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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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장 행복한가? 6
기분이 좋아진 쌈디가 흥얼거리며 사냥물을 질질 끌고 산 위로 올라갔다. 박자를 무시한 빠른 흥얼거림이 묘한 중독성을 불렀다. 김 기사의 머리가 좌목우암(左木右岩)에 부딪혀 퉁퉁거리는 소리가 박자를 맞추었다.
일을 마친 쌈디야 기분 좋지만, 발목 잡혀 개처럼 끌려가는 김 기사의 상태는 과히 좋지 못했다. 두툼한 방한 파카와 누비 솜바지를 입은 덕분에 큰 부상은 피했지만,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가 혀를 찰 황당한 상황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김 기사는 결사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망할 새끼야, 난 돼지가 아니라고오~”
악을 썼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쌈디는 인간이 도망친 거리만큼 괘씸죄를 적용했다. 처음부터 괴롭히려는 사악한 의도가 있는데 불평 따위 들어줄 이유가 없다.
우다다다-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쏜살같이 끌려가는 바람에 애걸할 여유마저 사라져버렸다.
“으갸갸갸!”
김 기사의 비명이 인적없는 산중에 메아리쳤다.
푹- 날카로운 부엌칼이 경동맥을 잘랐다. 양푼을 들고 대기 중이던 연순이 잽싸게 피를 받았다.
“껍데기를 빗끼주까?(벗겨줄까?)”
“오늘은 오빠 생일인 기라. 생일에 피를 보마 우야노. 덕산 아재가 수고 좀 해 주시소.”
“오이야, 그거야 내 전문이제.”
삼출 아재가 주머니칼을 꺼내서 숫돌에 쓱쓱 갈았다. 진순과 연순이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물을 바가지로 퍼서 멧돼지 몸통에 끼얹었다.
삼출 아재가 익숙한 솜씨로 거친 털을 싹싹 밀어냈다. 연순이 뜨거운 물을 연신 퍼부어서 면도질을 도왔다. 털깎기를 끝낸 삼출 아재가 배를 쭉 갈랐다. 진순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 내장을 고무 다라이에 담아서 수돗가로 갔다.
진순과 연순은 창자를 주물러 세척하고, 뒤집어서 오물을 빼내고 다시 씻었다. 삼출 아재는 사지 각을 떴다. 진순이 뼈를 발라서 생강과 마늘을 듬뿍 다져 넣은 양념에 재웠다. 야생 짐승 고기는 곧바로 먹으면 노린내가 난다. 세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허어!”
무쌍이 부지중에 감탄했다. 역시 진순이 자매다. 젊은 처녀가 서슴없이 멧돼지 멱을 따고 창자를 뽑아서 주무르기는 쉽지 않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농사일과 집안일에 이골난 진순은 못 하는 게 없다.
물론 말릴 생각은 없다. 돈 있는 부모 만나서 마약이나 빨며 허송세월하는 화자 같은 여자도 많다. 싸늘한 날씨에 불구하고 이마에 땀 맺힌 저 얼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을 돌아보면 남자와 여자의 일이 다르지 않다. 차드에는 12살짜리 소녀가 돌격소총을 들고 설친다. 하이에나가 잡은 영양 새끼를 뺏으려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애 엄마도 있다. 닥치면 못 할 일이 없다. 이 땅의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진순이처럼 억척스럽게 살았다.
“연순아, 그쪽 끝을 잡아라.”
진순이 준비된 순대 속 재료를 선지와 버무려서 창자에 밀어 넣었다. 흔들어서 다져 넣고, 다시 속을 채운 다음 양쪽에서 출렁출렁 흔들어 다졌다. 속을 꽉꽉 채운 순대는 가마솥으로 직행했다.
한국의 사오십대 아줌마는 초인이다. 찌고, 굽고, 부치고, 삶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푸짐한 잔칫상이 준비되었다. 늦은 밤, 요란한 웃음과 떠들썩한 소음이 그칠 줄 몰랐다. 무쌍은 흥겨웠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람 사는 멋이다.
“으, 저럴 수가!”
