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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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싸이 도지쿠 1
무쌍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구 반대쪽에 이 땅의 삼백 배가 넘는 야만과 기회의 땅, 아프리카가 있다. 남쪽은 초원과 정글, 북쪽은 황량한 사하라 사막이 대서양에서 인도양까지 걸쳐있다. 장엄하고 경이로운 사막 서쪽에 신비와 경외의 땅 엔네디 고원이 있다. 엔네디 고원 동북쪽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으니 노바토피아라 불린다. 우주를 찬란히 밝히던 별이 떨어진 자리에 유토피아가 열리니 노바토피아다. 떠오르는 태양이 천지 창조의 시작을 알리고, 지는 태양은 세상을 슬프도록 아름다운 진홍으로 물들이는 땅이다. 휴프노스의 장막이 덮이면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의 향연, 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우가 조물주의 신비를 살짝 들추는 땅이다. 낙타방울 소리 길게 울리면 지친 캐러밴의 애수가 모래 바람에 잠드는 곳, 강인한 사나이와 진정한 마초만이 대접받는 곳, 그곳이 노바토피아다. 황량한 자갈사막, 신비의 모래사막, 치열한 생명력이 숨 쉬는 곳, 아름답고 신비로운 호수가 열여덟개나 펼쳐진 그곳, 일천미터 지하 암반수가 콸콸 쏟아져 초원을 적시는 그곳, 원하면 원하는 만큼 땅을 얻을 수 있는 그곳, 자유가 넘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르는 그곳, 갑도 을도 없는 그곳, 바로 상철 형이 갈 노바토피아다.”
뜨거운 태양이 30분 이내에 피부에 물집을 만들고, 밀가루같은 모래가 구멍이란 구멍은 무차별로 파고 들고, 쉬파리가 폭격기처럼 상처에 알을 주르르 투하 하고, 고원에서 발 한번 잘못 디디면 시체 찾기도 힘들고, 뿔살모사와 노랑 전갈에 물리면 제삿날이 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쏙 빠졌다. 무쌍이 긴 사설을 끝내고 슬쩍 청중의 반응을 살폈다.
“흐으으으~”
“호오오오~”
“아아아아~”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사설 속에 공감 반응을 자각하는 간섭장이 들어있으니 오죽하랴. 각양각색의 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무쌍의 사악한 최면에 걸린 남녀의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이건 뭐 볼 것 없이 유토피아다. 황량하다, 강인한 사나이만이 대접받는다, 치열한 생존이다, 하는 부정적인 언어들은 전부 귓등으로 들렸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실상 별 볼 일 없는 땅이라는 경험치도 기명 되지 못했다.
“무쌍아, 고맙데이 정말 고맙데이. 노바토피아여 기다려라. 인간 김상철이가 간다.”
상철이 벌떡 일어나서 맘보춤을 추고 트위스트를 밟았다. 무쌍이 피식 웃었다. 상철은 어릴 때부터 의리가 강하기로 유명했다. 자기 집 쌀을 몰래 퍼다 주기도 했다. 상철은 집세 대신 아버지 무덤을 관리해 준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몸빵에 나서서 부상까지 당했다. 상철이 아니었으면 아버지 유골이 낙동강 바닥에 가라앉는 참담한 꼴을 당할 뻔했다.
상철은 덤벙대고 의리만 찾는 마초형 인간이라 경영자로는 젬병이다. 현장 소장이 한계다. 그가 실제로 할 일은 중장비와 인력 모집이다. 노바토피아 건설 현장으로 넘어가서 셔니언 교수의 지휘를 받으면 된다. 별도의 전문 경영인을 붙여주면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이다.
와킬 상회 현지 법인장은 아버지 유골을 지켜준 은혜에 대한 보답 차원이다. 상철은 회전의자만 굴리면 된다. 거친 땅의 회전의자가 만만치 않겠지만, 본인 하기 나름이다.
