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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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싸이 도지쿠 2
“이면수, 내 좀 보자.”
레이벤이 남명수의 별명을 불렀다.
“양미리 왜 불러.”
레이벤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남명수를 창고 뒤로 끌고 갔다.
“명수야, 곰치 해임이 작전을 바꿨다. 소포를 풀어라 카시더라.”
레이벤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밀항조직이 손님을 수장하고 돈을 가로채는 일이 간혹 발생한다. 업계의 은어로 소포를 푼다고 한다.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무신 소리고? 따따블 손님 잘 모시라메!”
남명수가 짜증 냈다. 준비가 끝난 시점에 갑자기 소포 배달 프로세스를 변경하면 어쩌란 말인가. 인력을 다시 짜야 하고, 비조직원인 선장의 생사도 결정해야 한다. 온갖 부담이 고스란히 담당자에게 떨어진다.
“억수로 마이 가져가는 갑더라.”
고동팔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씨바, 돈 냄새를 맡았구마.”
남명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밀항선은 크루즈 여객선이 아니고 밀항조직은 공무원이 아니다.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일이다. 약간의 수고로 큰돈을 만질 기회를 걷어 차면 바보다.
“인원은?”
“도다리와 몽치가 벌씨로 타고 있다.”
“김 선장은 우얄끼고?”
“장사 한두 번 하나. 입단속 해야지.”
입단속은 바닷속에 처넣는다는 말이다. 납추가 달린 폐그물에 휘감아서 바다에 던져버리면 피를 흘릴 필요도 없다. 서해의 꽃게와 놀래미가 깔끔하게 뒷마무리한다.
“지원은 없나?”
“조까! 외팔이 노털과 냄비 한 년 처리하는데 무신 지원이고. 꼴리면 따먹고 버리던지.”
고동팔이 피식 웃으며 남명수의 어깨를 쳤다.
“에이 씨, 승선 장소를 바까야 되겠구마. 방파제 끄티(끝)로 하자.”
“그라제. 인상 좋은 대낄이가 안내하고, 우리는 방파제 끄티 테트라포드에 대기하다가 손님이 타면 뒤따라 가자고.”
“물때가 언제고?”
“새벽 한 시다. 김 선장이 방파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접선할 끼다.”
“알따, 니는 사무실 들렀다가 나올 끼제? 후딱 끝내고 룸에 가서 진하게 함 빨아 보자고.”
자정이 훌쩍 넘어간 시간, 시커먼 로얄 승용차가 수산물직판장 2번 창고 앞에 멈추었다. 남녀 한 쌍이 내렸다. 남자는 중절모를 깊게 눌러 쓰고, 철에 맞지 않게 홑겹 7부 바바리 코트를 걸쳤다. 텅 빈 왼팔 옷자락이 밤바람에 날렸다. 동행한 여자는 브림이 넓은 클로슈로 얼굴을 덮고, 폭넓은 레이벤으로 얼굴 절반을 가렸다. 남자는 30리터형 배낭을 메고, 여자는 큼직한 금속성 캐리어 가방을 끌었다.
세찬 바람에 남자의 중절모가 떠올랐다. 쉿- 성한 오른손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중절모는 얌전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언듯 보인 푸석한 회백색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이 중절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달나무 몽둥이처럼 단단한 체격에 불구하고 남자는 초로에 접어들었다.
“다이쿠츠데스!(지루하구먼!)”
초로의 남자가 오른쪽 주머니에서 고풍스러운 회중시계를 꺼냈다. 약속된 시간 5분 전이다. 남자가 바람에 나부끼는 왼팔 옷자락을 허리띠에 끼웠다. 극히 정제된 동작이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01시 정각, 이대길이 나타났다.
“센세이 곤방와!”
