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48
x 348
제36장 행복한가? 9
연화교 뚝방 사건을 꾸민 이기수도 장씨 개인 기사였다. DGSE의 중동/아프리카 과장처럼 장씨 개인 기사도 줄줄이 무쌍에게 아작나는 셈이다. 그것 또한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허어~”
절로 탄식이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은 아니다. 피하고 싶은 대답이었을 뿐이다. 이놈이 장씨 개인 기사라면 알쪼다. 개인 기사는 경호원 겸 잡일꾼이다. 온갖 지저분한 일과 구린 일을 도맡아 한다.
맥이 탁 풀린 무쌍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동댁 아지메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시집온 이래 장씨의 모함과 질시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중곡마로 분가해 나갔다고 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건만 바람이 멈추지 않는구나.”
질기기가 고래 심줄, 아니 보스사우루스 힘줄을 능가하는 여자다. 씁쓸했다. 못된 여자와 인연이 맺어지니 좋은 일은 없고 악연만 끝없이 이어졌다.
짚은다리 큰집에서 보낸 5년의 노예 생활, 수차례 덮어쓴 도둑 누명, 퇴학과 감옥살이, 쫓기듯이 떠난 고향, 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 원한을 가질 사람은 자신인데 멍청한 년이 늙어서도 멈출 줄을 모른다. 무쌍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부적의 용도는 방자(方子)냐?”
방자는 타인을 위해 하려는 목적하에 행해지는 특정한 의례적 행위 조작을 말한다. 흑주술(black magic)의 일종으로 무고(巫蠱)라 칭하기도 한다.
중국과 부두교에서는 고라는 영체를 벌레에 이식시키는 영매 주술을 주로 사용했다. 반면에 한국은 조선 시대부터 부적, 제웅, 고양이, 쥐 같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나 동물을 이용하는 방자법이 널리 퍼졌다. 궁중, 사대부, 여염까지 방자가 무차별로 퍼지자 조선 중기부터 방자는 중범죄로 처벌받았다.
“……”
유영출은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 시신에 방자함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눈앞의 도깨비 인간은 훼손한 유골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섣불리 대답했다간 사모님까지 해를 입는다. 난감했다.
“와키르, 저놈이 머릿속에서 자갈 굴리는 소리가 와글와글 들린다.”
쌈디가 무쌍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었다. 대답이 늦어지면 발가락을 부수라고 했다.
“묵비권인가? 장소도 상대도 잘못 골랐어. 쌈디, 저놈의 허벅지를 바짝 구워라. 화약 가루를 올리고 불만 붙이면 된다.”
“메흐씨!”
화약과 터보 라이터를 받아든 쌈디가 히죽이 웃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 불꽃놀이를 했던 즐거운 기억이 들어있다. 불만 보면 즐거워진다.
“자, 잠깐, 말하겠다.”
“유영출아 늦었다. 화끈한 맛을 보면 저절로 말이 술술 나온다. 나 쌈디의 말씀이다.”
유영출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완력 차이가 20배면 저항이란 말 자체가 성립 불가능이다. 쌈디가 유영출의 배 위에 척 올라타서 코브라 트위스트로 다리를 고정하고 허벅지에 화약을 올렸다.
120kg 거구에 눌린 유영철이 뒤집힌 물방개처럼 허우적거렸다. 쌈디의 등과 뒤통수에 결사적으로 주먹세례를 퍼부었지만, 쌈디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일을 진행했다. 칙- 피시시- 화약이 확 타올랐다.
“끄아악!”
단백질 타는 냄새와 비명이 굴티를 가득 채웠다. 앗 하는 사이 허벅지 근육이 어린애 손바닥만큼 새카맣게 타버렸다. 쇼크를 이기지 못한 유영출이 축 늘어졌다. 쌈디가 유영출의 검지를 잡았다.
“말한다. 말한다니깐. 제발, 으흐흐!”
정신이 번쩍 든 유영출이 애원했지만, 좀비에게 통할 리 없다. 뿌드득- 여지없이 손가락뼈와 근육, 힘줄이 뭉개졌다. 피와 뒤섞인 손가락이 오징어 다리처럼 흐느적거렸다.
“손가락을 냅두란 지시는 듣지 못했거든. 아차 발가락인데 실수했다.”
쌈디의 시선이 발가락으로 향했다. 하얗게 질려있던 유영철의 얼굴이 다시 꺼먼색으로 물들었다. 후다닥 두 발을 빼냈다. 석탄처럼 검은 얼굴에 뒤룩거리는 허연 눈동자, 두툼한 입술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날카로운 송곳니, 얼굴이 곧 흉기인 쌈디다.
“으흐흐, 사모님 지십니다. 작은 부적은 축대 뼈에 붙이고 큰 부적은 뼈를 담은 자루 봉인용입니다. 부대를 봉인해서 낙동강에 가라앉히라 했습니다.”
“이유는?”
