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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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장 몰락의 전조9
마삼식이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염려 마시소. 이쪽 업계의 룰은 작꿉니더. 나불댔다가는 바로 주디에 흙 들어가는 거지요.”
“쥑일거 까지야……. 선수가 있나?”
장씨 가문은 그저 그런 시골 유지가 아니다. 주먹이나 쓰는 골빈 놈이 설치다가 뒷덜미를 잡히면 낭패다.
“부동산 후려 처먹기는 비산동 모래무지가 선수입니더.”
“모래무지? 물고기하고 원수졌나. 무신 애들 이름이 마카 물고기고?”
삼식파 일당의 명칭은 전부 물고기다. 회사와 연락을 담당하는 놈은 넙치고, 충무 쪽에서 제수씨를 찾는 팀의 보스는 메기다.
“예전부터 내려온 갱상도 지역의 전통입니더. 민물고기는 대구. 바닷고기는 부산입니더. 똘마니는 대충 편한 대로 부르고, 진짜 별명은 경력이 쌓여서 조직의 인정을 받았다는 표시지예. 넙치 글마는 부산에서 놀다가 대구로 넘어온 놈이라는 뜻이지요.”
“어허, 나름 족보라는 이야기네. 자네 별명은 머꼬?”
“헤헤, 가물치입니다.”
마삼식이 쑥스럽게 웃었다. 원래 별명은 납자루떼였다. 보스가 된 뒤에 쪽팔려서 가물치로 바꾸었다.
“바닷고기든 민물고기든 일만 잘하마 되제. 모래무지는 믿을만하나?”
“글마가 사기해 처먹은 부동산 건수가 백 개는 넘을 낀데 사기 전과는 딱 두 개 있심더. 워낙 매끄럽게 잘 빠져나가고, 잠수를 잘 타서 모래무지라 안 캅니꺼. 지가 델꼬 있던 놈이라 믿어도 됩니더.”
“장씨 가문은 만만치 않아. 행정부, 사법부 쪽에 제법 힘있는 인간들이 깔려있거든.”
“염려 놓으시소. 구미, 김천, 대구, 칠곡, 선산의 복덕방이 전부 알게 될 낍니다. 재력 있는 인사들에게도 소문이 들어가게 조치하지요. 알아차렸을 때는 아사리판을 정리하느라 우리쪽엔 신경도 못 씁니다.”
“방법이야 자네들이 알아서 하겠지. 경비는 따로 보내주겠네. 이건 동생들 용돈이나 주게.”
박인보가 두툼한 봉투를 상위에 내놓았다. 봉투를 확인한 삼식의 입이 벌어졌다. 박 사장은 역시 화끈하게 풀 줄 아는 한량이다.
쾅- 주름진 주먹이 서탁을 내리쳤다. 보물급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고풍스러운 오동나무 서탁이 우지끈 내려앉았다.
“어떤 쥐새끼가 이딴 짓을 한 기고? 자네들은 여지껏 뭣들하고 자빠진 겨!”
호통이 사랑방을 쩌렁 울렸다. 종가 사랑방에 모인 인물들은 전부 벌레 씹은 얼굴이 되었다. 장필녀, 장기수, 장상수, 숙부 장경모, 사촌 장철수, 당숙 장경택, 당숙 장경남, 장씨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다.
“마카 귀머거리여 당달봉사여? 집안에 경찰 밥 묵는 놈이 몇인디 쥐새끼 몇 마리 못 잡아서 이 꼴이여?”
한쪽 구석에 무릎을 꿇고 있던 제복 입은 남자가 움찔했다. 무쌍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한 장치수다. 경사 계급으로는 끼일 군번이 못 되지만 경찰에 직을 둔 죄로 불려 왔다.
장필녀와 장기수는 향심섬유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남매는 부족한 자금을 채우려고 가까운 친척들까지 끌어들였다. 장씨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나섰다. 종손인 장경주는 물론 형제, 사촌, 당숙도 기꺼이 토지를 내놓았다.
그들은 배당만 받아도 농사보다 낫다는 장필녀 남매의 장담을 굳게 믿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농사일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다.
