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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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장 바람 잘날 없다7
선우방나가 방구석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제자를 흘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소녀가 조사한 바로 일본 문화청에 등록된 신사는 80,478개소, 분사까지 합치면 14만입니다. 동네마다 신사가 있는 셈이지요. 무교와 신도의 신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크게 나누면 자연신(애니미즘, 토테미즘)과 인신(영웅)입니다. 무도가 단군과 민족의 영웅을 모신다면 신도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전쟁 범죄자를 모시는 차이지요. 관성제군, 설인귀장같은 중국 귀신을 모시는 무당도 있지만, 그것들은 영력없는 사이비 찌꺼기입니다. 무도는 천신부터 잡귀까지 신의 서열이 명확합니다.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이 뒤섞인 신도보다야 급수가 높지요.”
“나는 급수가 어디에 속하나?”
선우방나가 으스대자 무쌍이 짓궂은 물음을 던졌다. 한국의 무속 신도 켈트 신화나 그리스 신화에 못지않은 다양한 신격이 있다.
“무당은 분수를 아는 존재입니다. 하찮은 인간이 거대한 영혼을 가늠할 수 없지요. 무교의 신은 지역과 사문에 따라 다르지만, 상층 신에 천신, 칠성신, 산신이 있고, 중층에 사해용신, 삼불제석신, 장군신이 있습니다. 하층에 성주신, 대감신, 지신, 조왕신이 있고 최하층에 걸립신, 잡귀가 있습니다. 무당의 능력도 강신한 몸주신의 등급에 따라 달라집니다. 서열 높은 신을 몸주신을 받은 무당은 하위 서열 신의 능력도 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잡귀들이면 평생 날구지나 치다 가는 거지요. 대신은 이런 범주에 넣을 수 없는 신격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옥황상제급 이상이지요.”
“옥황상제든 북두성군이든 지금은 평범한 인간의 몸이다. 우주의 거대한 섭리에 들어있는 티끌 같은 존재일 뿐이지. 당신이 번거로움을 자처한 이유는 위기감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신도를 미신이라 매도하는 일본인은 없습니다. 신도는 대동아전쟁에 패한 일본이 반강제적으로 국교를 포기하기까지 국교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우리 현실은 참담합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후로 정부는 끊임없이 무교를 탄압하고 말살하는 문화정책을 지속해 왔습니다. 엄연히 접신하는 신, 강림하는 신을 미신이라 내치고, 정자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여자와 그 아이를 구세주라 믿는 종교를 비판하면 난리가 벌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도시를 덮은 붉은 십자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우리 전통 신앙이 갈보집 나서는 남정네 좇처럼 시들거리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종교는 미신입니다. 자기 나라의 민속 신앙을 미신으로 매도해서 말살하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왜 한민족이 고유의 전통 신앙을 버리고 서남아시아 한쪽 구석에서 발흥한 외래 종교를 별다른 비판 없이 수용했을까요? 원류인 유대인조차 거부하는 종교를 말입니다. 간악한 쪽바리 놈들의 게다짝에 짓눌려 민족 자긍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벨도 없는 인간들이 득세해서 정치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우방나가 자신의 처지도 잊은 양 열변을 토했다. 겁먹었던 눈이 열정으로 번쩍이고, 얇은 입술에 성능 좋은 모터라도 달린양했다.
‘얼래, 이 여자 보게. 여의도에서 죽은 국개의원 귀신이 빙의되었나?’
무쌍은 그리 편치않은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 늙은 무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의 무속이나 일본의 신도나 도찐개찐 판테온이다.
한국에서 굿당을 찾기 힘든 반면에 일본에는 발 닿는 곳마다 신사가 있다. 진짜배기 무당의 눈에 비친 불교와 기독교는 관념적 신에 매달리는 뜬구름으로 보일 것이다. 실체 없는 신에 매달리는 종교가 득세한 현실이 마뜩잖을 것이다. 무쌍은 장난끼가 슬쩍 들었다. 선우방나의 예지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선우방나, 내 전생을 볼 수 있나?”
“크 큰일 납니다요. 영매자가 서열 높은 신의 진체를 훔쳐보려다간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잘해야 미치는 정도로 끝납니다.”
선우방나가 펄쩍 뛰었다. 영의 세계는 인간 세계보다 능력에 따른 힘의 우열이 뚜렷하다. 객기를 부리다가 뇌가 터져 죽은 도반이 한둘이 아니다.
“호오, 당신이 모시는 전우치는 어디에 속하나? 도력이 대단했다던데, 불가능한가?”
“우주에 무량수의 영이 존재하지만, 대신의 존체는 채 열에 미치지 못합니다. 전우치 큰 스승은 도교신 계통의 인신으로 산신에 속합니다. 상급 신이지만 대신에 비할 수는 없지요. 소녀의 능력이 아니라 몸주신의 능력이 따르지 못합니다.”
