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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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장 싸이 도지쿠 3
싸이와 여자가 갑판에 오르자 이대길이 방파제 반대쪽을 향해 랜턴을 깜박였다. 남명수와 고동팔이 테트라포드 그늘에서 빠져나왔다.
“니미 떠그럴, 춥어 디지겠구마. 닭 잡을 힘도 없는 늙텡이와 여자를 처리하자고 이기 뭔 짓인지 몰러.”
입술이 시퍼레진 남명수가 투덜거렸다. 싸늘한 해풍에 뼈다귀가 덜거덕거릴 지경이다. 도다리와 몽치가 배에 타고 있다. 고참인 자신들까지 나서야 하는지 내내 불만이다.
“곰치 해임 지시다 아인교. 퍼뜩 올라가소.”
이대길이 남명수의 등을 밀었다. 이대길이 볼라드 로프를 풀어서 배 안으로 휙 집어 던지고 마지막으로 배에 올랐다.
쿠두둥- 스크류가 RPM을 높였다. 꽃게잡이 유자망 어선이 낡은 엔진의 노킹에 몸체를 부들거리며 뒷걸음쳤다. 방파제와 거리를 벌린 어선이 선회해서 한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기다리던 손님이 승선했지만, 누구도 아는 척 않았다. 업계의 규칙이다. 배달부는 손님을 정해진 위치까지 배달하고, 손님은 합의된 운임을 지불하면 된다. 다시 볼 사이도 아니고, 아는척할 필요도 없다.
텅텅텅- 육지와 멀어지자 낡은 어선이 시커먼 연기를 뿜었다. 속도가 쭉쭉 올라갔다. 파고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맥놀이가 긴 너울성 파도가 작은 어선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뱃전을 넘어 튀어 오른 바닷물이 배전에 번질번질한 얼음 막을 형성했다. 낡은 어선은 추동력이 약했다. 파도를 넘을때마다 실속이 발생했다.
“어이쿠!”
갑작스러운 피칭에 중심을 잃었다. 롤링에만 신경 쓰던 이대길은 쭉 미끄러져 뱃전 프로텍트 난간에 어깨를 부딪쳤다. 훌떡 벗겨져 바다로 떨어지는 모자를 간신히 잡았다.
이대길은 일명 고구마 장수 모자의 턱 끈을 당겨서 바짝 묶었다. 겨울 바다를 거침없이 달려온 바닷바람이 살을 엘 듯 날카로웠다.
‘저 영감은 춥지도 않나?’
늙은이는 갑판에 꼿꼿이 서서 보이지도 않는 육지를 바라보고, 여자는 멍하니 캐리어를 깔고 앉아 손톱을 다듬고 있다. 두터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도 덜덜 떨리는 판에 홑겹 바라리 코트와 중절모를 쓰고도 추운 기색이 없다. 자주색 모피코트와 담비 목도리를 두른 여자도 별로 추운 기색이 없다.
이대길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영감과 여자가 선창에 들어가야 감시역인 자신도 들어갈 수 있다. 아니면 행동대가 빨리 젓을 담그거나.
이대길의 불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선창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명수와 고동팔이 계단을 올라왔다. 남명수는 손도끼, 고동팔은 오토바이 체인을 들었다.
싸이가 그들을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웬 날파리냐는 태도다. 여자가 고동팔을 힐끔 쳐다보았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시마시타!(실망이군!)”
싸이가 이대길을 슬쩍 흘겨보고 조타실로 향했다. 이대길은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순간적으로 사람의 눈이 아니라 파충류 눈을 본 듯 섬뜩했다.
‘쓰바랄, 이기 무신 시추에이션이여?’
여자는 앉은 자세 그대로 손톱 손질에 열중했다. 바보도 상황을 알아차릴 텐데 늙은이나 여자나 흉기를 든 두 사람을 소가 닭 보듯 했다. 남명수와 고동팔도 어이가 없는 듯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삐꺽- 조타실 문이 열렸다. 조타실에서 검은 가죽 잠바와 미군 야상을 걸친 남자가 나왔다. 둘 다 가죽 장갑을 낀 손에 하프 인치 철근과 회칼을 들었다.
