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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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노바토피아11
타마리스크 사구는 바람에 날려온 모래와 흙 입자가 촘촘히 짜인 트렁크 웹에 걸려 만들어진다. 외양은 일반 사구와 다를 바 없지만 조금만 파고들어 가면 자잘한 줄기가 삽날에 걸려 작업이 더뎌진다.
자말의 공병삽을 받아든 쌈디가 무서운 속도로 모래를 파헤쳤다. 촘촘히 얽힌 뿌리도 쌈디의 속사포 같은 강력한 삽질을 견디지 못했다. 마닐라삼 밧줄 같은 흑갈색 근육이 용틀임 치자 작업 반경 수 미터가 모래와 자잘한 나무줄기로 뿌옇게 뒤덮였다. 놀란 자말과 아흐마드가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일행은 삽이 보이지 않는 작업속도에 입을 쩍 벌렸다.
‘흐흐흐, 저놈 저거 노가다판에 보내마 일당 열 개는 찍고도 남겠구마.’
블랙맘바의 눈빛이 음흉해졌다. 평생 황제처럼 살아도 못다 쓸 재산에 불구하고 쌈디의 노동력을 탐내는 블랙맘바다. 그는 먹을 거 입을 거 아끼는 쪼잔한 한국의 소시민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래층을 걷어내자 교미 중인 뱀떼처럼 뒤엉킨 굵은 나무줄기가 나타났다. 오리피스가 말한 타마리스크다.
“와! 이게 뭐야!”
자말과 아흐마드가 입을 쩍 벌렸다. 모래언덕 속에 굵은 나무줄기가 가득 차 있다니, 듣도보도 못한 기사다.
“얼래. 진짜네.”
블랙맘바도 깜짝 놀랐다. 실없는 소리를 할 오리피스가 아니지만, 놀라운 장면이다.
“흐흐, 그랑제콜 석좌 교수는 트럼프 쳐서 딸 수 있는 자리가 아니거든.”
오리피스의 코가 높아졌다.
“쌈디, 끌어내라.”
쌈디가 타마리스크 줄기를 잡고 힘을 썼다. 쇳덩이 같은 어깨 근육과 광배근이 물결쳤다. 우두둑- 우두둑- 바짝 마른 굵은 나무가 뚝뚝 부러졌다. 무지막지한 힘에 어른 허벅지 굵기의 타마리스크가 줄줄이 끌려 나왔다.
“뚜바이, 저 친구는 뭐냐?”
오리피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체격 좋은 근육질 인간이지만, 사람은 사람이지, 말이나 소가 아니다. 그와 셔니언은 쌈디가 좀비라는 사실을 몰랐다.
“어쩌다 주운 힘 좋은 쫄짜다.”
블랙맘바가 턱도없는 말을 툭 던졌다. 방태산에서 기억을 잃고 헤맸던 자신의 모습이 쌈디에 투영되었다.
“주워?”
이 인간은 희한한 물건을 줍기도 잘 줍는다. 뚜바이는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비합리적인 특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오리피스는 말문이 막혔다.
“어이, 그냥 그러려니 해. 이젠 놀랍지도 않아.”
셔니언의 말에 오리피스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다. 비상식적인 인간을 상식으로 재단해봐야 머리만 아프다.
“셔니언, 우리 이곳에 정말 잘 왔지?”
“당연하지. 이렇게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세상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몰랐네.”
“흐흐흐, 뚜바이만 따라다니면 일 년이 한 달처럼 지나가겠어.”
“스토커냐? 뭘 따라다녀!”
블랙맘바가 진저리를 쳤다. 호기심 덩어리 중늙은이 둘이 졸졸 따라다니는 장면을 떠올리자 울고 싶어졌다.
천연 오븐인 사구 속에서 수백 년 건조된 타마리스크다. 탄화가 진행된 타마리스크는 참나무 장작이 무색할 화력을 뿜었다. 좀비 두 구가 탁탁 소리를 내며 거세게 타올랐다.
“저 녀석 보게, 울지도 않는군.”
이브라힘이 아흐마드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몽둥이를 들고 좀비를 가로막았던 소년이다.
“강단 있는 녀석입니다. 눈에 독기가 줄줄 흐릅니다. 불 속에 뛰어들어 좀비를 씹어먹을 기세입니다.”
아흐마드가 감탄했다. 부모를 잃은 충격을 수습하기도 힘들 텐데 이빨을 악물고 분노를 불태우고 있다. 블랙맘바가 소년을 손짓해서 불렀다.
“이름이 무엇이냐?”
자말이 통역을 맡았다.
“네제마!”
소년이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네제마?”
“아랍어로 빛나는 별이란 뜻입니다.”
자말이 설명을 붙였다.
”좋은 이름이군. 몇 살이냐?“
“열세 살입니다.”
“열셋?”
블랙맘바는 네제마를 훑어보았다. 열대여섯은 돼 보이는 체격이다. 호리호리한 체격, 길쭉한 팔다리, 곧은 척추, 굵은 뼈마디, 짧은 발가락과 긴 손가락, 무예를 익히기에 최상의 신체다.
