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71
x 371
제39장 콩고 Fist of Justice 10
긴 밤이 지나갔다. 토막잠을 어지러운 꿈으로 날려버린 무쌍은 찝찝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진액이 빠져나가는 쾌감에 떨다 덜컥 눈떴다. 예민한 신체가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빌어먹을!”
척척해진 팬티를 벗어서 윗목에 휙 던졌다. 뜨거운 태양이 빛나는 탁 트인 백사장에서 혜영과 광란의 늪에 빠졌다. 아니 혜영이라고 생각했을 뿐 백인인지 흑인인지조차 몽롱했다. 이십대 중반에 몽정이라니, 소문 날까 두려웠다.
‘조또, 중삐리도 아이고 이기 머꼬? 피를 보지 않은 후유증인강!’ 바늘 끝처럼 곤두선 신경이 여름 소불알처럼 축 늘어진 지 반년이 지났다. 헐렁해진 정신이 욕정을 불러올 만한 세월이다.
새벽 4시 30분, 시간을 확인한 무쌍이 벌떡 일어났다. 겨우 두 시간 눈을 붙였다. 곧 아침 예불을 올려야 할 시간이다. 휭하니 달려가서 계곡에 몸을 던져다. 푸아악- 애꿎은 계곡의 소(沼)가 몸살을 앓았다.
요사채 앞마당에서 쿵 소리가 났다.
“와키르, 장작 많이 했다.”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흔들었다. 부지런한 쌈디가 지게에 지고 온 장작을 부려놓는 소리다.
“흐미, 저 자식 불목하니로는 딱 맞구먼. 고럼, 니놈이 먹는 밥값은 해야제.”
찝찝함을 털어내고 아침 공양을 준비하던 무쌍의 입꼬리가 슬며시 밀려 올라갔다. 응앵가에서 쌈디를 죽이지 않고 천생산으로 끌고 온 결정은 탁월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을 이유가 있다는 사부의 말씀은 틀림이 없었다. 무쌍은 쌈디 덕분에 온갖 잡일에서 해방되었다.
“와키르 좋아하는 버섯도 많이 따왔다.”
쌈디가 커다란 캔버스 가방을 공양 간에 들여놓았다.
“우와, 이 자슥 밥값 지대로 하네!”
내용물을 확인한 무쌍의 입이 벌어졌다. 느타리, 송이, 표고버섯은 물론 희귀한 상황버섯, 능이버섯, 영지버섯까지 한 가득이다. 시장에 내다 팔면 보름치 노가다 일당이 나올 양이다.
프랑스 최고의 식재료인 송로버섯(트뤼프) 채집자는 개의 후각을 이용해서 땅속의 버섯을 찾는다. 후각이라면 쌈디가 최고다. 무쌍은 천생산 인근에 자생하는 수십 종류의 버섯과 약초를 견식시키고 냄새를 기억시켰다. 사악한 주인을 만난 쌈디는 졸지에 버섯 앵벌이가 되었다.
내공이 쌓인 심마니도 바로 옆의 산삼을 몰라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시각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쌈디의 후각은 반경 삼사백 미터를 장악한다. 천생산의 약초와 버섯은 좀비 심마니의 융단폭격을 당했다.
막강한 이동 능력과 힘, 예리한 후각을 갖춘 쌈디는 금오산과 유학산까지 진출했다. 공전절후의 심마니, 아니 심마니계의 바라쿠다 등장이다. 쪼잔한 무쌍의 입이 찢어질 만했다.
천성사 식구가 아침 공양 숟가락을 함께 들기는 오랜만이다. 손바닥만 한 개다리소반을 놓고 있는 듯 없는 듯 기척없는 노승, 패션모델로 나서도 손색없을 건장한 청년, 사천왕상을 방불케 하는 인상의 덩치 큰 흑인이 둘러앉았다.
인물만큼이나 밥그릇도 가지각색이다. 대우 선사의 발우에는 한 줌도 못 되는 죽이 담겨있다. 무쌍의 발우는 지름 20cm짜리 함지박이다. 쌈디 앞에는 소 여물통에 밥이 고봉으로 솟아있다. 무쌍이 밥값을 걱정할 만했다.
“쌈디가 새벽에 경을 읽데요. 반년 만에 한자까지 가르치다니 대단하십니다. 언어중추와 기억 중추가 살아난 겁니까?”
