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76
x 376
제39장 콩고 Fist of Justice 15
필립이 블랙맘바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찢어지는 입을 주체못했다. 한국군은 한번 고참은 영원한 고참으로 대우한다고 들었다. 옛 상사를 대우하는 으리에 가슴이 뭉클했다.
“블랙맘바, 아니 뚜바이부르파, 납치된 인질은 원자력 산업의 핵심 석학들이네. 이제 남은 희망은 자네뿐이네. 부디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게.”
필립이 을의 자세로 정중히 부탁했다. 블랙맘바는 말 한마디로 꼴 보기 싫은 페롱을 단박에 쫓아내고, 제르맹의 기를 꺾었다. 블랙맘바는 레종 에뜨랑제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변해버린 위상이 실감 났다.
손아귀를 벗어난 황금 오리가 아쉽지만, 맹호가 된 놈을 고양이 취급했다간 잡아먹히게 마련이다. 정치감각이 뛰어난 필립은 고개를 숙이기로 작정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버르장머리없는 공무원 녀석이 내 신분증의 이름을 ‘스바르드 굴베이그’로 올렸었지. 스바르드는 노르드 신화에 나오는 어둠의 세계, 굴베이그는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황금을 좇는 천박한 여자 마법사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 했더니 그놈이 먼저 어둠의 세계로 떠나버렸어. 나는 스스로 경계하여 치욕적인 이름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무서운 놈, 백린으로 태워죽인 미구엘 과장 이야기 아닌가!’
섬뜩한 이야기가 나오자 필립은 아연 긴장했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은 조심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무지막지한 능력까지 있으면 폭탄이다. 블랙맘바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잠시 잊었다.
블랙맘바가 두 손을 내밀어 제르맹과 필립의 얼굴 앞에 흔들었다. 화들짝 놀란 제르맹과 필립이 상체를 뒤로 뺏다.
“보라, 이 손에 죽은 인간이 몇 명이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두 분은 전장을 경험했으니 살인으로 인한 정신적 데미지를 잘 알 것이다. 전장에서 적을 한두 명 죽인 병사는 물론이고, 처참한 시체를 목격한 병사도 PTSD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수천 명을 살해한 죽음의 천사, 나 블랙맘바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평범한 청년이다. 피 냄새가 싫고, 피의 무게가 싫어졌다. 더 이상 피를 보고 싶지 않다.”
블랙맘바는 우울한 얼굴로 늙은이들과 차례로 시선을 맞추었다. 말하다 보니 비감해졌다. 자연히 말에 간섭장이 실렸다. 제르맹과 필립의 표정이 일순 딱딱해졌다.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뭔가 블랙맘바에게 큰 빚을 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들었다. 진실하고 호소력 있는 음성이 이어졌다.
“나는 한국인인 동시에 프랑스의 명예시민이다. 피가 싫다고 국가의 위기를 못 본 척할 수는 없다. 필립 장군과 맺은 약속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시기가 조금 그렇군. 쯥!”
블랙맘바가 입맛을 다셨다. 필립이 그것 보라는 듯이 제르맹을 쳐다보았다.
“고맙네. 프랑스의 체면과 미래가 자네에게 달렸네.”
제르맹이 호들갑을 떨었다. 찜찜한 토를 달긴 했지만, 블랙맘바가 작전을 승낙했다. 페롱이 중간에서 초를 치는 바람에 간이 오그라들었다. 블랙맘바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다. 그가 또 한 번의 기적을 일으켜 준다면 회전의자를 지킬 가능성도 높아진다.
“블랙맘바, 학기 중에 불러서 미안하다. 자넨 파리 제2 대학 생물학부 교환 연구원으로 등록되었다. 꼬레에서 학점을 따지 못하더라도 유급은 걱정하지 말게.”
눈치 백 단인 보니파스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그거 고맙군.”
블랙맘바가 반색했다. 작전 진행 중에 어떤 돌발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카파루자에서 지저 세계로 끌려들어 갈 줄 상상이나 했던가. 필립과 제르맹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제르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장비와 물품은 말만 하게. 예민한 장비는 보니파스 측에서 준비하겠지만, 범용장비는 되지엠 랩에 충분한 재고가 있네. 일차 작전비는 10만 프랑일세. 동일한 금액이 두 번째, 세 번째 작전비로 지급될걸세.”
블랙맘바의 말에 압박을 받은 제르맹과 필립은 있지도 않은 작전비를 풀었다. 작전비는 작전 중에 소요되는 공작금이다. 블랙맘바는 군부와 DGSE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작전비가 필요 없다. 10만 프랑은 영수증이 필요없는 용돈인 셈이다. 용돈을 30만 프랑이나 주겠다는데 감격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으이그, 좁쌀 인간!’
블랙맘바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필립은 보니파스보다 스케일이 작아도 너무 작았다. 루만 작전에서 3억 프랑을 챙긴 그는 간덩이가 부었다. 10만 프랑은 코 묻은 돈이다. 블랙맘바가 보니파스를 슬쩍 쳐다보고 필립에게 시선을 옮겼다. 속셈이 따로 있는 그는 슬슬 분위기를 몰아갔다.
