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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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장 콩고 Fist of Justice 13
제르맹이 말을 멈추고 식어빠진 커피를 훌쩍 들이켰다.
‘빌어먹을 인간, 뭘 알아야 분대장이라도 하지.’
제르맹은 전략 자문관이라는 말도 안 되는 참모 조직을 만든 좌파 정부의 삽질에 이를 갈았다. 주적이 없어서 망정이지 전쟁이라도 터지면 회의하다가 몰살당할 판이다.
“필립 장군, 정의의 주먹은 최악의 작전이 되었소. 아쥐 레머는 프랑스인도 아니고 외인 용병이오. 당신이 설득한다고 제 발로 지옥에 들어가겠소?”
제르맹이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아쥐 레머의 본색은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레종 에뜨랑제입니다. 본인은 부하를 장악 못 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고, 아쥐 레머는 상관을 무시할만큼 막 돼먹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말 한마디면 기꺼이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필립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블랙맘바가 미구엘과 땅쉬를 잔혹한 수법으로 처치한 이유를 알고 있다. 블랙맘바는 의리를 중히 여기고 정에 약한 전형적인 한국인이다. 연락을 받는 즉시 날아왔음은 약속을 지킨다는 표시다. 이미 승낙을 받은 셈이니 큰소리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저 인간이 뭘 믿고 큰 소리지?’
제르맹이 놀란 눈으로 필립을 쳐다보았다. 특별군사고문은 차관급이다. 말이 좋아 부하지 직급으로 따지면 블랙맘바가 필립의 몇 단계 위다.
“필립, 별을 달더니 정치인이 다 되었군.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 묘책이라도 있나 보지. 보험이라도 들었나? 구출 작전이 실패하면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한다는 말은 왜 하지 않나?”
보니파스가 이죽거렸다. 필립이 보니파스를 노려보았다.
“자네 주특기가 작전팀을 악어 아가리에 처넣기 아닌가. 나와 아쥐 레머의 관계는 돈이 아니라 신뢰일세. 그는 애국심이 강한 레종 에뜨랑제의 자랑스러운 전사다.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존재지.”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보니파스는 필립의 어거지에 입맛이 썼지만, 더 이상의 논쟁을 피했다. 필립이 말하는 ‘신뢰할 수 있는’ 이란 ‘죽어도 뒤탈이 없는’이란 뜻이다. ‘애국심이 강하다’는 말은 적절한 금전적 보상만 하면 말을 잘 듣는다는 뜻이다. ‘용맹하다’는 뜻은 자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설치는 외곬이라는 의미다.
필립은 확실히 변했다. 예전에도 정치적 성향이 강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장군이 되더니 얼치기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멍청한 놈! 언젠가 큰코다치겠군.’
필립은 한때 상관이었다는 이유로 블랙맘바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짐작도 못 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조차 나쇼널 트레조르로 대우하는 인물을 가소롭게도 조련된 맹수, 사이보그, 죽어도 부담 없는 존재, 제어 가능한 메가톤급 핵폭탄으로 여기고 있다.
블랙맘바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힘만 센 그리즐리가 아니라 지성을 갖춘 맹수다. 필립 따위는 아차 하면 먹혀버린다. 블랙맘바가 진심으로 두려운 이유는 발톱을 철저히 숨기는 조심성, 상대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예리한 지성, 배신자는 지옥 끝까지 추적하는 쪼잔함이다.
블랙맘바가 애국심이 넘치는 마초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합리적인 애국자로 정직한 거래를 통해 마음을 잡아야 할 인물이다. 보니파스 본인도 블랙맘바를 방사능 오염 없는 핵폭탄으로 여기고 있지만, 필립과는 생각의 출발점이 달랐다.
“필립, 고맙네. 자네가 아쥐 레머를 설득하면 내가 신세 진 걸로 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는 구석이 있는 필립은 당당했다.
