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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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장 콩고 Fist of Justice 3
피그미족은 왜 키가 작을까?
다수 학설은 햇빛 부족을 지적한다. 이투리 정글은 캐노피에 가려 늘 어두컴컴하다. 식물 간의 생존경쟁 때문이다.
생존경쟁의 사전적 의미는 생물이 한정된 자원, 즉 먹이나 서식장소를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간에 벌이는 발버둥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식물의 생존경쟁은 동물 이상으로 치열하다. 이투리 정글에는 식물 생육에 필수적인 물과 영양이 풍부하다.
부족한 것은 햇빛이다. 알레로파시(allelopathy, 식물이 화학물질을 분비해서 다른 식물에 해를 끼치는 현상)도 치열하지만, 빛을 취하려는 자원경쟁이 더 치열하다.
교목이든 덩굴이든 햇빛을 받으려고 미친 듯이 하늘로 뻗어 올라간다. 유칼립투스는 르웬조리에서 20m가량 자라지만, 이투리 정글에서는 40m 이상 자란다. 유칼립투스를 휘감아 올라가는 무화과 덩굴도 덩달아 위로 위로 뻗어 올라간다.
끝내는 가지와 잎이 하늘을 가려서 햇빛을 차단해 버린다. 이투리 정글의 지표 광량은 반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햇빛이 부족하면 인체가 비타민 D를 합성하지 못한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칼슘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뼈대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이투리 정글에는 체중 200kg 내외의 난쟁이하마가 서식한다. 표범도 한 둘레 작은 이투리 표범이 서식한다. 모든 동물이 그렇지는 않지만, 이투리 정글은 동물 유전자를 변형시킬 정도로 특이한 숲임은 사실이다.
“젠장, 아레바는 뭘 파먹겠다고 이딴 곳에 기어들어간 거야. 인간이나 정글이나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아.”
제르맹이 투덜거리며 작전팀의 보고서를 펼쳤다. 구출팀을 이끈 몽프랑 중령이 올린 작전 진행 보고서다.
[작전 환경 및 실행 보고서]……
– 고개를 젖혀도 거목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150피트 이상 솟아오른 거목에 각양각색의 덩굴이 얽혀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숲 속은 랜턴을 켜야할 정도로 어둡다. 나뭇잎은 스프링클러를 돌린 듯 축축하다. 창처럼 가느다란 햇빛이 나무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지상에 닿는다. 가시 관목과 덩굴이 성채처럼 빽빽하게 우거졌다. 칼날 같은 풀잎에 군복이 찢어지기에 십상이다. 10야드 전진에 30분이 소요되기도 한다.
– 이름 모를 독충과 치명적인 독사가 끊임없이 공격했다. 나무 거머리떼가 공중에서 우박처럼 쏟아진다. 열 마리만 옷 속에 파고들면 빈혈로 쓰러진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말벌이 떼로 달려든다. 쏘이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두세 번 쏘이면 생명을 잃는다. 우거진 나무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 순식간에 군대개미와 거머리가 군단으로 덤벼든다. 이곳의 곤충은 악마다.
– 블랙맘바가 가장 두렵다. 사살하기엔 너무 빠르다. 4m도 넘는 거대한 놈에게 습격당했다. 들어 올린 대가리가 인간의 어깨높이다. 이놈은 악마다. 스프링처럼 대가리를 움직여 대원 다섯 명을 연속 물었다. 눈물을 머금고 죽어가는 대원을 사살했다. 목을 물린 대원은 다행히 5분 만에 사망했다. 블랙맘바는 어디에나 잠복해 있다. 놈의 보호색이 덤불속, 나뭇가지, 바위와 어울려 구분이 어렵다. 미리 발견해도 공격당하면 피할 틈이 없다. 대원 열두 명이 블랙맘바에 당했다.