차드 원주민은 종족을 불문하고 피부가 석탄처럼 검다. 네제마의 피부는 짙은 갈색에 가깝다. 큰 키, 긴 팔다리, 암갈색 피부, 단정한 이목구비, 나일로트계(系) 흑인종의 특색이다. 나일로트계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지역의 마사이족, 케냐의 삼부루족, 탄자니아의 아루샤족과 바라구유족을 통칭한다. 네제마 가족이 이곳 원주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너는 마사이족이냐?”
“네!”
블랙맘바가 머리를 끄덕였다. 마사이족은 신체가 우월하고 사자와 맞서 싸우는 용감한 부족이라 들었다.
“네제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강해지고 싶어요.”
“강해져서 무슨 일을 하고 싶나?”
“남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아요.”
뜻밖의 대답에 블랙맘바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자부심이 강한 녀석이다. 자신의 어릴 때 모습 그대로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 네제마를 키운 부모는 무지렁이가 아니다.
“네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동생들을 데리고 마을에서 살 수 있겠느냐?”
“……”
소년이 대답을 못 하고 우물거렸다.
“네가 원한다면 데리고 가겠다.”
“아저씨를 따라가고 싶지만, 동생들을 보살펴야 해요.”
소년의 눈이 열망과 안타까움으로 번들거렸다.
“동생들도 데리고 가겠다.”
“아저씨를 따라가면 강해질 수 있나요?”
“네가 하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노력하면 저따위 지저분한 괴물에게 얻어맞지 않을 정도는 되겠지.”
블랙맘바가 불타는 좀비를 가리켰다. 소년의 눈이 번쩍했다.
“무조건 따라가겠어요. 저는 염소도 잘 기르고 마일로 농사도 잘 지어요. 강해질 수만 있다면 낙타처럼 부리고, 염소 젖을 짜듯 쥐어짜도 좋아요.”
“좋다. 너는 부모님을 네 손으로 매장하고 나를 따라라. 나는 동방불패다. 너에게 불패라는 성을 주겠다. 너는 네제마 불패다.”
원주민들은 성이 없다. 가문의 개념이 없으므로 부족 명을 성처럼 붙이기도 한다. 마사이족은 성을 사용하지만, 성인식을 치러야 성을 받는다. 소년이 벌떡 일어나서 오체투지했다. 위대한 전사가 직접 성을 내렸다. 전사로 인정받은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알라 후 악바르,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은혜를 입으면 열 배의 보답을 하고, 생명을 빚지면 생명을 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인님은 복수해 주시고 저와 동생들의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네제마 부르파는 주인님께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자말, 이 녀석 보게. 제법 문자까지 쓰네. 하하하!”
블랙맘바는 흡족했다. 왠지 처음부터 묘한 끌림을 느꼈다. 인간의 껍데기는 별것 아니다. 총기 있고 강단있는 소년의 모습이 기꺼웠다.
“제법 교육을 받은 녀석입니다. 네제마 부모의 신분이 궁금해집니다.”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네제마, 주인님이라 부르지 마라. 와킬이라 불러라. 우선 부모님을 매장해 드려라. 짐승이 파헤치지 않도록 깊이 묻어드려야 한다.”
“넵, 와킬!”
네제마가 공병삽을 받아들고 달려갔다.
“저놈은 부모를 잃은 날에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후원자를 얻었구먼. 역시 불행과 행운은 형제라는 말이 맞나 보이.”
오리피스의 눈에 설핏 물기가 어렸다. 단호함 속에 불행한 소년을 보듬는 깊은 정, 괴물을 박살 내던 진짜 괴물의 여린 속살에 가슴이 찡했다. 동양의 신비한 청년 뚜바이부르파, 양파처럼 까도 까도 속이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은 뚜바이부르파라는 진정한 사나이를 만났다.
매장을 끝낸 네제마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와킬, 감사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랄 거야 있나. 가족이 된 기념으로 줄 만한 선물이 없군. 어쩐다? 옳지! 훗날 찾아오려면 비석이 있어야겠지.”
블랙맘바가 선돌처럼 솟은 사암 밑동을 발사라로 슥 그었다. 발사라의 위력은 명불허전이다. 바위를 두부처럼 갈랐다. 뻑- 억수갑으로 밀어치자 한 아름이 넘는 바위 기둥이 쿵 쓰러졌다. 돌기둥을 번쩍 들어서 무덤 앞에 꽝 꽂고는 손바닥으로 대패밀 듯 표면을 쓱쓱 다듬었다.
“저 저!”
황당한 퍼포먼스에 오리피스와 셔니언이 눈을 비볐다. 인간 아닌 인간의 모습을 여러 차례 보긴 했지만,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황당 그 자체다.
“오리피스, 우리가 영화를 보고 있나?”
“슈퍼맨은 허풍 심한 양키가 만든 만화 캐릭터야. 이건 실제라고. 저 친구는 신인류라고 해야겠지.”
“허, 보고도 못 믿겠네. 어떻게 저런 존재가 있을 수 있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법이라고.”
블랙맘바가 소곤거리는 오리피스를 돌아보았다.