“무당의 말에 의하면 부관참시 영겁속박의 술이라 했습니다. 유골의 뼈를 조각내서 속박 부적을 붙이면 자손이 끊어지고, 있는 자손도 객사한다고 들었습니다. 낙동강에 득실대는 지박령이 유골의 혼령에 들러붙으면 영원히 승천하지 못한다더군요. 사모님은 그전에도 무당을 불러서 몇 차례 방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삼혼칠백이 흩어진 유영출은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렸다.
“빌어먹을 년, 죽여달라고 아예 고사를 지내는구마.”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객사를 방자한단 말인가! 시동생의 후손을 끊겠다고 유골을 쪼개고 부적을 붙이는 미친년, 조카를 함정에 빠뜨려 인생을 망친 것도 모자라 객사하란다.
세상에 어찌 이런 악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최고의 악녀로 회자하는 한나라 여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긴 시리아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객사할 뻔했으니 제법 영험한 무당인 셈인가?
“장씨와 거래한 무당의 당집이 어딘가?”
“팔공산 갓바위 올라가는 입구 마을에 있습니다. 영매보살을 찾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무쌍은 영매보살을 단단히 기억해 두었다. 무속 영업이야 자유지만 남의 무덤을 파라고 사주하는 악당을 내버려 두면 또 어떤 미친 짓거리를 할지 모른다.
“유영출, 니놈이 해코지한 유골의 외동아들이 나다. 니놈이 모시는 향심섬유 안주인이 죽이고 싶어하는 장본인이지. 내 행동이 이해되나?”
“바 박무쌍!”
유영출이 펄쩍 뛰었다.
“흐흥, 기사까지 내 이름을 아는 걸 보니 장씨와 화자가 엔간히도 씹는 모양이구마.”
무쌍이 비시시 웃었다.
“으으!”
유영출은 활활 타는 모닥불에 불구하고 한기가 쫙 들었다. 잔등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었다. 사모님이 조심하라고 수차례 당부한 박무쌍이 이렇게 끔찍한 놈일 줄이야! 사모님은 이놈의 무서움을 백분지 일도 알지 못하고 있다. 유영출은 아득한 절망감에 떨었다.
“박 사장은 잘 있나?”
“회사에 묻혀 지냅니다. 사모님과 사이가 나빠져서 몇 달 전부터 아파트를 얻어 나갔습니다.”
“가족과 회사 상황을 요약해서 설명해라.”
“사장님은 만성 폐 질환이 악화하고, 뇌수술을 받는 바람에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향심섬유는 공장을 늘려서…….”
유영철은 머리를 쥐어짜서 최대한 상세히 설명했다. 이미 지옥에 발을 들여놓았다. 실낱같은 구명줄이라도 잡으려면 악귀의 자비를 얻는 수밖에 없다.
“크크크 크크크크!”
15톤 프레스에 짓눌려 짜부라진 웃음이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웃음소리에 분노, 한, 증오, 온갖 음차원의 감정이 뒤섞였다.
“흐윽~”
유영출의 간담이 툭 떨어지고 내장이 뒤흔들렸다. 18층 유부 지옥에서 영겁의 세월 동안 찌들린 악귀의 웃음소리다. 내장이 뒤집힌 유영출이 양손으로 귀를 막고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았다.
“크크크, 그렇게 쉽게 가면 안 되지요.”
펄펄 살아서 열심히 민폐를 끼쳐야 할 인간이 고아원 운영비를 지원한다고? 사원들이 존경하는 사장이라고? 곧 죽을지 모를 병에 걸렸다고?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린가! 악당은 악당으로 존재해야지 갑자기 착한 놈 행세를 하면 어쩌란 말인가. 부스스- 앉아있던 돌의자 모서리가 두부처럼 뭉개졌다.
왜소한 체구에 옹조지한 얼굴이 밀려나고 멀대처럼 큰 키에 강파른 여자 얼굴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장필녀, 살생부 첫 번째에 오른 인물, 아버지의 유골을 건드린 이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여자다.
백부모는 가족이다. 아버지의 형제다. 복수심에 불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늘 망설임이 있었다. 아버지와 사부의 가르침에 다리를 잡혔다. 고맙게도 장씨가 마음속 걸림돌을 쑥 뽑아주었다.
“흐흐흐, 청산이 있는 한 땔감은 걱정없는 법, 뿌리째 뽑아주지.”
무쌍의 분노는 장씨 가문 전체로 번졌다. 자존망대한 장씨를 받쳐주는 기반이 그녀의 친정이다. 누대를 이어온 갑부이자 알려지지 않은 친일파 장경주, 행정부 사법부에 스며들어있는 장씨 가문의 사람들.
장씨 일가의 부와 인맥은 철벽이었다. 감히 무너뜨려 보겠다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까마득했다. 지금은 어떤가? 가소롭기만 하다. 향심섬유와 향심여객, 장씨 일가의 부를 모두 합쳐봐야 자신의 발끝에도 따라오지 못한다.
무쌍은 장씨 가문의 손에서 토지를 탈탈 털어낼 결심을 굳혔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잃었을 때 가장 큰 상실감을 느낀다. 장씨 가문의 힘은 토지에서 나온다. 토지를 몽땅 상실한 지주가 어떤 행태를 보일까?
