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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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장 바람 잘날 없다8
“소녀가 모시는 신에 맹세코 성심성의껏 봉행하겠사옵니다.”
선우마고가 깊이 허리를 굽혔다. 무쌍은 남은 의구심을 지웠다. 선우방나 모녀는 그들의 가치를 입증했다. 선우방나의 무속도(巫俗道) 사업은 공감할 여지가 많다.
무속의 세계관과 사상은 오랜 세월 동안 불교, 도교와 뒤엉켰다. 무속의 신관(神觀)은 판테온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한국인의 삶 속에 녹아들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펄쩍 뛸 말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마리아와 예수도 무신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어엿한 대감신, 몸주신이 될지도 모른다. 어울림과 공감이야말로 판테온이 사회 통합의 공통분모로 작용할 수 있는 매력이다.
사찰은 심산유곡을 벗어나 도시 곳곳에 침투했다. 교회는 도시와 농촌을 뒤덮었다. 굿당이 일본의 신사처럼 여기저기 들어서지 못할 것도 없다. 발칙한 생각이지만 무속이 사회통합의 접착제로 쓰일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무쌍은 수표책을 꺼내서 10만 프랑을 기재하고 서명했다. 자신이 노바토피아에서 이상을 펴듯이 이들도 자신의 신념을 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우리 것을 살리고자 하는 그대의 마음가짐이 가상하다. 종교는 종교로서 존재해야 한다. 종교가 세속의 권력과 금력에 손을 뻗는 순간부터 오염됨을 명심하라. 한화로 3,000만 원쯤 될 것이다. 반드시 BNP파리바에서 환전토록 하라.”
“이 이럴 수가! 아니 되옵니다. 소녀와 딸년은 대신님의 용서를 받은 것만으로 넘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눈이 휘둥그레진 모녀가 펄쩍 뛰었다.
“내 아버지를 모시는 비용이라 생각해도 좋고, 너희가 추진하는 무속도 사업을 후원하는 기부금이라 여겨도 좋다. 내가 보는 무속의 바탕은 질투와 공감이다. 질투와 공감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질투는 개인의 분발을 촉발할 수도 있고 남을 끌어내리려다 자신을 망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굿거리는 축제다. 공동체에 내재된 질투심을 해소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용광로가 될 수 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무쌍은 수표를 건네주고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공감은 하지만 적극적으로 관여할 생각도 없다. 무속은 지나치게 개인적이다. 개인적인 기복 신앙이 종교로 성장하려면 통합 아젠다를 개발해야 한다. 신도는 수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 열도에 갇혀있다. 통합적, 보편적인 세계관없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무속도 마찬가지다. 종교로 성장하려면 무속인 스스로 변해야 한다.
“대신이시여, 소녀도 대신을 따르고 싶사옵니다.”
무쌍이 대문을 나설 때 선우방나가 소리높여 외쳤다.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할 일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마음이 변치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대답은 계곡 아래쪽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왔다.
“오, 이 땅이 낳은 진정한 신인이시여!”
선우방나와 선우마고가 굽힌 허리를 펼 줄 몰랐다. 무쌍이 선을 긋고 돌아섰지만, 하늘의 섭리는 누구도 헤아리지 못한다. 대신 아수라의 방문은 좌도방 술사 선우방나 모녀를 노바토피아로 이끄는 벼리끈이 되었다.
멀지 않아 오현자의 한 자리와 뚜바이부르파의 잔인한 망치인 칠호장 한 자리가 이들 모녀로 채워진다. 대술사 전우치의 맥을 이은 선우방나도 자신의 미래는 읽지 못했다.
“이거 발품을 팔아야 겠구마.”
무쌍이 먹물 같은 어둠 속에서 투덜거렸다.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신한리 국도로 빠져나왔지만, 지나다니는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갓바위에서 도로를 따라 수성구까지 가려면 60km가 넘는다.
무쌍은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차량을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느긋한 성격도 아니다. 신한리에서 청통의 환성산, 능천산을 거쳐 수성못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그야말로 야밤의 도깨비가 따로 없다.
갓바위에서 동대구까지 15km, 동대구에서 금호강을 거쳐 수성못까지 16km다. 무쌍은 내친김에 건물 옥상에서 옥상을 뛰어넘어 산악과 시내를 단 30분 만에 주파했다. 경인할 기동력 또한 블랙맘바가 보유한 무서운 능력이다.
언덕 위에 괴물처럼 올라앉은 커다란 저택, 짚은다리에서 옮겨온 백부댁이다. 만감이 교차했다. 함박눈이 자욱이 내리던 그 날, 백부집을 떠나던 자신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갔다. 그리고 십이년이 지나서 다시 백부댁 앞에 섰다. 찾아온 목적은 별것 아니다. 시간 있을 때 동태 파악을 해서 슬슬 고삐를 죌 작정이다. 덤으로 화자가 있으면 납치해서 상황을 알아볼 작정이다. 근래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보니파스가 반년 이상 얌전히 있을 만큼 프랑스는 한가한 국가가 아니다.