“친삐라(건달)! 욕-심-부-리-면-죽-는-다.”
예의 쇠를 비비는 거친 탁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한 음절 한 음절 끊어져 나오는 말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듣는 사람을 숨 막히고 짜증 나게 하는 소리다.
“쪽발이 병신새끼가 좇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도다리가 들고 있던 철근을 휘둘렀다. 탕- FRP 소재의 뱃전에 움푹 흠집이 생겼다. 위협이 목적이라면 틀렸다. 늙은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대길이 슬슬 고물 쪽으로 움직였다. 한가락 한다는 행동대 식구가 넷이다. 결론은 뻔했다. 기분 나쁜 늙은이와 여자를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고 물건을 챙겨서 돌아가면 상황 종료다.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외팔이 노인은 퇴로를 차단한 남명수와 고동팔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앞쪽의 도다리 팀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노인의 시선은 여전히 육지 쪽을 향해 있었다. 문득 뱀눈처럼 서늘한 늙은이의 눈초리가 떠올랐다. 고물로 돌아간 이대길이 쌓여있는 통발 사이로 몸을 숨겼다.
“이-유-가-뭐-냐?”
남명수, 고동팔, 도다리, 몽치의 시선이 일제히 여자를 향했다. 아니 여자가 깔고 앉은 캐리어 가방을 향했다.
“이유? 돈이 너무 많다는 거지. 나는 쪽발이가 싫어, 쪽발이 병신은 더 싫어. 돈 많은 쪽발이 병신은 진짜 싫어. 돈 많은 쪽발이 병신 늙은이가 한국 년을 데리고 다니면 죽이고 싶어지걸랑. 크히히히!”
도다리가 킬킬거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멋있는 말을 했다. 자신이 이렇게 말을 잘할 줄은 몰랐다.
“쿠쇼, 쿠찌바시 타마레(멍청한 놈, 아가리 닥쳐)”
낮지만 묵직한 음성이 파도 소리를 뚫고 윙 울렸다. 희한하게도 일본어를 말할 땐 음절이 끊어지지 않았다. 싸이의 눈에 한광이 돌았다. 조센진은 이래서 2등 신민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똥인지 된장인지 본인이 맛보기 전에는 무모하고 무례하다. 반도 놈들은 하나같이 눈깔이 썩은 동태 눈깔이다.
“쪽발이가 영감이 미쳤나. 골통을 쪼개놓고 야그를 해 보자고.”
성질 급한 도다리가 선빵을 날렸다. 쌩- 철근이 사선으로 날아들었다. 싸이가 한 걸음 물러나서 철근을 피하고, 두 걸음 다가서며 도다리의 관자놀이를 손등으로 툭 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퍼석-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쿵- 호기롭게 철근을 휘두른 도다리가 그물을 쌓아 둔 현측에 쑤셔박히듯 고꾸라졌다. 테팔파 패거리 셋은 눈을 끔벅였다. 늙은이는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도다리 혼자 펄쩍 뛰어서 뱃전에 머리를 처박고 자빠졌다. 누구도 늙은이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도다리가 철근을 휘두르다 미끄러져 넘어진 줄 알았다.
“점마 저거 와 카노?”
몽치가 중얼거렸다.
“저 저거?”
고동팔이 말을 잇지 못하고 손짓했다. 그물 밑으로 핏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남명수와 고동팔의 얼굴이 허옇게 떴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도다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해임요. 도다리 점마 저거 죽은 거 같심더.”
몽치의 음성이 떨렸다.
“씨발놈아, 대갈빡이 박살 났는데 살아있겄냐? 조져.”
남명수가 악을 썼다.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냄새가 진하게 풍겼지만,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조직을 유지하고 건달밥을 먹으려면 네 가지를 각오해야 한다. 남을 죽이려면 나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남을 패려면 나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남의 돈을 털려면 나도 털릴 각오를 해야 한다. 감방 들어가기 싫으면 굶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죽어 새꺄!”
