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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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장 행복한가? 4
무쌍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심상에 떠오른 탁한 기운과 진한 피 냄새, 무장공비인가 했으나 화약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한국땅에서 피비린내 풀풀 풍길 놈은 무장공비가 아니면 질 나쁜 조폭밖에 없다.
“요즘 양아치들은 산에서 풀뿌리 캐 묵나?”
클럽이나 살롱도 아니고 야밤에 월송산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조폭이라니 웃기는 상황이다. 공비든 조폭이든 지저 세계나 응앵가 호수에서 겪은 사건들에 비하면 소꿉장난이다.
시답잖은 양아치 문제로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쌈디는 한 시간 만에 유학산 멧돼지를 잡아온 녀석이다. 월송산에서 설치는 녀석들은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쌈디의 스피드와 감각을 피하지 못한다.
“아지메, 순댓국 만들 수 있겠어요?”
“하모. 순대 속이야 금방 만들 수 있제. 잡채도 충분하고 찹쌀, 파, 생강, 마늘, 두부, 숙주 다 있어. 선지만 뽑으면 일도 아이지러.”
무쌍은 입에 침이 돌았다. 외국을 떠돌다 보면 얼큰한 찌개와 뜨끈한 탕이 늘 그립다. 한국을 떠나면 제대로 된 국물 요리를 맛보기 어렵다. 흔히 세계 3대 탕 요리로 태국의 똠얌꿍, 중국의 샥스핀, 프랑스의 부야베스를 꼽는다.
똠얌꿍은 새우 수프, 샥스핀은 상어 지느러미 수프, 부야베스는 생선과 조개 수프다. 프랑스에서 몇 차례 먹어보았지만, 유명세와 달리 한국의 다양한 탕 요리와 비교하면 2% 부족했다. 그나마 부야베스가 매운탕과 약간 비슷했지만 슴슴해서 입맛이 돌지 않았다.
국과 탕의 차이가 뭘까? 차이가 없다. 단지 어감상 탕이 수준 있어 보일 뿐이다. 밥과 구색을 갖추면 국, 독자적으로 식사할 수 있으면 탕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근거없는 구분이다. 순댓국은 그 자체로 한 끼 식사지만 순대탕이라 칭하지 않는다. 곰탕은 밥과 곁들여 먹지만 곰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한식은 국과 탕이 있어야 구색이 맞는다.
신선한 선지로 갓 만들어낸 순대 맛은 말이 필요 없다. 대구 앞산 밑에 대덕식당이란 선지국 전문 식당이 있다. 손님이 사용한 나무젓가락이 손수레로 한가득 나온다는 식당이다.
무쌍도 신선한 맛에 이끌려 BOSS에서 웨이터 노릇 하던 시절에 자주 들렀다. 값도 싸지만 신선한 선지를 재료로 사용해서 인기가 높았다. 요리의 첫째 조건은 재료다. 재료 관리를 못 하면 망한다. 피를 꽉 채운 순대와 선지해장국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신선한 선지가 준비되었으니 선짓국과 순대 만들기에 딱이다.
멧돼지가 움찔거렸다. 퍽- 손바닥이 멧돼지 두개골에 슬쩍 접촉했다가 떨어졌다. 공진파를 이용한 격산타우 수법이다. 뇌가 곤죽이 된 멧돼지가 부르르 떨었다.
“언냐, 멧돼지 순대는 맛이 어떠까?”
무쌍과 하동댁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순이 물었다.
“돼지와 별다를 거 있겠어. 부엌칼하고 양푼 큰 거 가져 온나. 저거 덩치가 커서 피가 억수로 많이 나올 끼라.”
“언냐가 모가지 딸라 카나?”
“그라마 니가 할 끼가?”
우순이 화들짝 물러났다. 돼지도 아니고 엄청나게 큰 멧돼지다. 시뻘건 눈깔만 봐도 오금이 저렸다.
“내는 무서버서 못 한다. 언냐는 안 무섭나?”
막내로 태어난 우순은 언니들 덕분에 별 고생하지 않고 자랐다. 농사일은 물론이고 집안일도 손대지 않고 곱게 자랐다.
