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61
x 361
제38장 바람 잘날 없다9
부동산 매각이 엄벙짐벙하자 장씨들은 CB 납입 기한에 쫓기기 시작했다. 삼식 캐피탈은 선순위 담보 가등기와 계약서 한 장으로 돈을 내줬다. 복잡하고 더딘 은행대출 심사에 질린 장씨들이 혹할 수밖에 없었다.
장씨들은 삼식 캐피탈에 일 순위 담보 설정을 해주고 자금을 받았다. 박인보의 노림수에 깨끗이 걸려든 것이다. 전환 시점 3개월이 지난 현재 장경주는 은행이자로 4,375,000원, 사채 이자로 18,750,000원, 합계 23,125,000원을 지급해야 한다. 상답 40마지기가 사라지는 셈이다. 다음 달 사채이자는 월 5.5%로 늘어난다. 대지주인 장경주로서도 식겁할 노릇이다.
장경모의 경우는 더 딱했다. 장경모가 보유한 부동산은 덩치 큰 임야가 대부분이다. 원매자를 찾지 못한 장경모는 임야를 헐값으로 삼식 캐피탈에 넘겼다. 부족한 인수자금 2억은 전액 삼식 캐피탈에서 당겨 썼다.
장씨의 당숙들도 마찬가지였다. 장경택은 사채 1억, 장경남은 사채 8천만 원을 끌어서 전환사채를 매입했다. 장씨 본인은 동아백화점 인근의 액세서리 상가 건물을 팔고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냈다. 장씨 가문의 주축 인사들이 어어 하는 사이에 사채의 늪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장씨 일가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법조계에 근무하는 일가붙이를 총동원했다. 변호사를 동원하고, 검사와 판사까지 불법 영업 꼬투리를 잡으려고 달라붙었지만, 헛물만 켰다. 삼식 캐피탈은 개가 핥아 먹은 죽그릇처럼 말끔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삼식 캐피탈은 대출 기간인 3개월간 월 1.5% 이자를 적용했다. 다른 사채업자와 비교할 수 없는 저리다. 연 18%로 은행 이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연체 이자도 꼬투리를 잡기 힘들었다. 상법상 기한 이익을 상실한 채무자에게 연체이자를 부과할 수 있다. 삼식 캐피탈은 연체 이자율도 착했다. 체증식 연체이자 부과는 탁월했다. 매월 연체이자가 상승하지만, 법정 다툼으로 가봐야 장씨들만 악덕 채무자로 낙인찍힌다.
삼식 캐피탈은 명분을 확보하고 모든 시비를 빗겨갔다. 장씨들 측에선 채권자가 CB 담보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박인보가 보인 신의 한 수는 장씨 일가를 나락으로 밀어 넣고 사채꾼들의 교범이 되었다.
“니들은 회사 경영을 한다는 것들이 전환가가 그렇게 올라갈 줄도 몰랐단 말이여? 18,000원이라더니 28,000원이 머신 말이고! 이게 말이여 소여? 이 사태를 우짤라카노?”
목이 탄 장경모가 식어빠진 커피를 물 마시듯 훌쩍 마시고 차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
할 말이 없어진 장씨 남매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본인들도 미칠 노릇이다.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
3개월마다 자산가치를 평가해서 전환가액을 정한다는 조항이 엄청난 독소 조항이 되었다. 막상 3개월이 지나서 전환 시점이 되자 전환가액이 25,000원으로 올라가 버렸다. 장씨들은 놀라자빠졌다.
200% 할증 발행된 CB의 발행초과금이 20억이다. 그 돈은 고스란히 자본 계정에 들어갔다. 자산이 늘어났으니 전환가는 당연히 올라간다.