몽치가 허리를 바짝 숙이고 달려들었다.
‘천인이 곤궁해지니 버러지까지 물려고 하는구나.’
싸이가 탄식했다. 호랑이는 늙고 다쳐도 호랑이다. 청설모가 다람쥐를 잡아먹더니 겁을 상실하고 담비에게 덤비는 격이다.
달려들던 몽치가 멈칫하며 사이드로 돌았다. 고동팔이 뒤쪽에서 얼음을 지치듯 갑판을 주르르 미끄러졌다. 고동팔의 체인이 사선으로 날아들었다. 피익- 체인의 궤적에 늙은이 얼굴이 들어가는 순간, 몽치가 갑판을 박차고 늙은이 옆구리에 사시미 칼을 박았다.
“쥑인다!”
남명수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20톤짜리 유자망 어선의 갑판은 기껏해야 다섯 평 남짓하다. 운신할 공간을 고동팔과 몽치가 먼저 확보했다. 협격당한 늙은이는 빠져나갈 공간이 없다. 고동팔의 체인과 몽치의 사시미 칼은 장병기와 단병기의 교과서적인 조합을 보여주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감투 정신과 예술적인 타이밍이다. 보는 자신이 뿌듯할 지경이다.
최도식이 우측으로 성큼 내디뎠다. 신체가 거짓말처럼 45도로 기울었다. 쌩- 체인이 주먹 한 개 공간을 두고 기울어진 빗변을 따라 떨어졌다. 텅- 체인이 바닥을 칠 때 몽치도 거리를 뺏겼다.
“억!”
화들짝 놀란 몽치가 신음을 토했다. 사시미 칼이 늙은이의 옆구리를 허무하게 스쳐 갔다. 몽치도 만만치 않은 칼잡이다. 손잡이를 역수로 바꿔 잡아 낫처럼 끌어당겼다. 찌르기에서 끌어 베기다.
단병 접전은 공간의 싸움이다. 싸이의 우수가 몽치의 팔꿈치를 툭 쳐올리고 곧추선 엄지가 목에 쿡 박혔다. 엄지가 뿌리까지 쑥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다.
“끄륵!”
몽치가 비명을 지르기 전에 목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먼저 났다. 슈앙- 바닥을 친 체인이 솟구쳐 올라 옆구리를 쓸어왔다. 싸이가 돌아보지도 않고 뒤 돌려찼다. 툭- 발끝이 체인 끝을 정확히 차서 방향을 바꾸었다. 체인이 고동팔을 향해 날아갔다.
“헛!”
식겁한 고동팔이 고개를 팍 숙였다. 싸이가 몽치의 손에서 떨어진 사시미 칼을 발로 툭 차올려 잡았다. 보지도 않고 뒤쪽으로 휘둘렀다. 쉭- 선수에 걸린 수은등 불빛에 칼날이 번쩍하는 순간 단말마의 비명이 울렸다.
“컥!”
막 자신의 체인을 피하던 고동팔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고동팔의 동작이 딱 정지되었다. 툭- 머리가 갑판에 떨어졌다. 쿵- 머리를 잃은 몸체가 갑판에 퍽 엎어졌다. 파아앗- 목에서 뿜어져 나온 핏줄기가 조타실 문짝을 적셨다.
털썩- 술 취한 듯 비틀거리던 몽치가 그때야 물기 질펀한 갑판에 머리를 처박았다. 설명은 길지만 한 호흡에 펄펄 날던 조직원 둘이 절명했다. 한 명은 목이 잘리고, 한 명은 목이 뚫렸다. 갑판은 순식간에 핏물로 젖었다.
“허억!”
통발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이대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손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씨발, 똥 밟았구마.’
남명수는 이대길과 달랐다. 수차례 피를 본 베테랑답게 사태를 파악했다. 늙은이는 무협소설에서나 보았던 무예 고수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다.