빠가사리 일당은 몸서리쳤다. 발목을 잡혀 끌려온 김 기사의 몰골은 사람 형상이 아니다. 넝마가 된 옷, 온통 벗겨지고 찢긴 피부, 핏물에 담갔다가 건져 올린 혈구 덩어리다. 차라리 깔끔하게 뼈다귀가 부러진 자신들의 처지가 훨씬 좋았다.
“도망치면 이렇게 된다.”
쌈디의 말에 빠가사리가 부르르 떨었다. 틈을 봐서 도망치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쌈디는 김 기사를 칡덩굴로 꽁꽁 묶어서 양아치 일행 가운데 던져놓고 너구리 굴로 향했다.
“어이, 그만 나와.”
“시 싫다!”
상철은 죽어도 나갈 생각이 없었다. 겨우 3m 길이의 굴이지만 버티는 데까지 버텨볼 작정이다. 어차피 도깨비는 새벽이 오면 사라진다.
“자진 납세하면 때리지 않는다.”
“으~씨바, 세상이 우찌 될라꼬 도깨비까지 세금 타령이고. 안 나가. 절대 못 나가.”
“절대? 주인이 말하기를 세상에 절대는 없다고 했거든.”
쌈디가 피식 웃고는 굴을 덮은 바위를 두 손으로 잡았다. 적어도 일 톤을 웃도는 큰 바위다. 두 발을 지면에 단단히 고정하고 힘을 불끈 썼다.
“끙!”
우지직- 콰앙-
바위가 번쩍 들렸다가 옆으로 굴렀다. 우르르 콰앙- 바위가 산사면을 맹렬히 굴러내려갔다.
천장이 사라진 굴속에 달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
상철은 멀뚱멀뚱 눈만 굴렸다. 꿈인지 생신지 구분되지 않았다. 퀭한 눈이 뻥 뚫린 하늘과 쌈디를 분주히 오갔다.
“김상철아, 절대란 말 함부로 쓰지 마.”
쌈디가 썩은 미소를 지었다. 웃음이 웃음이 아니다. 험상궂은 얼굴이 일그러지자 흉신 악귀가 따로 없다. 상철은 혼이 쑥 빠졌다. 역시 도깨비가 맞다.
“나, 나는 저놈들과 한패가 아니다.”
상철이 정신없이 양손을 흔들었다.
“상관없다. 주인이 묶어두라 했다.”
쌈디가 상철의 뒷덜미를 잡아서 번쩍 들었다.
“아악, 살려줘!”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철이 악을 썼다.
“돼지 몰러 나간다~”
상철도 속절없이 칡덩굴에 꽁꽁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않은 덕분에 얻어맞지는 않았다. 쌈디는 지극히 평화적인 좀비다. 빠가사리 일당도 덤비지 않았으면 얻어터지고 뼈 부러질 일이 없었다.
‘뭐지?’
쌈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간이 묻힌 장소가 두드러져 보였다. 주인에게 들킬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인가 빠졌다.
“옳거니!”
손바닥으로 이마를 짝 때렸다. 주인은 사람이 묻힌 곳에 커다란 돌을 세웠다. 쌈디가 넓적한 바위를 번쩍 들어다 매장지에 쿵 내려놓았다.
“우와!”
묶여있던 인간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인간이라면 자동차 크기의 바위를 번쩍 들어 옮길 수 없다. 겉모습만 인간이지 귀신이 맞다. 상철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어이 시커먼 분, 당신 도깨비 맞제?”
불쑥 물었다. 이왕 죽을 바엔 호기심이라도 풀고 싶었다.
“도깨비? 모르는 단어다.”
“도깨비가 도깨비를 모린다꼬? 내는 이 동네 사람인 기라. 진짜 도깨비는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을 해치지 않거든. 우리끼리 잘 지내보자고.”
“이 동네에 산다고?”
쌈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은 주인이 태어난 곳이라 했다.
“혹시 내 주인을 아나?”
“주인? 무신 도깨비 개울 건너가는 소리를 하노.”
상철은 어리둥절했다. 도깨비에게 주인이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다. 도깨비가 도깨비 같은 소리를 하니까 알아들을 수 없다. 신들린 사람만이 도깨비 말을 알아듣는다는 어른들 말씀대로다.
“내 주인은 와키르다. 이곳이 고향이라 했다.”
“머라꼬? 고향이 짚은다리라고?”
