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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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노바토피아16
블랙맘바는 썩 기분이 좋지 못했다. 플랜테이션 농장의 이미지 때문이다. 플랜테이션 농장의 경영 기반은 노동력 착취다. 초기에는 노예를 투입했고, 후기에는 값싼 원주민 노동력이 투입되었다.
노예는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고, 원주민 노동자도 가혹한 노동 착취를 당했다. 농장주는 감독관과 조장을 앞장세워서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렸다. 린치와 처형도 빈번했다. 도바의 사마리아 농장도 마찬가지였다.
“단일 작물 경작 개념이라면 맞습니다만, 경영 방식은 틀립니다. 우리 집안은 노동력을 지분으로 환산해서 수익을 공동 배분하는 협동농장식으로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유럽 농장주들이야 수익만 내면 그만이지만, 우리 집안은 대대로 에리트레아에 살아온 토박이입니다. 평판 때문에라도 노동자를 착취할 수 없지요.
“예가체프로 옮긴 이유는?”
“커피 잎 녹병(CLR) 때문입니다. CLR은 잎에 붉은 반점이 생겨서 나무가 고사합니다. 에리트레아 지역의 커피 재배지 80%가 결딴났습니다. 커피체리는 모종 이식 이년 차부터 달리지만 오년은 지나야 수확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예가체프로 농장 기반을 옮겼지요.”
“전염 속도가 빠른 모양이군. 병충해 대책을 미리 세워야겠어.”
“엔네디 고원 일부를 할양받아 커피 재배를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커피는 모종 단계부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잎에 발생하는 커피 녹병(CLR)도 무섭지만, 커피 탄저병(CBD)도 일단 퍼지면 손쓰기 어렵습니다. 열매나 줄기를 갉아 먹는 천공충, 수액을 빨아먹는 비늘충, 잎을 갉아먹는 잎 나방 벌레도 제때 방제 못하면 커피 품질이 뚝 떨어집니다. 예가체프 농장에서는 커피나무 사이에 수수를 경작하는 방법으로 병충해를 예방했습니다. 농약은 비싸거든요.”
“오호, 효과가 있었나?”
“병충해 감소 효과가 큽니다. 수확도 10% 이상 늘어나고, 결점두가 현저히 감소합니다.”
“경험 없이 섣불리 시작할 일이 아니구마. 농장은 어쩌고 캐러밴으로 나섰나?”
“예가체프는 수단 남부 아바야 호수 부근의 고산 지대입니다. 호수의 안개가 강렬한 햇볕을 막아줘서 품질 좋은 커피체리가 생산됩니다. 할아버지가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동시에 최악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십 년 전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재산을 모두 잃고, 고향인 에리트레아로 피신했습니다. 농장은 정부에 강탈당했습니다.”
아프웨르키의 눈빛이 번쩍였다. 농장에 들이닥친 무장 군인들은 폭도였다. 집을 불태우고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았다. 그날의 참상이 떠오르면 이빨이 갈렸다. 그 길로 가족이 모두 총을 들었다.
‘망할 놈의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어느 나라나 쿠데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쿠데타라면 대략 알고 있다. 1974년, 일개 소령인 멩기투스가 셀라시에 왕정을 붕괴시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임시군사평의회(GMAC) 의장을 꿰찬 멩기투스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벌였다. 의회를 해산하고, 농지와 산업을 국유화했다. 아프리카에 만연한 쿠데타는 뉴스거리도 아니지만, 일개 소령의 반란에 무너진 한심한 왕실이 뉴스거리가 되었다.
“고생이 많았겠구먼. 조의를 표한다. 희생된 가족이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란다.”
“감사합니다. 커피라면 자신 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이곳에 정착하고 싶습니다.”
“노바토피아는 이제 시작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텐데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뚜바이부르파님은 죽어가는 소인을 살려주셨습니다. 도적 떼를 처단하고 소인의 낙타까지 고스란히 찾아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함께 일했던 조합원들도 신변에 위험을 느끼자 곧바로 배신했습니다. 힘이 없는 탓에 무도한 자에게 쫓겨났습니다. 뚜바이부르파님의 정의감에 반하고, 강함에 매료되었습니다.”
“흠, 편할 대로 하시오. 숟가락 한 개만 더 얹으면 되니까. 함께 지내보고 마음이 맞으면 가족이 되고, 뜻이 다르면 길을 떠나시오.”
아프웨르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야전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군인들이 화제는 단연 특별군사고문 뚜바이부르파였다. 그가 엔네디의 주인이며 이곳에 나라를 세운다는 이야기, 괴물을 처단하기 위해 응앵가로 떠났다는 이야기,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초능력자라는 이야기, 온갖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 남은 생을 맡겨볼 가치가 있다.
