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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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장 콩고 Fist of Justice 8
상고머리가 비장한 얼굴로 무쌍의 입술을 주시했다. 어차피 자신의 목숨은 상대방의 자비로움에 달려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낮 도깨비는 놀라운 병법사(兵法士)다. 거짓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상고머리는 죽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죽어버리면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자식은 어쩌란 말인가.
‘아 놔, 이 자슥이 눈물이라도 쏟을 기세네.’
무쌍이 얼굴이 찌그러졌다. 쪽발이들은 별일 아닌 일에도 정색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풀어준다. 내가 약속을 어기면 인간이 아니다.”
무쌍은 인간이 아닌 에피듐이다. 헛된 약속을 한 셈이다.
“휴우, 내가 믿지 않으면 어쩌겠소. 야마나시 총독은 바보가 아니요. 엄선된 진짜 보물을 지하에 은닉하고, 내지에서 초빙한 당대 최고의 음양술사로 하여금 결계를 쳤소.”
“오호, 그거 구미 당기는걸. 야마나시가 아까워서 눈을 감지 못했겠구먼.”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소. 야마나시 총독은 배금장군이라 불릴 만큼 돈에 환장한 인간이었소. 매직(賣職) 사건에 연루되어 낙마한 그는 친황파의 암살 위협이 계속되자 9대 총독인 아베 노부유끼에게 콜렉션을 넘겨주었소. 안배태가 아베 노부유끼의 손자요.”
“어째 독기가 줄줄 흐르더라니……. 그놈이 마지막 조선 총독의 손자였군. 하여튼 후안무치한 놈들이야. 총독씩이나 해먹은 놈들이 친삐라처럼 타국의 문화재를 뚜룩질한 것도 모자라 멋대로 주고받았단 말이지. 너희 일본인들은 기본 양심도 없는 놈들이냐?”
상고머리는 할 말이 없었다. 창피하지만 웃대가리들이 해 처먹은 일을 말단인 자신이 어쩌란 말인가.
“……”
무쌍은 상고머리를 패버리려다 간신히 참았다. 나라가 힘없는 탓이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니 누구를 탓하랴.
“왜 진작 발굴하지 못했나? 도굴은 너희 니혼진의 특기 아닌가?”
무쌍이 이죽거렸다. 일본인에 의한 무덤 도굴은 임진왜란 당시부터 본격화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고인돌부터 사대부 무덤까지 무차별적으로 도굴당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결계를 깨뜨릴 방법을 찾지 못했소.”
“결계? 공사 가림막을 치고 포크레인을 동원하면 되지 않나. 기계로 주변 땅을 모두 들어내면 결계인들 별수 있나. 내가 숲속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포크레인 명인을 아는데 버켓으로 청주 병 뚜껑을 딸 정도로 실력이 좋더라고. 실력 좋은 장비 기사를 고용하면 유물을 손상하지 않고 캐낼 수 있었을 텐데.”
“음양술사를 우습게 보지 마시오. 고위급은 공간을 다룰 줄 압니다. 강제로 땅을 파헤치면 보물은 먼지가 되거나 공간의 틈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오.”
상고머리가 턱도 없는 소리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헐, 공간으로 사라진다고?”
무쌍이 해연이 놀랐다. 공간 전이술은 술법의 최고봉이다. 사부님 수준의 음양술사가 일본에 존재했다는 소리다. 새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말을 실감했다. 일본의 음양술사는 단순히 점을 치고 관상을 보는 조선의 점복사와 달리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음양술사는 방술사, 무술사, 무의사, 연단사를 통틀어 지칭하는 용어다. 막부시대에 쇼군과 다이묘의 참모로 활약했다. 방술사(方術士)는 재초(齋醮, 복을 구하는 도교의 제례의식), 축주, 행기, 도인을 통해 양기와 장생의 술법을 행하는 술사다. 연단사(煙丹士)는 선단을 만들어 기를 기르고 수명을 늘리려는 술사다. 무술사(巫術士)는 인(印)과 부적, 주문을 통해 점을 치고 귀신을 부리고, 질병을 퍼뜨리고, 호풍환우(呼風喚雨) 하는 술사를 말한다.
15세기 무로마치 막부시대부터 병법사라 불리는 부류가 나타났다. 이들은 뛰어난 무예와 전략 전술을 겸비한 고급 인재로 방술에도 능했다. 히가시혼간지가 대표적인 병법사 가문이다.
