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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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인간이 괴물이다1
“뚜바이,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가슴이 ‘복수하라.’ 외치면 머리가 ‘삼촌을 어떻게?’라고 답해요. 내 입으로 삼촌을 처단해 달라고 부탁할 수 없어요. 아빠를 십자가에 매단 인부들도 밉지만, 그들도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속죄할 기회를 줬으면 해요.”
에델이 처연한 표정으로 한숨 쉬듯 말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아빠가 화인처럼 가슴에 박혀있다. 사랑으로 원한을 이기리라 했지만, 쫄따구님이 반란을 제압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속이 시원했던가. 자신의 이중성에 가슴이 저렸다.
“루드리,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아랍에 끼싸스라는 복수 관습이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나는 야만적이라 생각지 않는다. 죄지은 놈치고 할 말 없는 놈 없다. 참회할 기회를 준다고? 당연히 주어야지. 죽을죄를 지은 놈은 저승에서, 죽을 죄가 아닌 놈은 감방에서 참회토록 하면 된다. 계산되지 않은 감정이 네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블랙맘바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눈물 흘리는 미인에게 할 말이 아니다. 위로는커녕 상처 난 가슴을 득득 긁는 무정한 놈이다.
“그래요. 난 이기적인 여자예요. 목화밭은 지긋지긋해요. 아빠가 피땀 흘려 일군 농장을 뺏기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도피했어요. 상처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싫었어요. 저는 못된 딸이에요. 으흑흑!”
에델이 울음을 터뜨렸다. 눈이 번쩍 뜨일 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우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애절한 흐느낌에 간장이 녹지 않을 남자가 없다.
보고 있던 아이쉐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가운이 당겨져 새하얀 허벅지가 살짝 드러났다. 한 줌도 안 될 가느다란 발목과 섬세한 종아리에서 연결된 풍만한 허벅지, 온갖 음흉한 상상력이 붙여질 관능에 눈이 부셨다.
근육으로 뭉쳐진 자신의 구릿빛 허벅지와 여자가 봐도 쓰다듬고 싶은 치명적인 허벅지가 대비되었다. 까닭 모를 분노가 치솟았다. 무덤덤한 표정의 뚜바이부르파가 야속하고 얄미웠다.
‘아이고 저 미련퉁이, 안아, 안으라고! 안고 위로해 주라고.’
아이쉐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루드리, 야수에겐 야수의 길이 있고, 인간에겐 인간의 길이 있다. 나는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야수다. 인간의 조건을 버린 인간에게 짐승의 굴레는 씌우는 아수라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블랙맘바는 아이쉐의 소망을 간단히 무시했다. 루드리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헬기에 올랐다. 착한 사람은 착한 대로 살아가면 된다. 토끼에게 삼겹살을 뜯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으이그, 내가 못 살아.’
아이쉐가 졌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미녀가 홀딱 벗고 주겠다는데……. 미련 곰텡이도 저런 미련 곰텡이가 없다. 존경은 존경이고 얄미운 건 얄미운 거다. 무심한 남자의 등에 옆차기를 날리고 싶었다.
가젤 SA341은 조종사 1인에 무장 병력 4명을 태울 수 있다. 1호기에 블랙맘바와 자칭 수신 호위인 자말, 아흐마드, 아이쉐가 탑승했다. 2호기에 옴부티와 모하메드, 이브라힘이 탑승했다. 가젤은 귀가 먹먹한 로터음을 남기고 아스라이 멀어졌다.
정오를 두 시간 남겨둔 시각이다. 세상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고, 필연이 겹쳐 운명이 된다. 블랙맘바가 육로를 탔으면 선우현은 꼼짝없이 좀비가 되었을 시간이다.
에델의 시선이 아득히 멀어지는 두 개의 점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달콤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는데 그이가 떠나버렸다.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야수란 말이 귀에 쟁쟁 울렸다. 욕심 없는 남자의 유일한 욕심이 그것이었던가! 가슴이 먹먹했다.
당신이 누군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몰라도 당신은 존재합니다.
밤이면 대지에 내려앉는 구름처럼
낮이면 하늘을 나는 새처럼
당신은 누구도 모르게 그렇게 옵니다.
닿을 듯 말 듯, 스칠 듯 말 듯
안타까운 손길이 허공을 떠도는데
나는 왜 당신을 떠나지 못할까요.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싶어요.
당신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손끝만 스치면 안 될까요.
한 번만 돌아봐 주면 안 될까요.
나는 왜 당신을 잡지 못할까요.
사막을 스쳐 가는 모래바람처럼
바위산을 스쳐 가는 번개처럼
당신은 그렇게 떠나갑니다.
난 알고 싶어요.
당신이 누군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흑흑, 언니 그만해요. 너무 슬퍼요.”
루드리의 노래를 듣고 있던 바셀이 흐느껴 울었다.
“바셀, 난 그분을 사랑해. 그런데 그분은 나를 돌아보지 않아. 내가 그렇게 밉상이니?”