남명수가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목표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동행 여자다. 왼손으로 여자의 목을 감고 서슬 퍼런 손도끼를 여자의 턱밑에 들이밀었다.
“이봐 늙은이, 이 정도로 끝내자고.”
“오로카나 야코!(멍청한 놈!)”
싸이가 머리를 흔들었다. 불쌍한 놈이다.
“큭!”
남명수의 입이 딱 벌어졌다. 벌어진 입에서 피가 주르르 쏟아졌다. 여자가 남명수의 가슴에 박힌 칼을 쑥 뽑았다. 칼자루까지 합쳐서 겨우 한 뼘 길이의 단검, 일체의 장식 없이 찌르기 용도로 만들어진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에 만들어진 단검이다.
“이, 이~ 빌어묵을……”
정확히 심장을 관통당한 남명수의 혼이 흩어졌다. 말끝을 맺지 못하고 갑판에 퍽 엎어졌다. 바닥에 고여있는 핏물이 철퍽 튀었다. 마지막 경련을 끝으로 남명수의 몸이 식어갔다. 여자가 남명수의 상의에 칼날을 쓱쓱 닦았다.
할짝- 고양이처럼 혀로 칼날을 핥는 모습에 이대길의 이빨이 달그락 달그락 부딪혔다. 끔찍한 인간들, 끔찍한 장면이다. 젊은 년도 늙은이 못지않게 독한 년이다.
‘씨바, 저승사자 같디마는 저승사자 맞구마. 저년도 저승사자였어.’
앗 하는 사이에 인간 넷이 유기물 덩어리로 형질 변환되었다. 시체 네 구에서 흘러나온 피가 갑판을 질펀하게 적셨다. 배가 출렁일 때마다 핏물이 뱃전으로 흘러내려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그 와중에도 즐겨 읽는 무협소설의 경구가 생각났다. ‘늙은이와 여자를 조심하라.’
처음 배에 태울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쁜 예감은 너무 잘 맞아서 탈이다. 사실 이대길 본인도 여자를 잡아서 늙은이를 위협하려고 했다. 피 튀기는 싸움을 해보지 않은 그는 마음만 먹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망설였다.
자신은 테팔파의 행동대가 아니다. 손님 접선과 자금 세탁을 맡은, 말하자면 행정 담당이다. 무식한 싸움은 행동대가 하고, 자신은 손님을 만나고 수수료를 받아왔다. 우고좌면(右顧左眄)할 때 남명수가 덤비다 결딴났다. 이대길은 사자 아가리에서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최도식이 유리알 같은 눈으로 이대길을 노려보았다.
“헉!”
이대길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거대한 이무기의 아가리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바짓단을 타고 노란 물이 줄줄 떨어졌다.
“오큐보모노(병신새끼)”
싸이는 얼빠진 이대길을 일별하고 선장실로 향했다.
“너도 칼 빵 필요해?”
요악한 눈동자가 이대길을 향했다. 여자의 서늘한 말에 이대길은 정신없이 손을 흔들었다.
“어버버!”
“병신새끼! 좇은 왜 달고 다녀.”
여자가 피식 웃었다.
똑- 똑-
바짝 얼어있던 김 선장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헉!”
귀신같은 얼굴, 흰자위 가득한 눈이 창문에 붙어있다. 시선이 마주친 김 선장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테팔파 행동대를 눈 깜짝할 사이에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린 악마같은 늙은이, 아니 악마 늙은이다. 허옇게 뒤집어진 상어 눈깔이 생각난 김선장은 오금이 저려 움직이지 못했다.
늙은이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김 선장은 출입문을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버틸 수 있을까? 턱도 없다. 삼나무로 짜 맞춘 단단한 문이지만, 늙은이 발길질 한방이면 부서질 문이다. 김 선장은 슬그머니 타륜아래 공간을 더듬었다. 묵직한 손잡이가 잡혔다. 흑사회 짱깨놈에게 구입한 권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