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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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장 행복한가? 3
빵- 빵- 빠방- 무쌍이 요사채 큰방에 들어서는 순간 폭죽이 일제히 터졌다. 천장에서 형형색색의 반짝이와 색종이가 떨어져 내렸다.
“옵빠아, 생일 축하해요.”
막내 우순이 고깔모자를 무쌍의 머리에 턱 씌웠다. 마분지로 틀을 만들고 색색의 셀로판 지로 십장생을 오려 붙인 우스꽝스러운 모자다.
“사랑하는 우리 옵빠아, 생일 축하해요.”
하동댁 오 자매와 덕산댁 자매가 입을 모아 소리쳤다. 덕산댁 내외와 하동댁이 손바닥이 터지도록 손뼉을 쳤다.
“생일? 아하!”
멀뚱멀뚱해 있던 무쌍이 땡중 도 터지는 감탄사를 뱉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자 자신의 생일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개작한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기쁘다 오빠 오셨네. 만 여자 맞으라~♬……. 찬양하라 우리 오빠를 찬양하라.”
모여서 연습한 듯 음정과 박자가 딱딱 맞다. 크리스마스가 자신의 생일이니 노엘을 부른다고 틀리지는 않는다. 무쌍의 눈길이 천장에서 걸개로 늘어뜨린 배너에 머물렀다. [오빠는 우리 희망, 우리는 오빠 희망] 무쌍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판도라의 상자에도 희망이 남아있지 않았던가. 그렇다. 인간의 조건 중 또 한가지는 희망이다.
‘저 녀석이 일을 벌였구마!’
진순을 돌아보았다. 울듯 말 듯 묘한 표정이다. 진순은 넓은 세상, 수많은 인간 중에 자신의 생일을 알고 기억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보스 나이트에서 웨이터 노릇 할 때까지 5년간 진순이 생일을 차려주었다.
그전에는 생일을 생각지도 못했고, 그 후에는 잊혔다. 사부님은 부처님 오신 날도 염두에 두지 않는 분이고, 용병이 된 후로는 신상 기록이 사라져버렸다.
“오빠, 축하해요.”
진순이 손뜨개 목도리를 목에 감아주었다. 쪽- 볼에 입을 맞추고 육감적인 입술을 귀에 붙이고 속삭였다.
“언젠가는 입술에 박치기할 거야.”
‘윽!’ 무쌍이 비명을 삼켰다. 최도식의 장침에 뇌호혈을 찔렸을 때처럼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귓가에 부어지는 처녀의 숨결 때문인지 말의 의미 때문인지 자신도 헷갈렸다. 연순은 벙어리 장갑을 선물했다. 경순은 독고리, 계순은 가디건, 말순은 조끼……. 모두 손뜨개로 만든 선물, 돈으로 구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다.
‘점마가 귀띔을 했구마.’
어릴 때부터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챙겨주던 진순이다. 무쌍이 힐끗 진순을 돌아보았다. 진순이 헤하고 웃었다.
“오빠, 지는 오늘 알았어예. 죄송해요. 편지만 썼어예.”
점순이 울 듯한 표정으로 꽃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를 받아든 무쌍이 휘청했다.
“아이쿠, 무거버라. 우리 점순이 마음이 가득 들었구나. 고맙다.”
무쌍의 개그에 점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점순아, 고생 많았제. 힘들고 나쁜 기억은 모두 이자뿌라.”
무쌍이 점순을 꼭 안아주었다. 점순은 벌렁거리던 가슴이 오히려 가라앉았다.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한 가슴이다. 이 가슴에 안겨있으면 그 무엇도 자신을 해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옵빠아, 안돼!”
“아악! 저 여시가 부뚜막에 먼저 올랐어.”
“우앙, 나도 편지를 썼어야 해.”
모두 아우성쳤다. 진순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찼다. 무쌍 잔혹사를 낱낱이 알고 있는 그녀는 가슴이 벅찼다. 오빠는 의지와 노력으로 고통과 슬픔의 질곡을 벗어났다. 더하여 타인을 감싸주고 기쁨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오빠는 진짜 사나이다.
‘오빠, 이젠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해.’