전환가가 상승하면 전환 주식 수가 줄어든다. 경영권 확보에 비상이 걸린 장씨들은 어물어물하며 전환을 미루었다. 3개월 후 전환가는 28,000원으로 올라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박인보는 악랄했다. 3개월이 지나서야 버스 증차를 명분 삼아 향심여객이 보유한 부동산을 향심섬유에 매각하고, 향심섬유의 자산재평가를 단행했다. 부동산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시절이다. 향심섬유 CB 전환가는 또 한 차례 올라갔다. 장씨가에 최대한 타격을 가하고 사채 이자를 챙기려는 박인보의 꼼수다.
전환하지 않고 사채를 쥐고 있어도 문제다. 은행 대출이자가 연 15%다. 향심섬유 CB이자는 연 1%다. 장씨들이 사채를 들고 있으면 은행 이자 차액만 연간 14%를 물게 된다. 은행이자는 사채 이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장씨 가문이 빌린 사채 8억 8천만 원에 대한 6월분 사채이자만 무려 3천3백만원이다.
장씨 일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장씨 일가는 잔머리 대가인 박인보에게 엄청난 사기를 당한 셈이다. 이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생겼다.
“박실아, 전환가를 내리는 방법이 도통 없는 기가?”
장경주가 힘없이 물었다.
“법적인 내용이고 발행 조건에 들어있어서 우짜지도 못합니다.”
장씨의 대답에 장경모가 가슴을 펑펑 쳤다.
“하이고, 이번 달에 가문이 물어야 할 사채이자만 얼맨지 아나? 삼천만 원이 넘는다. 질부 이 일을 우야마 좋겠노? 내도 문제지만 가문이 뿌리뽑히게 생겼능 기라. 조상님 볼 낯이 없어서 죽지도 못하겠구마.”
‘빌어먹을!’
장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남편을 씹어먹고 싶지만, 마땅히 잡을 꼬투리가 없다. 화자가 사라진 뒤로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화자의 잠적은 자주 있던 일이라 사실 큰 문제도 아니다. 집안이 결딴나게 생긴 마당인데 엉덩이에 바람든 딸이 문제랴.
“아우, 자중허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허네.”
장경주가 격앙된 분위기를 눌렀다.
“전환해도 경영권을 잡을 수 없고, CB를 쥐고 있으마 사채이자에 녹을 판이다 아임니꺼. 조카는 방법이 없겠나?”
장경모가 좌중을 둘러보다 장철수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장철수인들 뾰족한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구설에 오를세라 몸을 사리는 판이다. 지랄 맞은 사태를 야기한 사촌 남매의 눈탱이를 때리고 싶었다.
“누님, 전환가가 높은 이유는 회사 자산이 많기 때문이지요? 전환가를 낮출라 카마 회사 자산가치를 떨어뜨리면 된다 아인교?”
“그건 그랴.”
“회사를 깡통으로 만듭시다. 노조를 움직여서 일단 파업을 하고설랑 생산을 중지시킵시다.”
장씨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사촌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 우리 집안이 알토란 같은 회사를 먹을라꼬 이 고생을 하는 기다. 깡통 회사를 먹어서 어따 쓸끼고?”
장씨는 현명하지는 못해도 잔머리가 있다.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자는 말에 속이 뒤집혔다.
“하도 답답하이끼네 하는 소리 아인교.”
머쓱해진 장철수가 입을 다물었다.
“동생, 그건 우예됐노?”
“머 말입니꺼?”
장기수가 주어를 자르고 묻는 말에 장철수가 되물었다.
“망할 놈의 사채업자 새끼가 걸어놓은 담보 해제 건 말이다.”
사채업자가 CB에 걸어 놓은 담보만 풀어도 은행에 추가 대출을 내서 사채를 갚을 수 있다.
“몇 번 접촉했지만, 턱도 없데요. 가마이 있으마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해제해 줄 리 없지요.”
“그래도 한 번 더 만나보게.”
“휴우! 만나는 보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이소.”
장철수는 삼식 캐피탈 매니저라는 놈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양복을 차려입고 말조심을 한다지만 깡패 본능은 어디 가지 않는다.