지주는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지 오래다. 옛날처럼 5:5 소작이면 해볼 만하지만, 지금은 7:3이 일반적이다. 벼농사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다.
소작농이 죽는시늉하던 시대는 끝났다. 구미 공단이 개발되면서 웬만한 자작농도 농토를 팔고 공장에 다니는 형편이다. 종자와 비료를 공급해 달라는 주제넘은 농투산이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갑질 행세에 익숙해진 장씨 가문으로서는 눈에 불똥이 튈 노릇이다.
장경주를 비롯한 장씨 일문은 조심스럽게 원매자를 물색했다. 워낙 덩어리가 큰 물건들이라 쪼개서 원매자를 찾았다. 작은 물건은 믿을만한 복덕방에 내놓고, 큰 물건은 가문 사람이 직접 인근의 재력가와 접촉했다. 소문이 나면 지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가대로 매물을 내놓았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평소 토지에 욕심내던 사람들도 미온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복덕방에 내놓은 작은 물건도 입질만 있고 거래가 되지 않았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장경주가 사람을 풀었다. 일족이 조사해온 소문은 피를 토하고 엎어질 내용이었다.
장씨 가문이 친일파라는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이니 놀랄 것도 없다. 자신만 해도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황국미를 헌납하고 놋대야와 놋숟가락까지 수집해서 바쳤다. 우짜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문이 몰락할 판인데.
문제는 장씨 가문이 빚보증을 잘못 서서 토지를 급매한다는 소문이다. 아니 그 소문을 부정하는 구체적인 소문이 돌았다.
[장씨 가문에서 은밀히 땅을 팔려는 진짜 이유는 빚보증 대납이 아니라 따로 있다. 장씨 종친회는 김영삼이 추진 중인 민주화추진협의회의 비밀 자금줄이다. 냄새를 맡은 안기부가 장씨 가문을 강도 높게 조사하고 있다. 장씨 가문에서 정권 실세에게 구명을 요청 중이고, 차떼기 뇌물을 먹이려고 땅을 내놓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장씨 가문의 급매물이 쏟아져 나온다.]한편의 시나리오가 근동에 짜하게 돌았다. 알만한 사람은 전부 알고 있는 소문을 자신들만 몰랐다. 소문의 요지는 두 가지다. 장씨 가문이 정권 실세의 미움을 받는다는 것, 뇌물을 먹일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다급한 나머지 가문이 소유한 토지 전부가 급매물로 나온다는 것 세 가지다.
장경주 본인이 생각해도 잘 짜인 시나리오다. 아니 악랄하다. 먼저 친일파 행적을 거론해서 소문을 믿게 한다. 다음엔 빚보증을 잘못 섰다는 다소 신빙성 없는 내용을 흘려놓는다.
헛된 소문을 부정하면서 이게 진짜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루머를 유포했다.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삼단 콤보 공격이다. 듣는 사람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소문은 자체 생명력이 있다.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처녀가 애를 낳고, 종가 며느리의 샛서방 열 놈이 등장한다. 강하게 부인할수록 사실로 추인되는 괴력을 발휘한다.
“이건 작전이란 말이다. 그냥 나온 소문이 아니야. 우리 가문을 시궁창에 밀어 넣으려는 놈이 배후에 있어. 반드시 찾아서 때려죽여야 해.”
퍽퍽- 화를 참지못한 장경주 옹이 손바닥으로 보료 퇴침을 두드렸다. 팔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처음 맛보는 더러운 기분이다.
“형님, 고정하십시오.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분탕질 친 놈은 시간을 두고 잡아도 됩니다.”
“일단 그놈을 잡아야 불길을 끌 수 있어. 빌어먹을, 잡아야 멍석말이를 하든 주리를 틀든지 하지. 후!”
장경주는 아우의 만류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인수대금 납입 기한이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치명타를 맞은 셈이다.
“그래, 조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대구와 구미 부근의 경찰서 다섯 곳에 협조를 구했습니다. 수사과를 동원해서 은밀히 내사하겠습니다.”
경북도청 부 도지사인 장철수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봐야 뒷북치기다.
“에미야, 혹시 박 서방이…….”
“아버님!”
장필녀가 빽 소리 질렀다.