진순은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오빠, 돈 벌어서 군불 땔라 카나? 오빠가 늘 말했잖아. 기와집에 쌀밥! 당장 기와집부터 짓자. 오빠는 집을 짓고, 쌀밥은 내가 짓고. 헤헤헤!”
진순이 말하는 와중에 슬쩍 사심을 내비쳤다.
“그래그래. 쌀밥과 기와집 좋지. 아재요, 얼릉 오시소. 케이크를 잘라야지요.”
무쌍이 삼출 아재를 불러서 케이크를 잘랐다. 빵- 연순이 샴페인을 터뜨렸다. 선물도 넘치고, 정도 넘쳤다. 무쌍은 행복했다. 즐겁고 편안했다. 그래서 가족이다. 아버지의 사망과 엄마의 실종은 가족을 많이 만들라는 부처님의 뜻일지도 몰랐다.
한차례 법석이 지났다. 진순이 살짝 말했다.
“오빠, 정리하고 짚은다리로 가자. 엄마가 저녁 준비해놨어.”
“엉? 이게 저녁 아니었어?”
“췟, 돼지 오빠가 딴 말씀 하시네. 이딴 과자와 전 쪼가리로 간에 기별이나 가겠어요?”
촉새 같은 우순이 나섰다.
“임마, 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돼지 오빠 타령이야?”
“헤헤, 많이 먹는 건 사실이잖아요?”
우순이 막내답게 무쌍의 허리를 안고 애교를 떨었다.
“쩝, 내가 돼지보다 많이 먹긴 하지. 진순아, 택시 한 대 불러라.”
“내도 면허 있어. 지난번에 오빠 말 듣고 2종 보통을 따 놓았걸랑. 도로 연수도 끝냈어.”
“됐네! 이 사람아, 야간에 얼어붙은 산길을 십 리나 나가야 혀. 초짜 주제에 객기부리지 말고 콜이나 부르셔.”
무쌍이 매정하게 한방에 잘랐다.
“할 수 있는데.”
진순이 구시렁거렸다. 마당 한쪽에 번쩍이는 시트로앵을 몰아보고 싶어 몸살이 났다.
‘쌈디가 벌씨로 댕기 왔나?’
대충 출발 준비를 마쳤을 때 산정에서 쌈디의 기가 잡혔다. 바로 옆 왜관읍 내에 캠프 캐롤이 있는 탓에 흑인 병사를 간혹 볼 수 있지만, 지역에서 흑인은 여전히 이질적인 존재다. 쌈디가 보통 흑인인가? 외양만으로도 임산부나 노약자는 경기 들린다. 일부러 멧돼지나 잡아오라고 눈앞에서 치웠다.
두정을 비우고 관안(觀眼)을 열었다. 쌈디가 산허리를 타고 날 듯이 뛰어오고 있다. 녀석의 어깨에 50관은 돼 보이는 큼직한 멧돼지가 얹혀있다.
“헐, 점마 저거 진짜 전문이네.”
천생산 인근에는 멧돼지가 없다. 멧돼지가 서식하는 유학산은 천생산에서 직선거리로 10km 이상 떨어져 있다. 멧돼지는 정육점에서 삼겹살 사듯이 잡아올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쌈디가 떠난 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공간지각력 비슷한 능력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오셀롯에겐 한 수 뒤지지만, 선우현이나 아흐마드와는 차원이 다른 초능력자란 소리다. 구리인 줄 알았더니 황금이다.
쿵쿵쿵- 땅이 울렸다. 칠척장신의 시커먼 인간이 커다란 멧돼지를 메고 달려오는 모습은 두억시니가 따로 없다. 처녀들이 봤으면 놀라 자빠질 장면이다. 쿵- 쌈디가 공양간 입구에 멧돼지를 집어 던졌다.
꽤액-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렸다. 기절상태에서 깨어난 멧돼지가 발버둥 쳤다. 발을 묶어놓은 칡덩굴이 끊어질 정도로 힘이 좋았다.
“옴마나!”
공양간을 정리하던 하동댁과 덕산댁이 기겁해서 튀어나왔다.
“쌍아 이기 머꼬?”
“선짓국과 순대 재료요.”
“……”
황당한 소리에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 아줌마도 할 말을 잊었다.
“와키르, 나 잘했지?”
