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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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장 행복한가? 10
쌈디가 불타는 장작 무더기도 몽땅 쓸어다 구덩이에 던졌다. 무쌍이 항공폭탄에서 뽑아낸 폭약을 공진파로 뭉쳐서 계속 날렸다. 퍼버벙- 불길이 거세게 일었다. 쑤와와- 공기가 구덩이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갔다. 한 인간과 한 좀비가 용광로처럼 들끓는 깊은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은 우울한 얼굴로, 좀비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불 폭풍이 사그라졌다. 구덩이가 지옥 유부로 통하는 입구인양 검은 입을 딱 벌렸다. 쌈디가 흙과 돌을 밀어 넣어 구덩이를 메웠다.
“만사 불여튼튼이지.”
무쌍이 휘적휘적 산정으로 올라갔다. 독수리 바위 20m 못미처 알바위가 있다. 장 지름 5m, 높이 3m에 달하는 부정형 바위다.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알 형태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독수리 바위 발치에 놓여있어 알바위라 불렸다. 알바위에서 50m 아래쪽에 굴티가 있다.
공간지각력에는 생물의 기 흐름을 추적하는 공능외에 사물의 운동 방향을 추정하는 공능이 있다. 무쌍은 알바위 형태를 사면 요철과 거리에 대입해서 진행 방향을 시뮬레이션했다. 무쌍이 알바위 뿌리의 받침돌과 흙을 파내서 구르는 방향을 조정했다.
“끙!”
쌈디와 무쌍이 동시에 힘을 썼다. 알바위가 움찔거리기만 했다. 무지막지한 힘에 불구하고 장구한 세월을 지켜온 바위는 완강했다.
“쩝, 귀찮게 하네.”
무쌍이 발사라로 아름드리 참나무를 잘라서 알바위 뿌리에 푹 꽂아넣었다. 지렛대의 힘을 받은 바위 한쪽이 쑥 들렸다. 쌈디가 불끈 힘썼다. 운동량이 최대정지마찰력을 넘는 순간 알바위가 휘딱 넘어갔다. 쿠르릉- 사면을 굴러내려 간 알바위가 굴티에 꽝 처박혔다.
이로써 칠성시장을 휘젓고 다니던 양아치 넷과 장씨의 개인 기사 유영출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느 누가 수십 톤에 달하는 바위 아래에, 그것도 십여미터 땅속에 시체가 있다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후, 민간인을 지웠구나!”
무쌍이 탄식했다. 양아치도 민간인이다. 수많은 인간을 살상했지만 전부 살상무기를 든 군인, 게릴라, 테러범이다. 방태산에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살인한 이후로 민간인을 지우기는 처음이다. 마음이 무주룩해졌다.
“망할 년!”
욕이 절로 나왔다. 유영출과 빠가사리 등은 모진년 옆에 얼쩡거리다 벼락 맞은 셈이다. 장씨의 시기와 탐욕이 지랄 맞은 사태를 만들고, 자신을 살인자로 만들었다.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여자다.
“나무아미타불, 흙에서 태어난 육신을 흙으로 돌리나니 너무 애통해 말라. 어차피 바로잡기 힘든 인생 아니더냐,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함도 좋지 않은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니 모든 은원이 헛되도다……. 싹 잊어버리고 다음 세상에는 걸림돌로 태어나지 말고 디딤돌로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노라.”
무쌍이 제멋대로 작사한 영가 발원을 하는 동안 쌈디는 연신 머리 숙여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외웠다. 무쌍보다 더 땡중다워진 쌈디다.
영가 발원을 마친 무쌍이 천색을 살폈다. 서쪽 하늘 계명성이 새벽녘 찬 공기에 파르르 흔들리고 있다. 세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생목숨 여섯 개가 사라졌다. 애써 만든 순대도 못 먹고 순댓국도 먹지 못했다. 이 또한 시간이 흘러가면 잊혀지리라. 터덜터덜 산을 내려가는 무쌍의 뒤를 쌈디가 말없이 따랐다.
대구 성서지역에 짚은다리 월송산과 비슷한 형태의 와룡산이 있다. 훗날 이 산에서도 어린아이 다섯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라 전체가 온통 들끓었다. 칠 년 전에 벌어진 짚은다리 월송산 실종 사건도 새삼 수면으로 떠 올랐다.