“지푼다리는 아프리카에 있다.”
상철이 엔네디에 건설 중인 지푼다리를 알 리 없다. 오리무중의 말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역시 도깨비 말은 이해 불가다.
“내 주인은 저곳에 있다. 나도 빨리 가야 한다.”
쌈디가 환히 불 켜진 하동댁을 가리켰다.
“저긴 하동댁인데……. 설마? 니 주인 이름이 머꼬?”
“위대한 뚜바이부르파 시다.”
쌈디가 자세를 바로 하고 엄숙히 말했다. 상철은 뚜바이부르파가 뭔지 모르지만, 무쌍이 휙 떠올랐다. 하동댁과 연관된 인물은 무쌍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워낙 특별했던 녀석이다. 도깨비와 친구를 먹어도 놀랍지 않은 녀석이다.
“혹시 뚜바이부르파의 왼쪽 뺨에 세로 흉터와 가로 흉터가 있나?”
“어, 맞다. 주인님의 뺨에 흉터가 다섯 개 있다.”
쌈디는 인성을 찾았지만, 아직 복합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무쌍의 인상착의를 술술 불었다. 무쌍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라고 미리 주의를 시키지 않은 탓이다. 다행히 상철은 모종의 사연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봐, 내는 니 주인의 형이다. 얼릉 풀어도고.”
상철이 반색했다. 살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짓말이다. 주인은 얻어맞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숨지도 않는다. 주인의 사부는 주인보다 세다. 주인의 형이면 주인보다 세야 한다. 너는 주인의 형이 아니다.”
“아 놔, 미치겠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묘하게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점마들은 니 주인에게 나쁜 짓을 한 인간들이다. 내는 점마들을 쫓아낼라 카다 이 꼴이 되삣다. 그러니까 나는 착한 사람이다.”
“저것들이 주인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불가능한데.”
쌈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따위 허약한 인간은 개미떼처럼 몰려와도 주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이봐 도깨비, 난 니 주인의 친구다. 빨리 만나야 한다.”
상철은 애가 탔다.
“아까는 형이고 이젠 친구냐?”
“아, 그 새끼, 아니 그분 말 많네. 가보면 알 거 아이가.”
쌈디가 생각에 잠겼다. 허약해 빠진 놈이 주인의 형이라는 말은 믿어지지 않지만, 친하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건 그러네. 너희는 꼼짝 말고 기다려.”
쌈디가 상철을 번쩍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쌈디가 사라지자 양아치 패거리가 와글거렸다.
“씨바, 조때다. 촌놈 새끼가 귀신과 아는 사인가 보다.”
김 기사가 칡덩굴을 끊어보려고 몸부림쳤다. 무덤 주인이 나타나면 몽둥이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닥쳐 배신자 새끼야. 퉤.”
빠가사리가 눈을 부릅뜨고 김 기사에게 침을 뱉었다. 누런 가래침이 김 기사의 이마에 철썩 붙었다. 김 기사가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았겠는가.
“존만이가 아래위도 없구마. 뒈질래?”
“아래위라꼬? 배신자 씨버럴 놈아, 니같은 선배 둔 적 없거든. 퉤!”
꽁꽁 묶여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욕설과 침 뱉기밖에 없다. 닭발과 송장도 침 뱉기에 합세했다. 컴컴한 산중에서 난데없이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침 뱉는 소리가 요란했다. 천중의 상현달이 지저분한 인간 넷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우순이 트레이에 순댓국과 순대 쟁반을 받쳐 들고 무쌍의 옆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빠, 맛있게 드세요.”
“아이고, 우리 우순이 철들었네. 시집가도 되겠어.”
무쌍은 우순이 혼나는 상황을 스테레오로 들었지만 내색지 않았다. 하동댁은 하동댁의 법이 있다. 역시 대단한 진순이다. 버릇없는 동생을 일시에 개조시켰다. 막 순댓국에 숟가락을 담그던 무쌍이 움찔했다.
‘응! 쌈디?’
날 듯이 산에서 내려오는 쌈디의 기척이 잡혔다. 슬며시 자리를 떴다.
“오빠, 어디가?”
“응, 화장실!”