쌈디가 턱 끝을 들고 가슴을 내밀었다. 의기양양할 때 나오는 포즈다.
“임마, 왜 생짜로 잡아왔어? 아지메가 놀랐잖아.”
“너구리 잡아먹었다고 혼났다. 매 맞기 싫다.”
쌈디가 이유 있는 항변을 들이댔다.
“저놈은 죽여도 된다.”
“쌈디 많이 헷갈린다. 똑똑한 와키르가 죽여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구별해 주라.”
“임마, 알아서 해.”
대답이 궁해진 무쌍이 꽥 소리 질렀다. 이젠 이 녀석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이 안 될 지경이다.
“어렵다. 어려워. 죽이면 또 죽였다고 야단치겠지.”
쌈디가 구시렁거렸다. 뻑- 손바닥으로 두개골을 가볍게 내리쳤다. 똑똑해진 쌈디는 멧돼지를 다시 기절시켰다. 놀라운 발전이다.
군대를 다녀온 어둠의 자식들은 어디서 군 생활했던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부대 쪽으로 오줌도 싸지 않는다고 치를 떤다. 그러고는 술만 취하면 군가를 부른다. 나이 삼십이 넘은 상철도 군대 트라우마를 지고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한국 남자다.
군가는 전우가 남긴 한마디에서 진짜 사나이, 멸공의 횃불로 넘어갔다. 영곡마을에서 중곡마로 올라가려면 짚은다리를 지나가야 한다. 신작로에 면한 하동댁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하동댁은 알뜰하기로 소문났다. 저녁 늦게 불을 환하게 켜둘 사람이 아니다.
‘혹시 무쌍이가 왔나?’
상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굴이나 한번 볼까 하고 하동댁으로 발길을 돌렸다. 컹컹- 개가 짖었다. 한 마리가 짓기 시작하자 동네 똥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했다.
“망할 개새끼들, 니들이 육군 병장 김 병장을 알아? 내 집에 내가 들어가는데 왜 지랄이야. 아, 내 집이 아니라 무쌍이 집이구나. 아니 하동댁인가? 가만, 무쌍이?”
술기운이 오른 머리가 오락가락하다가 연관된 기억 메모리를 찾아냈다.
“글마들이 올라간 산길이 진보 아재 산소 올라가는 길 아이가!”
어쩐지 똥 싸고 뒤처리하지 않은 듯 찝찝했더라니! 진보 아재 산소 관리는 자신의 책임이다. 남의 무덤을 몰래 파헤쳐서 유골을 내다 버리는 나쁜 놈들이 있다. 산을 팔 때 분묘기지권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씨바, 조때다!”
상철이 허겁지겁 되돌아 뛰었다. 영곡마을 뒷산은 어릴 때부터 앞마당처럼 놀던 곳이다. 랜턴이 없어도 달빛이면 산길을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다.
영곡마을 뒷산, 건장한 남자 넷이 무덤에 달라붙어서 삽과 곡괭이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봉분을 파헤치고, 묘실을 파 내려갔다. 눈 덮인 산중에 랜턴 불빛이 번쩍이고, 연장 소리가 요란했다.
“어따 일하기 상그랍구마. 헤임은 담배나 한 대 빠소.”
작업 반경이 좁아지자 빠가사리가 김 기사를 밀어냈다.
“그려, 퍼뜩 끝내고 쇠주나 빨자고.”
카악 퉤- 김 기사는 헌걸지게 가래를 뱉어내고 다북솔 밑에 퍼지르고 앉았다. 담배를 뽑아 물고 라이터를 켰다. 칙- 산복에서 불어온 바람이 눈가루를 휘날렸다. 눈보라를 덮어썼지만, 터보 라이터는 끄떡없이 임무를 다했다.
볼이 홀쭉해지도록 궐련을 깊이 빨아들였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몽실몽실 올라갔다. 뒤쪽에서 쿵쿵 퍽퍽하고 묘실을 파내는 소리가 요란했다.
“씨바 조또, 인간 유영출이 볼 장 다 봤구마.”
