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32
x 332
제35장 몰락의 전조4
시트로앵 BX브레익은 이탈리아의 톱 디자이너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뽑았다. 프랑스 중산층은 힘 좋고 잘 빠진 해치백 패밀리카에 열광했다. 시트로앵은 트락숑 아방 인기에 이어 BX시리즈로 선발 주자인 르노와 푸조를 누르고 프랑스 제일의 자동차 회사로 올라섰다. 로비와 홍보의 귀재인 앙드레 시트로앵은 여세를 몰아 르노를 몰아내고 프랑스 관용차 시장까지 먹었다. 프랑스 정부의 숨은 고관(?)인 무쌍이 내무부로부터 관용차를 제공받은 셈이다.
“이놈아, 좁아터진 절간에 뭔 차가 자꾸 들어와. 이번에도 코 큰 놈들이 보낸 거여?”
대우 선사가 눈을 부라렸다. 제 앞가림을 하고도 남을 제자지만, 외국 정부와 깊이 얽히는 모습이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헤헤헤, 성의를 봐서 받아야지요. 지나가듯이 선물을 보낸다더니 칼같이 지키네요. 포니를 중고차 시장에 넘기겠심더.”
“그것도 팔아라. 덩치가 커서 기름을 더 먹겠구마.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뭔 놈의 차를 두 대나 둘려. 네놈은 가물치도 있지 않으냐.”
“몽땅 팔아뿌지요. 피아트 판다도 제법 돈이 될 낍니다. 키 주이소.”
무쌍이 짐짓 손을 내밀었다.
“이놈아, 줬다 뺐으면 엉덩이에 털 나는 벱이여.”
대우 선사의 손가락에 달랑거리던 키가 마술처럼 사라졌다. 나즈리 중사는 한국어를 모른다. 참사관과 늙은 멍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 그는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사부님, 이 친구 역에 델다 주고 오겠심더. 서울서 내려왔거든요.”
“이놈아, 시험이 낼모레야. 내가 다녀오마.”
대우 선사가 나섰다. 자신감이 물씬 풍겼다.
“사부님, 과속하마 안됩니데이.”
“걱정하덜 말어.”
대우 선사가 껄렁패처럼 손을 뒤로 흔들고는 나즈리 중사를 태우고 휭 사라졌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무쌍이 허리를 숙였다. 천의무봉한 경지에 오른 사부님은 당신의 생사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속세의 외물에 재미를 붙이면 그만큼 입적을 늦추실 가능성이 커진다. 사부는 고향이요 부모님이다. 사부가 계시지 않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대구 수성못에 연접된 무학로 고급 주택가,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회색 담장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2층 주택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척 보기에도 돈을 처바른 표시가 나는 넓은 정원에 송아지만 한 셰퍼드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왕왕- 셰퍼드가 대문을 향해 짖었다. 젊은 남자가 경비실에서 후다닥 튀어나왔다. 쿠르릉- 육중한 강철 대문이 열렸다. 검은색 승용차가 남자를 지나쳐서 현관 앞에 멈추었다. 대우자동차가 1983년에 출시한 2,000cc 로얄 살롱이다. 당시로써는 최고급 승용차다. 남자가 후다닥 달려가서 차문을 열고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사모님, 댕기오셨심니꺼.”
모피코트와 담비 목도리로 한껏 멋을 낸 중년 부인이 내렸다. 마른 몸매에 껑충한 키, 단춧구멍처럼 찢어진 눈, 들창코에 종잇장처럼 얇은 입술, 박인보의 아내 장필녀 여사다. 볼품없는 외모와 강파른 인상은 여전했다. 그나마 화산 분화구처럼 얼굴을 덮은 마마 자국이 희미해졌다. 수차례 박피 수술을 받은 덕분이다.
“내가 표준말을 쓰라고 했지?”
장씨의 힐난에 남자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치겠습니다.”
“화자는 집에 있나?”
