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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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장 몰락의 전조5
“이봐!”
박인보가 소리치자 문밖에 있던 넙치가 들어와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 새끼가 개깁니까? 새꺄, 물고기 밥이 되기 전에 잘해라! 엉”
넙치가 곰 발바닥 같은 손바닥으로 이 기사 뒤통수를 퍽퍽 때렸다.
“욱 욱!”
이 기사 머리가 방아깨비처럼 앞뒤로 흔들렸다.
“됐어, 이놈 자식 병원에 델다주고, 금복주나 한 병 사오라 캐라.”
박인보가 눈알을 번들거리는 넙치에게 버럭 했다.
“알겠심더. 꺽지야, 이 새끼 동남병원에 부리나라. 떡붕어 니는 얼른 튀어가서 쇠주 사오니라.”
물주의 역정에 넙치가 어마 뜨거라 하고 서둘렀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지하실에 비릿한 피비린내만 둥둥 떠다녔다.
박인보가 생사대적이라도 만난 양 술잔을 노려보았다. 술을 마시면 안 되지만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술잔을 목구멍에 탁 털어 넣었다.
“크으!”
주치의 몰래 한 잔씩 즐기던 금복주가 소태맛이다. 그나마 기침이 터질 위험이 있어 한 잔 더 마시기도 무서웠다.
박인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짚은다리가 세상 전부인 줄 알았다. 논 한 마지기, 밭 한 두락을 늘리려고 온갖 패악을 부렸다. 사업을 시작하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조잡하고 속 좁은 인간인지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았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옹졸하게 살아온 날들이 스스로도 한심했다.
마누라의 집요한 학대와 방해에 불구하고 조카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도 마누라 장단에 맞추어 깨춤을 췄다. 뒤늦게 후회했을 때는 늦었다. 녀석은 가출해서 홀로 섰다.
철가방을 들고 밤늦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가슴이 아팠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민망하고 부끄러워 망설였다. 도움을 받을 놈도 아니었다. 후회는 세월이 지날수록 농도가 짙어져 몸을 갉아 먹었다.
지난날의 패악을 뼈저리게 후회하던 중에 마누라가 제대로 한 건 했단다. 무쌍이는 마음먹은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하는 놈이다. 14살 나이에 곡괭이 들고 탄광 막장에 들어간 놈이다. 학교에서 쫓아내고, 별까지 달아준 아내와 딸을 두고 볼 놈이 아니다.
힘이 생기면 돌아오겠다고 옹골지게 내뱉던 독기어린 말이 귀에 쟁쟁 울렸다. 녀석은 이제 스물넷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더럭 겁이 났다. 조카에게 사업을 물려주려 했건만 아차 하면 집안이 절단 날 판이다.
“으아아, 이 망할 년!”
쨍그랑- 애꿎은 금복주 병이 시멘트벽과 박치기를 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백열등 빛을 반사하는 유리조각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진보야, 미안하데이. 으흐흐흐!
행복했던 동생네는 소주병처럼 박살 났다. 바로 형이라는 놈이, 바로 자신이 저지른 짓이다.
“찢어 죽일 년, 망할 놈의 장가 새끼들!”
박인보는 머리를 움켜쥐고 신음했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가정사는 전적으로 마누라와 장가 때문이다. 마누라가 핍박하지 않았으면, 장가 가문이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이 꼴이 되지 않았다.
어릴 때도 힘이 장사인 무쌍이다. 이 기사와 양아치를 찾아내서 박살 내고 진술서를 받아놓을 만큼 머리도 좋은 놈이다. 눈깔을 시퍼렇게 뜬 무쌍이가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았다.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요량이 서지 않았다.
“진보야 니 새끼는 잘 컸데이. 그런데 우야마 좋노. 이 미친년들이 즈이 디질지도 모리고 화약에 불을 붙있구마. 우야믄 좋노! 이 자슥들은 금복주와 원수졌나? 뭔 술을 무더기로 사왔노!”
환하게 웃는 살집좋은 금복주마저 부아를 돋우었다.
오 년이란 세월동안 죽도록 고생한 녀석이다. 이미 집 나간 녀석이다. 왜 그런 미친 짓거리를 했을까? 정신병자가 따로 없다. 하기사 남편의 회사를 뺏어서 친정에 넘기려는 년이니 정상일 리 없다.
한쪽은 조카이자 사업을 물려주려고 마음먹은 후계자다. 한쪽은 아내와 딸이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담배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엉망이 된 허파가 독한 담배 연기를 견디지 못한다.
“젠장, 인생 다 살았군. 죗값을 치르는 건가.”
그는 눈앞의 금복주 병을 노려보며 툴툴거렸다. 김 박사가 말하기를 잘 조섭하면 십 년, 무리하면 삼 년이라 했다. 무쌍이에게 사업을 물려주려고 결심한 이유가 자신의 건강 때문이다. 장씨 일가에 넘어가면 회사는 내리막이다.
“망할 년!”