“박 서방이 소문을 낼 위인도 못되고, 그럴 이유도 없어요. 그 양반은 지금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지경이라고요. 박 서방이 들으마 우얄라캅니꺼.”
“아 아이다. 나는 박 서방이 납입 기한을 유예해 줄 수 있는가 물어볼라 켔능 기라.”
장경주가 얼른 뺐다. 답답해서 한 소리다. 사위를 의심할 이유도 없지만, 행여나 귀에 들어갔다간 사달이 난다.
“부탁은 해 보겠지만, 힘들 낍니다.”
장필녀가 자신 없다는 투로 말했다. 장경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위는 사업에 관해서라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위인이다.
“에잉, 그러게 평소에 좀 살갑게 지내지.”
숙부 장경모가 지청구를 놓다가 질녀의 눈초리에 고개를 쑥 집어넣었다. 질녀가 손자놈 둘을 향심섬유에 입사시켜 주었다. 똥집 건드릴 처지가 아니다.
“저~ 계약금을 포기하고 인수를 안 하면~”
“머시라! 포기? 주디 닫아라.”
장치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경주의 호통이 떨어졌다.
“삼억이 얼라 이름이가. 쇠는 달구어졌을 때 뚜디리야 하는 벱이여.”
장필녀가 살모사 눈으로 조카를 노려보았다. 장치수는 목을 쑥 집어넣고 찌그러졌다. 어른들 일에 괜히 한마디 했다가 모양만 구겨졌다. 종가 사랑방은 갑론을박,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발행일로부터 보름 후, 모래무지의 연락이 왔다.
-사장님, 모래무집니더. 목표치까지 내려왔심더
“65% 수준에서 슬슬 거둬들여. 내가 변호사를 보낼 테니 애들 명의를 빌려서 적당히 처리하도록.
-알겠심더. 그런데~
“구전은 1%를 주겠다.
-화따, 그래 마이 주실라꼬예. 요롱소리 나도록 뛰겠심더.
‘돈을 아끼면 손발이 늦어지는 벱이지.’
물건 덩어리가 큰 만큼 구전 1%는 엄청난 액수다. 모래무지가 좋아 날뛸만했다. 박인보는 돈을 쓸 줄 아는 인간이다.
“애들 단속 잘해. 바람이 새마 구전이고 뭐고 없어.”
-하모요. 생각이 빤한 놈들입니다. 아가리 질로 묵고사는 놈이 주디 질을 하마 업계에서 매장되지예.
“업계 매장이 아니야. 금호강 매장이야.”
박인보가 싸늘하게 말했다.
-예? 예 주의하겠심더
“거기 마 사장 있나?”
-야, 쇠주 빨고 계십니더.
딱- 악- 타격음과 비명이 수화기를 울렸다.
-사장님, 지송함더. 못 배운 놈이라 아래위를 학실히 모립니더. 지가 교육시키겠심더.
“됐고, 자네 밑에 사채놀이하던 놈 있나?
-사채는 본래 제 전문입지요. 험한 놈도 있고 똘똘한 놈도 있심더.
“모래무지에게 붙여줘. 현금이 급해진 장씨 가문은 사채도 마다치 않을 끼다. 계약서를 쓸 때 첫 달 이자는 싸게, 둘째 석 달째는 약간 올리고, 넉 달째부터 살인적으로 올리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담보는 토지야.”
-알겠심더. 장씨 찌끄레기들이 석 달이 지나마 갚을 껀수가 있는 모양이지예. 그렇게 하마 덜컹 물겠구마요. 사장님 머리가 보통이 아이네요.
“씰데없는 소리 하덜 말어. 필요한 자금은 현금보관증을 쓰고 받아가게.”
-알겠심더.
전화를 끊은 박인보가 하얗게 웃었다.
“장씨 여러분, 상갓집 개가 주는 선물일세. 양 곱사등이의 고통을 느껴보시게.”
창밖을 내다보던 박인보의 얼굴이 우울해졌다. 하얀 눈으로 덮인 시내가 눈을 어지럽혔다. 본사 건물을 지었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가. 내려다보이는 대구 시내가 자신의 것인양 했다.