스스슥- 무쌍이 안개처럼 저택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정원에 서 있는 커다란 소나무 꼭대기를 슬쩍 밟고 올빼미처럼 소리 없이 허공을 날았다.
컹- 잔디밭에서 어슬렁거리던 셰퍼드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함께 있던 놈도 귀를 쫑긋 세웠다.
“꼴통, 조용히 해.”
대문 옆 경비실에서 누군가 소리 질렀다.
‘그 새끼들 디기 예민하네.’
지붕 위에 올라선 무쌍이 혀를 찼다. 자연동화술을 발휘하지 않았다곤 하지만 셰퍼드가 은밀한 기척을 알아차렸다. 역시 개와 인간은 후각과 청력에서 비교 불가능이다.
지붕 위에서 시퍼런 빛 두 개가 번쩍했다. 호랑이도 명함을 못 내밀 강력한 살기다. 껑- 셰퍼드 두 마리가 펄쩍 뛰고는 다리 사이에 꼬리를 말아 넣고 쏜살같이 달려서 개집으로 쏙 들어갔다.
‘늦은 시간에 뭔 일이래? 무슨 작당을 하는지 들어볼까.’
집안에 인기척이 한둘이 아니다. 본채에 열 명, 대문간 옆 건물에 다섯이 있다. 무쌍은 느긋하니 용마루에 자리 잡고 누워서 귀를 기울였다.
천장에 달린 수정 샹데리에가 섬마을 분교 운동장 수준의 거실을 환히 밝혔다. 원형으로 배치된 소파에 앉은 남녀의 표정은 어둡고 칙칙했다. 모두 소태 씹은 얼굴이다. 한 잔 추출 원료가 쌀 석 되 값이라는 루왁 커피에 손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씨 일가의 핵심 인물들이다. 장씨, 친정아버지 장경주, 동생 장기수와 장상수, 숙부 장경모, 사촌 장철수, 당숙 장경택과 장경남, 장씨의 육촌 형제들이다. 전환사채를 발행한 후로 친정 어른들이 수성동 집을 수시로 출입했지만 한꺼번에 모이기는 처음이다.
오늘의 모임은 사채이자 때문이다. 6월분 이자를 지급해야 할 날짜가 다가오자 견디다 못한 노인네들이 박인보를 찾아왔다. 자금 융통을 부탁하러 온 것이다.
천하의 장씨 가문이 이자에 시달린다면 다섯 살짜리 어린애도 웃을 노릇이지만, 현실이 시궁창인데 어쩔 것인가. 상황이 왜 이렇게까지 악화하였을까? 박인보가 마삼식을 조종해서 퍼뜨린 악성 루머가 결정타였다.
장씨 가문이 보유 중인 토지를 모두 급매물로 내놓는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원매자들은 모두 뒷짐 지고 호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시세의 60%~70% 전후에서 입질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자금계획이 구멍 났다. 펑크난 자금을 사채 급전으로 땜방한 휴유증은 크고도 깊었다. 단 6개월만에 장씨 가문은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조카, 경찰에 알렸나?”
장경주의 질문에 장철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인동 일대는 물론이고 구미 선산에서도 둘만 모이면 우리 집안을 술안주로 삼고 있심더. 신고해봐야 집안 우사밖에 더 하겠심니꺼.”
장철수가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게 형님이 잘못한 기라요. 그 새끼들을 가두지 말고 경찰에 바로 넘겼어야지요.”
육촌인 장영수가 종손인 장기수를 타박했다. 예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가문의 위기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던 위계질서마저 흔들었다.
“무신 소리 하나. 글마들을 경찰에 넘기 봐야 증거도 없는데 우얄끼고. 멍석말이해서 직접 배후를 캐야제.”
“그라마 경찰을 불러서 보초를 세우든지 했어야지요.”
“영수야 그만해라. 형님인들 불한당 패거리가 감히 종가에 난입할 줄 짐작이나 했겠나.”
장철수가 장영수를 나무랐다. 반석처럼 굳건하던 가문에서 상놈 집안처럼 니나도리가 벌어지는 꼴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날 밤 소문을 퍼 나른 놈 둘을 잡았다. 장기수가 직접 문초를 하려고 광에 가두었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불한당 한 떼거리가 본가에 들이닥쳤다. 집안 젊은이들과 고용인들이 맞섰지만, 쇠파이프와 오토바이 체인 같은 흉기를 든 불한당 패거리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
불한당들은 광을 때려 부수고 잡아둔 두 놈을 구해서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문중 어른들은 본가에서 벌어진 참사에 얼이 빠졌다. 가문 역사이래 이처럼 참담한 일은 없었다. 박인보가 마삼식에게 정보를 주었음을 이들은 꿈에도 몰랐다.
“후, 망할 노무 인간들! 용이 개천에 떨어지니까 미꾸라지에게 희롱당하는구먼.”