“언니, 힘내요. 뚜바이부르파 님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분이에요. 그분은 불쌍하다는 이유 한 가지로 우리를 구해주셨어요. 탱크와 장갑차를 박살 내고, 지뢰밭을 개척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셨어요. 사랑하는 남녀는 당연히 맺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아흐마드의 여자를 구해준 분이랍니다.”
“그러면 뭐해. 나는 돌아보지도 않는걸.”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잖아요. 아직 열 번은커녕 한 번도 제대로 찍지 않았죠?”
“응, 난 그분 앞에만 서면 입이 얼어붙어.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한마디도 못했어.”
“것 봐요. 남자는 섹시한 여자를 좋아해요. 똑똑한 여자보다는 조금 멍청한 여자를 좋아해요. 언니는 너무 똑똑하고 외모에 관심이 없어요.”
“그분의 슬픔을 엿봤어. 투정을 부릴 수 없었어.”
“뚜바이부르파 님이 슬프다고요? 말도 안되요. 그분은 세상을 삼킬 분이에요. 아무리 강한 남자도 여자의 품에서 안식을 찾아요. 알콜 냄새나는 가운이 뭐예요. 다음엔 핫팬츠를 입어요. 값비싼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진하게 해요. 예쁜 목걸이를 하고 가슴이 패인 옷을 입어요.
“그러면 환자를 어떻게 치료해?”
에델은 목에 걸린 미스바하를 만지작거렸다. 장신구를 몸에 걸치기는 처음이다. 손놀림에 방해되는 무거운 팔찌는 주머니에 들어있다. 그러고 보니 화장할 줄도 모른다. 자신은 바보 멍텅구리다.
“언니, 환자가 문제예요? 뚜바이부르파님 같은 분은 세상에 없어요. 여우 같은 여자들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구요. 분위기를 잡아야 해요. 붉은색 촛불을 켜고, 최고급 요리를 주문하고, 독한 와인을 권하세요. 알딸딸할 때 확~”
바셀이 열심히 바람을 넣었다. 그것도 삽질로…….
“다들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럼요.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고 했어요. 그분의 말은 아클란 쿠루에요. 옴부티님을 잡으세요. 옴부티님은 그분의 첫 번째 심복이잖아요.”
어느새 사심까지 내비치는 바셀이다. 순진한 에델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투투투투- 가젤 두 대가 차드 남부를 가로질렀다. 태양이 높이 떠올랐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붉은 수레바퀴가 빙글빙글 돌았다. 하늘도 푸르고 땅도 푸르다. 헬기는 푸른 공간 비집고 분주히 남으로 향했다.
몬순 기후에 속하는 남부는 북부와 달리 강수량도 풍부하고 하천이 발달했다. 도시가 발달하고 도로망도 북부보다 훨씬 양호한 편이다. 모래바람 휘몰아치는 중북부에 비하면 천국이다.
수목이 우거진 푸른 대지, 푸른 숲과 잘 정리된 농경지를 가로질러 기어가는 흰 강줄기, 푸른 색을 찾기 힘든 중북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은자메나를 떠난 지 90분, 가젤이 빽빽한 건물로 들어찬 도바 시내를 가로질렀다. 방울뱀처럼 꿈틀거리는 펜데 강이 눈에 들어왔다. 강변을 따라 장관이 펼쳐졌다. 지상은 구름이 내려앉은 듯 온통 하얀색이다.
“허, 대단하다. 함박눈이 내렸나. 백설기를 뿌렸나!”
하얗게 피어난 목화송이가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월송산 자락에 미영 밭이라 부르는 목화밭이 있었다. 엄마는 목화솜을 딸 때면 노래를 불렀다.
[못 따겄다 못 따겄다. 오늘도 다 못 따겄다.에이요~ 에이요~
몽실한 솜은 아들내미 옷 누벼주고
벌떡한 솜은 서방 옷 누벼주고
에이요~ 에이요~
서산에 해 넘어간다. 쌍이 놈 허기질라.
아까븐 서방 힘 빠질라
에이요~ 에이요~ ]
엄마가 흥얼거리던 사설이 귓가에 쟁쟁했다. 엄마만큼이나 남편을 사랑하는 여자가 있을까? 아버지만큼 아내를 사랑한 남자가 있을까?
“그게 그렇게 신기해요? 하타이에도 이만한 목화밭은 많아요. 꼭 아기 같아요.”
아이쉐가 킥킥 웃었다. 감상이 깨진 블랙맘바가 싱긋이 웃었다.
“신기하다. 난 이처럼 거대한 목화밭을 본 적이 없다.”
“난 뚜바이부르파 님이 더 신기해요.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죠?”
“그게 무슨 소리냐?”
“에델 아가씨 말이에요.”
아이쉐는 요란한 로터음에 질세라 목소리를 잔뜩 높였다. 블랙맘바는 뜨악한 눈으로 아이쉐를 돌아보았다. 맹랑한 쿠르드 노처녀다. 이 여자는 다른 사람과 달리 자신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이쉐, 남의 신발을 신어 보기 전에는 발 크기를 모른다고 했다. 너는 에델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서른이 코앞인데 언제까지 총을 들고 설칠 거야? 더 늦기 전에 프라이팬을 잡아야 하지 않겠어?”