끗발 날렸던 좋은 시절이 너무나 아쉬웠다. 뒷돈 잘못 처먹는 바람에 총대를 메고 잘렸다. 늙은 년의 운전대를 잡고, 오밤중에 썩은 시체나 파는 자신의 신세가 서글펐다. 봉급은 몇 푼 안 되지만 열배 백배의 수입이 들어오던 꿀 빨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 새끼는 살아있으려나?”
잘못 때려서 척추가 부러진 광부가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그놈의 잘못이다. 눈치 없는 놈이 돈 몇 푼 찔러주면 될 일을 끝까지 부득부득 우겼다. 울화통이 터져서 걷어차는 바람에 사달이 벌어졌다.
“씨바, 디지든 말든. 한두 놈 병신 만들었나. 내가 춥어 디지겠네.”
남이사 죽든 살든 자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당장에 살을 파고드는 한기가 짜증스러웠다.
땅 파는 소리가 뚝 멈추었다. 묘실에서 송장과 닭발이 기어 올라왔다.
“헤임요, 관짝 나왔심다. 근데 뼈다구가 다 썩었어요.”
빠가사리의 말에 김 기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 썩었다고? 아 씨바, 이래서 무당년 말은 믿는 기 아인기라. 남은 뼈가 없디나?”
“두개골과 넓적다리뼈는 형체가 남았는데 그것도 곧 부스러질 것 같심더. 우짜까예?”
김 기사는 고민에 빠졌다. 봉투에 큰 부적 한 장, 작은 부적 열 장이 들어있다. 작은 부적은 머리뼈, 다리뼈, 팔뼈, 갈비뼈 등에 붙여서 부대에 담고, 큰 부적은 부대 입구에 붙여서 낙동강에 던져넣으라고 했다. 뼈가 몽땅 썩었는데 어디에 부적을 붙이란 말인가?
“씨바, 나도 모르겠다. 썩은 가루라도 몽땅 자루에 퍼 담아. 돈을 받았으마 일은 깔끔하게 마쳐야제.”
“알겠심더. 야, 뼈다귀는 아예 뽀사서 부대에 담아라.”
송장과 닭발이 다시 묘실로 내려갔다. 빠각- 빠각- 뼈를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저 개놈의 새끼들 바라!”
상철은 술이 확 깼다. 아까 산을 오르던 놈들이 분명했다. 그놈들이 진보 아재 묘를 파헤치고 있다. 천하의 개 불쌍놈들이다.
“야 이 씨팔 놈들아!”
상철은 앞뒤 가릴 것 없이 한달음에 뛰어 올라갔다.
“저건 무신 개 뼉다구여?”
빠가사리가 상철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얼굴 가려 씨불 놈들아.”
김 기사가 버럭 소리쳤다.
일당이 재빨리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선빵아, 저 새끼 조용히 시켜. 죽이지는 마.”
“옙!”
“개자식들, 니들은 다 디졌어.”
상철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다. 술기가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객기 폭발이다.
“멍청한 새끼가 매를 버네.”
랜턴으로 묘실을 비춰주던 선빵이 달려드는 상철과 맞붙었다. 선빵이란 별명 그대로 상철의 콧등에 주먹을 날렸다.
퍽- “아코!”
뻑- “으억!”
족보는 없지만 밥만 먹으면 주먹질로 날 샌 선빵이다. 현장에서 제법 힘을 쓴다는 상철이 상대도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코가 깨지고 입술이 터져서 피 칠갑이 되었다.
짚은다리 하동댁, 무쌍이 트렁크를 열어서 멧돼지를 꺼냈다.
“어? 살아있네!”
무쌍이 쌈디를 쳐다보았다.
“힝!”
쌈디가 허벌쭉 웃었다.
“여우 같은 놈! 잘했다.”
쌈디의 속셈을 짐작한 무쌍이 빙긋이 웃었다. 이젠 사람과 섞여도 문제없을 만큼 인간화되었다. 아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사부님의 교육을 받았으니 오죽하랴.
“와키르! 인간 피 냄새난다.”
쌈디가 월송산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럴 때는 역시 좀비다. 무쌍이 공간 지각력을 풀었다.
“다섯 놈이다. 죽이지는 말고 몽땅 묶어놔.”
쉭- 쌈디가 월송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흐흐흐, 역시 쓸만한 놈이 있으니 몸이 편해지는구마. 나는 순대나 만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