악은 더 큰 악에 먹히고, 부는 더 큰 부에 무너진다. 권력은 더 큰 권력에 먹힌다. 약육강식은 개체 간의 투쟁만이 아니다. 집단과 집단, 가치와 가치 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영출!”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고 떨던 유영철이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너는 사북 계엄분소에 근무했다. 니놈이 폐인으로 만든 박삼출을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유영출은 지체없이 대답했다. 옷에 눌어붙은 껌처럼 늘 찝찝했던 우발적인 사건이다.
“당시 박삼출을 구타한 놈들을 불어라.”
“김영노와 장팔수입니다.”
“물론 네놈도 끼었겠지?”
“예, 하지만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채탄 연장은 물론 다이너마이트와 가스봄베까지 동원했습니다. 데모대가 아니라 폭도였습니다.”
“그건 네놈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내가 판단할 일도 아니다. 시대의 아픔이라 해야겠지. 김영노와 장팔수의 현재 신분은?”
“김영노는 경찰로 빠져나갔습니다. 본청 보안과에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장팔수는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3처 기업동향조사계에 있을 겁니다.”
“박삼출씨에게 미안한가?”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지요. 기관의 특성상 사람을 험하게 다룰 때가 많지만, 박삼출은 우발적인 사고였습니다. 장팔수가 우겨서 대충 치료만 해서 내보냈지만 늘 찜찜했습니다.”
“순순히 실토하는 이유가 있을 테지?”
“칠성파 두 놈이 이미 죽었습니다. 후우~”
유영출이 말을 끊고 송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움직임이 없다. 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내 명이 다 된 거지요. 당신은 필요하다면 수천 명의 인간도 눈 깜짝 않고 없앨 인간이요. 당신이 번거로움을 자처할 이유가 없지요.”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 없이 죽여줄 수는 있다.”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에 유영출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인지조차 의심스러운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지요. 사모님이 불쌍하게 여겨지기는 처음입니다. 내 지갑 속에 대구은행 대여금고 열쇠가 있습니다. 다-1324호입니다. 비밀번호는 35254입니다. 금고 속에 일만 달러가 있습니다. 수고스럽지만 박삼출씨에게 위로금으로 전해주십시오.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주시고요.”
유영출은 자기 죽음을 담담하게 말했다. 무쌍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DIA 컨설턴트 자이툰이 생각났다. 유영출도 나름대로 자부심 강한 인간이다. 추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악당이라도 최소한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
“조건이 있겠지?”
“당신 같은 사람에게 감히 조건을 붙일 담량은 없습니다. 고통 없이 보내주십시오. 내 가족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았다. 이걸로 마무리 짓겠다.”
퍽- 무쌍의 손바닥이 섬광처럼 유영출의 관자놀이에 붙었다 떨어졌다. 앉은 자세 그대로 유영출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격산타우의 수법에 순간적으로 뇌가 곤죽으로 변했다. 무쌍은 약속대로 고통 없이 보내주었다.
“으어어!”
“안돼에~”
빠가사리와 닭발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돈 몇 푼 받고 무덤 한 개 파려다 목숨을 잃게 생겼다.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참새는 모이에 죽고, 인간은 욕심에 죽는다. 잘 가라.”
퍽- 퍽- 손바닥이 가볍게 머리를 두드렸다. 빠가사리와 닭발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통제력을 잃은 고개가 툭 떨어졌다.
무쌍은 우울한 얼굴로 시체 네 구를 내려다보았다. 쌈디가 살인만 하지 않았어도 죽일 것까지는 없었다. 녀석도 고의가 아니니 나무랄 수도 없다. 죽음의 천사를 만난 이들의 운이 나빴다고 할 수밖에.
“잘못 생각했군.”
항공폭탄을 발굴한 이유는 위협용이기도 하지만, 이들을 폭사시킬 목적이었다. 옛날 생각만 했다. 세월이 흘렀다. 전쟁이 남긴 고철을 수집하러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한겨울에 산을 오를 외지인도 없다. 폭사시키면 오히려 시끄러워진다.
슈아악- 무쌍의 몸이 땅을 파고 들어갔다. 지향성 공진파를 응용한 구멍파기다. 약 10m를 파고들어 갔다. 더 이상은 무리다. 푸악- 땅강아지가 튀어나왔다.
“쌈디, 구멍을 넓혀라.”
쌈디 주특기가 땅 파기다. 까마귀 발처럼 변형된 왼손은 바위를 쪼개는 위력을 가졌다. 연장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왼손 오른손을 움직여 순식간에 구멍을 두 배로 넓혔다.
쌈디가 시체 네 구를 구덩이에 던져넣었다. 무쌍이 구덩이 속에 비료 뿌리듯 화약을 슬슬 뿌리고 불타는 장작을 집어던졌다. 푸학- 불길이 순간적으로 솟았다가 사그라졌다. 화약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구덩이 속에서 무시무시한 불 폭풍이 소용돌이쳤다. 시체고 옷이고 순식간에 탄화되었다. 굴티에 남아있던 모든 흔적이 구덩이로 던져지고 탄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