“아는 것 많은 오리피스, 좋은 문구 없나?”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됐네, 이 양반아. 그건 당신 어록에나 올려.”
블랙맘바가 오리피스를 흘겨보았다. 손가락으로 바위에 쓱쓱 새겼다.
[내 아들딸아, 울지 마라. 너희가 있어 행복했다.]자말이 네제마에게 문구를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네제마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크흐흐흑! 감사합니다. 와킬, 감사합니다.”
“두 번 절해라.”
네제마가 절을 마치자 블랙맘바가 엄숙하게 말했다.
“너는 일 년에 두 번은 부모님을 찾아와야 한다. 오늘처럼 절하고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한다. 삶은 죽음의 시작이요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부모님은 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늘 너를 보고 계신다.”
자말이 제대로 통역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네제마가 주먹을 꾹 쥐고 허리를 숙였다. 와킬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 잘 이해되지 않지만, 일 년에 두 번 찾아오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말씀은 알아들었다.
출발 준비를 마쳤을 때 타마리스크의 불길도 꺼졌다. 크나큰 재앙이 되었을 좀비 두 구도 재가 되어 사막 풍에 흔적없이 날려갔다.
블랙맘바 일행이 떠날 때까지 응앵가 캐비르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단 한 명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블랙맘바가 동료들을 이끌고 응앵가 케비르로 떠난 하루 뒤, 세리르 호수 군 상공에 허큘리스가 나타났다. 연푸른 낙하산이 목화송이처럼 허공에 흩날렸다. 아이젠하워호에 승선해있던 네이비실 두 개 팀과 CIA 에이전트다.
허큘리스가 묵직한 화물을 투하했다. 패러슈트를 정리한 네이비 씰팀이 화물에 달라붙었다. 대포에 버금가는 M2 이연장 중기관총, MK19 자동유탄발사기, M252 81mm 박격포등 중량급 화기가 쏟아져나왔다. 씰팀은 개인 화기도 FN MAG58 7.62mm 기관총을 휴대했다.
장비 수령을 마친 네이비실팀이 세리르 호수 군 수색에 들어갔다. 과도한 준비에 불구하고 수색은 싱겁게 끝났다. 그렌델 유골 두 구를 회수한 네이비실팀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CIA 에이전트는 아담에게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다.
[좌표지점인 응앵가 호수 군의 오마 호숫가에서 목적물 회수. 목적물은 직사광선에 조직이 붕괴하고 뼈만 남은 상태임….중략…. 전투 흔적은 없음. 분절된 뼈 다수. 상호 간 격투후 상잔 추정……. 중략…공격 본능 컨트롤이 시급함. 여타 이상 동향 없음.]블랙맘바와 위원회의 충돌은 뒤로 미뤄졌다. 블랙맘바가 세리르 호수 군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네이비실팀은 땅바닥에 발을 붙이기도 전에 지워져 버렸을 것이다. 모하메드의 조언이 50명의 생명을 살려준 셈이다.
블랙맘바 또한 번잡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귀국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공작부장 아담은 또 한 번 시궁창에 처박힐 위기를 모면하고 기회를 잡았다. 손무는 말했다. ‘전장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은 그 자리에 있지만, 어제의 물이 아니다.’
“뚜바이부르파님, 방향을 잘못 잡은 듯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아흐마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깊이 10m, 너비 20m 계곡이 지프 진행 방향을 턱 막았다. 풍화된 암석이 온통 이빨을 드러낸 거친 계곡이다. 계곡 아래에 큰 웅덩이가 있고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다.
“걱정하지 마세요. 텔리 호수로 가는 길은 내가 잘 알아요. 아버지 몰래 몇 번이나 가봤거든요. 남쪽으로 내려가면 붉은 모래 언덕이 있어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까만 돌이 잔뜩 널린 와디가 나와요. 와디를 따라가면 꼭대기가 평평해진 사구가 나오거든요. 사구를 따라가면 호수가 나와요. 아버지가 괴물이 나온다고 겁을 주었지만 난 믿지 않았어요.”
네제마가 자신 있게 설명했다.
“어이구 이 자식 맹랑한 놈이네.”
아흐마드가 꿀밤을 딱 때렸다. 좀비와 키메라가 어슬렁거리는 텔리 호수를 겁도 없이 돌아다닌 녀석이다. 블랙맘바가 네제마를 보고 씩 웃었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가? 사하라의 방랑자라는 마사이족 피를 이어받은 녀석다웠다.
“잘됐다. 곧 날이 어두워진다. 엎어지면 쉬어간다고 했다. 오늘은 사막의 별이나 구경하자고.”
블랙맘바가 모래에 벌렁 드러누웠다. 도바에서 부두교 반란 세력을 처리하고 밤을 새워 엔네디로 달려왔다. 키메라 괴물과 싸우고 응앵가 캐비르로 달려와 좀비까지 처리했다. 육체는 버텨도 신경이 닳아빠질 것 같았다.
네제마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잠시 후 마른 풀을 잔뜩 짊어지고 왔다. 원주민들이 스보트라 부르는 스티파그로티스 푼겐스라 불리는 억센 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