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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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장 바람 잘날 없다4
“아이고, 사부님 말씀이 무조건 맞습니다요. 부처님이 주먹질만 했겠어요. 발길질도 했을낌더. 관음보살인들 승질이 없겠어요. 헤헤헤!”
무쌍은 곧바로 깨갱 하고 꼬리를 내렸다. 사부가 설법을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보통이다. 차가운 법당에 꿇어앉아 지겨운 설법을 듣다간 머리에 쥐나다 못해 사리가 생긴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에잉, 제자란 놈이 좀비보다 못하니 내가 스승님을 어째 볼꼬?”
대우선사가 혀를 끌끌 찼다. 제자는 아수라의 화신이다. 본성은 불기인데 불성과 연이 없다. 불성을 가진 놈이 평생을 피와 세속에 찌들어 살아야 하는 기막힌 숙명을 가진 놈이다. 정법사의 오금공은 전수했지만 의발을 전수 할 수 없다. 농담이 아니라 좀비에게 의발을 물려주는 최초의 땡중이 될 판이다.
“사조님 뵐 걱정은 나중에 하시고요. 아부지 묘소를 우예야 합니꺼?”
“답은 니놈이 잘 알지 않느냐. 육신은 영혼이 잠시 머무는 그릇이다.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 세상의 시비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 일으키지 않더냐. 니놈의 아들이 할아버지를 찾으면 하늘에 있다고 할거냐 공기 중에 떠다닌다고 할거냐? 니놈의 과거는 조상이고 니놈의 미래는 새끼다. 조상과 새끼를 잇는 존재가 현실의 니놈이다. 헛되다 할지라도 마음에 저어함이 있으면 그것이 곧 업이니라.”
무쌍은 사부의 말씀을 바로 알아들었다. ‘마음에 저어함이 곧 업이다.’ 사부님의 지론이다. 스스로 마음에 거리낌 없도록 처리하면 될 일이다.
“감사합니다. 제자가 미욱한 소리를 했심더.”
“응무소주 이생기심, 나무아미타불.”
딸각딸각- 대우 선사는 말없이 염주를 돌렸다.
“사부님, 이따위 삿된 물건이 실제적인 효과가 있을까요?”
무쌍이 머뭇거리다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대우 선사가 방바닥에 놓인 부적 더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고약한 물건이로고! 못된 놈들이 방자용으로 소지했던 부적이라고?”
“예, 막연한 기운이 느껴져서 사부님께 여쭈어보려고요.”
“좌도방의 삿된 기운을 알아차리다니 제법 늘었구나. 마하반야바라 수수리 사바하 합!”
대우선사가 진언을 외고 부적을 손으로 덮었다.
“키에엑!”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부적이 화르르 타올랐다. 누런 연기가 물씬 피어올라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딜!”
쉬이익- 승포자락이 연기를 휩쓸었다. 연기가 공처럼 둘둘 뭉쳐졌다. 대우선사가 소맷자락을 휘휘 감았다. 연기가 점점 압축되어 손톱보다 더 작아졌다.
텁- 대우선사가 구슬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꺼억- 걸직한 트림을 타고 하얀 연기가 입 밖으로 나왔다.
“맛있습니까?”
무협소설 같은 황당한 장면에 무쌍이 어벙한 질문을 던졌다.
“맛이 별로다.”
사부의 대답 또한 턱도 없긴 마찬가지다.
“소귀법(召鬼法)을 쓸 줄 아는 인간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소귀법은 고술(蠱術)과 비슷하지만, 인간을 매개로 이용하는 악독한 좌도방 술법이니라. 전우치라는 술사를 마지막으로 맥이 끊어진 줄 알았더니 살아있구나.”
“전우치요? 소설에 나오는 전우치의 도술이 진짭니까?”
“도술은 무슨 도술, 잡술이지. 이놈아,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음양의 조화는 인간 세상도 다르지 않느니라. 세상의 이면엔 나 같은 땡중도 있고 귀신을 부리는 좌도방 술사도 있느니라.”
“그렇긴 하지요. 천장 지하에 공룡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인데 뭔들 없겠어요. 그런데 진짜로 귀신을 부적에 담을 수 있습니까?”
“이놈아, 눈으로 보고도 물어? 이까짓 허접한 부적보다 니놈이 백배는 놀라운 존재여. 원한이 골수에 배인 인간을 특별한 방술로 조정해서 육체와 혼의 연결을 끊으면 백이 온전한 상태로 매개물에 머물게 되느니라. 니놈처럼 정력이 강한 인간에게 소용없지만 소혼 능력이 있어서 쉽게 볼 물건은 아니야.”
“그대로 둬선 안 될 인간이네요.”
“세상엔 존재 가치가 없는 존재는 없느니라. 나무아미타불!”
대우선사는 가타부타 말없이 염불만 외웠다. 무쌍은 절하고 조용히 물러 나왔다. 역시 영매보살이란 인간은 그대로 둬선 안 될 요물이다.
