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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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인간이 괴물이다11
“으, 저럴 수가~”
선우현의 입이 딱 벌어졌다. 와킬의 손이 몇 번 지나가자 울퉁불퉁한 바위표면이 대패로 민 듯 매끈해졌다. 표면을 손으로 다듬고, 붓글씨 쓰듯 글을 새긴다. 아니 글을 쓴다.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바위에 글을 새기려면 정으로 쪼든지, 강산으로 녹여야 한다.
인간의 손은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유기물 조직이다. 합금강으로 만든 대팻날이 아니다. 눈앞의 커다란 돌덩이는 비목이 아니라 비석이다. 합금강 대패를 들이대 봐야 날만 망가진다.
‘내래 바룽고의 환각 저주에 걸렸슴둥?’
선우현은 눈을 깜박였다. 와킬의 새 식구가 된 인간들을 돌아보았다. 놀란 얼굴이 아니라 흠모의 표정을 짓고 있다. 당연하다는 얼굴이다.
‘와킬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분이다. 짧은 지식과 천박한 안목으로 보는 한 그분의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
옴부티가 사헬에서 했던 말이다. 하긴 어릴 때는 김일성이 솔방울 던져서 멧돼지를 잡고, 낙엽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는 말을 믿었다.
‘돌대가리 굴려봐야 자갈 소리밖에 더 나겠어. 와킬이 그러면 그런 거지.’
선우현은 머리를 흔들었다. 허구와 거짓을 진실로 강요받은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냥 믿으면 편할 것을, 의심하고 이면을 보려는 습성이 붙어버렸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무시기 소리지비. 그럼 내가 살아있지 죽었나?”
선우현이 비문을 몇 차례 소리 내 읽다가 옴부티를 돌아보았다.
“하드리탁 옴부티, 저거이 무시기 소리임메?”
선우현은 약속과 달리 옴부티를 형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위기가 지나가자 쪼잔한 성격과 자존심이 뒷다리를 잡았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환란을 겪고도 자존심 강하고 허세를 부리는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다. 꼼수를 낸 게 하드리탁이다. 하드리탁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노형이란 의미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서 안 될 일은 일어난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기대를 버리고 현재를 살아라.”
“그거이 또 무시기 소리임메?”
선우현이 뜨악한 눈으로 옴부티를 쳐다보았다.
“쫄따구, 머리는 못 박으라고 달린 물건이 아니다. 와킬을 제대로 모시려면 공부 좀 해라.”
눈치가 귀신인 옴부티가 선우현의 심사를 모를 리 없다. 염장을 지르고 휭 사라졌다. 선우현은 뜨악한 눈으로 옴부티의 뒷등을 노려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에미럴, 잘났수. 자본주의 것들은 어케 어렵슴둥. 내래 총질이나 하고 와킬의 몸빵이나 해야겠슴둥.”
시체 매장을 끝낸 옴부티는 작업장 분할과 작업조 조정에 들어갔다. 모하메드의 경륜이 빛을 발했다. 농장을 바둑판처럼 잘라서 구역을 정하고, 시수와 표본 수확량을 산출했다.
표본 수확량을 채우면 기본 노임인 10프랑을 지급하고, 할당량 이상의 성과에는 초과 노임을 지급기로 했다. 한국식 돈내기다. 새로운 노동 정책이 발표되자 노동자들은 눈이 벌게져서 작업장을 향해 뛰었다.
돈내기는 노동 착취라는 비난도 있지만, 단순 노동의 성과를 올리기엔 그만한 방법도 없다. 노동자들은 짧은 시간에 돈을 더 벌기 위해 휴식을 줄이고, 가족을 동원하게 된다. 시간이 돈이고,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믿음을 주려는 옴부티의 잔머리다.
끔찍한 홀로코스트가 발생한 사마리아 농장은 단시간에 정비되었다. 노동자들은 목화 수확에 매달리고, 저택 고용인들은 새로운 주인 일행을 모실 준비에 바빴다. 사자의 허무함도, 산자의 환희도 시간의 흐름에 덧없이 매몰되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반추하는 거대한 십자가와 산자의 치열함만 남았다.
투투투- 석양이 질 무렵 가젤 한 대가 사마리아 농장 상공에 나타났다. 선우현이 흰 깃발을 흔들어 헬기를 저택 앞마당에 착륙시켰다.
캐빈에서 내린 손님들이 블레이드 바람을 피해서 허리를 숙이고 뛰듯이 빠져나왔다. 바짝 마른 중년 남자와 초로의 남자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 중년 여자다. 모두 아프리카 사파리 관광을 나온 듯 가벼운 복장이다.
“아리바, 이 먼 곳까지 웬일로 행차했나?”
블랙맘바가 빙긋이 웃으면 손을 내밀었다. 깡마른 아리바가 뼈만 남은 손을 내밀었다.
“은자메나에서 보낸 긴급 통신을 받았다. 참모부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더군. 고문이야말로 무슨 도깨비놀음을 하고 있나? 농부로 전직할 기세구먼. 클클”
아리바는 블랙맘바의 차림을 보며 낄낄 웃었다. 아리바는 블랙맘바의 살벌함 속에 가려진 따뜻한 인간애에 감동했다. 자신의 목숨도 보장 못 할 상황에서 수백 명을 챙길 인간이 또 있을까. 덕분에 블랙맘바 포비아를 상당부분 털었다.