“이놈아, 내는 원래 대단했어. 대충 인간으로 만들었지만, 강물에 빠진 소금가마니 건진 꼴이다. 신경 뉴런과 해마체가 괴사했으니 방법은 없어. 소금 가마니에 다시 소금을 채워야지.”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를 보면 과거에 대단한 지적 능력을 갖춘 놈인 것 같심더.”
“무슨 소리, 내가 잘 가르쳐서 그래. 니놈처럼 몇 년이 지나도 천수경도 못 외는 놈이 또 있을까.”
“에구 사부님, 졸병 앞에서 모양 빠지거러…….”
무쌍이 질겁했다.
“허허허, 오금공도 전수했으니 어디 가서 얻어맞지는 않을 게다. 순수한 근력만으로 붙으면 네놈도 쉽지 않을걸.”
“억, 저놈이 그 정도라고요?”
무쌍이 깜짝 놀랐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 본 인간형 존재 중에 최고의 전투력은 오셀롯과 최도식이다. 힘과 방어력은 오셀롯, 기술과 공격력에선 최도식이다.
‘흐흐, 오셀롯과 타이틀매치를 붙여야겠어.’
무쌍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쌈디와 오셀롯이 근접공박으로 붙으면 부주산을 무너뜨렸다는 공공과 축융의 싸움 재판이다. 바위가 깨지고 땅이 뒤집히는 흥미 만점의 대결이다.
‘가만, 그놈은 도대체 어느 구석에 짱박혀 있을까?’
오셀롯은 인간을 개미로 여기는 사악한 놈이다. 살아있으면 부상을 회복하고 남을 시간이 지났다. 콘크레투스가 추방한 불량 에피듐은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사이코패스다. 놈의 흉성이 폭발하면 재앙이 따로 없다. 응앵가에서 죽인 유인원형 괴물도 문제다.
“무아야, 언제까지 암자에 머물려 하느냐?”
공양을 마친 대우선사가 차를 우리며 물었다.
“야?”
오셀롯과 응앵가 호미니드 괴물에 골몰해있던 무쌍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얼 그리 놀라. 언제까지 냄새나는 늙은 중과 비비적거릴 생각이었더냐?”
“사부님, 저는 사부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떽, 영혼 없는 아부는 하덜 말어. 니놈이 내 눈치 보면서 저놈과 산 짐승을 잡아먹는 꼴도 보기 싫고, 밤마다 사추리 움켜쥐고 끙끙거리는 꼴도 보기 싫다.”
‘흐끅!’
무쌍은 가슴이 툭 떨어졌다. 귀신같은 사부, 아니 귀신이 울고 갈 사부다. 아침에 몽정한 사실까지 알고 계시니 말이다. 쪽팔린 무쌍은 할 말을 잊었다.
“이놈아,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다. 쏟으라는 뜨물은 흘러넘치도록 아끼고, 아까운 기름은 맨날 길바닥에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겨?”
“아이고 사부님, 그런 상스런 말씀을 하마 우얍니까.”
노골적인 변죽에 놀란 무쌍이 쌈디를 돌아보았다. 눈만 멀뚱거린다.
‘좀비가 뭘 알겠어?’
글쎄, 아는지 모르는지는 좀비만이 알것이다.
암자를 떠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친인은 스승님 한 분뿐인데 시봉을 않고 어딜 간단 말인가.
천성사에서 학교까지 67km, 바이크로 한 시간 거리다.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는데 그깟 기름값이 문제랴. 아무리 생각해도 암자를 떠날 이유가 없다.
무쌍은 절제의 미덕을 일찍 깨달았고, 물질적 만족에서 자유로운 존재다. 돈이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자신의 돈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제주도를 살 수 있지만, 여전히 기와집과 쌀밥에 매달리고 있다.
암자 생활은 단순하고 느리다. 단순하고 느린 생활 그 자체가 만족이고 행복이다. 쌈디와 어울려서 산짐승을 잡아먹고, 산삼을 찾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계효용의 법칙은 행복에도 적용된다. 충동구매로 대형 티브이를 사는 부자와 일 년간 꼬박 저축해서 소형 티브이를 사는 가난한 사람의 만족감은 어느 쪽이 더 클까?