“이놈아, 피는 보지 말어. 작은 귀신은 큰 귀신이 나타나면 아침이슬처럼 절로 스러지는 법이여.”
대우 선사가 버럭 소리쳤다.
1985년 3월, 무쌍은 학생 신분으로 돌아왔다. 졸업 몇 달을 남기고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지 5년만이다. 그동안 입시 정책도 많이 바뀌었다. 과별 모집이 아닌 계열 모집으로 바뀌었다. 하릴없는 정부가 해마다 대입 정책을 변경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무쌍은 별다른 고민 없이 지방 국립대인 K대학 자연과학대에 발을 담갔다.
K 대학교는 지방 국립대다. 무쌍은 엄마를 기다리느라 짚은다리를 떠나지 못했듯이 연로한 스승이 마음에 걸려 프랑스 그랑제콜을 포기했다.
스승을 만나지 못했으면 에피듐의 야만 인자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셀롯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이 세상에 유일하게 야단치고 매를 치는 분이다. 스승의 은혜는 깊고도 넓어 그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입신양명에 뜻을 두지 않은 이상 구태여 고향을 떠날 이유도 없었다.
구태여 대학교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공부하고 싶어서다. 장씨의 모함에 빠져 중단한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일종의 반동인지도 몰랐다. 혜영은 학문적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사랑이 명예욕이나 성취욕보다 상위에 있음을 웅변하고 싶은 치기의 발로일지도…….
한 달 후, 무쌍은 코가 쑥 빠졌다. 생물학 개론을 맡은 교수의 강의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아무리 교양 과목이지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낡은 이론을 그대로 강의했다.
조로증은 유전자의 수명 패턴에 로스 오브 펑션(특정 유전자가 정해진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생명 사이클이 빨라져서 나타나는 질병 아닌 질병이다.
베르너 증후군은 헬리카제 효소가 망가져서 DNA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해 발생한다. 세포가 제대로 분열하지 못하면 노화된 세포가 제때 교체되지 않는다. 일찍 늙어 죽는다는 이야기다.
무쌍은 자신의 신체 비밀을 알고 싶어 고삐리 시절부터 외국 서적을 구해 읽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랑제콜에서 유전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 생명의 탄생과 노화, 유전자의 진화에 대해서는 제법 조예가 깊다.
자신의 경우에는 에피듐 인자가 유전자를 변형시켜서 로스 오브 펑션의 반대 현상인 게인 오브 펑션이 발생했다. 수명이 몇백 년 몇천 년이 될지도 모른다. 조로가 아니라 지로(遲老)다. ‘노화는 환경 악화로 인한 세포의 기능 저하다.’ 담당 교수는 19세기 이론을 태연하게 주장했다. 사장된 이론을 비교론으로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다. 교수는 반론과 신 이론 자체를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교수는 십 년이 넘도록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생물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다. 다른 과목의 강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태도였다. 학생들은 교수의 강의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들은 의아해하는 무쌍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다.
무쌍이 기함할 일은 따로 있었다. 교수들이 시험을 볼 교재와 구간을 정해주었다. 신청한 강의 전부가 그랬다.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교재였다. 국민학교도 아니고 명색이 대학교 시험이다. 교재 한 권에서 페이지를 지정해서 출제한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다른 학술서는 읽지도 말란 말인가?
교수도 이상했지만, 학생들도 이상했다. 모두 교수의 태도를 당연시했다. 심지어 조교에게 예상 문제를 뽑아 달라는 녀석도 있었다. 늙은 놈이나 어린 애새끼나 몽땅 미친놈으로 보였다. 사람은 상대방과 인지의 격차가 클 때 ‘미쳤다.’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볼때 자신이 미친놈으로 보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교수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십 년 전의 강의 노트를 펼쳐 드는 태만한 교수와 학점만 잘 주면 만족하는 사이비 학생들. 교수 대부분이 삼중 고등학교의 찌질한 교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무쌍은 학문을 궁구한다는 기대를 접었다. 대학이 아니라 입시 학원이다. 아니 학점에 목메다는 고삐리 4학년, 5학년, 6학년이다.
우우웅-
묵직한 저주파 배기음이 웅웅 울렸다. 거대한 바이크가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1,200cc BMW 바이크는 국내에 두 대가 없는, 그야말로 무쌍한 아이템이다. 남녀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이크에 날아와 꽂혔다.
가물치 타이어 지름은 포니보다 크고 폭은 비슷하다. 크롬 도금이 된 알루미늄 합금 차체는 강인함과 유려한 곡선을 뽐낸다. 묵직한 배기음과 함께 가물치가 나타나면 유명 연예인이 나타난 듯 젊은 학생들의 뜨거운 시선이 쏠렸다.
1984년 말 자동차 등록 대수는 트럭, 버스, 승용차를 통틀어 91만대다. 승용차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시절이다.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칙칙했다.
대학생들의 옷차림은 단색조의 수수한 옷과 청바지가 주류였다. 도깨비 시장에서 구입한 미군 야상을 걸치고 다니는 학생도 많았다. 요란스런 머리 염색이나 액세서리는 생각지도 못하던 때다.
