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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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노바토피아18
빵빵한 가슴, 살짝 들린 턱, 한 줌도 안 될 허리, 훤하게 드러난 팔다리와 앙증맞은 배꼽, 오뜨꾸뛰르(Haute Couture, 프랑스 고급 주문복) 패션쇼 모델이 등장했다. 도도한 워킹에 돌투성이 케디먼트 사막이 레드 카펫으로 변신하고, 우중충한 사막이 빛의 광휘로 휩싸였다.
“오우, 께스 끼 쓰 빠쓰!(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울라, 앙게! 앙게!(천사)”
안구가 정화된 공병대가 괴성을 지르고, 모자와 상의를 벗어 던졌다. 군복 입은 족속은 전봇대에 치마만 둘러도 여자로 보이는 무리다. 아랫도리를 움켜잡고 상상하던 여자가 현신했으니 광란할만했다. 물론 왕성한 정자를 뿌릴 곳 없는 수컷의 슬픈 몸부림이다.
“저 저, 미친년! 무슨 저따위 여자가 있어!”
아이쉐가 거품을 물었다.
“닥쳐, 뚜바이부르파님의 여자다.”
자말이 버럭 했다. 아클란 크루 옴부티로부터 주인님의 여자 에델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에델의 차림이 아클란 크루의 설명과는 달랐지만, 한 눈에 알아보았다.
“헙!”
기겁한 아이쉐가 두 손으로 입을 움켜잡았다. 자말의 거친 기세보다 주인의 여자란 소리에 식겁했다.
“주-인-님-여-자!”
쌈디의 눈이 번쩍했다. 공병삽을 들고 우르르 달려갔다. 윙윙- 공병삽이 무서운 속도로 지면을 밀어냈다. 와그르르- 콩 뿌린 듯 널려있던 돌덩어리가 밀려나고 웅덩이가 메워졌다. 인간 불도저가 지나간 자리에 깔끔한 레드 카펫이 닦였다.
“찌-질-한-놈-들!”
쌈디가 공병삽을 턱 어깨에 메고 광란하는 군인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공병들의 얼굴이 일제히 썩어 문드러졌다.
“허걱! 에델이 맞나?”
블랙맘바의 눈이 황소 눈처럼 커졌다. 챙이 넓은 까플린이 얼굴을 가렸지만, 한눈에 에델임을 알아보았다. 아니 그녀가 니깝으로 둘러쳐도 특유의 페로몬으로 알아볼 수 있다.
알아보고 못 보는 문제가 아니다. 엉덩이와 가슴만 겨우 가린 헝겊 쪼가리, 섬세한 목에 걸린 미스바하, 왼 팔목에 낀 황금 팔찌, 귓불에 달랑이는 귀고리, 굽 높은 하이힐까지……. 니스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차림새다. 저 여자가 에델이 맞단 말인가! 식겁한 블랙맘바는 망부석이 되었다. 에델이 바셀의 진정어린 조언을 받아 변신했음을 그가 알 리 없다.
“뚜바이!”
맑은 소프라노 음이 지푼다리를 짜르릉 울렸다. 블랙맘바를 발견한 에델이 나비처럼 팔랑팔랑 뛰었다. 까플린이 바람에 날려갔다. 흘러내린 풍성한 금발이 사하라 풍에 나부꼈다. 화살처럼 날아온 햇빛이 금가루로 흩날렸다.
“우와!”
얼굴이 드러나자 군인들의 함성이 사막을 뒤흔들었다.
“이봐 셔니언, 내 눈에 보이는 요물이 여자 맞나?”
“대단한 미녀구먼. 인간 같지 않은 남자에 인간 같지 않은 여자인가.”
“에잇, 내가 삼십 년만 젊었어도.”
“왜? 뚜바이와 경쟁을 해 보려고?”
“힘들겠지?”
“오리피스, 난 흰 국화꽃을 들고 자네 무덤을 찾고 싶지 않네. 껄떡대지 말고 이자벨이나 잘 챙겨. 조강지처가 좋은 것이여.”