“보니파스, 아쥐 레머인지 뚜바이부르파인지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
페롱의 말에 보니파스가 시계를 확인했다.
“도착했을 시간입니다. 곧 들어오겠지요. 아쥐 레머는 자신의 암호명을 무척 싫어합니다. 본인이 뚜바이부르파라고 불러 달라고 했으니 염두에 두십시오.”
“히트맨에 불과한 놈이 까다롭기는 천하무적이구먼.”
보니파스는 혼잣말로 투덜대는 폐롱을 흘낏 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인간은 답이 없다.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가 목이 빠지라 기다리는 주인공이 나타난 곳은 사령부가 아니라 외인부대 본부중대 장비 쉘타다.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온 블랙맘바와 무표정한 검은 철탑 쌈디의 뒤를 헌병 넷이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아베 일당은 드골 공항 주기장에 대기 중이던 DGSE 작전부 요원들에게 연행당했다. 국방부 의전과 소속의 헌병대가 블랙맘바와 쌈디를 에스코트했다.
블랙맘바는 헌병의 안내를 무시하고 친구인 에밀을 먼저 찾았다. 금방이라도 어머니를 찾을 것 같은 분위기에서 호출을 당했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늙은이들이 기다리든 말든 알 바 아니다. 기분이 꿀꿀할때는 옛친구가 최고다.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의 물결에 환호하던 쌈디도 주인의 기분을 눈치채고 조용히 뒤따랐다.
‘점마는 여전하구마.’
블랙맘바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대한 화기 쉘타 앞에 거만한 자세로 짝다리를 짚은 에밀이 보였다. 세르종(중사) 계급장을 단 에밀의 앞에 까포랄(병장)과 세르종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에밀의 대두에 그토록 원했던 케피 느와가 얹혀있다.
“까포랄!”
“위!”
“신관 박스를 총유탄 화약 박스와 같은 선반에 적재하면 어떻게 되나?”
“위험합니다.”
“위험한 일을 왜 했나?”
“죄송합니다.”
“꼴 보기 싫은 중사 놈을 날려버리고 싶었지?”
“아닙니다.”
“뭐 충분히 이해한다. 삼 주째 외출을 나가지 못했으니 폭발할 것 같지?”
“아닙니다.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블랙맘바는 웃음이 나왔다. 한국군이나 외인부대나 고참이 쫄따구를 갈구는 행태는 도찐개찐이다.
“여어, 파트너! 불쌍한 레조넬은 그만 괴롭히라고.”
“억!”
에밀이 총 맞은 듯 펄쩍 뛰었다. 너무나 익숙한, 그리운 목소리다. 고개가 부러질 듯이 휙 돌아갔다.
“너, 너 너 너!”
에밀이 절룩이는 걸음으로 달려들었다. 다짜고짜 블랙맘바를 번쩍 들어서 한 바퀴 돌았다. 사고무친한 에밀에게 블랙맘바는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인 동시에 보스다.
“임마, 나 여자 아니다. 닭살돋는 퍼포먼스 그만둬. 좋아 보이네.”
“그럼, 친구 덕분에 얻은 꿀 보직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장비 불출 지시가 내려와서 파트너를 기다렸지. 콩고에서 벌어진 아레바 인질 사건은 들었지?”
에밀이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 싱글벙글했다.
“응, 그것 때문에 부르더군. 주한 대사관의 주앙 무관한테서 대충 들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가 보지.”
“놈들이 인질 손목을 끊어 보냈는데 좋을 리가 있나. 위 대가리들이 줄줄이 들어온 지 세 시간은 지났다. 끓는 물속에 드라이아이스를 집어넣은 분위기야. 제르맹 장관과 작전참모, 11공정 여단장이 곧 잘릴다는 소문이 파다해.”
“그 양반이 왜?”