초로의 남자는 반응이 없고, 여자가 고개만 까닥했다. 이대길의 임무는 바람잡이다. 한눈에 남자의 인상착의를 읽어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잔주름이 가득한 얼굴, 표정없는 삭막한 얼굴, 꼿꼿한 자세와 가벼운 발걸음에 불구하고 육십 대다.
이대길은 손님의 특징을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 덕분에 손님을 안내하는 보직을 맡은 지 5년이다. 그동안 별별 인간을 봐왔고, 인상 나쁜 인간도 여럿 보았다. 오늘 손님은 발군이다.
목울대를 살짝 비킨 자리에 생긴 커다란 흉터, 해풍에 흔들리는 텅 빈 소매, 강파르고 메마른 인상, 남자의 인생이 편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표다. 인상이 나쁜 거야 알 바 아니지만, 붉은 입술이 자꾸 눈길을 끌었다. 루즈를 칠한 듯 새빨간 입술이다.
‘노털이가 저승사자로 영화에 출연하마 딱이구마.’
이대길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잔주름이 잔뜩 덮인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하다. 회칠한 듯 허연 얼굴에 입술만 새빨갛다. 이대길은 기분이 나빠졌다. 곧 저승사자와 대면예정인 노인네 본인이 저승사자처럼 생겨먹었다.
남자의 눈길이 번쩍했다. 이대길이 흠칫했다. 깊숙이 눌러쓴 중절모에 눈이 가려있지만, 이대길은 번쩍하는 눈빛을 분명히 느꼈다.
이대길이 얼른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을 엔간히 좋아하는 여자다. 검은 모자, 검은 레이벤, 검은 옷, 검은 부츠, 검은 장갑, 귀고리마저 검은색이다.
“스미마셍!”
이대길이 손짓하자 여자가 모자와 레이벤을 벗었다. 배달 물건 확인 절차다.
‘씨바, 이년 모찌방도 흉기구마.’
이대길은 괜히 확인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단춧구멍처럼 가느스름한 눈, 치켜 올라간 눈꼬리, 얄팍한 입술, 끝이 살짝 삐뚤어진 매부리코, 표독스런 인상의 전형이다. 게다가 눈깔에 얼음이라도 처넣었는지 싸늘하기 이를 데 없다,
“안-갈-건-가?”
칠판에 표주박을 대고 박박 미는듯한 쇠 된 소리가 노인의 입에서 띄엄띄엄 새나왔다.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목소리다.
이대길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섰다. 방파제 끝에는 20톤급 꽃게잡이 어선이 너울을 타고 가볍게 일렁거렸다. 어선을 발견한 외팔이 노인, 싸이 도지쿠(최도식)의 얼굴 중앙을 희미한 선이 지나갔다.
싸이 도지쿠, 한국명 최도식, 스스로 신인합일을 이룬 천인(天人)을 자처하는 사이코패스, 방태산 흑담에서 구렁이와 싸우던 무쌍을 납치한 장본인이다. 싸이의 진짜 신분은 히가시혼간지 최고의 병법가이자 닌자다. 또한, 동경대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 의사이자 침술의 대가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전수한 닌자술의 최고봉 자연동화술에 당한 백백교 교주이기도 하다.
싸이는 종유굴을 빠져나온 무쌍의 급습을 받았다. 종유석에 목을 관통당하고, 수술용 메스에 단전을 파괴당하고, 가지치기 도끼에 왼팔까지 잘리는 치명상을 입었다.
결사적으로 도주한 싸이는 홍천 광원리에 소재한 백백교 안가에서 꼬박 5년 동안 암연소혼술로 외상과 내상을 다스렸다. 그가 안가를 떠나던 날, 백백교도들이 교주를 치료하려고 납치한 의사와 간호사는 사료 분쇄기에 들어갔다.
