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14
x 314
제34장 노바토피아4
“이 사각형이 노바토피아다.”
“노바토피아! 황량한 사하라에 신기루처럼 등장한 유토피아라, 좋군. 좋아.”
오리피스가 손뼉을 쳤다.
“이 땅에 농경지를 조성하고 도시를 만든단 말인가. 엄청난 배포구먼.”
셔니언 교수가 입을 쩍 벌렸다.
“엄청나군요.”
지도를 들여다보던 펠르펭 중위도 감탄했다. 북서에서 동남으로 비스듬히 누운 거대한 장방형 대지다. 위로는 티베스티 대산괴, 아래로는 엔네디 고원, 좌측에 두조랍 에르그와 보델레 저지, 우측엔 광대한 사하라 사막이 펼쳐져 있다.
땅덩어리의 70%는 반사막 사헬 지대, 30%는 엔네디 고원에 속한다. 파리시 면적이 105㎢다. 고문이 대략 표시한 25,000㎢는 파리의 240배 땅덩어리다. 부동산 가치는 샹젤리제 거리의 상가 한 개만도 못하지만, 어마어마한 넓이다. 근대 사회 이후로 개인이 이처럼 넓은 땅을 소유한 전례가 없다.
“녹화(綠化)할 지역을 표시해 주시지요?”
“리 너스 디지에머!(거의 전부!)”
“리 너스 디지에머?”
펠르펭이 입을 딱 벌렸다. 사막 25,000㎢를 푸른 숲으로 만들겠다고? 카다피가 살짝 돌았다면 눈앞의 인간은 완전히 돌았다.
“그렇다. 나는 이 땅 전체를 적갈색에서 진녹색으로 바꿀 것이다.”
“대수로 공사를 시행 중인 리비아의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 농경지도 이보다 훨씬 협소합니다. 불가능합니다.”
펠르펭은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어간 젊은 친구가 딱했다. 리비아는 석유로 벌어들인 떼돈을 국가적 차원에서 쏟아붓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다지만 개인이 무슨 수로? 펠르펭은 돈키호테의 하인 산초가 된 자신이 불쌍했다.
“해봤나?”
“그게 무슨 말씀인지?”
펠르펭이 어물거렸다. 갑자기 ‘해봤나?’ 라니!
“엔네디가 리비아 사막이 아니듯이 나는 카다피가 아니다. 당신이 할 일은 경계 확정과 지하수 개발이다. 당신은 당신이 할 일을 하면 된다.”
둥- 블랙맘바가 정색하자 압도적인 기세가 확 풀렸다. 불가능이란 말은 자신의 사전에 없다.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도크 한 개 없이 유조선을 수주했다. 한국의 상사맨들은 제품 카탈로그를 들고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되고 안 되고는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전체적인 개발 로드 맵은 잡혔습니까?”
기가 죽은 펠르펭이 어물거렸다.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니다. 전문가가 고민할 일이다.”
블랙맘바가 오리피스와 셔니언을 돌아보았다.
“일단 토양을 조사해야겠지. 중위는 시추공을 뚫을 때 지표에서 일 미터까지 샘플 표토를 내게 제공하면 된다. 수종과 작물은 토양 삼성(고상, 액상, 기상)과 잔적성 토양모재, 운적성 토양모재를 조사한 후에 결정할 수 있다. 중위는 지하수를 찾는 이상으로 토양 샘플 확보에 노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
“토양 삼상이 뭔가?”
블랙맘바가 물었다.
“간단히 말하면 고상은 유기물과 무기물의 잔적 상태, 액상은 토양수와 토양수에 녹아있는 유기산과 무기산, 기상은 토양에 함유된 질소, 산소, 메탄 등의 기체 성분을 말한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줄까?”
오리피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너 잘 만났다는 음험한 가학 심리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블랙맘바가 손을 홰홰 저었다.
“일없다. 각자 잘하는 일을 하자고. 나는 친구의 직업을 노리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시작은 물이다. 물만 확보되면 콩과 식물로 지표를 덮어서 액상과 기상을 호전할 수 있다. 용탈만 안정되면 그리 나쁘지 않은 토양이다.”
오리피스가 흙을 한 줌 쥐고 손가락으로 비볐다.
“메말랐지만 토양입자는 조립물질(직경 2mm 이상 입자)보다는 세립물질(직경 2mm 이하 입자)이 많다. 수분 침투력은 약하지만, 보수력이 높다. 퇴적층이라 콜로이드화된 점토 성분도 보인다. 토양에 들어있는 금속성 양이온이 유기물 음이온과 안정적으로 결합하면 토양 보존에 청색 등이 켜진다. 물만 충분히 공급되면 자네가 원하는 카사바와 커피 재배가 가능하다.”
“어이구, 알아서 하셔.”
난무하는 전문 용어에 블랙맘바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카사바와 커피 말씀입니까?”
펠르펭 중위가 고개를 휘휘 돌렸다. 모래와 자갈만 가득한 땅이다. 카사바는 물이 많이 필요하고, 커피는 고도와 기후가 맞아야 한다.