“내는 절망이 젤로 무섭다.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능 기라.”
“언냐가 와 할라 카노. 그런 건 오빠 시키라.”
“주디 닥쳐, 보자 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어. 오빠가 니 하인이가?”
서슬 퍼런 진순의 기세에 우순의 목이 쑥 들어갔다.
“봄 되마 고등핵교 들어가제? 니가 핀하게 공부한 기 다 오빠 덕인 거라. 오빠가 오냐오냐한다고 싹퉁머리가 그게 머꼬. 말순이 불러온나.”
진순이 정색하자 찬바람이 쌩쌩 돌았다.
“언니 제발!”
우순이 싹싹 빌었다. 자매가 다섯이나 되다 보니 바로 윗 기수가 군기 반장이다. 말순이 언니가 큰언니에게 혼나면 자신은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고향에 돌아온 오빠가 쪼매라도 편하도록 챙겨드리지는 못할망정 피를 보라고 해? 절에서도 오빠를 돼지라고 했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이 정과 버르장머리도 아직 구분 못하나? 한번만 더 버르장머리없이 굴마 다리 몽댕이 부러질 줄 알아.”
“알았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매서운 추궁에 우순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빠는 무섭지 않지만, 큰언니가 화내면 너무 무섭다. 말 한마디 잘못한 우순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틈에 나타난 말순이 우순의 귀를 잡고 집 뒤로 끌고 갔다.
“휴우! 내가 너무 심했나. 욕구불만이 쌓였나!”
진순은 한숨을 쉬었다. 출장지가 전장인 오빠다. 이번 출장에 얼마나 많은 피를 덮어썼는지 모른다. 휴가 중에라도 피를 보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울컥하게 만들었다. 피를 본 전장의 군인은 성욕이 강해진다는데 목석 같은 오빠는 그것도 아니다.
저승사자의 도래를 알지 못하는 선빵은 제대로 신 났다. 주먹과 발에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일그러진 촌놈 얼굴, 짜릿한 비명, 오랜만에 느껴보는 손맛에 기분이 째졌다.
“아코!”
샌드백 치듯 상철을 패던 선빵이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상철은 방심을 틈타 양아치 불알을 걷어차고 튀었다. 어물거리다간 맞아 죽을 판이다.
“씨불놈들, 니들은 이제 다 디졌어.”
산 능선 쪽으로 줄행랑을 놓던 상철이 뒤돌아서서 감자를 먹였다. 능선만 넘으면 월송산이다. 무쌍은 어릴 때부터 싸움이라면 귀신이다. 진보 아재 무덤을 파헤친 놈들을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상철이 휙 돌아서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병신, 저 새끼 잡아.”
놀란 김 기사가 피우던 담배를 팽개치고 벌떡 일어섰다. 빠가사리가 상철을 쫓았다. 묘실에 있던 송장과 닭발도 추격에 나섰다.
“아 씨바, 쪽 다 팔았네.”
창피를 당한 선빵이 삽을 들고 흉흉한 기세로 뒤따랐다. 달 밝은 밤에 다섯명이 도망가는 한 명을 뒤쫓는 황당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월송산은 말이 없다. 인간들이 무슨 짓거릴 하든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닭발, 왼쪽을 막아라. 선빵 이 새끼야, 빨리 뛰지 못해. 무조건 직선으로 달려가서 앞지르란 말이야.”
빠가사리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산정을 도주로로 택한 상철의 선택은 탁월했다. 평지였으면 따라잡혔겠지만, 빠가사리 패거리는 지형에 익숙지 못했다.
술이 깬 상철은 꿩 새끼처럼 바위와 계곡, 숲 그늘을 활용해서 잘도 도망갔다. 빠가사리 패거리는 우월한 체력에 불구하고 좀체 따라잡지 못했다.
“에이 씨, 할 수 없구마.”
빠가사리가 투척용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야, 죽이면 일이 커져.”
“우리 얼굴을 봤으마 우얄끼요. 내가 짭새에게 붙잡히마 헤임이 책임 질끼요?”