“감사합니다. 먼저 방풍림 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깐, 나는 그쪽 방면엔 문외한이다. 나를 도와주는 식물학자가 있다. 중위, 오리피스 박사님을 모셔오라.”
“위!”
중위가 막사를 나갔다.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 식민지였다. 프랑스어는 따로 배웠나?”
“소인은 십 대 중반부터 줄곧 프랑스에서 교육받았습니다. 에리트레아에는 고등교육기관이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
블랙맘바는 머리를 끄덕였다. 변변한 대학이 없어서 아프리카의 상류층 자제는 흔히 영국과 프랑스로 유학 떠난다.
블랙맘바는 대화를 나눌수록 아프웨르키의 박학다식함에 놀랐다. 커피는 물론 사막과 식물, 동물, 국제정세, 군사학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언어 구사 능력에는 기가 질렸다. 아랍어는 물론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스와힐리어에도 능통했다. 열등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여어 뚜바이, 내 얼굴을 보지 못해서 상사병에 걸렸다며. 이놈의 인기는 나이가 들어도 식을 줄 몰라서 곤란해.”
오리피스가 빙글빙글 웃으며 나타났다.
“어이구 퍽이나. 이쪽은 식물학자이자 토양학자인 오리피스 박사님이다. 노바토피아 녹화 사업 책임자이니 함께 의논해라.”
“잠깐, 당신의 이름이 빨레 아프웨르키라면. 혹시?”
오리피스가 아프웨르키를 찬찬히 살폈다. 아프웨르키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아봤소? 내가 그 아프웨르키가 맞소. 내 조국 에리트레아를 수복하려고 셀라시에와 싸우고, 멩기투스와 싸운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의 수장 빨레 아프웨르키가 바로 나요.”
아프웨르키는 순순히 시인했다. 동생에게 독립투쟁을 떠맡기고 떠난 몸이지만, 구태여 숨기고 싶지 않았다. 숨기려고 했으면 가명을 썼을 것이다.
“당신 기사가 르몽드지에 수차례 실렸다. 국영 방송에도 나왔었지. 당신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았소. EPLF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소?”
“그렇소. 내 쌍둥이 동생이 조직을 이끌고 있소.”
“아프웨르키, 왜 거짓말을 했나?”
블랙맘바의 눈빛이 삼엄해졌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민해방전선의 수장 빨레 아프웨르키이자 예가체프의 커피 농장주 아프웨르키입니다. 숨기려 했으면 가명을 썼을 겁니다.”
“그렇긴 하군. 도적 떼는 맹기투스가 보낸 추적자였나?”
“그렇습니다.”
“나를 이용해서 멩기투스에 대항하려고 했나?”
“당신 같은 능력자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나는 후안무치한 인간이 아닙니다. 나는 더 이상 동족의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아 조직을 떠난 사람입니다.”
“조직을 떠났다? 그 말은 조국을 잊지 않았다는 말이군. 당신의 입장은 이해한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고, 당신도 나를 알지 못한다. 일단 환자인 만큼 회복할 동안 보살펴주겠다.”
아프웨르키는 가슴이 덜컥했다. 뚜바이부르파의 말은 거동할 수 있으면 떠나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에리트레아의 불쌍한 인민을 노바토피아로 이주시키려던 계획이 물 건너간다.
“뚜바이부르파님, 내 조국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에 강제 합병된 후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땅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멩기투스는 자신의 측근에게 에리트레아의 땅을 모두 넘겼습니다. 아이들은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부모의 빚을 짊어지고 팔려나갑니다. 우리 기성세대는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습니다. 다음 세대만이라도 최소한의 교육을 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총을 잡고 독립 운동에 나섰습니다. 에리트레아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아프웨르키는 절박했다. 뚜바이부르파가 이끄는 노바토피아는 최상의 피난처다. 피가 싫어 조직을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통받는 조국에 머물러 있다. 열 살도 안 된 어린 소녀가 빚을 갚으려고 매춘에 나서고, 팔려나간 아이들은 하루 20시간의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조국의 현실에 가슴이 무너졌다.
“어처구니들이 사는 세상이 또 있었군. 사연 없는 무덤은 없는 법, 내 진실을 얻으려면 당신의 진실을 먼저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럼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시오.”
블랙맘바가 건조한 말을 던지고 막사를 나갔다. 넓은 뒷등에 아프웨르키의 안타까운 시선이 머물렀다.
“당신이 잘못했소. 사람들은 그의 초인적인 능력에 정신이 팔려있지만,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는 예리한 눈이 더 무서운 사람이오. 처음부터 솔직히 털어놓았으면 좋았을걸.”
오리피스의 질책에 아프웨르키의 눈이 암담해졌다. 오랫동안 쫓기면서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반군 지도자 전력이 드러나면 내쳐질까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
“후, 일부러 속일 생각은 없었소. 당신도 날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보면 나를 이해할 거요. 나도 사람 보는 눈은 있소. 뚜바이부르파는 큰 인물이오. 처음엔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대화 중에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 끌렸소. 나는 진정으로 함께하고 싶소.”