수시로 튀어나오는 상스런 말투, 칼을 꺼낼듯한 거친 행동, 뺨을 가로지른 긴 흉터, 명색이 부지사인 장철수는 나 깡패요 하는 표시가 풀풀 나는 쓰레기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자니 속이 뒤집혔다. 가문의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대답했지만 다시 만날 마음은 벼룩 눈곱만치도 없었다.
세 시간째 갑론을박으로 시간만 흘러갔다. 장씨는 숙부와 당숙의 눈치를 살폈다. 노인네들이 지칠 만도 한데 울화가 신체를 버텨주고 있다. 양반 체통을 지키느라 꾹꾹 눌러 참고 있는 형상이 여실했다.
장씨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역류한 위산이 목을 줄줄 긁었다. 그녀는 터지려는 히스테리를 간신히 눌렀다. 가문은 그녀의 모든 것이다.
가문의 뒷받침을 받으면 향심섬유 대주주이자 경영자지만, 가문이 무너지면 박인보 사장의 아내, 사모님이라는 지위만 남는다. 대주주 장필녀와 사모님 장필녀 사이에는 낙동강 본류와 샛강 사이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사모님 장필녀는 아무리 설쳐봐야 박인보라는 태양 빛을 반사하는 보름달에 불과하다. 그렇게 살바엔 차라리 대들보에 명주타래를 건다.
집안 어른들의 입을 막아 놓고 어떻게든 늪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성질을 부리면 가문은 사분오열된다. 장씨는 과감한 배팅을 결심했다.
“숙부님, 당숙님들, 이자는 지가 어떻게든 막아 보지요. 쪼께만 참고 기다려 주이소.”
“머여, 이자를 질녀가 막아주겠다고?”
“그라제, 이자라도 질녀가 처리해주마 일단 숨은 쉬겠구마. 기다리마 뾰족한 수가 있겠나?”
노인네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야, 믿고 기다리시소.”
장씨 본인인들 뾰족한 수가 없다. 씨비 인수자금을 마련하느라 남편 몰래 집까지 담보로 잡혔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 꼴인데 뾰족한 수가 어디 있겠는가.
“언제까지 기다리마 되겠노?
사정이 제일 급한 둘째 당숙이 채근했다.
‘씨부럴 영감텡이들, 당신들이 욕심부려서 인수하고는 왜 내 탓이여!’
장씨는 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다. 당신네가 탐욕을 부린 대가를 왜 내게 청구하느냐고, 왜 질녀 탓을 하느냐고?
“박실이를 너무 다그치지 말게. 본인도 힘든 상황이여. 그만 일어나세. 백날 여서 떠들어 본들 수가 나오나.”
장경주가 동생들을 타박하고 자리를 파했다.
“우리는 질녀와 조카만 믿고 가네.”
깃털 빠진 수탉들이 현관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대기 중이던 승용차가 속속 저택을 빠져나갔다.
용마루에 누워있던 무쌍이 부스스 상체를 일으켰다. 장씨 가문의 몰락은 상전벽해라 할 만한 사건이다. 아니 백부가 그만큼 뛰어난 인간이란 소리다.
구름에 숨었다 나왔다 하는 달을 물끄러미 올려보았다. 주춧돌과 대들보가 흔들리는 장씨 일가의 딱한 사정이 훤히 머릿속에 그려졌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 대단한 장씨 가문이 흔들릴 줄은 몰랐다.
“잔머리 고수인 백부의 한 수인가? 사부님의 말씀이 이거였구먼.”
무쌍은 탄복했다. ‘늑대와 승냥이는 비슷하지만, 종이 달라서 먹이를 다투느라 피를 보게 되어 있느니라. 매듭을 풀기 어려우면 시간에 맡겨 두어라.’
