였다. 후련했다. 태어난 이래 지금처럼 후련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감정은 기쁨이나 행복과는 달랐다. 울분과 증오를 한 번에 씻어 내는 후련함이다.
“쪽바리 늙탱이 도살당하는 돼지가 된 기분이 어떠노?”
수없이 당하면서 꼭 되돌려 주고 싶었던 말이다.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갔다. 최도식은 푸른 불길이 줄줄 쏟아지는 눈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지금의 그는 말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응 내 도끼!’
방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벌목 도끼가 눈에 들어왔다. 최도식 같은 인간은 확실히 마무리해야 한다. 무쌍이 도끼를 집어 들자 최도식의 눈이 커졌다.
치명상을 입었지만, 최도식의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파앙- 최도식이 열린 문으로 몸을 날렸다. 방문을 허깨비처럼 통과했다.
“헛!”
기겁한 무쌍이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는 어릴 때부터 친구다. 축령산과 방태산 산판을 따라다니며 익힌 가지치기 기술이 튀어나왔다.
츄잉- 도끼가 공기를 갈랐다. 문지방을 넘어가는 최도식의 정수리 머리칼 몇 올이 흩날렸다. 사선으로 머리를 빗겨 간 도끼가 팔 한 짝을 가지 치듯 잘라 냈다. 역시 가지치기 도끼다.
“큭!” 꽝-
닫혔던 방문이 터져 나갔다. 최도식은 왼팔과 짧은 비명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황당한 상황에 멍하니 서있던 무쌍이 자세를 잡았다.
툭- 인기척이다. 무쌍은 잽싸게 문 옆 벽에 몸을 붙였다. 적면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오른손이 최단거리로 뻗었다.
“훅!”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종유석 송곳이 적면의 목을 관통했다. 치명상에 불구하고 적면이 손에 든 곤봉을 내리찍었다. 감감적인 반응이지만 이미 예상한 공격이다.
무쌍의 몸이 휘돌았다. 그 궤적대로 도끼가 돌아갔다. 부악- 궤적에 걸린 적면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 잘린 목에서 핏줄기가 1m나 쫙 솟아올랐다.
******
“헉!”
무쌍은 좌석에서 펄쩍 튀었다.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감각이 주변 정보를 즉각 파악했다. 짚은다리도 아니고 아침가리 골도 아니다. 동굴 속은 당연히 아니다.
“후욱!”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망할 놈의 꿈, 아니 꿈이 아니다. 기억의 레코딩이다. 스승님의 지도를 받을 때는 잠잠하더니 다시 시작이다.
“Did you have a nightmare?”
옆자리에 앉은 기품 있는 노부인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영어까지 능숙한 인텔리다.
“We’re sorry. Fine.”
무쌍은 머리를 가볍게 숙였다.
“Sweating, dry.”
“Thank you.”
노부인이 내미는 물휴지를 받아 얼굴을 닦았다. 이마와 볼이 식은땀으로 척척했다. 손바닥을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피비린내가 배인 손, 목탁이 깨지라 두들겼지만 피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
토막토막 끊어져 진행되는 꿈, 아니 꿈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최도식의 세혼술이 만들어 낸 의재인이 진기억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억제당한 재인 과정이 수면을 틈타 자리를 잡는 과정이다. 수년째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기즈 박사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본래의 기억이 자리를 잡는다고 했다.
무쌍은 의자 깊숙이 허리를 밀어 넣고 눈을 감았다. 잠잘 기분이 싹 가셨다. 옆자리에서 불안해하는 노부인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이 드신 분이 어쩌다 환승기도 미친놈 옆자리에 앉아 고생이시다.
스승과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산속에서 화자를 생매장하려고 구덩이를 파던 중에 탁발 다녀오는 노승에게 들켰다. 종이짝처럼 바짝 마른 노승에게 먼지 나도록 맞았다.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기억이다.
“무예란 일시에 끌어 올릴 수 있는 힘의 총량을 높이는 것이다. 범인과 다른 힘의 총량, 효율적인 분배와 격발이 내공이란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만들어 낸 것이니라.”
“단련된 외공 고수일 뿐 내공 고수는 허구라는 말이네요.”
스승은 실망한 제자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말을 이었다.
“꼭히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의 신체는 오묘해서 일정한 법칙에 따라 단련하면 파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흔히들 기(氣)라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파동이다. 기력(氣力)이라고 해야겠지. 나도 상당한 기력을 연마했느니라. 공진(共振)을 아느냐?”
“고유 진동수 간의 접촉에 따른 진폭 폭장 형상 아입니까. 근데 사부님은 우예 그런 걸 다 아십니까?”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책이라곤 불경이 전부인 사부가 물리 현상을 언급하니 생경했다.
“네놈이 사부를 염불이나 외는 빙충이 늙은이로 아는구나. 나도 알건 다 안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공진이요.”