대문간을 나서면 월송산이 바로 보인다. 물건을 메고 펄쩍펄쩍 뛰어 내려오는 쌈디가 눈에 들어왔다.
“점마가 또 멧돼지를 잡았나?”
쉬이익- 쿵- 쌈디가 하동댁 뒤쪽을 흐르는 개울을 건너뛰었다.
“와키르 명령 완수했다. 전부 꽁꽁 묶어 놓았다.”
“잘했다. 그건 머꼬?”
무쌍의 시선이 쌈디의 어깨에 머물렀다.
“와키르의 형이라고 구라를 치더라. 이름이 김상철이다.”
“뭣, 김상철?”
화들짝 놀란 무쌍이 얼른 상철을 받았다.
“으~ 무쌍아.”
상철이 웅얼거렸다. 상철은 칼은 맞은 데다 준마처럼 달리는 쌈디의 어깨에서 풍랑 맞은 나룻배처럼 흔들렸다. 육신도 고단하고 혼은 구천 입구에 다다랐다. 찐빵 얼굴에 피 칠갑한 행색이지만 상철이 분명했다.
“얼래! 진짜 상철이 형이네. 이기 무신 꼴이고. 칼 빵까지 맞았구마.”
쌈디의 시커먼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덜떨어진 인간이 주인의 형일 줄이야!
“무쌍아, 저 시커먼 도깨비는 머꼬?”
“도깨비? 크크크!”
야밤에 산속에서 쌈디를 만나면 도깨비라 여길만했다.
“사람 맞나?”
“어허 이거 피를 많이 흘렸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네. 형, 정신 차려.”
짝- 짝- 뺨을 왕복으로 얻어맞은 상철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오! 이 자슥아, 니가 내를 죽일라 카나. 얼릉 구급차나 불러.”
“이쑤시개에 찔렸는데 병원은 무신 병원. 돌팔이 의사와 유능한 간호원이 있으니 걱정하덜 말어.”
무쌍은 상철을 번쩍 들고 비어있는 사랑채로 들어갔다.
“자 잠깐, 클났다. 양아치 새끼들이~”
“치료부터 하자고. 형이 다친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능기라.”
“아이고, 이 자슥이 나를 감동 먹이네.”
상철이 비시시 웃었다. 헛말이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야야, 거기 아이다. 기지범 양아치들이 진보 아재 무덤을 파헤친 기라.”
“아부지 무덤을 팠다고? 그걸 와 이제 이야기하노?”
무쌍의 눈에서 시퍼런 빛이 와르르 쏟아졌다.
“임마, 이야기할 틈을 주고 지랄해라. 그 새끼들이 진보 아재 무덤을 파헤치다가…….”
“그러니까 아부지 유골을 반출하지는 못했다 이거제?”
“응, 그전에 나하고 싸움이 붙었거든.”
“알았어. 죽은 아부지보다 살아있는 형이 먼저인 기라.”
쌈디가 불러 온 진순이 상철을 보고 놀랐다.
“상철이 오빠 비스무리한 사람이네. 우야다 이래 됐노?”
“찐순이 가스나야, 비스무리는 무신 얼어 죽을 비스무리고. 내다 내.”
상철이 버럭 했다.
“엉, 원판이었어? 소리치는 거 보이끼네 아직은 살만한가 보네.”
진순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무쌍이 백팩에서 구급낭을 꺼냈다. 상철의 허벅지에 아트로핀을 꼽고, 어깨에 박힌 나이프를 쑥 뽑아냈다. 피가 쏟아지기 전에 잽싸게 혈관을 공진파로 눌러 붙였다. 진순은 명색이 간호학과 졸업반이다. 익숙한 솜씨로 상처를 소독하고 압박붕대로 동여맸다. 파상풍 예방약과 항생제를 먹이고 자잘한 상처는 연고를 바르고 지혈밴드를 붙였다.
“살짝 긁혔구마. 남자가 그깟 걸로 징징거리지 말라꼬.”
무쌍이 상철의 어깨를 툭 치고는 월송산으로 휭 사라졌다. 쪼잔하게 보이기 싫어서 대범한 척 했을뿐이다. 속은 이미 숯덩이가 되었다. 그 뒤를 쌈디가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무쌍이 점마도 도깨비가?”
상철이 멍하니 월송산을 올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