병법사의 등장은 음양술사의 퇴조를 불렀다. 방술사는 병법사에 흡수되고, 연단사와 무술사는 주류 사회에서 멀어졌다. 자연히 음양술사라 함은 무술사(巫術士)와 동의어가 되었다.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자 음양술사는 맥이 끊어졌다. 비전을 상실한 후예들은 기껏 신도의 제사장을 맡아 연명했다. 한국에서 도사가 사라졌듯이 일본의 음양술사도 사라졌다.
“현대에 요력을 발휘하는 음양술사가 있단 말인가?”
“아베 가문이 바로 음양가입니다.”
“허! 어째 고리가 딱딱 연결되는군. 아이들을 불태우려 한 이유가 있겠군.”
“아베 가문이 음양술사의 맥을 잇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능력이 떨어졌소. 알다시피 요력은 인간의 극한 감정을 흡수해서 능력을 높입니다. 전쟁이 사라진 세상에서 영혼의 절규를 얻을 방법은 없습니다.”
무쌍의 눈빛에 쫓긴 상고머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눈앞의 남자는 최고의 병법사이자 음양술사다. 감히 거짓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개 같은 놈! 그러니까 부족한 요력을 보충하려고 어린아이의 영혼 에너지를 뽑아낸다는 소리네. 토지 거래는 껍데기고, 진짜는 아이들을 태워 죽이러 왔구마. 오옴~”
무쌍의 눈이 시퍼런 섬광을 뿜었다. 움찔하던 손이 멈추었다. 진언을 외어 치솟은 살기를 간신히 눌렀다.
“으윽!”
상고머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순간적으로 거대한 육식동물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미안하오. 내키지 않았지만, 감히 항명할 생각도 못 했소. 히가시혼간지는 명령 불복종 자를 가차 없이 처단합니다.”
“어이가 없군. 이거 진짜 악랄한 놈들이네.”
무쌍이 탄식했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고 평등하다. 그러나 그 무게는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윤리적 측면에서 파지를 주워 연명하는 노인네와 대통령의 목숨값은 동일하다. 반면에 총 들고 전장에 나선 군인과 고아원 원생의 목숨값은 다르다. 한쪽은 자신의 목숨도 내놓은 부류고 다른 쪽은 보호받아야 할 부류다. 용병 블랙맘바는 대량 학살을 하지만 인간 박무쌍은 닭 한 마리 목을 비틀기도 싫어한다. 역시 쪽발이 유전자엔 인명 경시 인자가 새겨져있다.
“수고했다. 잠시 쉬도록.”
퍽- 뒷목을 슬쩍 얻어맞은 상고머리가 철퍼덕 엎어졌다. 스포츠머리의 자백도 상고머리와 별다르지 않았다. 웃기게도 아베 본인도 술술 털어놓았다. 역시 일본인들이 말하는 충성심과 의리는 집단 광기와 노예근성에 불과했다.
무쌍은 5대 총독 야마나시 한조의 콜렉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카파루자 지저 세계에서 수천조 원 가치의 다이아몬드도 욕심내지 않았다. 챙겼더라도 지하 동굴을 헤매는 동안 모두 분실했을 것이다.
보물은 인연이 있으면 절로 찾아온다. 포기했던 황금 배낭도 자말이 알뜰히 챙겨오지 않았던가. 도바의 거대한 목화 농장도 인연이 닿아 얻었고, 노바토피아도 어영부영 얻었다. 인연이 없으면 1등 당첨된 복권을 화장실에서 뒤닦이로 쓰는 법이다.
‘이것들을 어쩐다?’
무쌍은 고민에 빠졌다. 정치가 개판이지만, 한국의 치안과 행정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려 15명이나 되는 놈을 묻어버리기도 난감했다. 이들의 행적이 인애원에서 끝나면 스님과 형동이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범우 스님과 형동은 번거로워지게 된다.
양아치들을 경찰에 넘겨봐야 핵심 인물인 일본인 닌자 셋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경찰은 대충 수사 시늉만 내고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해서 자국으로 추방하고 끝낸다. 그러면 히가시혼간지는 끊임없이 인애원을 노리게 된다. 뇌를 손상해 정박아로 만들고 싶지만,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깔끔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무쌍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노바토피아가 있다. 영국이 고립된 호주를 유배지로 사용했듯이 인력이 부족한 노바토피아에 박아놓고 노가다로 쓰면 된다. 상철 형이 연일 중장비와 인력을 노바토피아로 수송중이다. 파견 인력에 슬쩍 끼워보내면 된다.