무쌍은 일을 시작하면 주저하는 법이 없다. 수표책을 꺼내서 액면 오만 프랑을 기재하고 서명했다. 소개장을 써서 수표와 함께 상철에게 건네주었다.
“형은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프랑스 대사관에 찾아가요. 정문에서 소개장을 보여주면 알아서 도움을 줄 끼요. 수표는 종잣돈이요. 환전하마 천사백만 원쯤 될끼다. 이 돈은 내가 형에게 빌려주는 거니까 단디 챙기고, 사무실 얻어서 바로 일을 시작해요.”
“우와! 이기 무신 벙개불에 콩 구워먹는 소리고. 사람 미쳐뿔겠네.”
섬유회사에서 몽키와 스패너를 들고 뛰어다니던 상철이다. 막상 멍석이 깔리자 겁이 덜컥 난 그는 얼굴이 노래졌다.
“남자가 소심하기는, 있지도 않은 조선소 부지 사진 한 장 들고 외국에 나가서 유조선 수주를 받은 사람도 있다 아이가.”
“상철 오빠야, 한턱내라. 우리 오빠야 한 테 잘하디마는 복이 하늘에서 무디기로 떨어졌네.”
계순이 잔뜩 부러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
“흐흐흐, 그래. 사나이가 못 할끼 머 있노. 사나이는 으리, 으린기라. 쌍아, 내도 으리있는 남잔 기라. 오지게 돈 벌어서 좋은 일에 팍팍 쓸 끼다.”
“상철 오빠야, 철없는 소리 말아라. 언니가 바퀴 빠진 유모차 고친다고 낑낑거리더라. 유모차나 얼릉 사조라.”
촉새 우순이 끼어들어 조잘거렸다.
“하하, 그 그래. 유모차 사야제. 그래도 이건 공금인디.”
상철이 민망함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수표와 소개장을 소중히 챙겼다. 통장에 돈 떨어진 지 한 달이다.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판에 구세주가 강림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단단히 잡았다.
“근데 오빠야, 그 넓은 사막을 유토피아로 만들라카마 물이 얼매나 마이 필요하겠노? 지하수가 그만치 많나?”
“사막에도 보이지 않을 뿐이지 물이 있다. 땅속 깊숙이 대수층이라 불리는 엄청난 물줄기가 숨어있는데 낙동강 열 배도 넘을 끼다. 땅속에 안동호 수량의 만 배도 넘는 물이 석유맨치로 모여있는 곳도 있거든. 지하수를 퍼올려서 숲과 초원을 조성한 다음 농장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중이다. 사막 한 가운데 노바토피아라는 거대한 오아시스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세상이 놀라 자빠질걸.”
“우와!”
오 자매는 무쌍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상상도 못 했던 신비한 세계,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다.
“오빠야, 그런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군데. 억수로 만나보고 싶다.”
“그 사람을 만나서 머할라꼬? 우순이 니 마음에 별로 안 들 텐데.”
“왜요?”
우순의 눈이 동그래졌다.
“돼지처럼 많이 먹거든.”
“그게 뭐 어때서요. 돼지보다 훨씬 많이 먹는 오빠도 좋아하는데. 헤헤헤!”
“그 사람은 억수로 바빠, 세계를 돌아댕기며 사업하거든.”
“췟, 나도 취직 부탁하고 싶은데.”
때 이른 취직 타령에 진순의 눈썹이 곤두섰다.
“쥐방울 만한 것이 무슨 취직 타령이고? 학교는 우짜고?”
“큰언니도 옛날에 고등학교 안 들어가고 백화점에 취직했다 아이가.”
“뭐가 어쩌고 어째. 이노무, 가시나가 못하는 말이 없어. 큰언니는 니들 공부시킬라꼬 울면서 일하러 갔는데 무신 소리를 하는 기고.”
하동댁이 버럭 해서 빗자루를 집어들었다.
“우순이 너 화장품 사고 싶어서 그러지?”
말순이 세모꼴 눈으로 우순을 노려보았다.