그기까지였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흘러가자 이것이나 저것이나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잊혔다. 언제나 그렇다. 슬픔도 분노도 시간 속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서 사라진다.
하동댁 대문간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인영이 보였다. 볼 것 없이 진순이다. 막 유행이 시작된 오리털 파카로 무장했지만, 소한이 가까워진 겨울 날씨다. 잔뜩 웅크린 모습에 가슴이 시렸다.
“임마, 추운데 머하는 짓이고?”
“잘난 오빠 둔 내 팔잔데 우짜겠노.”
진순이 배시시 웃으며 무쌍의 머리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싱그러운 처녀의 향이 물씬 풍겼다. 끈적하니 눌어붙은 우울함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가마솥에 물 뎁히놨다. 찝찝한 마음까지 싹 씻고 한숨 자라. 쌈디 아저씨도 씻어야 겠구마. 피 냄새가 물씬 한다.”
“으음!”
무쌍이 침음했다. 시골 운동회에 나가서 한바탕 뛰고 온 오라비를 맞는 듯 여상스런 태도다. 진순은 따지고 분석하고 알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활짝 열린 공감의 아바타가 감정을 온전히 공유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주는 면에서는 에델도 진순에 미치지 못한다.
‘헛!’ 무쌍은 흠칫했다. 부지불식간에 에델과 진순을 비교하고 있다. 이게 무슨 꼬락서니란 말인가. 못난 모습에 얼굴이 화끈했다.
“오빠, 내는 무조건 오빠 편인 기라. 오빠가 대로를 걷든 소로를 걷든, 보살의 길을 걷든 아수라의 길을 걷든, 내는 오빠 옆에 있을 끼라.”
진순이 오소소 떨리는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흠, 니가 뭘 아는 듯이 이바구를 까는구마.”
“늦가을에 툭 소리 나마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 아이가. 아이고, 잠이 부족하마 피부 거칠어지는데. 천방지축 오빠땜에 내가 못 산다.”
진순이 입이 찢어지라 하품하고 슬리퍼를 짤짤 끌고 안채로 올라갔다.
“글마 그것참! 작전을 변경했나?”
무쌍이 머리를 저었다. 예전엔 은근슬쩍 육탄 공세를 펴더니 제법 나이브한 티를 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녀석이다.
진순의 보호자를 자처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피보호자가 된 기분이다. 어쩌면 하동댁과 진순이 비어버린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었기에 에피듐 인자가 발작하지 않았는지도…….
이튿날 아침, 문종이를 투과해서 쏟아지는 환한 햇빛이 잠을 깨웠다. 인간 다섯을 지워버린 인간이 달게도 잤다.
“와! 한국말 억수로 잘 한데이.”
“쌈디, 최고! 피하기 없기야.”
“호호호, 까만 눈사람 쥑인다.”
햇빛이 아니라 짤랑거리는 웃음과 소프라노 소음에 잠이 깼다. 방문을 밀었다. 백색 세상이 왈칵 덮쳤다. 수돗가에서 몸을 닦고 잠든 후에 함박눈이 내렸다.
타작마당에 계순, 말순, 우순이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날뛰고 있다. 마당 한쪽에 시커먼 곰 한 마리가 흰자위 많은 눈을 끔벅이며 양팔을 들고 주저앉아있다. 자진 납세 좋아하는 쌈디가 자진해서 눈뭉치 던지기 표적판이 되어있다.
퍽- 말순이 던진 눈 뭉치가 쌈디 눈두덩에 적중했다. 머리가 스프링 인형처럼 앞뒤로 끄덕거렸다.
“말순 아가씨, 스트으라잌~”
쌈디가 두 팔을 휘두르며 힘차게 외쳤다.
“오호호호!”
말순이가 좋아죽는다.
“이얍, 곰텡이 맞아랏!”
우순이가 던진 눈 뭉치가 형편없이 빗나갔다.
“우순 아가씨, 니는 사팔뜨기가?”
“뭐얏! 곰텡이, 말 다했어?”
“그래 나는 곰이다. 어흥!”