“커피를 재배하기엔 엔네디 쪽의 해발 고도가 너무 낮습니다. 좌하방으로 노바토피아를 옮겨야 합니다. 엔네디 고원은 동쪽이 높다고 알려졌지만, 사하라 방향은 서쪽의 고도가 높습니다.”
“알고 있다. 나는 응앵가 캐비르를 꼭 포함하고 싶다.”
“응앵가 캐비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중위가 펄쩍 뛰었다.
“텔리 호수가 있는 응앵가 호수군 말씀입니까?”
“알고 있군. 바로 그곳이다.”
“응앵가 캐비르 지역은 안됩니다. 공병대 측량반 15명이 텔리 호수가 있는 세리르 호수군 부근에서 실종되었습니다. 국방부가 공정대를 투입해서 수색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공정대 역시 대원 일곱이 흔적없이 실종되는 손실을 보고 철수했습니다.”
“추가 조사는 없었나?”
“차드 북부지역이 프롤리나트에 장악되면서 조사가 중단되었습니다.”
‘흐흐, 그렇단 말이지. 보니파스가 잔머리를 굴렸구마.’
블랙맘바는 속으로 웃었다. 프랑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힘을 써준 이면엔 손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의도가 있다. 보니파스는 응앵가 캐비르 실종 사건을 염두에 뒀음이 분명했다.
“원주민들도 피해를 보았겠군.”
옴부티와 에델이 괴물을 목격했고, 바룽고로부터 좀비가 3마리나 탈출했다는 자백을 받았지만 모른척했다.
“그렇습니다. 모래바람이 심해지면 악령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악령과 눈이 마주치면 악령을 따라가게 된다더군요.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미지의 위험이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것참, 괴물이 무서워서 가까운 텔리 호수를 두고 롱고르에서 식수를 추진하려고 했군.”
블랙맘바가 슬쩍 중위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텔리 호수는 폭 2km, 길이는 6km에 이르는 민물 호수다. 나바르에서 채 40km가 되지 않는다.
“공정대 자료는 현실적이고 신빙성이 있습니다. 호수 인근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지 못한 이유는 상부의 엄중한 지시 때문입니다. 현지인은 물론 캐러밴도 응앵가 주위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중위가 어림 턱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악령이든 괴물이든 내가 해결한다. 중위는 오리피스 교수님을 도와서 측량과 지하수 개발에 집중하면 된다.”
펠르펭은 블랙맘바의 장담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까마득한 계급만 아니라면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중위 말이 맞다. 응앵가 지역을 그대로 두고 하단부 경계를 좌측으로 이동하면 된다. 엔네디 좌상단의 해발 고도는 900m 내외다. 커피 품질은 물과 그늘도 중요하지만 해발 고도가 더 중요하다. 으하암~”
오리피스 교수가 훈수를 두고 입이 찢어지라 하품했다. 밤새워 시달린 후유증이다. 내구성이 떨어진 오십 중반의 육체가 삐걱거렸다.
“그렇게 하지. 중위는 경계를 조정하라.”
블랙맘바가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문께서 응앵가를 해결하면 베이스캠프를 텔리 호수로 옮겨서 말뚝을 박아나가겠습니다. 1km 간격으로 경계 파일을 박아도 자재가 턱도 없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중위가 트럭을 가리켰다. 35톤 장축 트럭 십여 대에 10m 길이의 콘크리트 파일이 잔뜩 실려있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보니파스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허,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니었군.”
블랙맘바는 뒤늦게 탄식했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땅, 기준점이 될 지형지물도 없는 넓은 황무지다. 측량 작업도 맨땅에 헤딩이다.
“뚜바이부르파, 이곳은 측량 반에 맡기고 응앵가 호수로 가세. 난 호수도 보고 싶고, 악령도 보고 싶네.”
오리피스가 눈을 번쩍였다. 사막 가운데 그림처럼 펼쳐진 호수와 미지의 괴물! 그야말로 동화 속의 세계다. 호기심이 부쩍 달아올랐다.
‘겉만 늙었지 속은 어린애구먼.’
블랙맘바는 대책 없는 호기심에 뜨악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사라진다. 호기심 넘치는 중늙은이의 열정이 부담스러웠다.
“교수님, 위험합니다. 응앵가 호수는 로스비프(Rosbif, 비프나 처먹는 놈.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가 허풍 치는 네스호가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게. 이 친구는 공룡이 튀어나와도 때려잡을 친구거든. 나도 물이 빠지긴 했지만, 공정대 출신이라고.”
오리피스가 큰소리를 탕탕 쳤다.
“오리피스, 괴물은 실존한다. 대단히 위험한 존재다.”
블랙맘바가 목소리를 낮추어 경고했다.
“자네가 봤나?”
오리피스가 움찔했다. 블랙맘바 같은 능력자가 위험하다고 말할 수준이면 진짜 위험하다.
“옴부티가 목격했다.”
“그럼 당장 가자고. 인생 별거 있나 한 방이지.”
“에구, 어째 내 주위엔 과격한 인간만 있냐.
”블랙맘바는 오리피스의 설레발에 뒷목을 움켜잡았다.