“내 부탁 때문에 서둘렀구먼.”
“내 몸뚱이를 봐라. 고문의 나쁜 성격 덕분에 뼈만 남고 원형 탈모증까지 생겼다. 꾸물대다가 엉덩이를 걷어차이긴 싫었거든. 공병 중대 측량 반은 육로로 출발했다. 이분들은 고문을 도와줄 최고의 전문가다.”
“오, 그거 잘됐다. 소개를 부탁한다.”
“토양학 박사이자 식물학 박사인 호크 오리피스 교수님. 재직 중인 파리이공대학에 휴직계를 내고 달려온 분이다.”
땅딸막한 50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코 위에 테 없는 안경이 얹혔다. 영락없는 호크 인상에 장난끼가 줄줄 흘렀다.
“엔네디를 농장으로 만들려는 멍청이를 꼭 만나보고 싶었거든.”
“반갑다. 내가 바로 그 멍청이, 스바르드 굴베이그다. 동방불패라 불러라. 프랑스어는 미숙하니 이해 바란다.”
“아무려나 상관없다. 말투가 일하는 건 아니지. 어둠의 세계에서 황금을 좇는 자보다는 아프리카의 돈키호테가 더 어울릴 젊은이구먼. 클클클!”
오리피스가 낄낄 웃었다. 블랙맘바는 쓴웃음을 지었다. 망할 놈의 이름 때문에 매번 상대방을 웃기게 생겼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플랜트 설계학과 연구 교수인 미셸 무울소리 박사님, 국립행정학교에서 경영학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인 보팔 셔니언 박사님이다. 셔니언 박사님은 도시계획에도 정통하신 분이다.”
따뜻한 인상의 무울소리 교수와 셔니언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울소리다. 먹고 놀아도 봉급을 주는 연구교수다. 봉급은 주지 않아도 된다. 모험과 재미만 있으면 만족한다.”
“오, 아름다운 부인을 만나서 반갑다. 가녀린 몸과 연약한 손으로 거친 아프리카에서 버틸수 있겠나?”
“남편과 싸우기까지 해서 왔으니 버텨봐야죠.”
무울소리 여사가 배시시 웃었다.
“뱅상 발레리 장관이 특별 고문을 도와주라고 신신당부했다. 발레리 장관의 약점이라도 잡았나? 나도 봉급은 필요 없네. 허허허!”
블랙맘바의 입이 벌어졌다. 자신도 그랑제콜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커리큘럼이 워낙 빡세서 포기했다. 프랑스의 대학 교육은 일반대학과 그랑제콜로 나뉜다. 파리이공대학과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그랑제콜이다. 그랑제콜은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특유의 전통적인 엘리트 고등교육기관으로 최고의 석학이 소수 엘리트를 길러내는 시스템이다. 그랑제콜을 졸업하면 일반 대학과 달리 석사 학위가 부여된다. 프랑스 정부가 최고의 전문가를 섭외해서 파견했다는 소리다.
“동방불패다. 나는 공짜를 싫어한다. 전문가는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연봉의 두 배를 지급하겠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아리바를 통해 연락하라. 한번은 들어주겠다.”
“허, 이번 프로젝트를 맡으면 지니를 만나게 된다는 아리바 과장의 말이 맞았어. 이보게, 내가 수지맞는 장사라 했지?”
오리피스 교수가 동료를 돌아보며 웃었다. 블랙맘바가 옴부티와 시리아 오인 방을 소개했다.
“알 아만 옴부티는 와킬 상회 대표이자 나 동방불패의 대리인이다. 옴부티가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 진행한다. 이쪽은 귀하신 교수님들을 지켜줄 경호원이다. 왼쪽부터 경호대장 쫄따구, 조장 이브라힘, 조장 모하메드, 조장 자말, 조장 아흐마드, 조장 아이쉐다. 추가 경호 인원이 곧 본토에서 들어온다.”
“든든하군. 당장 출발하자고. 뚜바이부르파가 개발하려는 땅이 25,000㎢나 된다고 들었다. 얼른 보고 싶다.”
오리피스 교수가 서둘렀다.
“하하하, 교수님은 어지간히 엔네디를 조사하고 싶나 봅니다. 곧 어두워집니다. 여독이라도 풀고 가시지요.”
아리바가 서두르는 오리피스를 말렸다. 아프리카는 파리 시내가 아니다. 노련한 길잡이도 야간 이동은 부담스러워 한다.
“무슨 소리, 30년이나 생텍쥐페리처럼 야간 비행을 꿈꿔왔다고. 적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별똥별 무리를 보고 싶고, 딸랑이는 낙타 방울 소리를 듣고 싶네. 치누크에 지프도 실려있다며? 사막의 밤을 가로지르는 환상적인 야간 투어를 포기할 순 없지.”