“너무 잘난 것들을 보면 배가 아프단 말이야.”
나이 들어도 남자는 남자다. 오리피스와 셔니언도 눈을 떼지 못했다.
에델은 하이힐을 처음 신었다. 당장 엎어질 듯 위태위태했다. 쌈디가 길을 닦지 않았으면 진작에 고꾸라졌다.
“어맛!”
기어코 발목을 접질린 에델이 휘청했다.
“저런!”
놀란 블랙맘바가 슛하고 이동했다.
“아!”
좁은 어깨가 넓은 가슴에 쏙 들어갔다.
‘윽!’
좁은 어깨가 감당하지 못할 묵직한 가슴이 밀고 들어왔다. 블랙맘바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에델을 당겨 안았다. 풋풋한 라벤다 향이 머리를 찡 울렸다.
광란이 뚝 그쳤다. 괴괴한 정적이 지푼다리를 눌렀다.
“흐으!”
수컷들이 깊은 한숨이 곳곳에서 뿜어졌다. 선들선들 불던 사하라 풍도 한숨의 역풍에 밀려났다. 눈동자 육백 개가 포옹한 한 쌍의 남녀에게 못 박혔다.
“저-놈-들-눈-깔-뽑-을-까?”
시뻘건 눈이 군인들을 향했다.
“윽, 안돼!”
화들짝 놀란 아흐마드와 자말이 쌈디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이놈은 한다면 하는 놈이다. 사람 눈알이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초현실주의 그림이 그려진다.
쌈디가 허리를 흔들었다. 자말과 아흐마드가 탈곡 끝난 짚단처럼 날려갔다. 우르르 달려간 쌈디가 에델의 등 뒤에 턱 버티고 서서 굶주린 늑대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이 분은 누구시죠?”
에델이 블랙맘바를 쳐다보았다.
“쌈디다. 새로운 가족이다.”
가족이란 대답에 에델이 배시시 웃었다. 뚜바이 주위엔 특이한 사람들이 잘도 모여든다.
“쌈디, 반가워요. 나는 에델!”
에델이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쌈디의 넙데데한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나-쌈-디- 주-인-여-자-지-킨-다.”
“쌈디 아저씨, 고마워요.”
에델의 얼굴이 오월 한낮의 장미꽃이 되었다. 뚜바이의 사람들은 인종도 민족도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순수하고 충직하다.
“으흐흐!”
쌈디가 허리를 비비꼬았다.
“어떻게 왔나?”
“옴부티 아저씨가 보내주셨어요.”
‘으이그, 오지랖 넓은 영감태기 같으니!’
블랙맘바는 한숨을 삼켰다. 에델을 피하는 줄 알면서 일부러 보냈다는 소리다. 이곳에 보내면 어쩌란 말인가! 집요한 옴부티의 밀어붙이기에 질려버렸다.
“경호원도 없이 에델을 이 험한 곳에 보냈다고?”
블랙맘바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내가 우겨서 왔으니까 아저씨를 미워하지 마세요. 쫄따구 아저씨가 있는데 뭔 일이 있겠어요.”
“쫄따구가 왔다고?”
“네, 나도 이곳에 일하러 왔어요. 바셀도 데리고 왔고요.”
“일?”
“의사가 없잖아요.
블랙맘바의 시선이 캐빈에서 내리는 남녀를 향했다. 늘씬한 아랍 미녀와 작달막한 동양 남자, 바셀과 선우현이다. 블랙맘바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선우현이 후다닥 달려와서 고개를 숙였다.
“와킬, 내래 오려고 하지 않았시오. 아클론 크루(하인장), 아니 하드리탁 옴부티가 보냈시오.”
도바에서 묵사발 난 선우현은 살짝 찌그러진 블랙맘바의 얼굴에 기함했다. 강단으로 뭉친 그도 인간이다. 강철 와이어로 수백 명의 인간을 무채 썰 듯 썰어버린 인간이 무섭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됐고, 에델이나 잘 챙겨. 몸은 어떤가?”
