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29
x 329
제35장 몰락의 전조1
구우웅- 쇳덩어리가 사뿐하게 떠올랐다. 일등석은 격벽이 처진 독립공간이다. 간이 세면대와 식탁도 따로 있다. 공간이 넓고 써비스가 다른만큼 티켓도 당연히 비싸다. 이코노미석의 5~6배를 치러야 한다. 블랙맘바는 눈물을 머금고 가슴 아픈 출혈을 감수했다. 쌈디가 이코노미석에 탔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옆자리 승객의 어깨를 툭 쳤다간 쇄골이 박살난다. 지나다니는 사람과 시비라도 붙으면 대형사고다.
쌈디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쌈디, 얌전히 있어.”
눈을 감고 있던 블랙맘바가 경고했다. 벌떡 일어나려던 쌈디가 찌그러졌다. 문명사회에 들어온 쌈디는 움직이는 폭탄이다. 싱가포르행 에어 프랑스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안전벨트가 끊어졌다. 한바탕 소동을 치른 블랙맘바는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쌈디가 블랙맘바의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창문에 달라붙었다. 커다란 두상을 패널 사이에 끼워 넣고 구름과 지상의 풍경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퉁퉁- 급기야 윈도우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객실 창문은 삼중 아크릴 수지 패널로 만들어져 있다. 바깥쪽 패널은 두께 9mm로 여압 유지용, 6mm 중앙 패널은 서리 방지, 6mm 안쪽 패널은 소음 방지와 승객 프로텍트용이다. 쌈디의 주먹은 해머와 다름없다. 6mm 강화 수지는 한방에 깨질 위험이 있다.
“쌈디, 창문 두드리면 안 돼.”
엄한 제지를 받은 쌈디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시침을 뚝 땄다. 쌈디의 지능은 대략 서너 살 아이 수준이다. 때때로 영리한 반응을 보이지만 정밀한 분석에 따른 행동이 아니다.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유아, 생각 없는 흉기가 쌈디다.
인간의 뇌는 자극과 반응을 통해서 학습한다. 쌈디는 최소 25년을 좀비로 살았다. 보통 사람도 25년 동안 외부 자극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하면 좀비가 될 것이다.
블랙맘바가 안쓰러운 눈으로 쌈디를 바라보았다. 용케 좀비 상태를 벗어났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믿을 곳은 사부다. 사부가 본래대로 돌려놓지 못하면 현대 의학으로는 턱도 없다. 할 일이 없어진 쌈디가 고롱고롱 코를 골며 잠들었다.
“그 녀석 참!”
천진한 모습에 웃음이 픽 나왔다. 에델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놈을 야단쳐서 끌고 왔다. 강약과 적아를 구분하는 쌈디의 본능은 놀랍다. 에델에게 엄마의 정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짠한 장면에 쌈디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변덕이 발동되었다. 인간 수백 명을 썰어버린 냉혈한이 좀비에 연민을 느꼈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인연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갈지 모른다. 어쩌다 보니 짚은다리 촌놈 무쌍이 용병 블랙맘바가 되었다. 수많은 인간을 죽인 아즈라일도 무쌍 본인이고, 수많은 인간을 살린 뚜바이부르파도 무쌍 본인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보니파스에게 인삼이라도 한 박스 보내줘야겠어.”
보니파스는 한발 앞선 행정 서비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블랙맘바가 DGSE 총국 숙소에 머무는 동안 그는 실무 책임자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다녔다.
보니파스의 닦달을 받은 행정부 실무자들이 엉덩이에서 비파소리 나도록 뛰어다녔다. 단 세 시간 만에 쌈디의 시민권이 손에 들어왔다. 두 시간 후에 쌈디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 2급 무관 신분증이 발급되었다.