쌈디가 벌떡 일어났다. 양팔을 휘저으며 우순에게 달려들었다.
“옴마야, 사람 살려!”
눈 덮인 마당에서 엄청난 덩치의 흑인과 자그마한 소녀가 빙빙 돌며 나 잡아봐라를 연출했다. 쌈디가 우순을 번쩍 들어 공중에서 빙빙 돌렸다.
“아하하하!”
우순은 좋아 죽는다.
“이야, 쌈디 점마 저거 쩌네 쩔어.”
무쌍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실렸다. 좀비 주제에 친화력이 장난이 아니다. 하루 만에 하동댁과 한 식구가 되었다. 저놈이 전날 밤에 사람을 한주먹에 죽이고, 사슴 모가지에 이빨 박고 피를 빤 놈과 같은 존재인지 의심스러웠다. 문득 지저 세계의 깜둥이 녀석이 생각났다. 녀석이 쌈디처럼 인간과 어울릴 수 있을까?
하동댁과 진순이 부산하게 아침상을 차려냈다. 하동댁 식구 누구도 무쌍의 행적을 묻지 않았다. 무쌍은 하동댁 가장이다. 그것도 평범한 가장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진순은 식구들의 입단속을 철저히 했다.
시커먼 좀비 한 놈이 상머리 한쪽을 턱 차지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상철만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쌈디 아저씨, 많이 들어요.”
말순이 쌈디 앞에 순대가 수북이 쌓인 양푼을 턱 놓았다.
“아저씨, 고기는 많아예. 팍팍 드시소.”
계순이 통째로 삶아낸 돼지갈비를 쌈디 앞에 올렸다. 아침에 슬랩스틱을 한 대가다.
“메흐씨, 메흐씨!”
쌈디의 입이 찢어졌다.
‘좀비가 아니라 너구리구마.’
무쌍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좀비도 먹고사는 문제엔 자유롭지 않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함께 밥 먹는 사람을 식구라 한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을 가족이라 한다. 쌈디는 은근슬쩍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되었다.
“상철 형, 좀 어떤교?”
“까딱없능 기라. 그런데 이상타. 니가 프랑스제 약을 멕여서 그런지 벨로 아프지도 않구마.”
“아침 먹고 벵원에 함 가봐라. 코뼈도 살짝 틀어진 것 같구마.”
상철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했다. 조폭 녀석에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칼침까지 맞았다. 자고 일어나니까 얼굴 부기도 가라앉고, 결리던 몸도 풀렸다. 칼이 박힌 어깨도 별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쌍이 공진파로 세포를 자극해서 활력을 돋워준 덕분임을 상철이 알 리 없다.
“근데 말이다. 쌍아, 사시미칼 억수로 좋던데 내한테 주마 안 되나? 회사에서 짤리가꼬 낚시 댕기는데 그거가꼬 회 뜨마 직이겠더라.”
“씰데없는 소리! 진순아, 그거 가져온나.”
사시미칼을 받아든 무쌍이 검첨을 손가락으로 탁 튕겼다. 탱- 접철 단조 혼야끼 청강이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허걱!”
상철의 눈이 커졌다. 탱-탱-탱-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서슬 퍼렇던 칼날이 뚝뚝 떨어져나갔다.
“아이고, 아까비!”
상철이 손잡이만 남은 칼을 들고 안타까워했다. 역시 단순한 상철이다. 놀라운 장면에 불구하고 망가진 칼을 아까워했다.
“사람 피로 흠뻑 젖은 칼을 몸에 지녀봐야 좋을 거 없어. 근데 와 짤맀노? 형만큼 성실한 사람도 없다 아인교.”
“야야, 말도 마라. 미친년한테 물맀능 기라. 내가 야근을 하는데 회장 딸년이 전화를 해가꼬 보일러 고장 났다고 얼른 와서 고치라 카데.”
“고쳐주면 되지.”
“모리는 소리 말어. 폴리에스터는 압출 송출기가 멈추마 타워에 투입되는 원료가 굳어뿐다 아이가. 그라마 회사 손해가 얼만데. 그라고 자리비웠을때 삥탈나마 내가 덤테기 옴팡 쓰는 기라. 이십사 시간 눈까리 부릅뜨고 지키야 하걸랑. 딸년에게 자리를 못 비운다 켔더니 욕을 하더라고.”