건장한 체격에 백팩을 메고, 레이벤 선글라스를 낀 무쌍의 등장은 캠퍼스에 문화적 충격을 던졌다. 게다가 승용차보다 훨씬 비싸다는 괴물 바이크는 학생들로 하여금 기함하게 하였다.
그가 육중한 배기음을 뿜는 가물치를 타고 등교할 때면 남녀를 불문하고 몰려들어 선망의 눈초리로 구경했다. 그가 실제로는 외계인이며 그가 타는 바이크도 지구의 물건이 아니라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무쌍은 조용히 지내고자 하지만 그의 프로필 자체가 조용히 지내기엔 무리가 많았다. 무쌍의 신체는 겉보기에 호리호리하다. 근육은 같은 부피의 지방보다 다섯 배 무겁다. 세근육으로 꽉 짜인 무쌍의 몸은 100kg에 육박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에피듐의 밀도높은 근육은 체중이 무색하게 날렵했다.
장신의 늦깎이 신입생, 뺨에 새겨진 심상치 않은 쌍 십자 흉터, 섬세한 외모, 우수에 찬 눈빛과 마초스런 표정, 무지막지한 외제 대형 바이크, 일기가 불순할 때 타고 오는 외제 승용차, 그의 정체를 추정하는 온갖 소문이 돌았다.
재벌 2세라는 소문과 전국구 조폭 보스라는 소문이 신빙성을 얻었다. 그 외에도 대그룹 회장의 세컨드 소생, 전직 대통령의 숨겨진 아들, 심지어는 미국에서 인체 개조당한 사이보그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물론 무쌍은 소문에 관심도 없었고, 해명도 하지 않았다.
무쌍의 정체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그는 핏덩어리들이 떠드는 소리에 그는 일고의 관심도 없었다. 무쌍의 입장에서 핏덩어리들과 어울리기도 열적었다.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달랐다. 서로의 공통분모가 없으니 쉽게 어울리기도 힘들었다.
여학생들은 서로 내기를 벌이기도 했다. BMW 바이크 뒷자리에 타는 내기다. 우연히 친구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진순이 코웃음 쳤다.
“가물치 뒷좌석에 탄다꼬? 미친년들, 지랄을 해라. 브라자 벗고 젖퉁이로 밤송이 까는 게 더 쉬울끼다.”
진순의 장담대로였다.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가물치 뒷자리에 오른 여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열정의 화신인 혜영을 겪은 무쌍이다. 노바토피아에 에델이 있고 한국에 진순이 있다. 에델과 진순에 비하면 여자애들은 그저 평범한 핏덩어리일 뿐이다. 가물치를 타고 싶어하는 여학생에게 무쌍은 이렇게 말했다.
“내를 아나? 내는 니를 모르거든.”
여학생은 당연히 재수 없다는 얼굴로 물러난다.
“자연과학대 다니는 비싸다고 소문난 오빠잖아요.”
당돌하게 대거리하는 여학생도 있다.
“그건 아는 게 아이다. 내가 니를 태워가꼬 으슥한데 델꼬가서 엉뚱한 짓 안 한다고 믿을 정도로 내를 아나?”
“아이, 왕재수!”
자존심이 상한 여학생은 콧방귀를 뀌고 사라진다. 무쌍은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싶어하는 여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등에 젖가슴을 비빈다고? 난감할 따름이다. 무쌍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지만 상대방으로서는 무지 밥맛없는 인간이다.
무쌍은 매너없는 남자, 밥맛없는 남자로 공인받았다. 그러면서도 도서관 책 반납이나 자리를 부탁하면 서로 맡으려고 다투었다. 매너 없다고 흉보면서 무쌍의 눈에 들 기회만 보는 여학생이 부지기였다.
학생들의 호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타올랐다. 무쌍을 건드려 보려는 여학생이 일개 대대쯤 되었지만, 누구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는 지나치게 과묵했다. 말을 붙이기 어려웠다. 말을 건넬 기회를 잡아야 역사가 시작되지 않겠는가. 신입생 환영회에서도 그는 딱 한 마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성은 박 씨고, 이름은 무쌍이다. 국사무쌍 할 때 그 무쌍이다.”
좌중은 당근 썰렁해졌다.
가물치를 타고 등교한 무쌍의 목적지는 딱 두 군데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걸음으로 강의실이나 도서관으로 향한다. 기세를 갈무리해도 타고난 피지컬에서 풍기는 포스는 어쩔 수 없다.
그의 걸음은 특이하다. 보폭은 밀링머신만큼이나 일정하고, 선반 축을 따라 움직이는 바이트만큼이나 좌우로 흔들림이 없다. 그의 입은 문어를 만난 조개처럼 늘 닫혀있다. 종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잦았다.
동기들과 당구 치고, 미팅 나가고, 커피 마시며 시시덕거리기엔 영혼이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캠퍼스 낭만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