나셔널 트레조르의 위력은 굼뜬 행정 처리 속도를 광속으로 바꾸었다. DGSE, 내무부, 외교부가 일사천리로 노바토피아 국경선을 확정하고, 사마리아 농장의 소유권 등록을 마무리 지었다. 노바토피아 건설 장비와 기술자들이 추가로 지원되었다. 굵직한 행정 절차가 삼 일 만에 끝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통상적인 절차를 밟았으면 일년도 모자랄 일들이다. 형편없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 프랑스 행정 체계는 형편없지 않았다. 선진국이 될만한 이유가 있었다.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무쌍과 쌈디는 사증을 받을 필요 없다. 게이트를 벗어나서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정동으로 향했다. 프랑스 대사관에 들러서 국내 정세 브리핑을 받기 위해서다.
1984년 11월 18일, 무쌍은 천성사로 돌아왔다. 암자를 떠난 지 석 달하고도 보름, 105일만에 돌아왔다. 일주일이면 끝났을 작전이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고, 사마리아 농장을 정리하고, 노바토피아에 위협적인 존재인 키메라와 좀비를 처리하고, 대수층을 찾느라 한 계절이 지나갔다.
“늦가을인가!”
깊은 탄식이 새나왔다. 인간이 잘났다고 설쳐봐야 천지자연의 변화에 끼어든 불청객에 불과했다. 떠날 때 푸르렀던 녹음이 만산홍엽으로 바뀌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멈춰있던 시간은 천생산 산길에 들어서는 순간에 살같이 흘렀다.
블랙맘바는 천성사 일주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일주문은 언제나 그렇듯 삐뚜름하게 서 있다. 사부가 계신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다. 일주문 앞에 서는 순간 용병 블랙맘바는 무쌍, 아니 행자승 무아로 돌아간다.
“사부님은 잘 계시겠지. 피아트 판다를 타고 신 나게 돌아다니시려나?”
무쌍이 일주문에 들어서자 쌈디가 쭈뼛거렸다.
“왜 그러나?”
“무-섭-다.”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쌈디는 생존 본능이 극도로 발달한 존재다. 강한 존재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좋은 분이다. 너를 인간으로 돌려주실 분이다.”
“그-래-도-무-섭-다.”
쌈디가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쌈디야, 인간이 되어야 에델 같은 여자가 생긴다.”
쌈디의 눈이 번쩍했다.
“간-다.”
수컷의 종족보존 본능은 위대했다.
‘사부님!’
쌀쌀한 날씨에 법당문이 활짝 열려있다. 구부정한 자세로 무엇인가를 다듬는 자그마한 늙은 노승이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는 노친네, 사부다.
“사부님, 무아가 왔습니다. 그간 기체 만강하온지요.”
무쌍이 법당 댓돌이래 엎드렸다.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고 있던 대우선사가 돌아보았다. 우두커니 서 있던 쌈디가 눈길을 받자 후다닥 엎드렸다.
“머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놈이 웬 문자질이냐. 옷에 흙 묻는다. 썩 들어오너라.”
대우선사의 시선이 다시 조각물을 향했다. 제자가 시장에 다녀온 양 심상한 말투다.
“이번에도 피를 묻혔습니다. 감히 부처님을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네놈의 팔자가 아수라 팔자인데 새삼스럽게 폼은 잡고 지랄이냐. 이번엔 백마든 흑마든 타봤느냐?”
“아이고, 사부님! 누가 들을까 겁납니다.”
무쌍은 머리를 싸쥐었다. 사부의 입담은 세월이 흘러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놈아, 용불용설도 모르느냐. 좋은 물건도 갈고 닦아야 명기가 되는 벱이야. 죽지도 살지도 않은 요상한 물건은 머꼬? 사악한 좌도방 냄새가 풀풀 나는구나.”
“부두교라는 사교의 주술사가 마약과 주술로 개조한 인간입니다. 서양에서는 좀비라 칭합니다.
“좀비? 그놈 몸띠 한번 실하구먼. 너는 어떤 물건인고?”
“쌈-디!”
