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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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죽음의 천사 아즈라일 7
“이 자식은 이 기사보다 더 맷집이 없네. 깡다구도 없는 새끼가 지랄을 떨어요.”
블랙맘바가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접타술은 3식으로 이루어진다. 1식은 통증 유발, 2식은 근육 해체, 3식은 신경을 손상한다. 블랙맘바 본인도 3식을 견디지 못했다
2식부터는 손상된 근육과 신경을 치료하기 위해 히가시혼간지 비전의 웅호제상고액이 필요하다. 웬만한 사람은 1식만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키거나 병신이 된다.
“마이크, 파트너를 또 잃으면 너는 죽는다. 개처럼 비참하게 맞아 죽는다.”
“으으, 아 알았다.”
마이크는 벌려지지 않는 턱을 간신히 움직여서 대답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다시 맞을 것 같은 공포가 굳어진 입을 열게 하였다.
블랙맘바는 목봉을 팽개치고 깨비텐에게 목례를 했다.
팀의 리더를 제쳐놓고 중사를 패 버렸다. 깨비텐의 리더십에 흠집이 갈 수 있는 행동이다. 폴 중위는 아예 못 본 척했다. 다른 동료들은 슬쩍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벨맨이 늘어진 마이크의 허벅지에 아트로핀을 찔러 넣었다. 에밀과 장쒼이 늘어진 마이크를 천막으로 옮겼다.
“역시, 아즈라일!”
옴부티는 마이크가 비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옴부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속이 시원했다. 중사를 구타하는 이등병이라니, 다시 못 볼 구경거리다.
깨비텐이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어제 유능한 동료 마크를 잃었다. 나는 SERE과정에 슬픔의 극복이라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하겠다. 마크는 우리가 임무를 완수해 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임무를 완수하려면 슬픔을 분노와 용기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다섯 시간이나 전투를 치르고, 열 시간을 죽어라 도망쳤다. 모두 냄새나는 하이에나라도 잡아먹고 싶을 것이다. 장쒼은 애닥스 바비큐를 만들고, 부리머는 캡코스를 들고와라. 한국 속담에 먹고 죽으면 때깔도 좋다고 했다. 다들 먹고 죽자.”
“와아!”
깨비텐의 연설에 팀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오옷, 저 양반 말발 보게. 국민의회로 보내도 되겠어.”
샤트르가 감탄했다.
“전혀 재미없는 농담일세. 죽더라도 쇠스랑에 찍혀 죽고 싶지는 않아.”
귀 밝은 깨비텐이 샤트르의 농담을 일축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성난 농민들이 쇠스랑을 들고 의회에 난입했다. 타도 대상인 귀족은 물론 부르주아 국민의회 의원들도 찍혀죽는 불상사가 있었다.
얼디 하마르에서 전장을 정리할 때 바이크에 실린 애닥스(Addax, 나사뿔영양)가 발견되었다. 100kg이 넘는 큰 놈이었다. 모진 놈을 만난 무스타 정찰대의 불운이었다. 숙영지가 겹치는 바람에 파티장이 공동묘지로 바뀐 것이다.
미구엘과 에밀이 끙끙거리며 애닥스를 들고 왔다. 부리머가 픽업에서 와인 상자를 챙겼다.
“오, 캡코스!”
애주가인 샤트르가 반색했다. 캡코스(Cap Corse)는 15도 내외의 식전주로 코르시카 특산 와인이다.
캡코스 제조는 복잡하다. 먼저 포도즙을 짜내서 발효시킨다. 즙을 짜고 남은 포도 껍질로 40도 증류주를 만든다. 포도즙에 증류주를 넣어 발효를 중지시킨다. 여기에 허브와 킨키나라는 식물을 넣고 3개월 숙성시키면 캡코스 특유의 달콤하고 쌉싸름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통상 6개월 숙성 후 출하된다
캡코스는 생산량도 그리 많지 않고 널리 알려진 술도 아니다. 주로 뱃사람을 통해 남유럽에 알려졌다. 남유럽에서는 캡코스를 모르면 진짜 주당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술이다.