아베 등을 풀어주기로 약속했지 않느냐고?
물론 약속했지만 무효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에피듐이다. 인간의 이름을 건 약속은 구속력이 없다. 그리고 풀어준다고만 했지 일본에 보내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노바토피아를 탈출해서 일본으로 갈 수 있다면 말리지 않는다. 무쌍은 아베보다 더 악랄했다.
시답잖은 일이 대충 마무리되었다. 날이 훤히 밝아졌다. 인애원이 바빠졌다. 새벽의 공포는 사라졌다. 아이들을 닦달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린 녀석은 울음을 터뜨리고 큰 애들은 동생들을 챙기느라 바쁘게 뛰어다녔다.
행복한 모습이다. 인간은 싫증을 잘 낸다.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면 지겹다고 불평한다. 변화 없는 무미건조한 생활이 미칠 것 같다고 불평한다. 평온한 일상을 잃고서야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평화가 이어지자 나라의 소중함도 모른다. 나라를 잃은 비참한 시절을 잊고 툭하면 ‘이놈의 나라 망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무개념 인간이 많아졌다.
“형동아, 이것들 처박아 둘 빈방 있나?”
닌자 셋과 인상파 양아치가 열둘이다. 원장실은 유치장이 아니다.“지하실에 처박으마 딱이겠구마. 건물 짓기 전부터 있었는데 워낙 튼튼해서 지하실을 살려서 건물을 올맀다 카더라.”
“그거 좋구마.”
무쌍은 아베 일당을 지하실로 몰아넣었다.
“임마, 싸게 싸게 들어가더라고, 니들이 지상에 있으면 아이들에게 쪽발이 병균 옮는단 말이다.”
동작이 늦은 놈은 형동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무쌍이 닌자 셋의 어깨를 뽑아놓았다. 손발을 묶어도 안심 못 하는 부류가 닌자다. 아베 일당은 포장용 청테이프로 입이 막히고 손발이 묶인 채 곰팡내 나는 지하실에서 배를 쫄쫄 곪았다.
“대장, 미안해서 우야노. 갠히 나 때문에 번거로워졌구먼.”
형동이 오른쪽 볼을 긁었다. 녀석이 난처할 때 보이던 버릇이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익숙함은 좋은 것이다.
“임마, 내가 친구 일에 빼는 거 봤나?”
“하긴! 그래서 대장 아이가.”
옛 생각이 난 형동이 비시시 웃었다.
“니는 애들 등교시켜야지.”
“아, 맞다. 얼라들 핵교에 얼릉 실어다 주고 오꾸마.”
형동이 이마를 쳤다. 마당 한구석에 세워진 봉고 코치를 향해 바쁘게 걸어갔다.
원장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범우 스님이 합장했다.
“고맙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무아 스님이 찾아오시는 바람에 횡액을 면했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별말씀을요. 모든 것이 부처님의 뜻이지요.”
무쌍은 야마나시 콜렉션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범우 스님과 형동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감당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게 차라리 낫다.
“저놈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범우 스님의 얼굴에 피곤과 근심이 덕지덕지 쌓였다.
“날이 밝기도 전에 안배태 일당이 몰려와서 인애원을 팔라고 강요했습니다. 스님이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억지를 부리다 화를 내고 돌아갔습니다.”
무쌍이 간단하게 정리했다. 모두 사실이다. 돌아갔다는 부분만 틀린다. 거짓은 사실 속에 숨기는 법이다.
“으음, 무아 스님이 처리할 생각이구려. 큰 폐를 끼쳐서 어쩌나.”
“스님과 형동이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제게 맡겨 두십시오. 쪽발이가 이 땅에서 설치는 꼴은 못 보지요. ”
“고맙습니다. 놈들이 처음에는 신사적이더니 갈수록 악랄해졌어요. 지옥이 따로 없더이다.”
스님이 진저리쳤다.
“경찰에 알리지 그랬습니까?”
“세 번이나 신고했지만 아무 소용없었소이다. 담당 형사란 놈이 고아원을 팔면 되지 않느냐고 그놈들 역성을 들더이다.”
“망할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