“에이 쓰벌!”
김 기사는 입을 꾹 닫았다. 빠가사리는 공갈 폭행죄로 수배 중이다. 잔뜩 신경이 곤두선 놈에게 뭐라 하기도 곤란했다.
“존만이들이 고래 심줄을 삶아 묵었나!”
상철은 결사적으로 발을 놀렸지만,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술기운이 남은 다리가 힘을 받지 못하고 허청거렸다. 떼어놓았다 싶으면 따라잡혔다.
영곡마을 뒷산은 월송산과 이어져 있다. 능선을 넘어서자 월송산 왕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상철은 한 시름 놓았다. 짚은다리 불빛이 보였다. 넉넉잡고 이삼십 분이면 놈들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다. 상철이 도주로를 가늠했다. 야간에 돌너덜로 들어가면 발목 부러지기 십상이다.
‘찬스!’
상철이 멈칫하는 순간 빠가사리는 기회를 잡았다. 나이프가 번쩍 날았다.
퍽- “아악!”
어깨에 칼이 깊숙이 박혔다. 퍽 엎어진 상철이 산비탈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허억!”
고주배기에 허리가 턱 걸렸다. 굴러내려 가던 몸이 멈추고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제야 어깨가 타는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잡히면 죽는다.’
상철은 입을 틀어막고 바위 아래로 잽싸게 기어들었다. 예전에 봐 두었던 너구리 굴이다. 무쌍이와 너구리를 잡는다고 입구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굴 안으로 몰아넣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찾아!”
양아치들이 수색에 들어갔다.
쓸만한 놈, 아니 좀비 쌈디는 무서운 속도로 월송산을 치달렸다. 무쌍과 쌈디는 심령이 통한다. 주인의 적대감을 느낀 쌈디는 신이 나서 달렸다. 주인이 죽이지 말라고 했지 때리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쉭쉭- 220cm 장신이 버들가지처럼 흐느적거리며 산을 타고 올라갔다.
좀비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생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의 피 냄새는 십 킬로 밖에서도 포착할 수있다. 쌈디는 단숨에 왕소나무 아래쪽 너구리굴에 숨어있는 상철을 찾아냈다.
“으헉, 도 도깨비!”
굴속에 숨죽이고 있던 상철이 숨넘어갔다. 달빛이 가려지는가 했더니 어둠 속에 시뻘건 눈알 두 개가 둥둥 떠서 노려보았다. 피부가 검은 쌈디는 야간에 번득이는 눈과 하얀 이빨만 보인다. 웬만한 간담을 지닌 사람도 식겁할 노릇이다.
“너, 이름 뭐냐?”
“사 상철, 김상철입니다.”
무심결에 대답한 상철은 가슴을 쳤다.
“아이고, 난 이제 죽어삣다.”
도깨비가 이름을 물을 때 멍청하게 이름을 대면 혼을 뺏긴다고 했다. 그때는 미운 놈 이름을 불러주라고 했는데 깜박했다.
쌈디는 쌈디대로 고민에 빠졌다. 약해빠진 인간이다. 주인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인간을 왜 묶어두라고 했을까? 쌈디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고등 수학이다.
“김상철아, 주인이 묶어두라고 했다. 맞고 묶일래? 그냥 묶일래?”
“뭔 도깨비 소리여? 이젠 안 속아.”
도깨비가 묶어놓고 영혼을 빼갈 모양이다. 암담한 얼굴이 된 상철은 억지로 몸을 비벼서 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김-상-철, 엉아 화나면 클 난다.”
“으으, 부처님, 예수님, 알라, 오방신, 착한 상철이 살려 주십셔. 지난주에 술 묵고 자갈마당에 갔심더. 어제는 꽃다방에서 미스윤과 거시기 했심더. 마누라 몰래 오입한 죄밖에 없심더. 살려만 주시마 오입도 안 하겠심더.”
“크크크!”
쌈디가 킬킬 웃었다. 주인 흉내가 무척 재미있다. 에델 아가씨가 좋지만, 재미는 별로 없다. 주인 옆에 있으면 너무 재미있다. 게다가 여자도 많다.