오리피스 교수가 침을 튀겼다. 블랙맘바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막의 밤은 무섭도록 춥다. 엔네디 고원 쪽은 어떨지 모르지만, 티베스티 산괴 부근은 영하로 떨어진다. 오리피스 교수가 과연 생각대로 낭만을 즐길 수 있을지?
“나도 엔네디 고원을 보고 싶지만, 공장 건설이 급한 만큼 이곳에 남아서 옴부티 씨를 돕겠다.”
무울소리 교수가 아쉬운 얼굴로 물러났다. 블랙맘바는 말리지 않았다. 강단있어 보이지만 여자의 몸으로 야생의 아프리카를 돌아다닐 수는 없다. 솔직리 남자인 오리피스와 셔니언도 걱정이다.
22시 정각, 가젤 두 대가 북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블랙맘바와 오리피스, 셔니언, 이브라힘등이 가젤에 분승했다. 옴부티와 선우현, 무울소리 교수는 농장을 정비하기 위해 남았다.
일행은 아티에서 치누크로 갈아타고 파다(Pada)로 향했다. 파다는 엔네디 고원의 유일한 오아시스 도시다. 아리바가 행로를 재조정한 덕분에 시간을 절약하고, 사막을 횡단하는 고생을 덜었다. 엔네디 고원은 와디피라에서 지프로 달리면 밤새 달려도 도착하지 못한다.
새벽 3시, 파다에 도착한 치누크가 후방 램프를 열었다. 광폭 타이어를 장착한 지프 두 대가 꿀렁거리며 기어 나왔다.
조종사가 백팩을 건넸다.
“위성전화기 세트와 고문님 전용 무기가 들어있습니다. 고문님의 전용기가 이곳 파다 비행장으로 이동 중입니다. 귀환 시는 편안하게 이동 할수 있을 겁니다. 지부티 13외인연대의 2개 중대가 수단 다르푸르에 있습니다. 유사시 호출 부호는 352-13-4577입니다. 측량 반은 현재 엔네디 북부 나바르에 도착했습니다. 호출 부호는 352-16-5577입니다. 특별고문님의 무운을 빕니다. 악트!”
“수고했다.”
깍듯한 경례에 블랙맘바가 간단히 손을 들어 답례했다.
시리아 5인방은 깜짝 놀랐다. 정부가 인력을 지원하고, 가젤과 치누크를 동원했다. 게다가 전용기에 유사시 병력까지 동원할 권한을 부여했다. 상상도 못 할 지원이다.
“뚜바이부르파님, 외람되지만 한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모하메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엇을 알고 싶나?”
“프랑스 정부는 오만하기로 이름 높습니다. 뚜바이부르파님께 이토록 적극적인 협조, 아니 저자세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리아 5인방이 일제히 귀를 기울였다. 그들도 내내 궁금해하던 부분이다. 뚜바이부르파는 인간이 아닌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도다. 그렇다 해도 국가와 개인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프랑스가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은 합치되기보다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프랑스 정부의 의뢰를 받아 카파루자 계곡에 은신한 ANO 본거지인 루만을 박살 냈다. 그곳엔 DGSE 중동 지부장이 인질로 잡혀있었다. 확인을 못 했지만, 베이루트 영사도 그곳에 잡혀 있었다. 정보국과 고위층이 몰랐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DGSE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공격하면 인질의 안전은 보장 못 한다. 프랑스는 인명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과격한 결정을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
“프랑스는 테러 집단과 인질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고합니다.”
모하메드의 말에 블랙맘바가 비시시 웃었다.
“테러 집단과 공식적으로 인질 현상을 하는 나라는 없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인질범과 협상하지 않으면 국민은 정부가 자국민을 방치했다고 비난한다. 인질범과 협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민 다수의 잠재적 위험이 대폭 상승합니다. 테러 집단이 돈벌이 수단으로 삼을 테니까요.”
“그렇다. 몸값 협상을 하면 극히 좋지 않은 선례가 된다. 인질을 잡기만 하면 거액의 몸값을 받아낼 수 있는데 테러범이 그런 화수분을 놓칠 리 없지. 테러 집단은 해당 국가의 국민을 인질 목표로 삼게 된다. 인질을 살리려다 국민 전체가 위험해진 셈이지. 그렇게 되면 몸값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인질 협상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군요.”
“하하하, 바셀이 인질이 되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나? 내가 인질이 되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나?”
“……”
시리아 5인방은 대답하지 못했다. 협상하지 않으면 국민 전체의 위험이 감소한다. 장기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한 결정이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 가족이 당장 희생될 상황에 놓인 사람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프랑스는 비난을 무릅쓰고 나를 보내서 ANO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놈은 없다. 체크 메이드를 당한 ANO를 비롯한 테러 집단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정신없이 도주했다. 당분간 프랑스에서 테러를 저지르거나 해외 프랑스인을 인질로 잡는 놈은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했다. 프랑스는 자부심이 있기에 과격한 결정을 내렸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 자존심이 없는 정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국가의 이익보다는 당장 자신들의 보신이 우선이고, 비난을 감수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시리아 5인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말이 쉽지 실행하기엔 걸림돌이 많다. 대와 소의 분별조차 모호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