장쒼이 몽골 초원식 바비큐를 선보이겠다고 나섰다. 장쒼은 용병 계약이 끝나면 고향인 안휘성에서 요리점을 오픈 할 꿈에 부풀어 있는 예비 요리사다.
그는 동료들의 도움을 얻어 구덩이를 파고, 주위의 돌을 주워 모아 구덩이에 깔았다. 그 위에 마른 나무를 잔뜩 쌓아 올려서 불을 붙였다. 돌이 달아오르고, 숯이 이글이글 열기를 토할 즈음 나뭇잎으로 감싼 애닥스를 올려놓고 흙을 덮었다.
장쒼이 뚫어 둔 굴뚝으로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격렬한 전투와 장시간 도주로 허기진 팀원들이 침을 줄줄 흘렸다. 야전 침대에 늘어져 있는 마이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전 투입 삼 일째다. 날마다 먹는 전투식량도 물렸다. 동료를 잃은 슬픔도 당장 배고픔 앞에 뒤로 밀렸다. 배가 차야 곡이라도 할 수 있다.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가 개체 생존을 최상위 가치로 두는 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장쒼은 연기가 사그라질 즈음 흙을 걷어 내고 애닥스를 들어냈다.
“와!”
용병들이 함성을 질렀다. 적절하게 익혀진 단백질의 향기가 후각 세포를 기쁘게 했다. 블랙맘바가 쿠크리로 몇 군데 푹푹 찔렀다.
“케붕!”
“울랄라!”
블랙맘바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장쒼의 얼굴이 자부심으로 환해졌다. 장쒼은 박격포 이상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동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소금과 후추만 쳐서 익힌 돌구이다. 소스도 없고 조미료도 없었지만, 레토르트에 물려 버린 식귀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블랙맘바도 커다란 갈비짝을 들고 뜯느라 손과 입이 기름 범벅이 되었다.
죽은 자들의 혈향이 자욱한 대지에서 산 자들은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저주받은 검은 대지 사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아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은 인간의 모습이다.
물소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자 무리, 아비와 어미, 새끼들이 뒤엉켜 근육 덩어리와 내장을 뜯어내느라 북새통을 이룬다. 그 북새통 한쪽에는 물소의 뿔에 뱃가죽이 찢어진 이모 사자가 마지막 호흡을 내뱉고 있다. 생존은 투쟁이다. 죽은 자는 투쟁에 끼어들지 못한다. 그냥 잊힐 뿐이다. 인간 세상도 다를 바 없다. 약하면 먹히고, 힘을 잃으면 도태된다. 인간 세상도 다를 바 없다.
영양류의 정육률은 40% 내외다. 우제류 동물의 정육률은 거의 비슷하다. 다리가 짧은 돼지는 정육률이 50%를 넘는다. 40kg 살코기는 열 명의 식귀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배를 채운 팀원들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 이동을 염두에 둔 취침이다. 실컷 자고 일어난 블랙맘바는 경계 근무를 자청했다. 깨비텐이 만류했지만, 고집을 부려서 경계를 나갔다.
시미터처럼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올랐다. 황무지와 초승달, 짧게 끊어지는 하이에나 울음소리,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사막의 밤을 파고들었다.
블랙맘바는 6m 높이의 바위기동에 올라가 있었다. 사위를 감시하기에 최적의 자리였다. 동시에 저격당하기에 딱 좋은 자리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잡념이 생긴다. 조용하면 더욱 잡념이 많아진다. 감성을 자극하는 환경까지 더해지면 감정이 폭주한다. 그것이 악순환이든 선순환이든.
동료인 마크의 죽음보다 반군 소년병들의 죽음이 더욱 마음을 어지럽혔다. 겨우 십 대 중반의 아이들이다. 초점이 사라진 멀건 눈동자가 자꾸만 떠올랐다. 폭사당한 짚은다리 동네 친구들의 눈이다.