사부님의 말씀대로다. 백부가 늑대라면 장씨 일가는 승냥이떼다. 부부가 회사라는 먹이를 두고 피를 튀기고 있다. 인동 장씨 가문은 꼽사리 끼여서 자식을 잘못 기른 업보를 받는 셈이다.
‘재물이 가족의 정보다 소중하단 말인가?’
자신의 상식으론 재단 불가능한 인간들이다. 추악한 싸움의 전말에 쓴 물이 올라왔다.
과연 장씨가 당하기만 할까?
무쌍은 머리를 흔들었다. 누대를 내려온 장씨가의 저력은 간단치 않다. 늑대와 승냥이의 싸움은 두 번째 라운드를 맞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일차 계획은 폐기해야겠어. 흐흐흐, 누가 이기든 끝장이 나겠지. 살아남은 쪽을 뒤집어엎으면 끝나는 건가.”
무쌍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백부가 이미 실행하고 있다. 방계 식구들이 떠나가자 내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니는 우얄라꼬 이자를 물어 준다 켔노? 너거 숙부와 당숙들 이자가 얼맨지 모리나?”
가족들만 남자 장경주가 딸을 나무랐다.
“박 서방이 섬유를 챙기느라 여객은 빌로 신경을 안 쓰거든요. 여객 쪽에서 자금을 만들어 보겠심더. 백화점 매장도 두어 개 팔고요.”
장씨 입에서 우울한 소리가 나왔다. 장경주의 얼굴도 흐려졌다.
“매출을 빼돌리마 박 서방이 난리 칠낀데. 회사 운영은 철저한 사람 아이가.”
“난리 쳐봐야 우야겠심니꺼. 마누라를 죽이기야 하겠심니꺼.”
“후우, 박 서방과 진작에 정을 쌓았으마 이럴 때 도움을 받을 건데……. 너도 좀 살갑게 챙기지 그랬냐.”
질책이 들어있는 말에 장씨가 울컥했다.
“아부지, 지가 혼자 잘 살라꼬 일을 벌였습니까. 가문을 위해서 개고생을 하고 있다 아임니꺼. 남편은 집 나간 지 오래고, 화자 년은 실종되고, 희자는 소박맞고, 우탁이는 깡패짓이나 하고,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 카디마는 이기 멉니꺼. 요짐은 정말 죽고 싶습니더. 칵 죽어뿌마 좋겠심더.”
감정이 복받친 장씨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조증이 울증으로 넘어갔다.
“무신 그런 소리를 하노. 암만 그케도 그런 소리 하는 기 아이다.”
장경주가 황급히 손사래 쳤다. 딸은 성정이 각박해서 진짜로 엉뚱한 짓을 하고 남은 아이다.
“후, 우짜다 이렇게 됐지? 잘못하마 문중답까지 날리겠구마. 악몽이야 악몽!”
“망할 놈, 씹어먹을 놈 새끼!”
장씨가 뽀드득 이빨을 갈았다. 눈에서 새파란 빛이 번득였다.
“이놈아, 아무리 박 서방이 마음에 안 들기로서니 그 카는 기 아이다. 내는 쪼매 쉴란다.”
장경주가 딸을 타박하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장씨가 말하는 죽일 놈은 무쌍이다. 지난 연말에 시동생 무덤을 방자 하러 간 김 기사가 사라져버렸다. 영매보살을 찾았지만, 몸이 아파서 거동을 못한다는 연락만 받았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 장씨는 직접 시동생 무덤을 확인했다. 무덤은 거대한 바위로 덮여있었다. 장씨는 직감적으로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연유를 알고 싶어도 김 기사가 증발해버렸으니 알 수가 없었다.
영험하기로 소문난 무당의 방자도 소용없는 놈이 무쌍이다. 김말순의 자식새끼와 엮이기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장씨는 틀어진 CB 건도 김말순 모자의 잘못인양 했다. 장씨가 찢어죽이고 싶어하는 무쌍은 지붕 용마루에 편안히 누워있다. 그녀가 알았다면 피를 토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