인간의 생기를 뽑아 내외 상은 치료했지만, 박살 난 기도는 어쩌지 못했다. 아티피셜에어웨이(artificial airway)로 대체하는 바람에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최도식도 기구한 인생이다. 그는 태어난 지 채 백일도 되지 않아 지리산 계곡에 버려졌다. 아니 춘궁기에 아이 엄마가 아사하는 바람에 유기되었다. 일본 승려 다까하시가 시퍼렇게 죽어 가는 아기를 발견해서 거두었다.
다까하시는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 적을 둔 오타니류의 장로다. 지리산 천은사를 방문하고 돌아가던 길에 우연히 유기된 최도식을 거두었다.
히가시혼간지는 막부시대인 1244년 창건된 혼간지(本願寺)에서 파생된 정토진종이다. 160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혼간지의 교뇨라는 승려에게 닌자를 양성토록 명령했다.
교뇨가 혼간지 동쪽의 사찰과 전답을 별도로 하사받으면서 혼간지는 히가시혼간지와 니시혼간지로 분리된다. 히가시혼간지는 에도 막부 말기에 신센구미(新選組)의 본거지가 되었고, 낭인과 닌자의 본산이 되었다. 그 전통이 계승되어 오타니파(大谷派)라는 이름으로 닌자 양성의 맥이 이어졌다.
혹자는 닌자가 사무라이의 개라고 말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닌자는 엄연히 무예 유파의 한 갈래다. 사무라이는 한국의 양반 계급이다. 사무라이와 양반의 차이는 칼과 담뱃대다. 사무라이는 칼을 들고 전투에 나섰고, 조선 사대부는 담뱃대를 들고 당쟁에 나섰다.
막부시대에 등장한 병법가의 주류는 사무라이지만 닌자 출신도 많았다. 즉 사무라이는 계급이고 닌자는 무술인이다. 양자는 교집합 관계다.
닌자의 특성상 유소년 시기에 수련을 시작해야 한다. 15세가 넘으면 근골이 굳어져 비기 수련이 어려워진다. 정상적인 부모가 비인간적인 훈련으로 악명높은 닌자 집단에 자식을 넘겨줄 리 없다.
히가시혼간지는 아이를 유괴하거나, 고아를 회유하거나, 가난한 부모로부터 아이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수련생을 충당했다. 다까하시가 유기된 최도식을 거둔 것은 당연했다. 최도식의 뛰어난 근골을 확인한 다까하시는 크게 만족했다. 그는 최도식을 입양하고 닌자로 키웠다.
극우주의자인 다까하시는 최도식을 키워 한국에 히가시혼간지 아성을 구축할 장기 계획을 세웠다. 그의 계획에 따라 최도식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키워졌고, 이름도 한국 이름인 최도식을 받았다.
유아기부터 인성을 말살하는 교육과 수련을 받은 최도식은 싸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자신을 버린 한국이란 나라와 부모를 증오하고, 타인에게 근원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다까하시가 의도한 바다.
최도식은 영리하고 교활했다. 그는 다까하시를 비롯한 장로들로부터 닌자술, 침술, 영매술, 일반 학문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했다. 히가시혼간지 장로들은 가문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싸이 도지쿠를 키웠다.
히가시혼간지는 일본 극우파의 종주로 조선 개화기 당시부터 부산 포교원을 중심으로 일제의 조선침략 첨병 역할을 했던 유파다. 다까하시 사후, 최도식은 삼십 초반의 나이에 히가시혼간지의 밀명을 받아 부산으로 잠입했다.
최도식은 부산에서 정토진종의 색을 입힌 백백교를 창시했다. 백백교는 기독교적 종말론과 유교의 성악설을 뼈대로 하고, 불교적 색채를 덧입힌 잡탕 사이비 종교다.
백백교의 중심 교리는 유태적 선민주의에 성악설을 적당히 주물러서 만든 신인합일론이다.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 백백교 역시 교주 신격화와 재물 수탈에 주력하는 한편 사회 혼란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한때 백백교(白魄敎)는 부산. 김해 일대에서 일만 명의 열혈 교인을 확보하는 등 세력을 떨쳤다. 최도식의 몰락은 혁명정부의 사회부 조리 척결 정책 때문이다. 혁명정부는 사이비 종교 일소에 팔을 걷고 나섰다.