“르 몽드에 ‘정의의 주먹 VS 희대의 삽질’이란 제목으로 연일 기사가 나갔거든. 다혈질인 미테랑의 화풀이 제물로 간택된 거지. 잘리게 생긴 제르맹이 뿔에 불방망이 단 투우처럼 날뛰고 있을 거야.”
“안됐군. 그 자리를 지키려고 노구를 끌고 사헬까지 다녀왔는데. 쯧쯧”
블랙맘바가 혀를 끌끌 찼다.
“우는 놈이 있으면 웃는 놈도 있는 거라고. 친구가 래쿤 작전을 마치고 전역해 버렸으면 대가리들이 머리를 쥐어뜯어야겠지. 이참에 잔뜩 생색내고 몸값을 단단히 챙기라고. 하하하!”
에밀은 블랙맘바가 루만 작전에 투입된 사실을 모른다. 전전긍긍하던 대가리들이 블랙맘바에게 매달리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블랙맘바도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다리 병신이 되었어도 변함없이 유쾌한 친구의 모습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생사를 모르는 불쌍한 인질이 22명이나 있지만, 그보다 더 불행한 인생이 수 천만이다.
“에델은 잘 있지? 설마 아직도 꾹 누르지 않고 내버려둔 건 아니겠지?”
“임마, 남의 연애사는 왜 뒤지려고 해. 요즘도 아랫도리 휘두르고 다니나?”
“할 일도 없는데 그거라도 해야지. 아, 그리고 간호사 짓 하던 꽃뱀 이야기는 들었다. 목석 같은 자네에게 두 번이나 걸린 그년도 엔간히 운이 없어. 썩을 년, 쫀득한 구멍에 처넣은 오만 프랑이 날아갔네.”
“임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노후 준비는 해얄거 아냐?”
“가족도 없는데 돈 모아서 뭘 해. 노후준비는 어차피 자네가 해줄 거잖아. 옴부티가 투자금 배당 계산서를 보냈더군. 40만 프랑이 지난 한 해 동안에 새끼를 10만 프랑이나 쳤더라. 누구 덕분에 손에 쥐지도 못할 그림의 떡이지만 나도 엄연히 갑부라고.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는 신변잡기 수준으로 흘러갔다.
“큼 큼!”
공항에서부터 블랙맘바를 에스코트해온 국방부 요원이 헛기침했다. 에밀이 슬그머니 헌병 눈치를 살폈다. 블랙맘바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상사, 불편한가?”
“장관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계속 기다리라고 해!”
“예의에 벗어난 말씀입니다.”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대답에 헌병 조장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블랙맘바의 뒤쪽에 철탑처럼 버티고 서있던 쌈디의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
퍽- 버르장머리 신공 작렬이다.
“윽!”
곰 앞발에 상당하는 타격을 뒤통수에 받은 헌병 조장이 2~3m 날려가서 땅바닥에 코를 박았다. 정신줄을 놓은 헌병 조장의 코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땅을 적셨다.
“쀠텡!”
화들짝 놀란 헌병 셋이 곤봉을 뽑아들고 쌈디에게 달려들었다. 프랑스 헌병대 곤봉은 일자가 아니라 말단부가 쿠크리처럼 기역으로 15도쯤 구부러져 있다. 타격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퍽퍽퍽- 기형 곤봉이 우박처럼 쌈디의 상체에 쏟아졌다. 프랑스 헌병과 경찰은 한국과 달리 신변 위험을 느낄 시 즉각 무제한의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 쌈디는 눈도 깜짝 않고 고스란히 타격을 받았다. 쌈디가 우박처럼 떨어지는 곤봉을 무시하고 블랙맘바를 돌아보았다.
“와키르, 이놈들 묻어버릴까?”
“약해빠진 놈들 건드려서 뭐해.”
블랙맘바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대우선사의 가르침을 받은 쌈디는 약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쌈디의 손이 허공을 한차례 휘저었다. 솥뚜껑 같은 손에 곤봉 세 개를 간단히 거둬갔다. 쌈디의 표정이 뿌듯해졌다. 큰 주인에게 배운 공수납백이라 불린 손놀림에 자신도 놀랐다.