기어코 한 잔 더 마셨다. 욕설이 똘마니가 사온 노가리를 대신했다. 지하실을 나서는 박인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집구석에 들어가기 싫어 아파트를 얻어 나온 지 육 년째다. 부를 얻었지만 따뜻한 해장국 한그릇 끓여줄 여편네도 없다.
박인보의 도착적인 책임 전가의 망상은 여전했다. 그 대상이 동생과 조카에서 장씨 일가와 마누라에게 옮겨졌을 뿐이다. 책임 전가에 전통적인 피의 이끌림, 약간의 자기 성찰이 덧붙여졌다. 어쩌면 뇌가 개체를 방어하려고 펼친 탈출 기전이다.
박인보가 망할 년이라고 욕하는 장씨는 실제로 망할 짓을 하고 있었다.
“사모님, 이 변호사님 오셨습니다.”
가정부가 방문 밖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죽전 댁은 숨이 가빠졌다. 수십 명이 살아도 될 넓은 집에 식구는 달랑 셋이다. 집안은 늘 텅 비었다. 따로 아파트를 얻어나간 사장님은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어온다. 아가씨와 도련님은 외박하기 일쑤다. 사모님도 낮에 집에 붙어있을 때가 없다.
챙겨야 할 사람이 없으니 편안해야 할 식모살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에미나 자식이나 전부 성질이 개차반이다. 한 사람이라도 집안에 있으면 좌불안석이다.
“죽전 댁, 통화 중이야.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해.”
‘웬일이래?’
죽전 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최근 몇 년간 처음 들어본 부드러운 말투다.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손님에게 차를 내주고 얼른 자신의 골방으로 들어갔다. 얼쩡대다간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 변호사님, 오랜만이에요. 집안 어른과 통화하느라 늦었어요.”
“괜찮습니다. 오늘은 한결 젊어 보입니다.”
소파에 앉아있던 50대 남자가 일어섰다.
“빈말이라도 듣기는 좋네요. 바쁘신 분을 오시라고 해서 죄송해요.”
“하하핫, 저야 발품과 입품 팔아서 풀칠하는 인생 아닙니까. 어쩐 일이십니까?”
푸근한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근래 사장님 만나신 적 있으세요?”
“지난주에 만났습니다. 시설자금 조달 문제를 의논했지요.”
“그래요? 그건 쫌 있다 이야기하고요. 그 양반이 조카 이야기를 한 적 없어요?”
“아, 몇 년 전에 사고 쳐서 구속된 조카 말인가요? 그 친구는 출소한 뒤로 사라졌지 않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죽었다는 소식은 없잖아요. 그 양반이 고향 집과 토지를 망할 종자에게 증여했다 아임니까. 변호사님은 알고 계시지요?”
“박 사장이 마음 편하자고 한 짓이지요. 그래 봐야 찌그러진 시골집과 논 열 마지기 아닙니까. 재산적 가치도 없어요.”
장씨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눈썹 사이에 주름이 석 줄로 접혔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심기 표출이다.
“재산적 가치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문제지요. 내 그때부터 의심이 들었어요. 영감탱이가 그놈을 회사에 끌어들일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헉! 촉이 더럽게 좋은 여자네.’
이 변호사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헛다리를 짚었지만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박 사장은 조카를 후계자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른 여자다.
“그딴 거지새끼에겐 밭 한 뙈기도 줄 수 없어요. 증여는 계약행위잖아요. 변호사님이 편법으로 명의 변경을 했겠지요?”
째진 눈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어졌다.
‘허, 부모를 죽인 원한은 잊어도 재산을 뺏긴 원한은 잊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라 카디마는……’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박 사장 똥집 건드려 좋을 거 없어요.”
“변호사님이 그놈을 몰라서 그래요. 회사에 발만 걸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악종이란 말입니다. 처음부터 싹을 잘라야 해요.”
‘허, 박 사장 말로는 원래 동생네 땅이라 했는데. 이 여자 골때리네.’
이 변호사는 곰곰이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향심섬유 후계자 작업은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박 사장은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잠꼬대라도 의중을 흘릴 사람이 아니다. 박 사장의 실질적 오른팔인 정아영 차장도 아직 모르는 일이다. 결국, 장씨가 자신을 간보는 소리라는 이야기다.
“그럴 리가요. 우탁이가 있는데 조카를 영입해서 분란을 일으킬 박 사장이 아이지요. 박 사장이 사모님 생각을 알면 엄청 불쾌할 겁니다.”
이 변호사는 일단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래요? 하긴 두 눈 시퍼런 아들을 두고 엉뚱한 짓을 할 양반은 아니지요. 거지에게 적선한 셈 치지요. 그때 십 년쯤 콩밥을 멕이야 했는데.”
장씨가 이빨을 뽀도독 갈았다. 빈틈없이 올가미를 씌우고, 돈까지 썼는데 집행유예로 풀려날 줄은 몰랐다. 장씨는 혜영이 아버지 인맥을 총동원해서 사법부에 로비했음을 몰랐다. 장씨가 경찰과 검찰을 매수하는 동안에 혜영은 법원에 손을 썼다. 검찰과 법원의 절충점이 집행유예였다.