– 피그미족은 우리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했다. 독화살과 독 꼬챙이가 어둠 속에서 날아든다. 당장 죽지는 않지만 해독제가 듣지 않는다. 하루 지나면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말단부는 괴사하기 시작한다. 이틀 지나면 팔다리가 마비된다. 전력 이탈된 대원은 독충과 독사의 밥이 되었다.
나무 위에서는 표범이 소리 없이 덮친다. 이곳의 표범은 검은색이다. 동남아시아 표범보다 한 둘레 작지만, 더 은밀하고 빠르다. 목을 물리면 사살해도 늦다. 표범에 희생된 대원이 일곱이다.
– 수시로 짙은 안개가 낀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새로운 위험이 나타난다. 곳곳에 나뭇잎과 수초에 뒤덮여 보이지 않는 늪이 있다. 늪에 빠지면 악어와 독충이 새카맣게 달려든다.
– 물은 풍부하지만 신선한 물을 얻을 수 없다. 강과 늪은 기생충이 우글거리고 괴이한 독충이 서식한다. 소독제를 풀어도 소용없다. 과일은 풍부하지만, 식용과 비식용을 구분할 수 없다. 원숭이가 먹는 과일도 대원이 먹으면 탈난다. 사나운 원숭이들과 싸움을 벌이고서야 과일을 손에 넣었다. 먹음직해 보이는 과일을 먹은 대원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
벌써 세 번째 읽는 보고서다. 읽을 때마다 소름 끼쳤다. 부하들이 느꼈을 절망과 공포가 생생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악몽이 떠올랐다. 정글에 묻힌 베트콩은 사람이 아니라 두더지였다. 죽이고 죽여도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더러운 전투, 정작 싸워야 할 상대는 정글이었다.
몽프랑의 보고서를 보면 이투리는 인도차이나 정글보다 더 두려운 정글이다. 피그미족의 화살에 맞으면 몸이 마비된단다. 멀쩡한 정신으로 수만 마리의 개미가 달려들어 자신의 살을 뜯어가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 어떨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내가 어리석었어! 이래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구먼.”
제르맹이 한탄했다. 현지인이 검은 숲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대삼림, 충실한 훈련과 우수한 화력을 갖춘 정예 대 테러팀을 흔적없이 녹여 버린 악마의 정글이 이투리다. 자만과 아집이 더러운 땅에 수백의 소중한 젊은 피를 뿌렸다.
찡- 인터폰이 울렸다.
“뭐야?”
-장관님, DGSE 연락입니다. 놈들에게서 소포가 도착했답니다. 이번에도 손목 두 개입니다.
“쀠텡!”
욕설이 튀어나왔다. 제르맹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눈앞에 사직서가 팔랑거렸다.
“들어와서 보고해.”
비서가 전통문을 들고 들어왔다.
“30분 전, 정보부 클로드 과장이 킨샤사 대사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놈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추가 의견이 붙어있습니다.”
“다른 메사즈는 없나?”
“호웅간이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열흘간 시간을 주겠답니다. 열흘 후 다섯 명을 처단하고 요구를 들어줄때까지 하루에 한 명씩 계속 죽인답니다.”
“열흘? 빌어먹을 놈들!”
제르맹은 신음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니 이미 발등에 불은 떨어져 있었다. 납치범들이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매일 한명식 처형하면 여론이 끓어오르고 정부는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된다.
제르맹은 회전의자를 잔뜩 젖히고 다리를 테이블에 올렸다. 역시 답은 블랙맘바다. 그는 손을 떼고 DGSE로 공을 넘기기로 작정했다.
“제기랄, 시간이 없어. 고민도 사치스럽게 되었구먼. 필립 소장 호출해.”
포기하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부관이 전화기를 들었다. 구리선이 가래 끓는 음성을 대서양 너머로 퍼 날랐다. 목적지는 은자메나 주둔 되지 엠 랩이다.
블랙맘바의 신분은 특별하다. 국방부 소속이지만 국방부 장관 자의로 호출할 수 없다. 블랙맘바는 사실상 프리랜서이자 국가비상안보회의 비밀 멤버다. 호출 권한은 필립 소장과 보니파스에게 있다.