“내래 와킬에게 뒈지게 맞은 덕분에 회복되었시오. 저 간나새끼래 한 주먹 깜이디.”
선우현이 아흐마드를 돌아보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뒤끝 있는 선우현이다. 도바에서 아흐마드에게 얻어맞은 사건을 잊을 리 없다.
“흐흐흐,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모래땅에 처박아 주겠어.”
아흐마드가 씩 웃으며 나섰다. 뚜바이부르파의 하누꾸다슈(환혼구타술)를 받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손이 근질거리던 참이다. 쌈디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아흐마드의 어깨를 꾹 눌렀다.
‘으윽!’
아흐마드의 무릎이 푹 꺾였다. 이놈은 사람이 아니라 중장비다.
“싸-우-면-주-인-께-혼-난-다.”
‘으, 이 자식은 사람이 아니었지.’
아흐마드가 조용히 찌그러졌다. 칼로 찔러도 소용없는 좀비 쌈디는 넘사벽이다.
‘이 인간들, 조만간 한 판 붙겠구먼. 흐흐흐, 귀여운 것들!’
블랙맘바가 비시시 웃었다. 깜둥이가 나타나면 깨갱 할 위인들이지만 선우현과 아흐마드, 쌈디는 피지컬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 수컷은 모이면 본능적으로 서열을 다투게 되어있다. 물론 관여할 생각은 없다. 남자는 주먹질로 친해진다.
“도대체 그 차림은 뭐지?”
“예쁘지 않아요?”
에델이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뻐,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라 문제지. 여린 피부가 햇볕을 견디겠어? 물집이 잡힐 텐데.”
“흥, 아끼는 척하지 마요. 의사는 나예요. 예쁘다는 한마디를 들었으니 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창피해 죽을 지경이에요. 바셀, 옷 가져와.”
에델이 눈을 살짝 흘기며 미소를 흘렸다. 꿀꺽- 군복 입은 무리의 목울대가 일제히 꿈틀했다. 하릴없는 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세계 최고의 호색한은 이탈리아 남자, 둘째가 프랑스 남자라 했다. 군인들은 염정환락소 한 방에 넋이 나갔다.
에델이 가운을 걸치고 단화로 바꿔 신었다. 뽀얀 팔다리가 사라지고, 탄탄한 가슴과 배가 사라졌다. 반라의 섹시녀가 단정한 의사로 변신했다.
“흐으으!”
공병대원들이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뚜바이, 이상하게 생각지 마요. 여자가 섹시해야 남자가 좋아한다고 바셀이 가르쳐 주었단 말이에요. 도바에서 벌어진 사건은 아저씨에게 들었어요. 농장을 정리하고 주지사까지 처리하셨다면서요. 당신은 남들이 십 년 걸릴 일을 한순간에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요. 이곳은 어떤가요? 이미 지하수는 개발했네요. 당신의 능력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았겠죠.”
해당화 꽃잎 같은 입술이 쉴 새 없이 나풀거렸다. 블랙맘바는 머리가 어찔거렸다.
“에델, 난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일주일간 대수층을 찾아서 노바토피아를 돌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시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에델이 정색했다.
“흥, 여전히 바쁘시네요. 나는 사랑하는 남자의 뒷다리를 잡는 멍청한 여자가 아녜요. 당신은 당신의 일에 집중하세요. 나는 내 일에 집중할 거예요. 당신은 신체 이상으로 마음이 굳건한 사람이에요. 너무나 강한 남자이기에 당신의 삶 속엔 당신이 없어요. 나는 당신이 자신의 삶을 즐기기를 바래요.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어요. 당신이 지치고 힘들 때, 휴식이 필요할 때 나를 기억해 주면 돼요. 항구는 배가 있기에 존재하고, 배는 항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죠.”