“휴, 어떤 남자가 이런 손을 가진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겠어요.”
반격을 받은 아이쉐가 굳은살 가득한 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여자 손이 아니라 곰 발바닥이다. 아이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만했다.
“흐흐흐, 머리에 가트라를 걸치면 아갈로 고정해야 하는 법이다.”
블랙맘바는 실실 웃었다. 뚜빌리스라 불릴 정도로 인상이 험악한 쫄따구와 곰 발바닥 아이쉐를 붙이면 딱이다. 싫으면 말고.
사마리아 농장주 저택 2층 집무실, 바룽고는 창가에 서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목화밭을 내려다보았다.
“흐흐흐, 나미르님 고맙소.”
웃음이 절로 새 나왔다. 지평선이 보이는 대농장이 끝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콜튼 박사가 농장을 빈번하게 비운 덕분에 교세를 확장했다. 닉이란 백돼지가 난데없이 농장을 가로채는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담발라 웨도(위세와 물질적 부를 안겨주는 정령)는 영험했다. 나미르라는 힘만 센 덜떨어진 인간이 나타나 경비대와 자경대를 쓸어내 주고, 교세를 확장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10년을 절치부심해온 목적을 달성했다.
오리앙탈 주지사만 구워삶으면 연 매출 5백만 프랑의 농장이 완벽히 손에 들어온다. 사마리아 농장을 손에 넣은 이상 교세를 확장할 재정 문제는 해결되었다.
“흐흐흐, 히센 하브레도 노예 사냥꾼 출신이었어. 천박한 놈이 대통령이라니 이 나라는 틀려먹었어. 르와를 받아들인 제사장이야말로 비천한 인간을 이끌 지도자란 말이다.”
차드 북부는 죽은 땅이다. 기독교와 결합한 부두교는 남부 원주민에게 쉽게 파고들 수 있다. 남부만 차지하면 자신이라고 차드의 주인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바룽고의 야심은 끝없이 커졌다.
‘뭐야? 설마 농장에 착륙하려고?’
급격히 고도를 낮추는 헬기 두 대가 눈에 들어왔다. 도바에서 헬기를 보기는 2년 전 내전 이후로 처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농장에 헬기가 찾아올 이유가 없다.
“와당카!”
꽝- 문을 박차고 남자가 튀어나왔다. 이마가 뒤로 젖혀지고 코가 넓게 퍼진 앙헬족 흑인이다.
“옙, 대제사장님!”
“헬기가 방문할 이유가 있나?”
“없습니다. 본국에서 나온 세무 조사반이 아닐까요?”
와당카가 자신 없는 투로 대답했다. 농장주 에델 집안은 영국 귀족이다. 인두세와 지세, 물품세는 차드 정부에, 소득세는 잉글랜드에 납부한다. 잉글랜드 세무 관리인이 조사를 나올 때가 되긴 했다.
“빌어먹을, 하필 이때에…….”
바룽고가 벽을 주먹으로 때렸다. 오늘의 거사는 보둔(언제라도 인간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무섭고 신비한 힘) 의식을 치러서 가장 일진이 좋은 날을 잡았다. 사악한 르와가 끼어들 리가 없다.
“와당카, 파(부두교 예언의 정령)에 문제가 있었나?”
“정성을 다했습니다. 파가 깃들 종려나무는 땅에서 3번째 가지와 하늘에서 3번째 가지를 묶어서 준비했습니다. 소인이 직접 처녀의 피를 바르고, 아이 셋을 낳은 여자의 음부에 비벼서 올렸습니다. 암탉, 쌀, 우유, 달걀, 카사바 가루도 가장 흰 것으로 정성 들여 골랐습니다.”
“으음, 봉헌물도 문제가 없는데……. 담발라 웨도가 분명 답을 주셨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바룽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라다 의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짚어보았다. 아무리 되새겨봐도 라다 의식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귀신 세계는 물질 세계보다 약육강식이 훨씬 엄정하다. 바룽고가 모시는 담발라 웨도는 아수라의 위엄에 비하면 잡귀 수준이다. 잡귀가 아수라의 행사를 알 수 있을 리 없다.
“앗, 제사장님 놈들이 착륙을 시도합니다.”
와당카가 소리 질렀다.
“제기랄, 프랑스군 가젤이다. 일단 제압해야겠다. 비상 대기조를 출동시키고 마룬과 경비대를 즉각 소집해라.”
동체 뒤통수에 붙은 뭉툭한 가속 버너와 전면에 삐죽이 내민 체인 건을 확인한 바룽고가 비명을 질렀다. 뭔지 모르지만 느낌이 아주 좋지 않았다. 온몸이 욱죄어왔다. 육감이 아우성 쳤다. 놈들은 세무관리인 따위가 아니라고.
“옙, 알겠습니다.”
제사장이자 비서인 와당카가 비상벨을 누르고 옥상으로 뛰쳐 올라갔다. 옥상에 비상을 알리는 사이렌이 있다. 애애앵- 마룬과 경비대에 비상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