“네. 아가씨는 좀 전에 들어오셨습니다.”
장씨가 대답 없이 휙 돌아서서 안채로 향했다. 상대방의 대답을 듣지 않거나 무시하는 버릇도 여전했다.
“씨바, 갱상도 문디가 갑자기 서울말을 우예 쓰란 말이고. 지년도 품위는 개뿔도 없는 기 잘난척 지랄이야.”
장 씨의 뒤태가 현관으로 사라지자 남자가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을일 수밖에 없는 사내의 소심한 항변이다.
“사모님, 오셨어예.”
가정부가 후다닥 달려 나와 고개를 숙였다.
“이년은 자빠져 자는겨?”
장 씨는 대답도 듣지 않고 핸드백을 거실 소파에 집어 던지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장 씨의 인상이 썩어 문드러졌다.
침대에 팬티만 걸친 둘째 딸이 퍽 엎어져 가는 코를 골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 쾌쾌한 담배 냄새, 이리저리 뒹구는 양주병, 깨진 유리잔. 젊은 여자방이 아니라 갈 데까지 간 술주정뱅이 방이다. 장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이년아, 또 빨았어?”
철썩- 딸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으응~”
화자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장 씨를 올려다보았다. 서른도 안된 아가씨 얼굴이 40대 여자처럼 부석했다.
“이년아, 이기 머꼬?”
고용인에겐 품위있는 표준말을 쓰라고 닦달하는 장 씨 본인도 사투리는 어쩌지 못했다. 성질이 나면 절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잘난 엄마 오셨수?”
“이년아, 이기 무신 꼴이고. 어젯밤에 또 빨았제?”
“흐흥, 세상사는 낙이 없는데 뽕이라도 빨아야지.”
장씨가 세모꼴 눈을 부릅떴지만, 화자는 같잖다는 듯 히물거렸다.
“어이구 이것아, 니 아부지 알마 또 집안 디비진다.”
“씨발 것, 나는 내 멋대로 살 거야. 가만 좀 내비도.”
화자가 발작을 일으켰다.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 틀니를 빼내서 방바닥에 팽개쳤다.
“꼬라지가 이기 머꼬! 아부지가 뭔데? 그 새끼는 사 년이 지나도록 잡지도 못한 주제에 왜 나만 갖고 그래. 아아악!”
화자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미친년처럼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허이고, 내가 이년 땜에 미친다 미쳐.”
장씨가 가슴을 두드렸다.
당시 BOSS 나이트클럽 VVIP 실에서 히로뽕 파티를 벌이던 화자는 천생산 화전민촌으로 끌려갔다. 욱한 무쌍이 생매장하려고 구덩이를 팔 때 대우 선사가 나타났다.
덕분에 생매장을 면했지만, 무쌍의 가벼운 손찌검에 트럭에 받힌 수준의 중상을 입었다. 주치의가 킹콩에게 밟혔냐고 물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화자는 고막이 터지고, 뒤통수 머리뼈가 골절됐다. 갈비뼈는 왼쪽 오른쪽 합해서 일곱 개가 골절됐다. 턱뼈가 깨지고 이빨이 절반이나 날아갔다. 나머지 치아도 잇몸이 깨져 제대로 건지기 어려웠다. 아래위 틀니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문제는 편타 손상이라 불리는 경추부 염좌였다. 편타 손상은 후방 추돌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화자는 얼어붙은 땅에 태질 당할 때 목이 꺾이면서 경추가 손상됐다.
화자는 퇴원 후에도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고, 손을 떨게 되었다. 수년간 재활 치료로 손은 회복되었지만, 다리는 좌골 신경통 환자 마냥 끌면서 걷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미국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은 덕분에 목발 신세는 면했다.
천하가 제 세상인 양 설치던 화자다. 틀니를 끼고 다리병신이 된 화자는 삐뚤어진 성격이 더욱 나빠졌다. 날마다 주위 사람을 들볶고 술에 절어 지냈다. 끊었던 마약도 박인보의 눈을 피해서 다시 시작했다.