원하는 것을 즉시 손에 넣을 수 있는 인스턴트 행복감은 인스턴트로 끝난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인내와 끈기를 발휘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다. 오랜 바램 끝에 얻은 과실은 만족감이 그만큼 크고 오래간다.
인간은 부유해질수록 선택 가능성이 커진다. 선택 가능성이 커지면 행복해질까? 어느 수준을 넘으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무력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거액의 복권 당첨자와 재벌 2세 3세의 일탈 행동은 그래서 나온다.
“이놈아, 자당을 모시려면 집이 있어야지. 좁아터진 절간에 모실 생각이었더냐?”
“예에! 어머님요!”
무쌍이 버럭 소리 질렀다.
“어이쿠 귀청 나갔네. 음흉한 놈, 사부 몰래 별짓을 다 하고 다니는구나. 네놈이 이생에서 측은지심으로 거둔 선연이 전생의 업보를 덮었나 보다. 기와집 짓고, 어머니가 지은 쌀밥을 먹고 싶다며. 진순이 데려다 새끼도 열심히 까야지.”
“그 그러면요?”
“때가 가까워졌느니라.”
“사부님, 감사합니다. 크흐흑!”
무쌍이 우르르 달려들어 대우선사를 안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는 화급한 마음을 누르고 살아온 지 3년이다. 이제야 때가 되었나 보다.
“이놈아, 징그럽다. 늙은이 뼈 부러지기 전에 썩 떨어지지 못해.”
“헤헤헤! 사부님 뼈가 어디 보통 뼈다귄가요.”
무쌍이 자그마한 스승을 더 꽉 껴안았다.
“불로동 고분군 앞쪽 마을이 터가 좋더구나. 팔공산의 기가 모여드는 길지인데 앞산에서 내려오는 삿된 기로 인해 마을이 퇴락하고 있더구나.”“앞산에서 내려오는 삿된 기라고요? 그기 뭡니까?”
무쌍은 언뜻 야마나시 콜렉션이 떠올랐다. 앞산과 팔공산은 수십 킬로 떨어져 있지만, 풍수는 거리만 따지는 학문이 아니다.
“이놈아, 낸들 세상일을 다 알 수 있느냐. 그쪽은 좌도방 전문이니라. 니놈이 챙겨준 영험한 무당이 있지 않으냐?”
“억, 어떻게 아셨어요?”
“뻔하지, 작은 귀신이 큰 귀신을 만났으니 울고불고 매달렸을 테고, 니놈 성정에 모질게 할 수 있었겠느냐. 엤다 하고 떡 한 개 물려주고 왔겠지.”
“헤헤헤, 알고 보니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었심더. 나름대로 지닌 뜻도 있었고요.”
“흠, 선친의 유택을 건드린 무당을 용서해 주다니 네놈이 제법 보살 흉내를 내는구나. 우리 무속은 북방계의 샤머니즘적 강신무와 남방계의 주술적 세습무가 혼합된 형태다. 무속인의 시각에서 보면 무속을 배척하는 기독교의 성령도 영통 형상이란 점에서 엑스터시, 트랜스, 포제션과 별다를 것 없겠지.”
“불교에서 무속을 보는 시각은 어떻습니까?”
“불교는 포용의 종교다. 대웅전 한쪽에 칠성각과 산신각이 버젓이 서 있는데 말할 게 무에 있느냐. 전통문화란 측면에서 보면 나쁠 것 없다.”
“사람을 위한 종교지 신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아무리 포장해봐야 현세 기복이 목적 아니더냐. 그런 점에서 무속은 지나치게 솔직한 편이지. 헐헐헐!”
대우선사가 껄껄 웃었다. 천의무봉한 분이라 말씀에 거침이 없다.
“말씀 난 김에 불로동에 한번 다녀올까요?”
“아서라, 손님이 오는구나. 니놈이 밥값을 하러 가야 할 모양이다. 저놈도 인간 꼴을 만들었으니 데려가거라. 에잉, 제자란 놈이 툭하면 늙은 사부를 부려 먹는단 말이야.”
“지송함더.”
무쌍이 뒷머리를 득득 긁었다. 쌈디를 인간화하느라 사부가 많이 고생했다.
“마누라와 새끼 고생시키지 않으려면 열심히 벌어라. 헐헐헐.”