대우 선사의 눈길을 받은 쌈디가 벌벌 떨었다.
“시커먼 놈아, 이리 오너라.”
“어-어!”
쌈디가 끽소리 못하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대우선사가 쌈디의 머리에 손을 얻었다.
“오호, 묘한 기운이 뇌를 보호하고 있구나. 네놈의 아류쯤 되겠구나.”
대우선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자가 대뇌 피질 주름에 끼인 기운을 제거하려 했지만, 고통이 심한 듯해서 중지했습니다.”
“잘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알량한 네놈의 재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운동 중추는 극도로 발달하고, 언어 중추와 기억 중추가 손상되었다. 주술 흔적은 없지만, 약물에 뇌가 쩔었구나. 도대체 어떤 약물이기에 이다지도 지독하냐?”
“부두교의 대제사장인 보둔 호웅간은 정령을 불러들이는 재주가 있습니다. 놈이 교도에게 정령을 빙의시킬 때 사용하는 요룬바라는 마약 종류입니다.”
“흠, 인간이 인간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천하의 악종이구나. 보둔 호웅간이란 놈은 부처님께 귀의시켰느냐?”
봄바람처럼 허허거리던 대우 선사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네, 소신공양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명색이 불제자인데 잘했다고 말하기는 거시기하다만 잘했다.”
화아악- 대우선사의 손에서 요요한 빛이 뿜어졌다. 벌벌 떨던 쌈디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검은 땀이 땀구멍에서 송골송골 솟았다. 턱을 타고 내려온 검은 땀이 법당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고약한 악취가 법당에 퍼졌다. 대우선사가 손을 떼자 쌈디가 푹 쓰러졌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 상태로 몇 달만 지났으면 상반된 기운이 뇌를 엉망으로 만들었을 거다. 죽으면 다행이지만 광인이 되면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정상적인 인간이 되겠습니까? 이십오 년이나 그렇게 살아온 불쌍한 놈입니다.”
“흠, 삿된 기운은 뽑아냈지만 손상당한 신경망과 해면체가 복구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구나. 신경망이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수시로 손봐야 한다. 에잉, 제자란 놈이 툭하면 일거리를 만드는구나. 씻겨서 방에 던져두거라. 며칠은 지나야 제정신을 차릴 거야.”
“네, 사부님.”
무쌍이 쌈디를 들고 계곡으로 사라졌다.
“헐헐, 나찰이 아수라를 찾아왔구나. 부처님의 뜻을 우매한 인간이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나무아미타불!”
무쌍이 쌈디를 요사채 방에 던져두고 법당으로 돌아왔다.
“옜다. 받아라.”
슈앙- 물체가 음속으로 날아들었다. 턱- 무쌍이 가볍게 받아들었다. 절반쯤 깎다가 만 목탁이다.
“어라? 네놈이 기물을 얻었구나.”
대우선사가 살짝 놀랐다. 목괴에 바위를 박살 낼 역도가 실렸다. 허겁지겁 피해야 할 놈이 가볍게 잡을 줄은 몰랐다.
“네. 제자가 우연히 고대의 신기한 장갑과 요상한 금속을 얻었습니다.”
무쌍이 억수갑과 발사라를 꺼냈다. 대우 선사는 물건을 일별하고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넣어 두어라. 너와 인연이 닿은 물건이다. 하늘이 물건을 내렸음은 용처가 있을 터, 네놈이 고달파지겠구나. 에잇 망할, 진순이와 알콩달콩 새끼나 까고 살면 좀 좋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딱딱딱- 심통이 난 대우선사가 목탁을 두드렸다. 나 기분 좋지 않다는 포스를 풀풀 풍겼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엔 왕창 벌어왔습니다. 기와집 짓고 쌀밥을 배불리 먹어도 됩니다.”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툴툴거리는 사부의 깊은 정에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에끼놈, 네놈이 언제는 밥 굶었느냐. 하긴 네놈이 많이 먹긴 하지. 뼈가 노골거리도록 패주려 했는데 기물을 들고 덤비면 나도 피를 보겠구나. 관두자. 관둬.”