“빌어먹을 놈, 이게 다 그년과 그년의 자식놈 때문인 기라.”
나쁜 일은 무조건 김말순과 그녀의 새끼인 무쌍 탓이다. 뽀드득- 장씨가 이빨을 깨지라 갈았다. 화자를 폭행한 범인은 결국 잡지 못했다. 형사과에 돈뭉치를 안겨가며 독려했지만, 흔적도 찾지 못했다. 화자 본인이 아무것도 기억 못 하니 수사가 진척될 턱이 없다.
“아줌마!
쨍하는 소리에 가정부가 후다닥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장 씨는 말도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가정부는 새롭지 않은 일인 듯 방안을 정리했다.
“이대로는 못 참아.”
장 씨의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아줌마, 김 기사 불러와!”
김 기사는 무쌍에게 박살 난 이 기사의 후임이다. 형사과에 근무하는 장치수의 후배로 특수부대 출신이다.
“사모님 부르셨습니까?”
단단한 체격에 눈매가 날카로운 30대 중반의 남자가 허리를 숙였다.
“김 기사, 칠성시장 애들과 요즘도 손이 닿나?”
“예, 간혹 술은 사줍니다.”
“일을 한가지 해줘야겠어.”
“말씀만 하십시오. 그놈들이야 돈만 주면 여자 불알이라도 따올 놈이지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무덤 한 구를 처리하면 돼.”
“말씀만 하십시오.”
김 기사는 흠칫했지만 지체없이 대답했다. 장씨가 핸드백에서 봉투 두 개를 꺼내서 차탁에 탁 내려놓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양아치 새끼들 수고비와 네 수고비다……. 면사무소 뒷길로 올라가면 영곡마을이 있거든. 뒷산에 올라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야 해.”
장씨가 4절지 크기의 부적을 내주었다. 누런 괴황지에 주사로 기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쪽같이 처리하겠습니다.”
“큰소리치지 말어. 그놈에게 꼬리를 잡힌 이 기사가 반병신이 된 거 몰라.”
장 씨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이 기사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녀는 무쌍의 짓이라 짐작했다.
“명심하겠심더.”
김 기사가 꾸벅 절하고 나갔다.
“흐흥, 이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망종에게 집과 논밭을 돌리 났다 이거제. 늙으니까 핏줄이 땡기는 모양인데 내가 그 꼴은 절대로 못 보지.”
장 씨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부관참시 영겁속박이란 방자 수법은 불로동의 용한 무당에게 큰돈을 주고 얻은 비방이다. 무당은 애비의 뼈를 바수고, 음덕을 끊는 부적을 붙이면 자손이 나락에 떨어진다고 했다.
장 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젠 그놈을 겁낼 필요가 없어졌다. 강산이 변하고 남을 세월이 지났지만, 장 씨의 성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조울증이 심해졌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장씨가 이빨을 갈고 있을 무렵 박인보도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동성로 먹자골목 안쪽의 허름한 3층 벽돌집 지하실이다.
황달기가 있는 노란 눈알이 이 기사를 노려보았다. 박인보의 안색은 썩 좋지 못했다. 환갑도 안된 나이에 검버섯이 거뭇거뭇 돋아나고, 피부는 칠십 대 노인처럼 탄력을 잃었다.
나무의자에 결박된 30대 후반의 남자는 말도 없이 사라졌던 이 기사다. 이기사를 추적하던 넙치 파가 용케 나이트 클럽 차량을 운전하는 이 기사를 어젯밤에 잡아왔다.
박인보는 육 년 전부터 동성로의 넙치 파를 동원해서 제수씨를 수소문해왔다. 그 와중에 고등학교 졸업반인 조카마저 난데없이 사라져버리자 크게 놀랐다. 그는 잔꾀가 많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말없이 사라져버린 이 기사가 조카의 실종과 관련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이 새끼야, 창세기 뽑아내기 전에 똑바로 말해라. 사장님이 내를 부르마 시멘트 발라서 금호강에 쑤셔 박을 끼다.”