대우선사가 법당으로 올라가자 쌈디가 목소리를 바짝 낮추어 속삭였다.
“와키르, 나 와키르 좋다. 큰 주인이 너무 무섭다. 예불에 빠지면 바윗덩이로 뒈지게 맞는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대우선사를 뒤따라갔다.
“와! 점마 저거 완전 여우구마.”
무쌍이 감탄했다. 행여나 자신을 떼놓고 갈까 봐 선수를 치는 여우 좀비다.
“여기가 아프리카야! 왜 전화가 없냐고. 프랑스 고위 공무원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대사관 경비대의 마샤 바우트 중위는 서른두 번째 불평을 내뱉었다. 관사에서 단잠을 자던 중에 긴급 호출을 당한 그는 정신없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왔다.
천성사엔 전화가 없다. 대우선사나 무쌍이나 절에 붙어 있는 시간보다 비우는 시간이 많다. 운수행각승인 대우선사는 말할 것도 없고, 무쌍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답답한 놈이 찾아오면 된다는 심뽀다. 그 답답한 놈이 찾아왔다.
천생산 봉우리 사이로 아침 해가 빼곰이 얼굴을 내밀었다. 축축한 안개가 굼실굼실 산허리를 타고 올라갔다. 우웅- 승용차가 한 대가 좁을 산길을 덜커덩거리며 올랐다.
“쀠텡, 참사관이란 인간이 왜 산속에 처박혀 있는 거야. 한국의 수도승은 풀만 먹는다는데 참사관이 망할 놈의 채식주의자인가?”
바우트는 서른다섯 번째 불평을 뱉었다. 참사관이 무섭다고 소문나 있지만, 혼자서 욕설을 못 할 것도 없다. 구미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바우트는 꼬박 두 시간을 헤매었다. 캄캄한 밤이라 길을 물어볼 행인도 없었다.
“울라! 꼬레앙 템플.”
고생 끝이다. 바우트가 환성을 질렀다.
“저건 뭐냐?”
바우트의 눈이 커졌다. 거대한 통나무가 풍차처럼 돌아가며 덩치 큰 흑인을 사정없이 가격하고 있다. 바우트 중위는 급히 차를 세웠다. 뻑- 뻐억- 소리만 들어도 간이 오그라드는 타격음이 울렸다. 그리즐리 곰이 한 방에 뻗을 타격을 받은 흑인이 휭 날려갔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벌떡 일어났다.
바우트 중위는 전면 실드에 코를 박고 비현실적인 장면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통나무를 휘두르는 인간도 대단했지만, 고스란히 얻어맞는 흑인이 더 대단했다. 뿌악- 기어코 자신의 허벅지 굵기인 통나무가 부러졌다. 부러진 통나무가 급작스럽게 확대되었다.
“이크!”
식겁한 바우트가 운전대에 머리를 처박았다. 쿵- 다행히 부러진 통나무는 백미러 바로 옆에 떨어졌다. 바우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똑똑- 시커먼 얼굴이 차창을 가득 채웠다. 바우트가 창문을 내렸다.
“무슨 용무로 왔나?”
“특별군사고문님께 용무 있다.”
“버릇없다. 내려서 말해라.”
쌈디가 승용차를 슬쩍 밀었다. 승용차가 반대쪽으로 번쩍 들렸다가 쿵 떨어졌다.
“억!”
식겁한 바우트가 황급히 도어를 열고 나왔다.
“이게 무슨~”
바우트가 뒷말을 꿀꺽 삼켰다. 벌거벗은 흑인의 상체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보디빌더인 자신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기가 팍 꺾인 바우트가 쌈디를 따라갔다.
“악트! 대사관 경비 마샤 바우트 중위입니다.”
바우트가 칼처럼 다려입은 군복만큼이나 각진 경례를 붙였다.
“쉬어! 무슨 일인가?”
“대사님께서 참사관님을 찾으십니다.”
“나 바쁘다.”
무쌍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금은 프랑스로 날아갈 시점이 아니다. 어머니를 찾아도 좋다는 스승님의 허락이 떨어졌고 기와집을 지을 판이다. 장 씨와의 묵은 원한도 마무리해야 한다. 아버지 무덤을 훼손한 사건은 백번을 양보해도 용서할 사안이 아니다. 학교 생활도 그럭저럭 재미를 붙이는 판에 밥값을 하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