“깎다가 만 목탁은 어쩌라고요?”
“이놈아, 보면 몰라. 네놈이 마저 깎아야지. 제대로 목탁이 만들어지면 법당에서 나오너라. 손을 대지 말고 깎아라. 나는 애마를 끌고 한 바퀴 돌고 오마.”
“아이고 사부님, 시험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단 말임다.”
“시끄럽다. 미망을 털지 못하면 시험인들 온전히 보겠느냐.”
대우선사가 엄지에 걸고 있던 자동차 키를 뱅글뱅글 돌리며 법당을 나갔다. 무쌍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사부님, 손자를 안을 때까지 귀천하시마 안됩니데이. 새끼 까면 벌모세수는 해주셔야죠.’
무쌍은 법당에서 삼일을 보냈다. 사부가 던져준 목탁 반제품은 벽조목이다. 천하의 무쌍도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나무를 손대지 않고 깎을 도리가 없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깜둥이 스킬을 훔친 짝퉁 초저주파다.
결론은 실패했다. 벽조목의 분자 결합은 물과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하다. 머리가 깨지도록 집중했지만, 깜둥이처럼 ELF를 이중 나선구조로 꼴 수도 없고, 공기를 매질로 끼워넣지도 못했다. 삼 일간 끙끙거렸지만, 깜둥이가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만 인정하고 나자빠졌다.
과제는 실패했지만, 성과는 있었다. 오로지 목탁에 집중한 덕분에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자신의 손에 지워진 수천의 테러범과 시리아군, 부두교도, 키메라 괴물과 좀비도 잊혔다. 에델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고, 골치 아픈 노바토피아도 잊혀졌다.
“꽤애액~”
단말마 비명이 암자를 흔들었다. 집중이 흐트러진 무쌍은 법당문을 열고 나섰다. 쌈디가 마당 끝 굵은 소나무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위이잉- 벌떼 비행음이 울렸다. 멀리서 새까만 덩어리가 날아왔다. 쏴아아- 검은 덩어리가 가까워지자 소나기 소리가 울렸다.
“으어어!”
쌈디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도토리부터 주먹 크기에 이르는 돌덩어리 수백 개가 쇄도했다.
“타!”
대우 선사가 기합을 토했다. 퍼퍼퍼퍽- 돌덩어리가 검은 동체에 사정없이 박혀 들었다.
“꽤애액~”
격타음과 긴 비명이 울렸다.
“헐, 추뢰술!”
사부의 주특기인 추뢰술이다. 추뢰술에 당해본 무쌍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부가 마음먹으면 전차를 박살 낼 수도 있다.
“회!”
드드드- 돌덩어리가 마사지하듯 검은 몸을 감고 휘돌았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소음이 울렸다.
“끄어어!”
쌈디의 고개가 푹 꺾였다. 줄줄 흐르던 핏물이 멈추고 찢어진 피부가 아물러 붙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앵가 호수에서 분쇄한 키메라와 같은 현상이다.
“목탁은 다 깎았느냐?”
“전혀요. 사부님의 뜻이 목탁에 있지 않고 제자의 마음에 있으니 번뇌를 움켜잡고 있을 이유가 없지요. 헤헤헤!”
“이런 나쁜 놈을 봤나. 대가리 굵었다고 사부의 속내까지 들춰보고 지랄이냐. 추뢰술 이 단계를 맞볼텨?”
대우선사가 짐짓 눈을 부릅떴다.
“아이고 사부님,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시끄럽다. 애물단지를 맡겨놓고 무리하지 말라면 다냐? 이놈아, 고기나 사와. 저놈 때문에 영양 보충을 해야 할 판이야.”
농담이 아닌 듯 승포자락으로 이마에 배인 땀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