빛이 꺼진 눈동자, 앙상한 팔다리, 마른버짐이 잔뜩 핀 머리, 빨래판처럼 도드라진 갈비뼈가 오랫동안 의식 표면에 저장되어 있을 것 같았다.
“블랙, 근무 중인가?”
파무스 멜빵이 철컥거렸다. 폭파 전문이자 RPG-7 사수 샤트르 병장이다. 파리제2대학 석사 과정 중에 외인부대에 입대한 샤트르는 36세로 팀원들 중 나이가 제일 많았다.
블랙맘바와 같은 4중대 2소대 1분대원인 샤트르는 블랙맘바를 가장 친한 동료다. 대부분 용병이 괴짜거나 괴벽이 있다. 샤트르는 자신이 실존주의 철학자인 샤르트르의 화신이라고 늘 주장했다. 샤르트르를 태몽으로 꾼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까지 샤트르라고 지었다고 했다. 당연히 모두 조크로 받아들였다. 샤트르는 역사학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왜 국적을 속이고 적지 않은 나이에 용병이 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외인부대는 본인이 밝히지 않는 한 신상털기를 할 수 없다. 용병들은 사연이 많은 만큼 대부분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본명을 감추고 별명을 쓰는 용병도 많은 실정이다.
“오, 샤트르!”
블랙맘바는 바위 꼭대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생각하는 걸 보니 살아 있었군.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기에 죽은 줄 알았다.”
샤트르는 샤르트르의 명언을 이상하게 비트는 만행을 저질렀다. 블랙맘바는 샤트르가 집어 던진 힙플라스크를 받았다.
“이런, 씨아까렐로!”
뚜껑을 돌려 열자 씨아까렐로 특유의 달콤한 향이 확 번졌다. 샤트르는 막냇동생을 보는 눈으로 블랙맘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캡코스는 떫고 신맛이 너무 강해. 나도 씨아까렐로가 좋아. 쭉 마시라구.”
블랙맘바는 은퇴촌에서 만들어진 품질 좋은 레종 에뜨랑제 와인보다 씨아까렐로를 즐겼다. 애주가인 샤트르는 독한 보드카를 좋아하는 편이다. 씨아까렐로는 일부러 챙겨 왔다.
“크아아!”
블랙맘바는 목젖이 오르내리도록 들이키고 거하게 술 트림을 했다. 샤트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참, 보드카도 아니고 포도주 마시고 트림하는 녀석을 보네. 누가 너를 매드 독이라 하겠어.”
“매드 독! 누가 그래?”
아프리카에 와서 고삐리 시절의 별명을 들을 줄은 몰랐다.
“어제 블랙의 전투를 본 동료들이 그렇게 부르더라.”
“젠장, 그 동료 속에 샤트르도 있는 거지.”
“반응을 보니 매드 독이 별명이었군.”
“어떻게 알았어?”
“위대한 철학자는 뭐든 다 아는 법이야.”
“으이구 퍽이나. 마셔.”
블랙맘바가 샤트르에 플라스크를 넘겼다. 늙고 젊은 용병이 나란히 앉아 와인을 나눠 마셨다. 남자들은 같은 술을 나눠 마시는 것만으로 동질감을 느낀다. 술에 취해 노상 방뇨를 하며 우정을 다지는 한심한 동물이기도 하다.
“마음이 무겁나? 암울한 아우라가 풀풀 풍기는군.”
“샤트르, 군벌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싶다. 나는 불알에 털도 나지 않은 어린애들을 수십 명 죽였어.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또래끼리 장난이나 칠 아이들이었다. 이놈의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꼬라지가 이래.”
샤트르 역시 침울했다.
“우린 군인이야. 너무 확대 해석하지 말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멀리 있는 태산이 아니라 신발에 들어간 작은 돌멩이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앞으로 살아날 걱정을 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이미 지난 일에 심력을 소모할 필요없다구. 신발에 들어간 돌멩이는 털어 버리면 돼.”