“송장, 닭발, 저쪽에서 소리 났다. 빨리 튀어.”
빠가사리가 소리 질렀다.
“김 기사님, 저쪽입니다.”
양아치들이 숲을 헤치는 소리가 와삭와삭 들렸다. 상철은 암담해졌다. 저놈들은 서슴없이 단검을 던지던 놈들이다. 칼이 꽂혀있는 왼쪽 어깨가 문제다. 출혈 때문에 칼을 뽑기도 곤란했다. 굴 앞에 도깨비가 버티고 있으니 도망가기도 틀렸다. 조용히 무쌍에게 알리면 될 것을 객기부린 대가가 너무 컸다.
“아부지, 이래저래 오늘이 우리 집 대가 끊어지는 날인가 봅니더. 딸밖에 못 맹그러서 지송함더.”
“김상철, 꼼짝 말고 기다려. 도망가면 목을 뽑는다.”
둥둥 떠 있던 시뻘건 눈알 두 개가 무서운 경고를 남기고 사라졌다.
“아, 씨바! 내가 미쳤지. 무신 정의의 사도라고 나서서 이 꼬라지고.”
상철은 후회막급이었다. 백번을 고쳐 생각해도 살아날 길이 없다. 무덤 파는 놈들은 세 종류가 있다. 부장품을 훔쳐가는 도굴범, 명당을 차지한 유골을 파내고 자신의 부모 유골을 매장하는 환시범(換屍犯), 관습상의 지상권인 분묘기지권을 소멸시키려는 기지범(基地犯)이다.
셋 중 제일 극악한 놈이 기지범이다. 멍석말이 난장을 당해도 싼 놈들이 오히려 목격자를 죽이자고 달려드는 판이다. 이미 칼을 맞은데다 말로만 들었던 도깨비까지 나타나서 목을 뽑는다고 난리다. 상철은 비좁은 너구리굴에서 한숨만 푹푹 뿜었다.
선빵은 키를 넘는 억새와 우거진 꿀밤나무 관목을 헤집고 소리 난 방향으로 뛰었다. 나뭇가지에 긁힌 얼굴에서 피가 튀고, 몇 번 엎어져서 손이 까졌지만, 결사적으로 뛰었다. 놈을 잡지 못하면 어차피 빠가사리 형님에게 맞아 죽는다.
“억!”
난데없이 눈앞에 시커먼 물체가 나타났다. 텅- 속도를 줄이지 못한 선빵은 자동차에 받힌 듯 튕겨 나갔다.
“머꼬?”
선빵의 눈이 화등잔으로 변했다. 거대한 그림자, 뻘건 눈동자가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맞고 묶일래? 그냥 묶일래?”
“귀 귀신!”
“망할 놈, 나는 귀신이 아니라 쌈디다.”
귀신은 쌈디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귀신이란 말에 들어있는 의미가 사람, 아니 좀비를 짜증 나게 하였다.
뻑- “악!”
둔탁한 파열음과 짧은 비명이 터졌다. 곰 발바닥 같은 손바닥에 맞은 선빵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알곡 털어낸 짚단 던지듯 붕 날아간 선빵이 퍽하고 땅바닥에 쑤셔박혔다.
엎어진 선빵의 고개가 기형적으로 꺾였다. 쌈디가 뒤통수를 한 손으로 잡아서 들어 올렸다. 선빵의 눈에서 빛이 스르륵 꺼졌다. 선빵 좋아하던 선빵은 쌈디의 선빵 한 방에 골로갔다. 선빵이 0.7mm 박판을 두른 자동차라면 쌈디는 200mm 갑바를 두른 장갑차다. 피지컬 차이가 예기치 못한 참극을 불렀다.
“이거 왜 이리 허약해. 클났다. 주인님이 화내면 큰일인데.”
쌈디가 뒷머리를 득득 긁었다. 하는 짓이 꼭 무쌍을 닮았다. 그러고 보니 피를 마실때가 되었다. 살기 위해서는 생피를 마셔야 하고, 동물보다 인간의 피가 맛있다. 산사람을 죽일 수야 없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