“젠장, 악당으로 회귀했구마. 눈도 오고, 쇠주나 한잔 꺾어야겠어.”
눈으로 한 꺼풀 덮여 있을 뿐 해가 떠오르면 질퍽대고 더러워질 시내다.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대구 변두리 노원동 뒷골목의 허름한 닭발 집, 덕산댁이라 쓰인 페인트 간판이 삐뚜름하니 걸려있다.
두터운 오바를 입고 모자와 마스크, 목도리로 중무장한 남자가 덕산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모자를 벗어서 어깨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내고 밀창을 밀었다.
드르륵- 요란한 소리에 불구하고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난로를 중심으로 조잡한 테이블 여섯 개가 놓여있는 작은 대폿집이다. 테이블은 전력 공사용 케이블 드럼 코어에 화덕을 넣고, 양철판을 얹은 투박한 형태다.
애저녁이라 술청이 텅 비었다. 남자는 모자와 목도리, 마스크를 벗어서 테이블에 집어 던지고, 의자를 주르륵 당겨서 난로 옆에 앉았다. 서리 내린 듯 허연 머리, 부석한 얼굴, 옹조지한 이목구비, 박인보다.
테이블 코어에 박힌 연탄 화덕에서 십구공탄이 벌건 열기를 뿜었다. 싸락눈이 내리는 바깥 날씨는 쌀쌀했지만, 실내는 훈훈했다.
“아주마씨는 장사 안 하고 오데를 갔노?”
한기를 털어낸 박인보는 쇼케이스에서 금복주를 꺼내오고 주방 찬장에서 소주잔을 찾아왔다. 거침없는 행동이 단골의 포스를 느끼게 했다.
“크으!”
박인보는 소주를 목구멍에 툭 털어 넣고 진저리쳤다. 술 마시면 안 된다고 주치의가 노래를 부르지만, 오늘만은 그냥 취하고 싶었다. 박인보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어렸다.
드르륵- 출입문 도르래가 레일 위를 요란하게 굴렀다. 살집 푸짐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그 뒤를 정아영이 따라 들어왔다.
“아이고 사장님요. 또 깡소준교! 우짜마 좋노.”
아주머니가 기겁하고 정아영을 돌아보았다.
“덕산댁, 똥집이나 가져오소. 내가 자주 못 온다고 괄시하는 거 아이지러.”
“하모요. 사장님 직원들이 전부 단골인데 감히 괄시라니요. 아차 안주를 얼릉 내드리야제.”
덕산댁이 부산을 떨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덕산댁이 운영하는 허름한 닭똥집은 향심여객 사무실과 차고지가 있는 노원동에 있다.
덕산댁, 그녀는 혜영이 기거하던 적산 가옥의 가정부다. 혜영이 도미하자 혜영의 어머니인 이민주 여사는 집을 팔아버렸다. 갈 곳이 없어진 덕산댁은 호구지책으로 3공단 공구 골목에 닭똥집 술청을 차렸다.
박인보가 쪼르륵 술잔을 채웠다. 정아영이 서슴없이 박인보 맞은편에 의자를 당겨 털썩 앉았다. 금속성 의자 다리가 시멘트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남자처럼 털털한 정아영이다.
“에헤이, 사장님, 속 베립니더. 안주 나오마 드시소.”
정아영이 자리에 앉자마자 금복주 병을 휙 낚아챘다. 덕산댁이 닭똥집 석쇠를 화덕에 올리고, 소주잔과 구운 노가리를 챙겨주고는 자리를 피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싸락눈 내리는 어둑한 바깥을 내다보았다.
박인보는 덕산댁에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났다.
[……그래서 말이라예. 무슨 일인지 핵교를 그만두게 되었거든요.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얼굴 잘생기고, 자립심도 엄청 강한 학생인데 우짜다가……]박인보는 식겁했다. 술청 아줌마에게 가출한 조카의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안타깝게도 덕산댁은 그 후의 행적을 알지 못했다.
덕산댁이 기억하는 무쌍은 무조건 최고였다. 단지 흠이라면 표정 변화가 별로 없고 말수가 적다는 점이었다. 덕산댁은 사내다운 무게가 있어 멋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