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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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장 바람 잘날 없다5
무쌍의 본질은 육체적 능력과 정신적 성숙도에 불구하고 이십 대 중반의 청춘이다.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마음껏 공부하고, 낭만을 즐기고 싶은 나이다. 늦게나마 대학 문턱을 넘은 이유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친 야만의 땅 사하라 엔네디에서도 낭만 주인이라 불리지 않았던가.
안타깝게도 무쌍은 문명사회보다는 야만의 땅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었다. 수도꼭지만 틀면 쏟아지는 깨끗한 물, 돈만 내면 풍성하게 제공되는 음식,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망, 총격당할 걱정없는 치안이 확보된 땅, 파리와 흙먼지에 시달리지 않는 땅, 독충과 맹수가 없는 땅이 한국이다. 안정된 환경과 현대 문명의 틀이 몸에 맞지 않는 옷으로 다가섰다.
야만의 향기와 살육의 충격은 간단치 않았다. 무쌍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야만에 적응했다. 문명 속 이방인이 되었다. 그의 불행은 육체적 나이에 걸맞는 환경에서 성장못한 탓도 있다. 부모라는 천혜의 보호막이 사라져 버린 아홉 살부터 생존 투쟁에 던져져서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았다.
무쌍이 수천의 인간을 죽이고도 인간으로 남았음은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정신력 덕분이다. 그만큼 영혼의 그릇이 커지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디딤돌이 되었던 단단한 영혼과 강력한 육체가 사회화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사회화는 관계다. 관계 속에서 개인은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훈련받는다. 무쌍은 관계 형성이 쉽지 않은 존재다. 일반인이 그와 마주 서면 호흡이 가빠진다. 은연중에 풍기는 투기와 과묵함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이다. 심령을 압박하는 투기로 인해 누구도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보통 사람이 굶주린 호랑이나 사자와 대화할 수 있겠는가!
이질적인 식사 습관도 사회화 장애로 등장했다. 학생 식당의 메뉴는 그리 맛을 음미할 수준이 못 된다. 학생들은 오 분이나 십 분이면 식판을 비우고 일상 대화와 논쟁에 열중한다.
무쌍은 시답잖은 식판을 비우기까지 최소한 30분을 소모했다. 그는 되새김질하는 낙타처럼 보였다. 십 년간 몸에 밴 습성이다. 동기들은 경건한 식사 태도에 말을 붙일 엄두를 못 냈다. 동기들은 사이보그의 만찬이라고 혹평했다.
1977년 조지 루커스 감독이 내놓은 본격 SF영화 스타워즈가 이듬해 한국에 상륙했다. 뒤이어 1981년에 속편인 제국의 역습이 상영되었다. 자유를 갈망하던 청춘은 광활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SF의 마력에 푹 빠졌다.
젊은이들의 최고 인기 캐릭터는 제다이가 아니라 악당 다스베이더였다. 다스베이더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청춘을 열광시켰다.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한 얼굴, 기계적인 걸음걸이, 음산하게 들리는 딱딱한 말투, 깊이 가라앉은 눈빛이 주는 중압감, 즐겨 입는 블랙 패션, 식사마저 기계적인 인간이 무쌍이다. 학생들이 보기에 박무쌍의 프로필과 분위기는 다스베이더와 한 치의 오차 없이 겹쳤다.
왼뺨에 남은 쌍 십자 흉터마저 가면 쓴 다스베이더의 기시감을 높였다. 덩치, 밥맛, 황태자, 외계인 등등 온갖 별명이 다스베이더로 통일되었다. K 대학에서 다스베이더를 모르면 간첩으로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쌍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정확히 말하면 관계로 형성된 유명인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유명인이 된 안드로메다 인이 무쌍이다. 그는 자신만 모를 뿐 보통 사람이 되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다. 영혼의 무게와 크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에게 친구는 생사를 나누는 관계를 의미한다. 막걸리와 소주를 쌓아놓고 죽자고 마시지 않는 한 캠퍼스에서 생사를 논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대학을 다녀도 인간관계가 넓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소리다.
지친 영혼은 몽매간에도 평안한 생활을 원하지만, 이기적인 유전자는 선혈이 강물처럼 흐르는 전장을 원하고 있었다. 무쌍이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복잡한 소문과 달리 무쌍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오금공 수련으로 몸을 푼다. 사부와 공양을 들고 곧바로 바이크를 타고 등교한다.
암자에서 학교까지 70km에 불과하다. 그에게 70km는 지척지간이다. 그럼에도 등하교 시간이 세 시간을 잡아먹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복잡한 시내를 거치기 때문이다.
학교에 도착하면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적이고, 책을 빌려 온다. 암자에 돌아오면 전공 관련 서적이나 인문 서적을 뒤적인다. 저녁이면 예불을 올리고, 오금공을 수련하고, 심상 수련을 한다. 보통 젊은이라면 비명을 지르고 남을 단조로운 생활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 학기 중간고사를 볼 때까지 남양일보에 호출 광고가 실리지 않았다. 제르맹의 고집 덕분임을 무쌍이 알 리 없었다.