장경주가 부실한 이빨을 갈았지만, 조카의 말이 틀리지 않다. 갑자기 세상이 뒤집혀버렸는데 어쩔 것인가.
“형님, 불한당 놈들은 이자뿝시다.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시지요.”
“그라제.”
장경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실아, 박 서방이 자금 협조를 영 못하겠다 카더나?”
“야, 죄송합니더. 공장 건축 자금도 부족한데 무신 소리를 하느냐고 펄펄 뜁디더.”
장씨가 고개를 숙였다. 남편에게 일시 가지급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대표이사 가수금으로 잡혀 세금을 왕창 물어야 하니 미리 세금을 내놓고 가져가라는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
“휴우, 이 일을 우야꼬.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가.”
장경주의 한숨에 땅이 꺼졌다. 장씨는 가슴이 찢어졌다. 자신이 늙은 아버지의 말년을 망쳤다는 자책감에 죽고만 싶었다.
“전환가라 카는 기 우짤수 없는 기가? 모지리 주식으로 전환해도 십만 주밖에 안 된다 아이가. 이 일을 우야마 좋노.”
친정아버지가 늘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숙부가 그 말을 받았다.
“내 미쳐뿔겠다. 형님이사 유도리가 있지만 내는 답이 없능 기라. 상답 다 팔아 넣고 은행에서 1억 땡기고, 사채만 2억인 기라. 한 달 이자만 천만 원이 넘게 나간다 아이가. 주식으로 전환만 하마 회사가 우리 가문으로 넘어온다 카디만 말짱 헛긴기라. 질녀는 이 사태를 우얄라 카노?”
“……”
언제나처럼 장씨는 말이 없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숙부가 저 말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녹음기를 튼 것처럼 토씨 한 개 틀리지 않았다. 자신과 동생이 앞장서서 가문 어른을 끌어들였으니 할 말도 없다.
“박실아, 내 속이 휘딱 디비진다. 말 좀 해 보거라. 내도 사채가 팔천인 거라. 이번 달 사채 이자가 삼백이다. 경모 형님도 난감하지만, 나도 이자 때문에 길거리에 나 앉게 생깄다 아이가. 우째 좀 해 봐라.”
둘째 당숙 장경남이 손바닥으로 차탁을 내리치며 우는소리를 했다.
“……”
장씨는 묵묵부답이다. 본인도 답답하다 못해 울고 싶은 심정이다. 친정 어른들의 거듭되는 닦달에 짜증이 만장을 치솟았다.
대지주로 떵떵거리는 장씨 가문에서도 인수대금 30억은 어린애 이름이 아니었다. 종가와 여유 있는 방계 집안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분위기는 좋았다. 서로 많이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가문 회의를 열어서 전환사채를 분배했다.
장손인 장기수 15억, 장필녀 본인 5억, 숙부 장경모 5억, 큰 당숙인 장경택 2억 5천, 작은 당숙 장경남 2억 5천만 원을 인수키로 회의에서 결정했다.
인동지역에서 절대농지는 평당 3천 원~4천 원의 시세가 형성되어 있었다. 경지정리가 된 논은 시세에서 천원이 더 나갔다. 단순 계산으로 평당 평균 4천 원을 잡으면 사채 30억은 논 3,750마지기에 해당한다. 입이 딱 벌어질 금액이다.
회의를 열어 가문에서 매각 가능한 토지를 2,500마지기로 잡았다. 나머지는 은행 대출을 내기로 했다. 그 정도면 가문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때까지만 잔칫집 분위기였다. 갑자기 헛소문이 퍼지면서 상황이 급전직하했다. 원매자도 나서지 않고 악성 루머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토지를 헐값에 처분했다. 사촌, 육촌 형제들의 재산도 빨려들어 갔음은 불문가지다. 가문 전체로 볼 때 인수자금의 35%인 10억 5천만 원이 구멍 났다.
토지를 추가로 매각하고 담보 대출을 냈으나 자금을 맞추지 못했다. 사채를 내야 할 상황에서 삼식 캐피탈이 적절하게 등장했다. 삼식 캐피탈은 후한 조건을 걸었다.
대출 기간은 전환 시점까지 3개월, 전환사채가 전환되는 3개월까지 월 1.5%로 하되 연체 이자는 매월 1%를 추가했다. 4개월째 이자는 월 2.5%, 5개월째 이자는 월 3.5%, 6개월째 이자는 월 4.5%가 되는 셈이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장씨 일가는 3개월만 돈을 쓰면 된다는 생각에 덥석 물었다.
사태는 심각했다. 친정인 본가는 논 2,700마지기 중 절반인 1,300마지기를 팔아서 6억5천만원을 준비하고, 남은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3억 5천만 원, 삼식 캐피탈에서 5억 원을 대출했다. 토지에 대한 일순위 담보 대출자는 삼식 캐피탈, 이순위가 은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