“에그 이놈아, 내 나이 팔순이 넘었다. 말이 끊기면 생각도 끊어진다. 파동은 에너지다. 공진의 존재가 무술과 무예의 경계를 가른다. 단순히 빠르고 힘찬 움직임에서 파동을 뿜어내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무술이 통배권이다. 통배권은 장애물을 매개로 공진을 일으켜 내부를 파괴한다. 격산타우니 검기상인이니 하는 말도 공진을 깨달은 고수들로 인해 생긴 과장된 전설이다.”
무쌍은 사부를 들이받을 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흥미가 바짝 일었다.
“내공 고수가 말짱 헛소리는 아니네요.”
“그건 헛소리야. 사람이 메카닉도 아닌데 기경팔맥을 따라 내공을 돌린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고유 진동수의 파장과 세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고수가 된다는 말씀이네요.”
“어쨌든 총기류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무예는 스포츠화될 수밖에 없어. 누가 이십년 삼십년 처박혀 수련하겠느냐. 총알 한 방 맞으면 끽인데 말이다. 그 와중에 비인부전의 알맹이를 몽땅 잃어버린 게야.”
“우야마 공진을 끌어냅니까?”
“내 기(氣)를 키우고, 그 기를 인간이나 물체의 파동에 맞출 수 있도록 훈련해야지.”
“도통 이해가 안 됩니다.”
“당연하지. 이놈아, 말로 설명될 것 같으면 세상에 고수 아닌 놈이 없을 게다. 오금연노법을 수련해보면 안다.”
“단전은요?”
“쓸 데 없는 소리다. 공진은 뇌파장이다. 유전적으로 타고나거나, 어떤 특이한 경험, 특정 수련을 통해 파장을 발생시킬 수 있다. 뇌파장은 육체 수련을 통해 증폭시킬 수 있다. 육체와 정신은 둘이 아니다. 육체 수련이 정신 수련이다. 오금연노법은 실처럼 가는 뇌파를 밧줄로, 몽둥이로 만드는 과정이다. 경지에 달하면 상대방의 뇌를 휘저을 수 있다. 물론 인간이 그 정도로 강력한 큰 파동을 만들어 내지는 못해. 어쨌든 오금연노법을 꾸준히 수련하면 물리력 행사가 가능한 파동을 만들어 낼 수 있을게다.”
“얼마나 수련하면요?”
“한 오십 년 수련하마 쓸 만할 끼다.”
“예에! 오, 오십 년이요?”
식겁을 했다. 나이 칠십이 되어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공진을 얻지 못했지만 우월한 피지컬에 오금공이라는 고대 무예가 접목되었다. 치가 떨리는 오금연노법은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났다.
빠바방 빠방- 경쾌한 프랑스 행진곡이 기내에 울려 퍼졌다. 무쌍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노부인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무안하고 미안했다. 살짝 미친놈의 옆자리에 앉은 죄로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시대의 격류에 떠밀려 이역만리 파리 북쪽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던져졌다.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유럽 노선은 비행시간만 25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가장 빠른 항로를 해밀턴이 잡아 준 덕분이다.
“Peu de temps après nos passagers alors que l’avion arri ve à l’aéroport de Paris. Ceinture de sécurité…….”
빠른 불어 안내 멘트에 문득 한국말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터미널 원은 드골 공항 장거리 노선 전용이다. 무쌍은 터미널 원에서 공항 안내실을 찾았다. 짧은 영어와 벼락치기로 익힌 불어를 총동원해서 헌병 분견대를 찾았다. 헌병 분견대에는 외인부대 모병관이 파견 근무한다.
그가 아는 불어라곤 인사말 몇 마디가 전부다.
“봉쥬르 므씨으!(안녕하세요!)”
“에 뛰에 쉰느?(중국 사람이냐?)”
“농, 주 쒸 꼬레앙.(아니, 한국 사람이다.)”
“꼬멍 부 자쁠레 부?(이름이 뭐냐?)”
“쥬 아뻴 무쌍 팍.(내 이름은 박무쌍이다.)”
“께스 끄 부제메 르 레종?(외인부대를 좋아하나?)”
“위 보꾸.(아주 좋아한다)”
“께스 끄 모티프 르 레종?(왜 지원했나?)”
“엔 아보르 파르 데슈 라 타테.(세상이 지겨워서)”
“큭큭, 일 리 드볼러.(재미있는 놈이군.)”
세상이 지겨워서라는 대답에 상사는 두툼한 입술을 비틀며 큭큭거렸다.
“이 자식이 비웃네. 니 여기서 함 죽어 바라 카는 기가?”무쌍은 한국말로 투덜거렸다.
무쌍과 레종 에뜨랑제 모병 상사의 대화는 딱 이 정도였다. 더 이상 다른 말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아는 말도 없었다. 나머지는 대충 바디랭귀지로 때웠다. 간략한 절차를 마친 모병 상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얼래, 이 자식 바라. 엿 먹어라 카는 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