최도식은 사정 당국의 추적이 죄어들자 재산을 정리해서 도피에 나섰고, 방태산에 정착했다. 방태산에 정착한 이유는 천인의 칼과 몽둥이가 되어줄 천군 육성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CIA가 생체 실험실을 51구역에 만들었다면 최도식은 방태산에 만든 셈이다.
최도식은 무쌍을 천군을 이끌 초인 후보로 키웠다. 무쌍이 세혼술을 극복하고 동굴에서 탈출하는 바람에 최도식은 모든 것을 잃었다. 본인도 치명상을 입고 강화 인간 다섯을 모두 잃었다. 은닉해둔 현금 수억 엔이 불타고 지하에 묻어둔 황금만 겨우 건졌다.
무쌍은 칠 개월 동안 암흑 동굴에 감금당한 채 온갖 생체실험에 동원되고, 무치시바리아게와 세혼술에 고통받았다. 끝내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싸이는 후계자로 받아들여 온갖 혜택을 베푼 놈에게 배신했다. 37호는 주인을 물어뜯고, 평생 준비한 모든 것을 망가뜨린 배신자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과 정의에 따라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싸이 도지쿠가 방파제를 향해 몇 걸음 걷다가 돌아섰다. 두 눈이 푸르스름한 빛을 뿜었다. 30년이나 살아온 땅을 떠난다. 감회가 없을 수 없다. 버러지들이 사는 땅이지만 나름 정도 들었다.
“코노야로오 코로시테시마우(개새끼, 죽여버리겠다.)”
쫓기듯이 한국땅을 떠나는 이유는 순전히 37호 때문이다. 절로 이빨이 갈렸다. 온갖 은전(?)을 베풀었건만 더러운 반도의 종자 놈답게 끝내 배신했다. 몸을 추스른 후 근 일년이나 놈의 행적을 탐문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한국내 조직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몸은 완전치 못했다. 능력의 70%를 회복했다. 암연소혼술로 생기를 보충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육십을 넘긴 신체가 걸림돌이 되었다. 방법은 본사로 돌아가서 격체생동술로 세포 활력을 깨울 수밖에 없다.
부산과 충무에서 세 차례나 일본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남해안은 빈번한 일본 밀항선을 단속하는 해경의 감시가 거미줄처럼 촘촘했다. 그는 차선책으로 중국 밀항을 선택했다. 청도에는 731부대에 근무했던 상당한 숫자의 히가시혼간지 문하인이 위장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사문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어이, 깔판 내려라. 손님 오셨다.”
이대길이 소리쳤다.
“대낄이, 목소리 죽여. 고기 잡으러 가는 거 아니야.”
뱃전에 서 있던 수염투성이 남자가 투덜거리며 도선용 판자를 뱃전에 걸쳤다.
“싸게 싸게 오르쇼.”
이대길이 서비스 정신을 발휘했다. 여자가 끌고 온 캐리어 가방을 들었다.
“읔! 이기 머꼬?”
이대길은 깜짝 놀랐다. 여자가 가볍게 끌고 온 캐리어 가방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깨가 빠질 뻔했다. 가방속에 쇠덩어리를 채워도 이 정도로 무겁지는 않을 것 같았다.
“소래와 사와루나!(손 대지마!)”
외팔이 늙은이가 이대길의 손을 툭 쳐냈다.
“머꼬?”
이대길의 눈이 잔뜩 커졌다.
늙은이가 캐리어 가방을 가볍게 들고 도선 판을 건너갔다. 마치 옷 가방을 든 모양새다. 표정없는 여자가 그 뒤를 따랐다. 미동도 않는 판자를 보았으면 이대길이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양아치 수준의 눈으로 그것까지 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