“흐흐흐, 알만 하구마.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세상이 자기 것인양 날뛰는 부류들이 있걸랑. 개념없는 여자에게 걸려구마.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텐데.”
“씨바, 조금 있응께 그년이 시퍼레져서 공무부로 쳐들어온 거라. 감히 무시하냐고 펄펄 뛰는데 돌겠더라고. 목구멍이 포도청 아이가. 근무 매뉴얼을 보여주고, 꿇어앉아서 싹싹 빌었능기라.”
“형이 빌었다고?”
무쌍의 눈이 둥그레졌다. 상철은 의리 있고 자존심이 강한 남자다. 회장 딸이면 딸이지 직장 상사도 아니지 않은가. 마초 기질이 강한 상철이 무릎을 꿇다니 놀랄 일이다.
“씨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니깐. 미친년 맨치로 설치는데 대책이 있어야제. 결재판 모서리로 대갈빡을 딱딱 때리고, 싸다구까지 올려붙여도 꾹 참았거든. 근데 이튿날 부장이 부르더니 사표 쓰라 카데.”
“어머나, 그게 말이 돼?”
“말이 돼. 회장 딸이거든.”
“그래도 그렇지. 여자 나이가 몇인데 그렇게 경우가 없어?”
진순이 식식거렸다.
“사십 살쯤 되었을걸. 부장이 자기도 짤린다고 통 사정하더라. 더럽고 치사해서 때려 치아뿟다.”
상철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도 하기 싫다는 뜻이다.
“잘 그만뒀어. 그딴 회사 다녀봐야 속만 썩어 문드러질 거야.”
“응, 미친 개에 물렸다고 생각했어.”
“새옹지마란 말도 있잖아. 이참에 외국에 나가서 일해 볼 생각 없어?”
“내는 고졸인데. 외국 나갈 수 있나?”
“고졸이면 훌륭하지. 중장비 자격증이 다섯 개나 있다며? 일만 잘하면 되지 학력이 무신 상관이야.”
“월급은 마이 주나?”
“숙식 제공하고 형이 한국에서 받던 월급 곱하기 삼!”
무쌍이 손가락 세 개를 번쩍 들었다.
“우와! 진짜가?”
상철의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아이다. 이참에 형이 회사를 맹글어라. 아프리카에 와킬 상회라는 회사가 있는데 내가 힘 좀 쓰거든. 변호사 붙여줄 테니까 현지 법인으로 등록하고 형이 사장해라. 회사 설립 끝나마 중장비 몽땅 모아가꼬 아프리카로 가라.”
“아이고 어지러워라. 이기 무신 도깨비 물 건너가는 소리고. 니 내한테 사기 치는 거 아이제?”
상철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정신이 어찔거렸다. 무쌍이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모르는 놈이지만, 액면대로 믿기 힘들었다.
“쓰읍~”
입이 터지라고 순대를 쑤셔 넣던 쌈디가 고개를 번쩍 들고 상철을 쏘아보았다. 눈에서 붉은 혈광이 번쩍하고 뾰족한 송곳니가 살짝 보였다.
“아이코! 내 암말도 안 했다. 쌍이 니 말은 하나님 말씀인 거라.”
“뚜바이부르파님 말씀이다.”
쌈디가 목소리를 잔뜩 깔아서 정정했다.
“맞다 맞다. 뚜바이부르파님 말씀이시다.”
상철이 납작 엎드렸다. 도깨비 쌈디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태는 작두에 목을 들이미는 것과 진배없다.
“형, 걱정할 거 쪼맨치도 없어. 내가 그 회사에서 한자리하고 있걸랑. 지사 설립 자금은 본사에서 나올 거야. 형은 중장비와 기사만 수배하면 돼. 도와줄 사람은 따로 보내주꾸마. 크게 한 번 놀아보라구. 꿈꾸는 사람은 시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
무쌍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우와, 진짠 모양이네. 니 언가이 출세했는 갑다. 하긴 도깨비 부하까정 있으니께 오죽하겄나. 대단하데이. 근데 거기가 어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