둥- 에델의 잔잔한 음성이 머리를 두드렸다. 세상에 이토록 고귀한 여자가 있을까! 이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블랙맘바는 자신의 가슴이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고 생각했다. 가냘픈 몸을 조심스럽게 당겨 안았다.
“에델, 나는 감히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다. 한가지는 약속할게. 내가 지치고 힘들면 너를 생각하겠다. 아니, 늘 생각할 것 같다.”
“아!”
에델이 휘청했다. 멋대가리 없긴 하지만 뚜바이가 인정했다. 전율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자르르 흘렀다.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억센 팔이 허리를 휘감았다. 에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남자의 한 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당신도 여자에게 달콤한 말을 할 줄 아네요. 멋대가리 없지만 당신다워요. 어떤 여자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에델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그게, 이거 참!”
블랙맘바가 버벅대다가 억센 손으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쓱 훔쳐주었다. 손길이 꽃잎을 만지듯 조심스러웠다. 억수갑을 끼고 있으니 아차 하면 안면이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당신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할지 묻지 않겠어요. 당신은 정의롭고 자비로운 사람이에요. 은자메나에서 여자는 공감하고 열망할 수 있는 남자를 원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요. 나는 당신의 영혼에 공감하고, 당신의 몸을 열망해요. 나는 늘 당신의 편이랍니다. 나는 이곳에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건강을 챙기겠어요. 당신이 보기엔 한없이 여려 보이겠지만, 나도 나름 강단이 있다고요.”
에델이 소매를 걷고 팔뚝에 힘을 잔뜩 주고 흔들었다.
‘바보스러운 계집애, 이게 무슨 짓이야.’
에델은 자신의 입을 쥐어박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배신했다. 뚜바이를 보는 순간에 바셀에게 배운 달콤한 언어들이 흔적없이 증발했다. 쏟아내고 싶은 말이 모래알처럼 많은데 논문에나 올릴 말을 뱉어내고 있다. 망할 놈의 주댕이.
“응, 튼튼하네. 쌈디와 팔씨름을 해도 이기겠어.”
블랙맘바가 빙긋이 웃었다. 알통은커녕 가녀린 팔에서 싱그러운 처녀 향만 풍겼다.
“아저씨가 사람을 모으고 있어요. 곧 기즈 박사님도 오실 거예요. 이곳에 병원을 짓고, 박사님께 배우고, 사람들을 치료하면 당신을 생각할 틈도 없을 거예요. 당신도 젊고 나도 젊어요. 신체 건강하고 정신도 건강해요. 하늘이 능력을 주었을 때는 쓸 일이 있기 때문이라 하셨죠. 걱정 말고 당신의 일을 하세요.”
“고맙다.”
블랙맘바는 가슴이 저렸다. 자신의 감정 분출을 삭이고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현명한 여자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향기나는 여자. 가운을 걸쳐도 몸매가 살아나는 여자, 화장하지 않아도 빛나는 여자, 욕을 해도 기품이 묻어나는 여자, 남자가 좋아할 모든 조건을 갖춘 여자, 요리만 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자말 아저씨!”
에델이 부르자 자말이 후다닥 뛰어왔다.
“여기 지명이 뭔가요?”
“마흐디께서 지푼다리라 명명하셨습니다.”
“뚜바이, 지푼다리에 의미가 있나요?”
“내 고향 마을이다.”
“아! 그럼 오늘부터 내 고향도 지푼다리예요. 자말 아저씨, 병원을 지어주세요. 곧 사람들이 몰려올 거예요. 저기 언덕 위가 좋을 것 같아요.”
“넵,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중령, 비행장보다 더 급한 공사거리가 방금 생겼소.”
자말이 시르방 중령을 끌고 갔다.
“뚜바이, 지금 당장 떠나지는 않겠지요?”
“그 그게~ 그렇지.”
블랙맘바가 출발 준비를 마친 대수층 탐사반을 돌아보았다. 대기하고 있던 탐사반 20명이 두 손을 미친 듯이 흔들고 도리질했다. 강력한 거부 의사다. 에델의 얼굴이 오월 맑은 날 정오의 장미꽃처럼 만개했다.