“알았시다.”
넙치의 으름장에 이 기사의 안색이 누렇게 떴다.
“사장님, 이 새끼가 쌩까마 지를 퍼뜩 부르시소.”
넙치가 꾸벅 머리를 숙이고 몽둥이를 질질 끌며 지하실을 나갔다. 이 기사가 퉁퉁 부은 눈을 억지로 떠서 박인보를 쳐다보았다.
“사장님, 지가 이 꼴이 되가꼬 속일 기 머 있겠심니꺼. 다 말하겠심더.”
이 기사가 긴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가꼬 칼치파 조직을 동원해서……. 퇴학시키고 감방을 보냈심더……. 반년을 깜방에서 보내고 집행유예로 풀리 났심더. 악마 같은 놈이 나타나서……. 사건을 꾸민 인간들은 죄다 개박살이 났심더.”
장 씨와 화자의 지시를 받아 갈치 파를 동원한 이야기, 강충식을 사주해서 박무쌍을 퇴학시킨 이야기, 장씨가 경찰과 검찰에 손을 써서 감방에 집어넣은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왔다.
“허어! 그러니까 여학생을 구해줄라카던 무쌍이가 되려 강간죄를 덮어쓰고 깜방에 갔다 이기가?”
“예, 그렇게 됐심더.”
어이가 없어진 박인보가 입을 쩍 벌렸다. 아내와 화자의 성정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가꼬 우예 됐노?”
“강충식은 반병신이 되고, 강영숙은 자살했심더. 사기꾼에게 걸려가꼬 돈을 몽땅 날렸거든요. 법정에서 위증한 문미숙과 나가요 걸은 얼띠해지고, 강영숙을 강간한 갈치 파는 전부 반병신이 되가꼬 사라졌심더. 지도 맞아서 골벵이 들었심더.”
“그것들이 마카 무쌍이에게 맞았나?”
“모릅니더. 지는 문미숙이년 만나러 나갔다가 납치되가꼬 디지도록 맞았심더. 진술서를 쓰고 희망 고아원에 백만 원을 기부하는 조건으로 풀리났심더.”
“고아원? 그건 왜?”
“지도 모립니더. 언캉 겁이 나가꼬 사모님께 받은 돈에서 백만 원을 희망 고아원에 기부했심더.”
“허어, 다른 놈들도 진술서를 썼나?”
“아마도요. 지가 당한 것처럼 조지마 견딜 놈은 아무도 없심더.”
“이럴 수가!”
쿨럭쿨럭- 박인보는 현기증을 느꼈다. 한동안 잠잠하던 기침이 터져 나왔다. 조카가 실종된 원인이 아내와 딸이다. 도가 넘쳐도 너무 넘쳤다.
이 기사 말에 따르면 장 씨와 화자가 주범이자 교사범이다. 아내와 딸이 폭력배를 동원해서 조카를 강간 폭행범으로 몰았다 아내의 끝없는 악의에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애초에 정없이 살았지만 새삼 오만 정이 떨어졌다.
회사를 만들고 키운다고 밤낮없이 설치는 동안에 집안은 깨박이 나버렸다. 무엇을 위해 미친놈처럼 일하고 돈을 모았는지 허무해졌다. 자신도 예전에 처벌이 두려워서 무쌍을 절도범으로 몰았다. 식구들이 하나같이 더러운 짓거리를 벌였다. 자신도 똑같이 더러운 놈이다.
그나저나 문제가 커져도 너무 커졌다. 진술서에는 아내와 딸이 교사범이고 무쌍은 무고하다는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럼에도 녀석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무쌍이는 무서운 놈이다. 우탁이가 던진 농약병에 맞아 머리가 터졌을 때 번득이던 눈빛이 떠오르면 모골이 송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