‘이 여자 폭탄이네. 질질 끌다간 똥구디 들어가겠어.’
이 변호사는 장 여사와 완전히 손을 끊을 작정을 했다. 이십 년간 온갖 사건을 다루면서 얻은 교훈은 지나치면 삥탈이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쏠쏠한 뒷돈이 아쉽긴 하지만, 모진 년 옆에서 꿈지럭거리다간 벼락 맞을 위험이 컸다. 또한,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준 박사장을 배신할 수도 없다.
“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봐요. 이해하세요. 요즘 여러 가지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이해합니다. 향심섬유 안주인 노릇도 만만치 않지요.”
이 변호사는 장 여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리가 아플 만도 할 것이다. 장 여사는 향심여객과 향심섬유를 장씨 일가에 넘기려고 온갖 모략을 꾸몄다. 임원을 장씨 일가로 채우고, 노조를 조직해서 박 사장을 음해하고, 회사 자금을 뒤로 빼돌렸다. 자신이 일정 부분 도움을 주기도 했다.
도토리가 백 바퀴 굴러야 호박 한 바퀴만 못하다. 박 사장은 이미 선수를 쳤다. 현재 향심섬유의 납입자본금은 20억 원이다. 액면가 5,000원인 주식은 박인보 사장이 52%, 장필녀 여사 10%, 장필녀의 큰동생 장기수 10%, 둘째 동생 장삼수 5%, 박희자 2%, 박화자 2%, 박우탁 6%, 기타 주주 13%로 구성되어 있다.
박 사장 보유주식은 이미 박무쌍 앞으로 명의 이전되었다. 명의 이전과 상속관계 서류는 모든 법률적 절차를 끝내고 국제은행 금고에 들어있다. 장 여사는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된 줄은 짐작도 못 하고 있다.
대구지역 제일의 섬유회사 향심섬유의 최대주주는 박무쌍이다. 다만 명의신탁 형태로 박인보 사장이 대리권을 행사하므로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비상장 회사기에 가능한 일이다.
“삼 공장 건설 말인데요. 사장님 의중은 어느 쪽이에요? 대출인가요 유상증자인가요?”
이 변호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씨 일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역시 박 사장의 감각은 녹슬지 않았다.
“부족한 자금은 유상증자 대신 전환사채를 십억 정도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사채요? 요즈음 이자가 높지 않아요?”
“일반사채 이자는 15%가 넘지만, 전환사채는 전환 메리트가 있어서 5%면 됩니다. 사장님은 결심을 굳혔어요.”
“내사 복잡한 내용은 잘 모리겠고, 전환사채가 나중에 주식으로 바뀐다는 거 아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발행 주식 수가 40만 주니까 자본금의 50프로를 발행하마 나중에 60만주가 되지요. 회사로 봐서는 좋지만, 사장님 지분율이 뚝 떨어지면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지요.”
“그 양반이 전환사채를 인수하면 지분율이 더 올라가겠군요.”
“그건 그렇지요.”
“우리 집안이 마카 인수하마 지분이 우예 됩니꺼?”
장씨의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흥분했다는 소리다.
‘흐흐, 미끼를 물었군.’
이 변호사가 가방에서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현재 사모님과 전무님의 지분을 합쳐서 25프로입니다. 전환사채를 전량 인수하면 58%가 됩니다. 향심섬유 주인이 바뀌는 거지요.”
“호호호, 58프로! 그 양반이 일반 주주들의 위임장을 몽땅 받아도 소용이 없겠군요.”
“그건 그렇지요. 향심섬유가 탄탄한 만큼 전환사채는 할증 발행될 겁니다. 무조건 인수하이소. 두배 세배를 줘도 인수 해야 합니다. 어차피 그 돈이 회사 내부에 유보된다 아닙니까. 사모님 재산입니다.”
이 변호사는 악마의 유혹을 속삭였다. 99%의 진실에 1%의 거짓을 섞었다.
“그 양반이 전환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은행 대출을 내면 어쩌지요?”
‘멍청한 여편네, 새는 모이에 죽고, 사람은 욕심에 죽는다더니!’
이 변호사는 속으로 비웃었다. 박 사장의 예측은 한치도 틀리지 않았다. 경영권이라는 미끼가 사라질까 봐 안달하는 꼴이라니.
“그전에 사장님을 압박해야지요. 임원이나 중간 관리층은 장씨 일가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 아임니까. 회계장부 열람권을 이용해서 압박하는 방법도 있어요.”
“사장이 거부하면 그만 아닙니까?”
“지분이 5% 이상이면 법원에 경영 조사와 회계장부 열람을 신청할 수 있거든요.”
장씨의 눈이 휘번득였다. 드디어 장씨 일가의 숙원을 이룰 찬스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