“억, 뭐야?”
곤봉을 뺏긴 헌병 셋이 후다닥 물러났다. 손이 권총 홀스터로 향하는 순간, 뿌악- 물푸레나무로 만든 곤봉 세 개가 일시에 부러졌다.
“주인께 버릇없이 굴면 죽는다. 약한 놈이라 살려준다.”
쌈디가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고 부러진 곤봉을 헌병 발치에 툭 집어 던졌다.
“으흐흐, 괴물!”
헌병 셋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물러났다. 땅바닥에 엎어졌던 조장이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를 털고는 쌈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와!, 쩐다 쩔어.”
에밀이 환성을 질렀다. 블랙맘바야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그를 따라온 흑인의 포스가 엄청났다. 단호하고 화끈한 손 속이 왕년의 블랙맘바 그대로다.
“블랙, 저 친구 뭐야?”
“가족!”
블랙맘바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렇군.”
에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맘바의 주위 사람은 친구 아니면 가족이다.
“너희는 방금 생명을 잃을 뻔했다. 자중하도록.”
블랙맘바가 묵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헌병 넷은 대답도 못 하고 쌈디만 바라보았다. 그들은 태어난 이래 최대의 혼란에 빠졌다.
“이봐, 이름이 뭔가?”
“쌈디!”
에밀의 물음에 쌈디가 간단히 대답했다.
“나는 와킬의 친구 에밀이다.”
“알고 있다. 와키르님의 친구도 버릇없이 굴면 맞는다.”
“흐미, 옴부티 같은 놈이 또 나타났구먼. 블랙 자넨 어디서 저런 괴물을 자꾸 주워오나?”
“인연이지.”
블랙맘바가 빙그레 웃었다. 에밀이 정색했다.
“친구, 이번엔 몸조심해. 사헬도 험난했지만, 이투리는 악마의 정글이라더라. 필요한 장비는 말만 하라고. 에이망스(AMX-30, 르 끌레르 개발 전의 프랑스 주력 전차. 화력과 기동력이 좋다.)도 내줄게. 함께 하지 못해 슬프다. 우리는 최고의 콤비였는데.”
에밀이 의족으로 교체된 왼쪽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골수가 썩어들어가는 바람에 결국 다리를 잘라냈다.
“종이짝 장갑 에이망스는 필요 없어. 쌈디가 사용할만한 무기나 찾아봐. 무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필요한 건 저녁에 부탁할게.”
“오케이, 검은 친구는 에리어 건도 너끈히 휘두르겠군. 중기관총이나 기관포를 찾아봐야겠어. 적당한 게 없으면 개발용 샘플이라도 슬쩍하지 뭐.”
“무리하지 않아도 돼.”
“걱정마. 벨맨에게 부탁하면 양키 최신 무기도 빼낼 수 있어. 근데 헌병들이 불쌍해 보이긴 처음이네. 그만 가봐. 높으신 분들의 목이 빠지겠다.”
“기다려도 돼. 늙은이들보다야 친구가 백배는 소중하지.”
블랙맘바는 냉정했다. 평소에 여러 사람 목 빠지게 했던 갑질 인생이다. 본인들도 기다려 봐야 아랫것들 심정도 알게 된다.
“이래서 자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이야. 자네야 눈치 볼 것 없지만, 나는 힘없는 중사라고. 저 친구들 가슴도 숯이 되겠어. 아랫것들은 잘리면 손가락이나 빨아야 해.”
에밀이 더듬이 떨어진 개미처럼 우왕좌왕하는 헌병들을 가리켰다.
“그렇지. 두 번째 조국인 프랑스를 위해서 밥값은 해야지. 블랙맘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가.”
무쌍이 씁쓸한 독백을 남기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