광폭 타이어를 장착한 윌리스 오프로드 지프가 강력한 힘으로 험지를 밀고 나갔다. 아흐마드와 자말이 운전대를 잡았다. 블랙맘바는 자신의 전투 장면을 용병들이 보기를 원치 않았다. 오리피스와 셔니언은 믿을 수 있지만, 용병은 아니다.
지프 바퀴가 절반은 구르고 절반은 퉁퉁 튀어 올랐다. 각양각색의 풍경이 스쳐 갔다. 노바토피아는 엔네디 고원에서 티베스티 대산괴 방향으로 길게 걸쳐있다. 자갈이 널린 레그, 일시적으로 형성된 호수의 물이 증발하고 소금 퇴적물이 남은 플라야, 암반이 드러난 케디먼트, 풍식이 심하게 진행된 하마다등 온갖 사막 지형이 연이어 나타났다.
“뚜바이부르파, 대단하지 않나?”
오리피스가 주어와 목적어를 뺀 질문을 던졌다.
“외계 행성이나 할리우드 세트장으로 착각하겠군. 달이나 화성의 지표가 이곳과 비슷하려나?”
블랙맘바도 감탄했다.
“엄청난 관광자원일세. 땅은 이용하기 나름이다. 도시 문명에 지친 유럽인은 야만에 목말라 있다. 허브 역할을 할 인공 오아시스를 징검다리처럼 조성하면 대박이다. 내 생각엔 관광특구, 농경 특구, 커피 특구로 나누어 개발하면 떼돈을 벌겠어.”
오리피스의 성화에 끌려온 셔니언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노바토피아 구상을 하게 된 계기가 뭔가? 놀랍기도 하지만 자네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신기하네.”
“나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아띠 MSF 병원에서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들을 치료해 준 적이 있다. 필라리아시스나 기니웜은 물을 끓여 먹기만 해도 예방된다. 원주민들은 물을 끓일 땔감이 없다. 흔해 빠진 에피네프린이나 스테로이드도 부족했다. 굶주리고 질병에 시달리는 인간들이 불쌍했다. 나는 프랑스 당국에 식량 오천만 프랑과 눈금이 고운 메쉬 백만 제곱미터를 요청했다. 물을 끓여 먹을 수 없으면 걸러 먹기라도 해야지.”
“뭐? 차드에 제공된 대량의 식량과 메쉬가 자네 작품이라고?”
셔니언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다. 도와주고 싶었다. 그들은 노력 부족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그렇게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오우, 세상에! 언론이 인도적이고 현실적인 원조라고 대서특필했었다. 내무부 해외자치부와 적십자사가 엄청난 찬사를 받았지. 재주는 친구가 부리고 달콤한 열매는 정부가 챙겼군.”
“아무려면 어떤가? 원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그만이지.”
블랙맘바가 비시시 웃었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고, 원주민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은 일이다. 보니파스는 확실히 영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이다.
“허, 특이한 인간일세. 그 나이에 명예와 명성에 초연한 인간이 있을 수 있나. 자넨 낭만주의자인가 혁명가인가?”
“나는 그런 거창한 인간은 못 된다. 착하고 예쁜 여자를 만나서 그림 같은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즐기고 싶은 평범한 인간이다.”
블랙맘바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말하고 보니 딱 진순이다.
“흐흐흐, 그건 누구나 꿈꾸지만, 평범한 인간이 이룰 수 없는 낭만이다. 요리 잘하는 착하고 예쁜 여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나 멸종되었거든.”
오리피스가 낄낄 웃었다. 요리 솜씨도 없으면서 늘 바가지나 긁는 마누라가 생각났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드라마같은 삶을 꿈꾸지만 다큐를 찍는다.
“나를 현실 감각 부족한 낭만주의자라 불러도 좋다. 꿈을 꾸지 못하는 인간은 박제된 인간이다. 탯줄이 그 인간의 신분이 되는 세상은 죽은 세상이다. 나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세상을 꿈꿔왔다. 노바토피아는 내 재산이 아니다. 노바토피아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터전이다. 이곳은 굶주리고 핍박받는 인간들, 자신의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없는 인간들의 마지막 피신처가 될 것이다.”
두웅- 저절로 발동된 간섭장이 오리피스와 셔니언의 신경망을 뒤흔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몽롱해졌다. 옴부티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현상이다.
‘오, 위대하신 낭만 뚜바이부르파님을 찬양하라!’
운전대를 잡은 아흐마드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앙크야빌라! 자네의 낭만적인 꿈에 나도 얹어주게. 자네 신발이라도 들고 따라다니겠네. 신이 하릴없이 늙어가는 나를 불쌍히 여기사 자네에게 인도하셨어.”
“나는 당장 사직서를 내겠네. 불쌍한 실업자를 외면하진 않겠지. 나도 너무 오랫동안 낭만을 잊고 살았어. 남자라면 죽기 전에 뭔가를 세상에 남겨야지.”
오리피스와 셔니언의 눈이 불이라도 붙은 듯 번쩍거렸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젊은 시절의 낭만이 불쑥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