비밀 작전의 경우 보니파스가 한국의 남양일보에 광고를 실어서 알린다. 반면에 공식적인 호출 권한은 되지엠 랩의 필립 소장에 있다. 필립 소장이 대사관을 통해 호출하면 공개 작전이라는 뜻이다.
비밀작전과 공개작전의 차이는 작전을 외부에 알린다는 뜻이 아니다. 작전 주체가 프랑스 정부임을 드러내면 공개작전, 작전주체를 숨기면 비밀작전이다. 공개작전이든 비밀작전이든 블랙맘바의 정체는 숨겨진다.
차드 은자메나 프랑스 주둔군 기지, 블랙맘바 덕분에 장군이 된 필립은 여전히 되지엠 랩에서 뭉그적거렸다. 정치군인 성향이 농후한 그는 촉이 좋았다. 블랙맘바와 연결고리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대령 자리에 소장이 앉아있는 셈이니 국방부는 골치가 아팠다. 결국, 되지엠 랩에 4개 중대를 증편하고, 코모로 제도에 주둔하는 마요트 분견대를 필립 휘하에 집어넣었다. 되지엠 랩은 여단도 아니고 연대도 아닌 어정쩡한 조직이 되었다.
“대장님, 제르맹 장관님이 대장님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 싶답니다.”
장난스러운 부관의 전언에 필립이 이죽거렸다.
“간당거리는 모가지 간수에 바쁜 양반이 내게 전화할 여유가 있나? 가만, 지금쯤 전화할 일이 딱 한 가지 있구먼.”
역시 필립 장군은 촉이 좋았다.
“바로 그겁니다.”
부관이 씩 웃으며 전화를 넘겼다.
“흐흐흐, 좋구먼!”
국방장관의 협조 요청이다. 필립 소장은 입이 찢어졌다. 역시 블랙맘바는 치트키다. 똥 고집쟁이 제르맹도 아쉬운 전화를 하지 않는가. 필립은 자신의 잔머리를 찬양했다.
-필립 소장, 용건만 말하겠소. 아쥐 레머를 불러야겠소.”
“장관님 오랜만입니다. 보니파스에게 통보하셨습니까?”
-내가 직접 통보하겠소.
“마음이 바쁘시군요. 이제야 결심하시다니 고민이 길었습니다. 술집의 전사는 옥수수 알 만큼 많지만, 전장의 전사는 아쥐 레머밖에 없지요.”
필립의 이죽이는 음성이 구리선을 타고 달려와서 제르맹의 귀를 두드렸다.
-그렇겠지. 숙취로 죽느냐 총알을 맞고 죽느냐의 차이겠지. 자넨 아직도 래쿤 작전의 감정이 남았나?
고막이 음성신호를 받았지만, 신호에 담긴 불쾌감은 가슴이 받았다. 제르맹 역시 가시가 돋친 언사를 뱉었다.
“그럴 리가요.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한 일인데 앙금이 있을 리 없지요. 불철주야 고생하는 장관님을 존경합니다.”
-흠, 장군이 되면 혀도 매끄러워지는 모양이군. 시간이 없네. 놈들이 일주일 후에 인질을 처단한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네. 그런데 말이야, 아쥐 레머를 당장 움직일 수 있겠나? 학교에 다닌다던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관이 엉덩이를 걷어차든지 멱살을 끌고 오든지 24시간 내에 오바뉴 본부에 도착시키지요.”
필립이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블랙맘바가 자신의 청이라면 한번은 무조건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오! 고맙네. 역시 필립 장군은 내 마음을 잘 아는군.”
제르맹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블랙맘바가 출동하면 작전권은 DGSE로 넘어간다. 이투리는 지긋지긋하다 못해 이가 갈렸다.
필립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투덜거렸다.