어머니를 찾는 일과 은원도 미루어 두었다. 사부님이 말씀하시길 길이 저절로 열릴 것이라 했다. 때가 되면 정리된다고 하셨다. 조급함이 오히려 일을 망치리라 했다. 사부의 말만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
무쌍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잊고 차츰 일상에 묻혔다. 어쩌면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맛보는 평범한 생활이다. 기즈 박사가 말하길 평안한 일상이야말로 상처 난 영혼을 치유하는 최고의 의술이라고 했다. 정신세계에 그늘을 드리운 홀로코스트의 그림자도 차츰 씻겨나갔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대학가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음을 CIA도 KGB도 몰랐다.
세상만사는 양면성이 있다. 오로지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일은 없다. 그래서 속담도 꼭 쌍으로 만들어진다. 설상가상이 있으면 새옹지마가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속담 반대편에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속담이 있다. 빛 좋은 개살구 반대쪽에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 라는 대척 속담이 있는 식이다.
인간사가 그렇다 보니 종교도 살아남기 위해 악의 축을 만들었다. 기독교는 멀쩡한 천사를 타락시켜 사탄을 만들고, 오순도순 재미지게 사는 이브를 꼬여서 죄를 짓게 하였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마왕 파순을 비롯해서 온갖 종류의 마귀가 수행을 방해하고 인간을 우매한 존재로 만든다. 우매한 존재는 홀로서기 힘드니 부처님께 귀의하고 수행에 힘쓰라는 식이다. 죄악과 악의 축은 종교가 굴러가는 두 바퀴다. 악의 축이 없이는 종교가 존립하기 어렵다.
무쌍은 종교가 없다. 아니 싫어한다는 쪽에 치우쳐 있다. 그가 생각하는 악의 축은 관념적인 악마가 아니라 우월적 위치를 남용하는 특권 의식을 가진 구체적인 인간이다. 애당초 기존의 종교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소리다.
종교는 수련의 방편 이전에 의지처다. 무쌍은 부러질지언정 숙이지 않는 성격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자신을 믿고 자부심이 강하다. 절대로 종교에 기댈 성격이 아니다.
그가 행자복을 입고 예불을 올림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마음 수련의 일환이다. 그는 이미 스스로 종교적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다. 무쌍은 신인류로서 사이코패스적 인성을 갖는 동시에 종교적 자비와 정의를 실현코자 하는 극단적인 이중성을 보이는 인물이다. 무쌍과 가장 유사한 존재를 찾는다면 삼국지연의 인물인 조조다.
수천의 백성을 눈 깜짝 않고 죽이면서 부상당한 부하를 부여잡고 안타까워하는 인물이 조조다. 그가 이중적인 인간, 간신으로 폄하 받는 이유는 주희로 대표되는 주류 유학자들의 편협된 시각 때문이다. 무쌍도 마찬가지다. 양 극단을 오간다. 평범한 학생이 블랙맘바의 진실을 안다면? 혼백이 달아날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속담이 생겼다.
우우웅- 진순과 연순이 자취하는 앞산 밑 구옥에 가물치가 들어섰다.
“할매, 별고 없었능교?”
무쌍이 버럭 소리 질렀다.
“에고, 찐순이 오래비 왔능강.”
허리가 굽고 눈에 진물이 흐르는 할머니가 무쌍을 반겼다. 혼자 사는 주인 할머니는 귀가 어둡다. 무쌍이 큼직한 설탕 부대를 건넸다.
“뭘 또 이케 사 오나. 내가 낯이 없어서 우야꼬!”
할머니가 말씀과 달리 냉큼 선물을 받았다.
“저번에 할매가 설탕을 먹어야 소화가 된다 캐서 사왔심다.”
“에고 정신통머리도 염낭 시럽구매. 늙으니께 달달한 것만 자꾸 땡겨. 고마우이. 내 새끼는 키아나도 소용없고 자네가 아들 노릇 하는구마. 늙으마 죽어야제.”
할머니가 눈물을 질금거렸다.
“할매, 건강하이 오래 사시소.”
무쌍은 사설이 늘어질세라 인사를 던지고, 얼른 진순이 자취하는 아래채로 들어갔다.
“오빠, 웬일이라예?”
늦은 저녁을 준비하던 연순이 앞치마에 손을 훔치며 튀어나왔다.
“목살하고 삽겹살 쪼매 끊어왔다. 언니는 오데 갔노?”
무쌍이 비닐봉지를 건네주고 툇마루에 털썩 앉았다.
“언니는 동산병원에 실습 나갔어예. 오메야, 마이도 사왔네요. 배고프지예? 쪼매만 기다리시소.”
연순이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늦어도 개안타. 김치찌개는 끓이지 마래이.”
무쌍이 연순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에델이 조리한 김치찌개에 식겁한 그는 김치찌개 트라우마가 생겼다. 김치찌개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식욕이 사라졌다.
“졸업하마 취직은 우얄라카노?”