“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한가지가 있다. 알 수 있겠느냐?”
무쌍이 물고 늘어졌다. 기어이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무속인을 가장 많이 찾는 부류가 정치인이라 했다. 무당이 과연 인간의 길흉화복,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을까?
“대신님은 화신조차 이미 신의 반열에 들었사옵니다. 소녀는 감히 시험할 담력이 없사옵니다. 다만 대신님의 부모님을 통해서 엿볼 수는 있을 듯합니다. 혹시 부모님이 아끼던 물품이나 신체 일부가 있으신지요?”
“후우! 유품이라~”
무쌍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후르르 한숨을 쉬었다. 너무 어려서 부모님의 유품을 챙길 생각조차 못 했다. 손톱 크기의 아버지 주민등록증용 사진 한 장과 엄마가 사용했던 참빗 한 개가 전부다. 그것도 하동댁이 챙겨주었다. 무쌍이 품에서 윤이 반들반들한 참빗을 꺼내주었다.
“호오, 벽조목으로 만든 고급품입니다. 물건에 조신한 주인의 격조가 배였습니다. 젊은 여인이 쓰던 물건이군요.”
선우방나는 철릭을 입고 펄펄 뛰지도 않고, 작두를 타지도 않았다. 참빗을 들고 명상에 잠겼다. 접신이 시작되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벌어졌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볼이 푸르르 떨리더니 눈물이 주르륵 굴러떨어졌다. 매개체를 통한 감응 동조, 감정이입 현상이다.
“기구하고 기구하다. 천제의 딸이 어찌하여 또다시 하계로 떨어졌던고. 서왕모의 진노가 풀리지 않았음인가. 견우의 악독한 형수를 만난 직녀가 또다시 모진 고난을 겪는구나. 전생엔 지아비와 생이별하더니 이생엔 지아비를 잃고 자식과 생이별을 했구나. 오호 불쌍한지고, 고귀한 존재가 진체도 모르고 화신조차 잃고 바닷가를 헤매는구나.”
선우방나가 푸들푸들 떨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거 거기가 어디요?
무쌍이 버럭 소리 질렀다. 굉량한 외침에 대들보에 쌓인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선우방나의 떨림이 뚝 멎었다.
‘아차!’ 무쌍이 가슴을 쳤다. 접신한 영매자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린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선우방나의 눈이 초점을 찾았다.
“이런, 닝기리 조또!”
무쌍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대신이시여, 너무 안타까워 마십시오. 이승의 인연은 남가일몽이니 윤회의 겁에 들면 잊힐 인연입니다.”
선우방나가 타이르듯이 담담히 말했다. 무속의 전생 관은 이승과 저승의 단절이다. 육탈한 영혼은 불멸의 순수한 근원으로 돌아간다. 아들이 이승의 경계를 넘어 저승에 들어도 죽은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무쌍은 할 말이 없었다. 격동하는 바람에 어머니의 거처를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살아 계시는가?”
“그렇사옵니다.”
“어딘가?”
무쌍이 잡아먹을 듯이 거칠게 물었다.
“섬이 많은 것으로 보아 남해 바닷가인 듯합니다. 방파제가 있는 항구입니다.”
“남해라~”
무쌍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선우방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신님의 능력이 하늘을 덮지만, 인연의 겁을 벗어나지 못한 존재임도 사실입니다. 억지로 인연을 비틀면 헝클어진 섭리가 역산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시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만도 큰 수확이다. 무쌍이 본래의 덤덤한 태도로 돌아갔다. 선우방나의 영매술은 얕볼 수준이 아니다. 한 방면의 최고봉에 오른 사람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다. 무쌍의 말투가 달라졌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낮추십시오. 소녀는 감히 대신의 높임을 감당할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알았다.”
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은 인격이 아니라 무격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어른 대접을 한다고 존대하면 상대는 불안감만 가중된다.
“불교도 기독교도 외래 종교입니다. 외래 종교에 면세 혜택을 주고 석가탄신일과 예수 탄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기까지 했습니다. 무교는 탄압과 말살 정책에 밀려서 각 유파의 맥이 하나씩 끊어지고 있습니다. 정통의 맥인 강신류가 희미해지자 온갖 사이비가 날뛰고, 이들이 무교의 본질인양 호도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분열과 질시의 종교고, 불교는 은둔의 종교입니다. 국민 통합의 역할을 하기엔 본원적 한계가 있습니다. 소녀는 무교야말로 우리 민족을 통합할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무쌍은 열변을 토하는 선우방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약이 있긴 하지만, 무속인으로서 현실이 억울할 만도 하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무속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현실 기복적인 성격도 너무 강하다. 반면에 불교와 기독교 교리의 뼈대는 자비와 사랑이다.”