“오늘 하루는 당신의 의지 박탈이에요.”
에델이 블랙맘바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끌었다. 바셀이 가르쳐준 스킬을 몽땅 잊었지만, 한가지는 잊지 않았다. 남녀 관계는 밀당이다. 당길때는 바싹 당겨야 한다.
에델의 박력에 눌린 블랙맘바가 속절없이 끌려갔다. 무서운 주인이 연약한 여자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본 쌈디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주-인-님-보-다-더-쎄-다.”
야전침대에 누운 아프웨르키가 낄낄 웃었다.
“당연하지. 아무리 강한 남자도 여자가 낳고 기르거든.”
국부 뚜바이부르파의 행적을 추적하고 기록한 많은 자료에 불구하고 이날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블랙맘바는 측량반 지형분석조와 함께 일주일 동안 엔네디 전역을 돌았다. 굴착 후보지 열 곳을 찾아냈다. 학력고사 날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옴부티가 전문가 그룹을 지휘해서 할 일이다.
파다 비행장에서 닷소 팔콘이 홍해를 향해 날아올랐다. 승객에 쌈디가 추가되었다.
1984년 11월 18일, 블랙맘바는 드골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전용 제트기를 마다하고 항공사를 이용했다. 긴급한 일이 아니라면 전용 제트기를 타고 싶지 않았다. 짚은다리 촌놈은 VVIP 대우에 익숙하지 못했다. 영원히 익숙하지 못할 것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김포공항에 상주하는 안기부 때문이다. CIA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시선을 끌게 되면 조용한 삶이 시끄러워진다.
“땅콩 항공이 있었나?”
싱가포르 공항에서 쥇웨이를 빠져나온 블랙맘바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다리는 환승 여객기의 동체에 Groundnut Air Line이라 항공사명이 표시되어 있다.
“뭐 쌀알 전자도 있는데 땅콩 항공이 왜 없겠어.”
쌈디와 일등석에 나란히 앉자 스튜어디스가 은접시에 땅콩을 받쳐 올렸다.
“선생님, 비행시간은 일곱 시간입니다. 저희 그라운드너츠 항공은 일등석 고객님께 최고급 땅콩 마카처묵을 간식으로 제공해 드립니다. 부사장님이 하와이에서 원정 재배한 최고급 땅콩입니다.”
“우리나라 땅콩도 고소한데 하와이까지 가서 원정 재배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나라 땅콩은 군대에 보급되거든요.”
‘전두환 똘마니들이 군인들에게 썩은 땅콩을 보급했나?’
뜬금없는 소리에 블랙맘바는 어리둥절했다. 고향을 떠나있는 동안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은접시까지 쓸 거 있습니까? 봉지째 주면 내가 들고 먹기도 좋은데. 극장에서 팝콘 봉지 들고 영화 보듯이 말이요.”
“저 절대로 안 됩니다.”
스튜어디스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봉지째로 주면 인생이 끝장날듯한 얼굴이다.
“아니, 난 봉지로 주시오.”
화들짝 놀란 스튜어디스가 곁눈질로 뒤쪽을 살폈다.
“선생님, 제발! 부사장님이 아시면 저 짤립니다.”
“허, 농담합니까? 땅콩 봉지를 승객에게 주었다고 짜르는 회사가 어디 있어요?”
“모르는 말씀 마세요. 이미 쫓겨난 사람도 있어요. 제가 항공기 모형과 달력도 선물로 드릴테니 제발 접시로 받아주세요.”
스튜어디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먹였다.
“허허, 예쁜 아가씨를 곤란하게 할 수야 없지. 알았소. 접시로 주시오.”
스튜어디스가 대기석으로 돌아가자 블랙맘바가 투덜거렸다.
“조또, 원정 재배는 머꼬? 마카처묵은 또 머꼬? 이노무 회사는 부사장이 칸마구마. 쌈디야 이거 니가 다 처묵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