“프랑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나라다. 나도 프랑스 명예시민이다. 돈을 벌려고 용병이 되었지만, 생명을 구하는 일에 돈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수당은 국방부에서 알아서 책정하기 바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박수가 터졌다.
“와아!” 짝짝짝-
“오오, 역시 블랙맘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이다.”
“당신은 진정한 나쇼널 트레조르다.”
“레종 에뜨랑제의 자랑이다.”
필립과 제르맹은 물론 디망쉬마저 환호했다.
“특별고문, DGSE야 눈먼 돈이 굴러다니지만, 군부는 예산이 빡빡하기 이를 데 없네. 의회의 감시도 심하고 말이야. 말만 하게. 군부에서 도와둘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돕겠네.”
제르맹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블랙맘바는 벼르고 있던 말을 쏟았다.
“정히 그렇다면 CEA(프랑스 원자력위원회)를 설득해서 프랑스 핵기술을 한국에 전수해주기 바란다.”
“핵?”
제르맹이 화들짝 놀랐다. 핵기술은 그야말로 국가 기밀 중의 기밀로 쉽게 입에 올릴 사안이 아니다.
“아아, 핵폭탄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다. 프랑스는 맨해튼 계획 당시부터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수모를 받았다. 미국, 영국, 캐나다가 손잡은 ‘우라늄공급통제조약’에 고통을 받았다. 프랑스는 위대하다. 언제까지 미국과 영국의 아류란 소리를 들을 건가. 한국은 캐나다 기술을 들여와서 이제 막 상업적인 원자력 발전을 시작했다. 알다시피 한국은 일본을 맹추격하는 신흥 공업국이다. 아시아는 아프리카와 달리 구매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한국과 연결해서 아시아 진출을 한다면 프랑스로서도 경제 영토를 크게 넓힐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뒤통수도 제대로 갈기고 말이다.”
블랙맘바는 제르맹의 자존심을 슬쩍 건드렸다. 프랑스 고위 관료와 정치인은 쓸데없이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미국, 영국과 연관되면 더욱 민감해진다.
“좋다. CEA, 외교부, 과학기술부와 즉시 협의해서 대통령을 설득하겠다. 고문이 인질을 구출해내면 아레바 사도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다.”
제르맹이 시원스럽게 승낙했다. 제르맹은 블랙맘바의 쇼에 홀딱 넘어갔다.
‘멍청이들!’
보니파스가 제르맹을 슬쩍 쳐다보았다. 세이렌에 홀린 듯 블랙맘바의 언변에 녹아버린 얼굴이다. 이래서 군바리는 순진하고 단순하다. 프리랜서 용병은 돈으로 움직이고 돈을 좋아한다. 블랙맘바도 돈을 좋아한다.
국방부가 블랙맘바에게 지급할 수당은 50만 프랑이다. 작전비까지 합쳐봐야 80만 프랑쯤 될 것이다. 블랙맘바가 수당을 백지위임 한 이유는 수당이 너무 적다는 불평에 다름없다. 제정신을 차린 제르맹과 필립은 수당 재산정 문제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핵기술이란 엄청난 보따리다. 블랙맘바는 원자력 발전소로 슬쩍 가렸지만, 원자력 발전소 운영이 곧바로 핵폭탄 제조기술 습득의 첩경이다. 블랙맘바는 조국을 싫어하면서도 사랑하는 인간이다.
‘흐흐, 역시 대단한 인간!’
보니파스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블랙맘바에게 반했다. 실속을 챙겨가는 블랙맘바가 조금도 밉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조국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블랙맘바는 욕심은 탐욕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소득재분배다. 그는 핍박받고 굶주리는 하층민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려고 사막에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인간이다. 인류역사에 없던 일이다. 블랙맘바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한없이 약한 인간이 블랙맘바다. 자신의 행위가 옳다는 부동의 자부심이야말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배금주의와 이기주의로 물든 세상에 돈키호테 한 명쯤 있어도 나쁠 것 없다. 자신이 따로 준비한 보따리를 풀어줄 시점이다. 보니파스의 선물 퍼붓기가 시작되었다.
“수당이야 국방부에서 처리되겠지만, DGSE에서도 자네의 수고에 상응하는 보따리를 준비했네. 단추가 잘못 끼워져서 그렇지 이번 작전은 본래 DGSE에서 책임져야 할 작전이었네.”
보니파스가 말을 멈추고 제르맹을 흘끗 보았다. 제르맹이 보니파스의 시선을 슬쩍 외면했다.
“나는 아레바사 자베르 회장과 비공식적인 딜을 했네. 자베르 회장이 인질 구출에 총 3천만 프랑을 현상금으로 내놓았네. 내가 이면 보증하는 구출팀에 8백만 프랑을 선금으로 지급하고, 구출된 인질 일 인당 일백만 프랑을 지급키로 했네. 22명을 모두 구출하면 2천2백만 프랑을 추가로 받는 셈이지. 이미 고문의 계좌로 착수금 팔백만 프랑을 송금했네. 인질을 구출하는대로 잔금이 입금될걸세.”