“아 아이다.”
정곡을 찔린 우순이 버벅거렸다. 말순이 벌떡 일어나서 우순의 귀를 잡고 방을 나갔다.
‘허! 흑역사의 잔재가 아직 남았구마.’
자매들이 벌이는 촌극에 웃음이 나왔다. 진순이 17살에 백화점 점원으로 들어간 이유가 바로 자신 때문이다. 오빠 뒷바라지한다고 아무도 몰래 학교를 포기하고 대구로 나갔었다. 당차다고 해야 할지 맹목적이라고 해야할지 구분이 안 되는 녀석이다.
“오빠, 저도 궁금해요. 그런 엄청난 일을 하는 노바토피아 주인, 아니 왕은 어떤 분인데요?”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연순이 물었다.
“마흐디시며 선지자시며 위대한 지도자, 뚜바이부르파시다.”
쌈디가 수저를 내려놓고 엄숙히 말했다.
“뚜바이부르파? 아까 도깨비, 아니 쌈디 흑형이 이야기한 뚜바이부르파님과 동일인?
상철이 무쌍을 쳐다보았다. 덤벙대면서도 쓸데없는 일에 촉이 좋은 상철이다.
“그분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워낙 돈이 많은 분이라 국제 테러조직이 노리거든. 앞으로도 그분은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을 거야. 쌈디가 실수로 언급했는데 아마 뒈지게 혼날걸.”
상철이 고개를 끄덕이고, 쌈디의 검은 얼굴이 마법처럼 하얗게 탈색되었다.
“오빠는 노바토피아에서 뭘 하는데요?”
“나는 뚜바이부르파를 지키는 비밀호위대의 대장이다. 다시 말하지만 뚜바이부르파님은 적이 많아서 절대로 노출되면 안 돼. 니들도 그분의 이름을 언급하면 안 된데이. 오빠 입장이 난처해지거든.”
쌈디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천연덕스런 말에 오 자매와 상철이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진순이 빙긋이 웃었다. 오빠가 낙동강에서 불알 내놓고 개 헤엄칠 때부터 함께했다. 귀신은 속여도 자신은 못 속인다. 세상에 잘 난 사람이 많지만, 오빠가 아니면 누가 그런 황당한 일을 벌일 수 있으랴.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봐.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넓이면 얼마나 큰 거야?”
진순이 시침을 뚝 따고 물었다.
“그렇게 넓은 땅은 아니야. 우리나라가 너무 좁아서 그래. 세계지도를 펴놓고 봐. 우리나라가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무쌍이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 그랬다. 아프리카 대륙을 싸돌아다녀보면 한국이 얼마나 좁은 나라인지 실감하게 된다. 자신이 전력 질주하면 대여섯 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땅이 한국이다.
“사막도 개발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 꼴이지?”
“작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고, 남쪽은 또 경상도 전라도로 갈라져서 티격태격하느라 암것도 제대로 못 하는 기라. 한심한 사람이 많아서 그래.”
“그게 왜 국민 탓이야. 돼먹지 못한 정치인과 군사 정권 탓이지.”
“한심한 정치인을 뽑은 사람이 국민이야.”
“편향된 언론과 친일파 탓이 더 커.”
머리 굵어진 진순과 연순이 해묵은 논쟁을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정부가 독립군 후손을 홀대한다는 이야기로 옮겨갔다.
“소련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이 고생한다던데.”
“그 사람들 챙길 정신이 어디 있어. 국내에도 일자리 없는 사람이 천지삐까린데.”
“나도 노바토피아라 카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계순도 끼어들었다.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 말거라. 아프리카에 무서운 동물과 독충이 얼마나 많다고.”
무쌍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음파에 접시가 깨진다고 했다.
“오빠, 노바토피아에 우리나라 사람도 이민 갈 수 있어요?”
“안될 게 있나. 노바토피아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은 누구나 받아들일 거야.”