“이해는 되오. 그는 정의롭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오. 에리트레아 문제는 그의 첫 번째 가신인 옴부티와 상의해 보시오. 늦었지만 인사를 나눕시다. 나는 오리피스요.”
“반갑소. 뚜바이부르파가 대수층을 찾아냈다고 군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소. 물이 해결되었다면 모래바람을 막을 방풍림 조성이 시급하오. 시멘디스파란 식물을 들어보았소?”
“시멘디스파? 들어본 적이 없소. 혹시 학명을 알고 있소?”
“학명은 모르겠소. 알제리 남부 사하라에서 처음 시멘디스파를 보고 놀랐소. 대추야자가 모두 말라죽었는데 끄떡없이 버티고 있었소. 원주민은 야생동물의 침입을 방지하는 울타리로 심어놓았소. 특유의 냄새와 독성 때문에 전갈이나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했소.”
“나무 특징을 자세히 말해 보시오.”
“관목인지 교목인지 구분이 모호하오. 키가 6m가량 자라는데 줄기가 여럿이오. 줄기에는 털이 없고, 손바닥 크기의 각진 잎이 무성하다오. 가지 끝에 직경 30mm 내외의 열매가 대추야자처럼 많이 달렸소. 내가 시멘디스파를 주목한 이유는 생명력이 엄청나기 때문이요. 일 년이나 비가 오지 않아도 죽는 법이 없소. 성장도 빠르고 뿌리가 튼튼해서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소.”
짝- 오리피스가 손뼉을 쳤다.
“아, 자트로파 크로카스! 내가 왜 그걸 기억하지 못했지.”
자트로파 커로카스, 18세기에 린네가 대극과로 분류한 열대 식물이다. 가뭄에 강하고, 열매는 독성이 있어 쓸모없지만,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엔네디 방풍림 조성에 딱 맞는 나무다.
“묘목을 어디서 구할 수 있소?”
“엔네디 고원 북쪽 아그바야(aga baya)에서 밀생지를 본 적이 있소.”
“아그바야라면 노바토피아에 속한 곳이오. 당장 확인해야겠군. 당신이 보기에 이곳은 커피 재배지로 어떻소?”
“커피는 생육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지만, 고품질 커피를 얻으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오. 엔네디 지역은 물만 충분히 공급되면 커피 재배지로 그리 나쁘지 않소. 로부스타 종은 적합지 않지만, 아라비카 티피카종이라면 무리 없을 거요. 티피카는 병충해에 약하고 생산성이 낮지만, 최고급이오. 병충해는 이곳이 고립된 지역이라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고, 낮은 소출은 가격으로 커버하면 되오.”
“롯은 소돔의 풍요에 매혹당했지만, 뚜바이는 엔네디를 풍요의 땅으로 만드는구나.”
오리피스가 탄식했다. 성경 속 인물인 롯이 기름진 요단이라 칭한 소돔과 고모라가 요르단의 밥 엣드라 지역이다. 이곳은 연중 강우량이 70mm에 불과한 사막 도시다. 롯은 물과 숲이 풍부한 소돔에 반해서 정착했다. 롯이 감탄한 소돔의 푸른 숲은 풍부한 지하수 덕분이다. 뚜바이부르파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엔네디를 덮을 작정이다. 풍요로웠던 소돔이 엔네디에 재현된다.
“문제는 그늘이요.”
“그렇지, 건기에 그늘이 없으면 커피는 쓴맛이 강해지고 풍미가 떨어지지요.”
“커피 그늘로는 마일로가 최고요. 우기와 건기를 조절해서 마일로를 재배하면 식량도 얻고 커피 증산에도 크게 도움이 되오.”
“아, 식물 낙타라 불리는 에티오피아 재래종 수수 말이오? 좋은 생각이요. 수분 저장 능력도 탁월하고, 병충해에도 강한 작물이라 커피나무와 상성이 잘 맞을 거요.”
오리피스가 무릎을 쳤다. 커피 재배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고대작물을 수집해서 종자 은행을 만들면 뚜바이부르파에 큰 도움이 된다.
몬샌토 같은 비윤리적인 메이저 종자 기업이 재래종을 싹쓸이하면 전 인류적 식량 재앙이 닥칠 우려가 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양한 유전자 풀은 개체의 생존력을 높인다.
동일 GMO(유전자 변형 농작물)로 통합된 작물은 생존력이 극히 취약해진다. 2,000종에 달하던 바나나는 5개 품종만 남았다. 3년 전 인도네시아에 창궐한 바나나 깍지벌레는 순식간에 바나나 농장 80%를 결딴냈다. 동일 품종의 취약성을 잘 드러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