“잘 알기는 개뿔이, 너구리 같은 놈!”
필립 소장은 래쿤 작전의 앙금을 털어버리지 못했다. 작전에서 소외된 배신감과 허수아비가 되었다는 자괴감은 쉽게 털어 버릴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장성으로서 작전 실패를 반길 위치는 아니지만, 재수 없는 늙은이의 퇴장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제르맹의 쑥 빠진 코가 도멘느 드 베끼뇰(Domaine de Bequignol, 프랑스 통호두로 만든 초콜릿. 맛이 진하고 단맛이 강하다.)만큼이나 달콤했다.
‘나는 누규, 여긴 어디?’
장씨는 병실 침대에서 눈을 떴다. 머릿속이 안개 낀 듯 흐리멍덩했다.
“사모님, 이거 보이십니까?”
간호원이 손가락을 세워서 눈앞에 흔들었다. 손가락이 차츰 또렷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난밤의 사건이 천천히 떠올랐다. 거실 창에 거꾸로 나타난 귀신의 붉은 안광이 수레바퀴처럼 커졌다.
귀신은 붉은 옷을 입었다. 얼굴은 회칠한 듯 창백하고, 눈은 핏물이 담긴 듯 붉었다. 뾰족하니 드러난 송곳니에 철사처럼 뻣뻣한 푸른 머리카락이 저절로 흔들렸다. 강한 충격에 심령이 손상된 장씨는 무쌍의 얼굴을 도깨비로 창조해냈다.
레비 치매의 특징적인 증상인 환시(幻視)다. 생생하고 입체적이며 천연색으로 구성되는 환시는 레비 치매 환자에게서만 나타난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기 나름의 필터로 거르고 경험적인 개념으로 각색해서 본다. 뇌 방추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인식 왜곡 현상이 심해진다.
[감히 영면에 든 나를 깨워! 저주를 받으리라.]시동생의 목소리가 타자치듯이 머릿속에 톡톡 찍혔다.
“아아악!”
장씨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몸이 귀신의 손에 갈가리 찢긴다. 귀신이 날카로운 송곳니로 살을 찢어발겨서 오독오독 씹어먹는다. 붉은 눈동자가 눈앞에서 빙빙 돌았다. 장씨가 발광했다.
“보호자님, 장필녀님 보호자님!”
간호원이 후다닥 문을 열고 튀어 나갔다. 담당 간호원은 직업적 본문을 챙기기엔 너무 어렸다. 장씨는 간호원이 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병원?”
하얀 천장과 벽이 눈에 들어왔다. 열 평이 넘는 넓은 병실이다. 스테인리스 폴대에 매달린 하트만 병에서 링거액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다. 그제야 전날 밤의 사건이 온전히 수면으로 떠올랐다.
“흐으으!”
장씨는 자신도 모르게 오소소 몸을 떨었다. 어디선가 무서운 귀신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장씨의 눈동자가 분주히 창문과 병실 구석구석을 훑었다.
영매보살이 말하길 방자가 잘못되면 당사자에게 저주가 반사된다고 했다. 낙동강 바닥에 처박혀 있어야 할 귀신이 자신 앞에 나타났다. 방자는 실패했다.
눈을 꽉 감았다. 지난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장씨는 남편 독살을 모의할 만큼 강단 있고 독한 여자다. 보통 여자라면 자신이 방자한 사람의 귀신이 나타나면 맛이 가버릴 것이다. 장씨는 충격을 거뜬히 버텨냈다. 아무리 더듬어봐도 자신은 귀신에게 해코지 당할 만큼 악한 짓을 한 적이 없다. 사이코패스 특징중의 한가지가 죄책감 결여와 자기 기만이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상을 털어내고 정신을 다잡았다.
‘망할, 내가 뭘 어쨌다고.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우얄끼고. 내는 내 할 일을 할 끼다.’
장씨는 머리를 흔들고 이빨을 악물었다. 넋놓고 있기엔 할 일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