“삼 삼천만 프랑!”
제르맹과 필립이 입을 딱 벌렸다. 아예 단위가 틀리는, 듣도 보도 못한 거액이다. 50만 프랑의 수당이 너무나 초라했다. 어이가 사라진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둘 다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허, 과연 명예를 아는 분이라 손이 크고 화통하구먼. 돈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해주기 바란다.”
블랙맘바가 씩 웃었다. 과연 영물 너구리 보니파스답게 필립과는 격이 틀렸다. 노다지가 따로 없다. 돈이 호박 구르듯이 굴러 들어온다. 게릴라와 테러리스트가 프랑스를 열심히 괴롭히라고 고사를 지내고 싶을 지경이다.
‘선우방나 모녀를 불러서 프랑스가 계속 시달리라고 굿거리를 해볼까.’
썩 바람직스럽지 못한 상상에 실소가 나왔다.
졸지에 명예를 모르는 쪼잔한 인간이 된 제르맹과 필립은 천장만 멀거니 쳐다보았다. 인도차이나의 호랑이라 불렸던 제르맹과 차드의 수사자라 불리는 필립은 써펀드 보니파스의 한 입 거리에 불과했다.
배부른 짐승은 나태해지지만, 인간은 배가 불러야 발동이 걸리는 동물이다. 배가 잔뜩 부른 블랙맘바가 서둘렀다.
“보니파스 실무 책임자를 불러라. 최후통첩받은 열흘 중에 이미 하루를 까먹었다. 시간이 없다.”
“잠깐, 팀 구성은 어떻게 할 텐가?”
필립이 물었다.
“필요 없다. 내 개인 경호원과 함께 간다.”
단호한 대답에 필립이 보니파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할 게 뭐 있나. 뚜바이부르파는 특급 컨설턴트다. 작전에 관한 모든 권한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지원이다.”
보니파스가 닭 다리는 두 개라는 투로 말했다.
“하긴, 뚜바이부르파가 하파스나 GIGN은 아니지.”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파스와 GIGN 관계자가 자리에 있었으면 주먹을 휘둘렀을 소리다. 외인부대와 프랑스 정규군의 알력은 뿌리 깊다. 툭하면 서로 씹는다.
“필립 장군, 하파스와 GIGN 희생이 많았네.”
제르맹이 지적했다.
“소관은 하파스와 GIGN를 모욕할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뚜바이부르파가 팀을 구성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화가 옆길로 새자 디망쉬가 마무리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인질은 공포에 떨고 있을 거요. 놈들이 한 번 더 인질의 손목을 끊어 보내면 내각이 무너지고, 프랑스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거요. 작전은 특별군사고문과 부장에게 맡기고 우리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는 퇴장합시다. 늙은이가 자살공격은 못 할망정 뒷다리는 잡지 말아야지. 특별고문, 부탁하네.”
디망쉬가 늙은 생강답게 뼈있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회의실밖에 남겨진 쌈디는 지루함을 참지 못했다. 에밀에게 배운 샹송을 흥얼거렸다.
“쌈디, 너도 들어와라.”
블랙맘바가 불렀지만, 쌈디는 듣지 못했다.
[정글엔 사자가 없다네. 나무 위의 표범만 눈을 번쩍이지. 녹색 장막이 하늘을 덮고 왕관 독수리가 소리 없이 원숭이를 잡아간다네. 맑은 호수엔 끔찍한 기생충이 우글거리고 때깔 좋은 과일을 먹으면 눈깔 뒤집고 거품을 뿜는다네. 물고기 잡겠다고 강에 들어갔다간 물고기에게 잡혀먹힌다네. 아프리카는 낭만이 아니라네. 이투리는 현실이라네. 네지떼 빠, 즈 부 제꾸뜨♬(주저하지 말고 말씀하세요.) 메 엘 네 빠 몽 띱♬(당신은 내 타입이 아니라고요.)]“얼래, 점마 저거 보통 실력이 아니네.”
무쌍은 진심 놀랐다. 에밀이 즐겨 부르는 미셀 폴라레프의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의 리듬이다.
쌈디는 장비 쉘타에서 에밀의 흥얼거림을 듣는 것만으로 가사를 외웠을 뿐 아니라 리듬과 박자를 절묘하게 타고 있다. 거대한 체구가 [몽 띱] [몽 띱]하고 후렴구를 넣을 때면 아련한 슬픔조차 느껴졌다.
“와키르, 이 노래 좋다.”
노래를 멈춘 쌈디가 비시시 웃었다.
“리듬을 빠르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와키르는 항상 옳다.”
“쌈디, 나쁜 놈들을 혼 좀 내줘야겠다.”
“노래도 좋지만, 주먹질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