“휴, 나도 모르겠어. 화가 나지만 별로 죄책감이 안 들어. 그래서 더 혼란스러워.”
“군인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자세군. 나는 이번 작전이 세 번째 전장이야. 3년 전에도 이곳 차드에 파견되었지. 구쿠니와 마룸간의 내전이었어. 당시엔 은자메나에서 시가전이 벌어져서 민간인이 수천 명 죽었지.”
블랙맘바는 주마간산으로 훑어 본 차드 내전이 기억났다. 1978년의 내전으로 은자메나에서만 시민 일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아무리 권력이 좋기로서니 같은 국민끼리 제노사이드를 벌여야 했을까? 국민들은 굶주리고 깨끗한 물도 못 마시는 형편인데 말이야. 난 은자메나 거리를 돌아보고 어이가 없어지더라고. 국민을 거지새끼로 만들어 놓고 서로 총질을 하는 꼬라지라니.”
샤트르가 쿡 웃었다. 블랙맘바 역시 같은 동족끼리 엄청난 내전을 치른 나라 출신이지 않은가.
“한국도 같은 민족끼리 제노사이드를 벌이지 않았나. 군인 사망자만 2백만이 넘는 엄청난 전쟁 말이야. 지금도 서로 잡아먹을 듯이 총을 겨누고 있지 않나.”
“젠장 남 탓할 때가 아니긴 하네.”
블랙맘바가 시니컬하게 쿡쿡 웃었다.
“한국 전쟁은 이데올로기 전쟁이지만 차드는 경우가 달라. 차드는 문맹률이 세계 최고인 후진국 중의 후진국이야. 무지한 국민은 고삐 채운 말보다도 쉽게 끌려다니는 법이거던. 소수 탐욕스런 상류층이 무지한 국민들을 이용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거라구.”
“지도자라 불리는 놈들의 목적은 당연히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해서겠지.”
“큭큭!”
샤트르도 시니컬하게 웃었다. 라텔팀이 구출하러 온 마쿰보라는 놈이야말로 블랙맘바가 말한 더러운 놈의 정점에 있는 인간이다.
“우리는 손발에 불과하다고. 정치 따위를 논할 위치가 아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뿐이다. 너와 나의 정당성은 군인이기에 얻어진다. 군인은 사람이 아니다. 도구다.”
블랙맘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언어 실력 탓에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핵심은 알아들었다. 지도자의 탐욕과 국민의 무지가 내전을 발생시킨다는 말이다. 한국 현실에도 맞는 말이다. 특히 군인이 도구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확실히 샤트르는 가방끈이 긴 만큼 배울 점이 많았다.
“이들은 민주적인 정당 정치가 불가능한가?”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했다. 이들 국가는 어느 한 부족의 지도자가 배타적, 독점적으로 다른 부족을 지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이들에겐 ‘야당 지도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오직 말살해야 할 정적(政敵)이 있을 뿐이다. 정권이 바뀐다는 의미는 피가 대량으로 흐른다는 의미다. 아프리카에서 통치란 행정부가 주도하는 일당 독재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민주적으로 정당이 형성될 토양이 없다. 차드도 마찬가지다. 각 부족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정당 간의 경쟁과 균형에 의한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백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
샤트르는 판사가 형사범에게 판결을 내리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블랙맘바는 샤트르의 논지에 반발심이 생겼다. 샤트르의 말대로라면 아프리카에는 열등한 민족들만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아프리카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것 아닌가. 불안한 정정은 서구 열강들이 식민 지배를 하는 동안 싹텄다고 본다. 서구 열강은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하려고 종족 간 분란을 일으키고, 수탈을 했다. 유럽 제국은 아프리카를 수탈하고 교육 기회를 박탈했다.”
블랙맘바의 항변에 샤트르가 빙그레 웃었다. 가장 용병다운 용병이자 용병답지 않은 용병이 블랙맘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