“말만 번드레하지요. 그들이 실제로는 재물과 세속의 권력에 넋이 빠져있다는 증거를 삼만 육천오백 가지는 들 수 있습니다.”
선우방나가 침을 튀겼다. 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사람이 문제겠지. 당신 제자는 부정한 돈을 받고 불특정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방자를 했다. 그래서야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겠나? ‘나만 행복하면 돼’. ‘나만 불행하지 않으면 돼’라는 의식으로 지지를 얻고 통합을 이룰 수 있겠나? 무속이 종교로 거듭나려면 ‘다 함께 행복’이라는 아젠다를 확립해야 한다.”
“대신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그래서 소녀가 나섰습니다. 전국의 무교를 조사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 다음 무교대장전을 제정할 계획입니다. 신년이면 일본인의 80%인 일억 명 이상이 신사 참배합니다. 그게 바로 일본인이 뭉치는 이유입니다. 일본강점기에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던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겼습니다. 그 자리에 조선에 만들어진 신사를 대표하는 조선 신궁을 짓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봉헌했습니다. 간악한 일본인들은 무교가 신도처럼 조선인의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설까 두려워했던 겁니다.”
“됐다. 그대가 나름대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알겠다. 넋 빠진 위정자들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구나.”
무쌍이 탄식했다. 음지 좌도방 무당마저 나라를 걱정하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은 딴 나라 인간인 양 행세한다. 일본인 아니면 미국인이다.
“제자의 이름이 무엇인가?”
“선우마고입니다. 제 딸년입니다.”
“헐!”
무쌍은 깜짝 놀랐다. 모녀의 나이가 거꾸로다. 하긴 수련의 깊이에 따라 외모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어쩐지 선우방나가 제자를 지나치게 감싸긴 했다.
무쌍은 여전히 떨고 있는 선우마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부는 이들을 나름의 쓸모있는 존재라 하셨다. 과연 그랬다. 역시 사부님의 혜안은 넘사벽이다.
“알겠다. 선우마고의 행위는 미수에 그쳤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 둘의 목숨은 오늘로서 끝났겠지.”
무쌍은 품속에 늘 지니고 다니던 아버지 사진을 꺼냈다.
“선우방나, 염사(念寫) 능력이 있나?”
“어렵지 않습니다만 염사는 기력 소진이 큽니다. 소녀는 한차례 접신으로 인해 기력이 소모되었습니다. 제자의 능력도 제법입니다. 망할 것, 어서 나서지 못해!”
선우방나의 호통에 선우마고가 후다닥 일어나서 박진보의 사진을 공손히 받았다. 선우방나의 잔머리가 훤히 보였다. 위험한 손님의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다.
선우방나가 누런 괴황지를 펼쳐서 칠성검으로 바람벽에 꽂아 고정했다. 선우마고가 사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두정에서 에너지가 소용돌이쳤다. 츠츠츠츠- 괴황지에 검은 점이 툭툭 찍혔다. 점이 선으로 변하고 선이 면으로 바뀌었다. 이목구비가 새겨지고, 명암이 살아났다.
‘대단하군!’
무쌍은 감탄했다. 역시 세상은 넓다. 기즈 박사가 말하기를, 오래지 않아 인간의 뇌파로 전기 제품을 가동할 날이 올 것이라 했다. 인간의 정신력은 한계가 없다.
괴황지에 생전의 박진보가 살아났다. 넓은 이마, 우뚝한 코, 고집스러운 입술, 인자한 표정까지 그대로다.
“아, 아부지!”
무쌍이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대신님의 부친이시군요. 못난 제 딸년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선우방나가 머리를 조아렸다. 염사 작업을 끝낸 선우마고도 바짝 엎드렸다.
“선우마고, 너는 두 번 다시 남을 해치는 술법이나 방자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모시는 신에 맹세하라.”
선우마고가 기꺼이 맹세했다. 영매술사와 몸주신의 맹세는 인간끼리의 계약에 비할 바 아니다. 맹세를 어기면 신 내림이 끊어진다. 쌓아온 술력을 잃고, 뇌에 충격을 받아 일반인으로 사는 생활도 불가능해진다.
무쌍이 들고 있던 작두 날을 방바닥에 꽂았다. 뿌악- 두자 반 길이의 작두가 구들장을 뚫고 푹 박혔다. 작두 날이 끝까지 들어가고 손잡이만 방바닥에 남았다.
“내가 너를 징계하면 천륜과 사문을 끊게 되는구나. 선우마고는 들어라. 네가 염사한 인물은 너로 인해 혼이 속박당할 뻔한 분이시다. 너는 염사진을 굿당에 걸고 날마다 평안함을 기원하라. 할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