“지방대학교 경영학과 나온 지지배가 번듯한데 갈수 있겠심니꺼. 대충 쪼맨한 무역회사나 들어가야지예. 언니처럼 바로 취직되는 간호학과나 갈걸 잘못했어예.”
연순은 진순과 한 살 차이다. 진순이 고등학교 입학을 한 해 늦추는 바람에 같은 졸업반이다.
“임마, 실력이 문제지. 지방대학이 무신 상관이고. 간호사도 마이 힘들어. 살인적인 근무시간에 봉급도 쥐꼬리라 하더라.”
“하이고 오빠야, 공자 말씀하지 마시소. 지방대는 대기업이 추천장도 가물에 콩 나듯 주는 기라요. 우리 과에도 딱 한 장 왔어예. 추천장 없이 입사 원서를 넣어봐야 쓰레기 통으로 직행한다 아임니꺼.”
“그래? 그거 몹쓸 놈들이네. 걱정하지 말아라. 오빠가 있지 않느냐.”
“헤헤, 벼룩도 낯짝이 있지예. 오빠가 계집애들 공부 시키준것만도 어딥니꺼. 근데 오빠, 언니는 우짤기라예?”
연순이 밥상머리에 바투 다가앉았다.
“잔망시런 가시나가 오빠 목 멕히거러 씰데없는 소리는 와 하노.”
대답은 방문 밖에서 들려왔다.
“헙!”
연순이 입을 딱 닫았다. 한 살 차이지만 연순은 감히 진순에게 개개지 못했다. 진순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흰 가운을 입은 채다.
“오빠, 오셨어예.”
“옹야, 밥 묵자.”
“언니야, 와이래 일찍 왔노?”
“오빠가 오실 것 같은 예감이 들었거든. 옷도 안 갈아입고 퍼뜩 왔다 아이가.”
“허이고, 예감 같은 소리 한다. 작두 타도 되겄구마.”
상차림을 본 진순이 질색했다.
“아이고 이것아, 오빠 상차림이 이기 머꼬. 오빠가 토끼가? 생선도 한 마리 없구마.”
“흥, 박 씨 부인 났네.”
연순이 이죽거렸다. 진순이 들은 둥 만 둥 팔을 둥둥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고소한 기름 냄새와 프라이팬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순은 순식간에 푸짐한 두루치기를 들여보냈다. 적어도 두 근은 넘는 양이다. 무쌍이 한 점을 집어먹고 엄지를 들었다.
“오우, 마이따! 재울 시간도 없는데 돼지고기 냄새가 하나도 안 나네.”
“급해서 카레 가루를 살짝 쳤어.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요?”
“별로 재미없다. 그딴 실력으로 교수님 소리 듣는 인간들도 웃기고 학점에 목매다는 애새끼들도 웃긴다. 대충 출석 눈도장 찍어 넣고 방구 새듯이 도서관으로 빠지뿐다.”
“크크크! 오빠가 어련하겠어.”
진순이 킬킬 웃었다. 국민학교때 피타고라스 정리를 알고, 가우스 계산법으로 하중도 수십만 평에 자라는 버드나무로 만들 수 있는 젓가락 숫자를 계산했던 오빠다. 어릴 때는 막연히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안타깝기 한이 없었다.
“오빠, 지금이라도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은 없어?”
“늦었어. 이미 넓은 세상을 보았거든.”
무쌍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기엔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졌다. 이래서 가진 게 많아지면 신관이 불편해진다 했던가.
“오늘 밤에 할 일이 있어서 암자로 안 가고 일로 왔제?”
“엉, 우예 알았노? 진짜 작두 타겄구마.”
“흥,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걸랑.”
진순이 피식 웃었다.
“그동안 만사를 잊고 푹 쉰 기라. 학교생활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요즘 예감이 좋지 않아. 처리할 일들을 후딱 정리해야겠어.”
“고모는?”
“사부님이 말씀하시길 저절로 때가 오리라 하셨다.”
진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 할배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내가 스님 할부지 공양 차리 드리러 갈까?”
“아이다. 내가 퍼뜩 다녀오꾸마.”
무쌍이 남은 두루치기를 후루룩 입안에 쏟아넣고 일어섰다.
“오늘은 달도 없네.”
골목 끝까지 배웅나온 진순이 슬쩍 어깨를 붙였다. 무쌍이 어깨를 당기자 답삭 안겼다.
“여러 가지로 내가 미안타.”
“아이다. 내는 오빠 곁에 있기만 하마 된다. 열두 살에 내는 오빠 그림자가 돼 삔 거라.”
진순의 목소리에 물기가 담겼다. 열두 살 나이에 오빠 등에 업혀 낙동강을 건너던 기억이 생생했다. 땀 젖은 등에서 풍기던 냄새에 영혼이 사로잡혀 버렸다.
“걱정하지 말아라. 퍼뜩 다녀오마.”
가로등이 환한 골목이다. 무쌍의 모습이 허공중에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쳇, 걱정은 내가 와 하노. 다치기라도 해야 붙들고 손가락이라도 빨지. 에이 씨, 달도 없는데 콱 안아주마 누가 때리나.”
진순이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