한국인, 고려인, 조선인, 가릴 것 없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불러들이는데 같은 민족을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우리나라가 좋다는 식으로 끝났다.
화성 궁평항,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다. 먹물처럼 검은 어둠이 항구를 내리눌렀다. 방파제 입구에 매달린 나트륨 보안등이 수산물 직판장의 실루엣을 길게 늘어뜨렸다. 항구에는 가람 거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1982년 초에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지만, 서해 도서 지역인 궁평항의 통제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수산물 직판장 그림자 속에 또 다른 그림자 두 개가 나타났다.
“씨바, 바람은 없는데 안개가 조또 진하구마.”
붉은색 오리털 파카를 걸친 키 작은 남자가 가죽 잠바를 입고 빨간 목도리를 두른 남자에게 투덜거렸다.
“안개가 진하마 일하기엔 좋다 아인교. 하여간 우리 큰 해임이 날짜 하나는 기똥차게 잡는다니까요.”
가죽 잠바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받았다.
오리털 파카는 행동대 남명수, 가죽 잠바는 바람잽이 이대길이다. 두 사람은 서해 밀항조직인 테팔파 조직원이다. 테팔파란 명칭은 이들이 일본에서 테팔 프라이팬을 대량으로 밀수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알루미늄에 테플론을 접착한 테팔 프라이팬은 요리 재료가 눌어붙지 않는다. 주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산 다대포와 감전 항을 무대로 재미 보던 테팔파는 군사정부라는 암초를 만났다. 사회악 척결을 내건 서슬 퍼런 기세에 뒷배를 봐주던 경찰도 등을 돌렸다. 견디다 못한 테팔파는 밀수를 포기하고 밀항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밀수 루트가 밀항 루트로 요긴하게 쓰였다.
재미를 보던 중에 야쿠자 자금을 뒷배로 둔 엉뚱한 놈들이 밀고 들어왔다. 한차례 접전에 박살 난 테팔파는 부산을 포기하고 서해에 진출했다.
“대낄아, 실수하면 니만 죽는 기 아이다. 김 선장에게 접선 지점을 단디 전달했제?”
“화따, 헤임요. 귓구멍에 따까리 앉겠구마. 몇 번째 확인합니까.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써서 전달했심더.”
“자식아, 언캉 귀빈잉께 카는 거 아이가. 불경기 탈 때일수록 서비스를 학실히 해야 퍼뜩 자리 잡는다 아이가.”
“씨바, 해경 날파리들이 언가이 설쳐야지요. 소등 순찰선까지 띄운다 아인교.”
“그래도 요즘같이 어려울 때 이보다 쉬운 밥벌이가 어디 있어.”
“손님은 어떤 인간인데요?”
“니가 찍어온 놈도 아인데 그거 알아 머할라꼬. 내도 곰치헤임 지시만 받아서 누군지 모린다. 운임으로 골드바를 받았다 카더라.”
“화따, 그 새끼 어만데서 단디 한탕했는 갑지예.”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이지러.”
이대길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씨바, 물때 될라카마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구마. 춘심이 년 올라탈 때는 퍼뜩 가디마는 시간 더럽게 안 가네요.”
“이 새끼야, 통금이 일부 해제된 기 어디고. 전 같으마 순찰 피할라꼬 저쪽 뻘밭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닷바람을 콧구멍에 콱콱 쑤시넣고 있을끼다.”
“그건 그렇지예. 전두환이도 잘하는 기 있다 아인교.”
“잘하기는 개뿔이, 민심 얻을라꼬 쇼하는 기제. 잠깐, 조용!”
남명수가 이대길의 소매를 잡아끌어서 창고 그늘에 붙었다. 날렵한 체구의 젊은 남자가 창고를 돌아서 나타났다. 깜깜한 밤에 레이벤을 낀 남자다. 레이벤이 랜턴을 두 번 깜박였다.
“동팔이!”
남명수가 건물 그늘에서 나왔다. 레이벤은 자신과 같은 행동대 소속인 고동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