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82
x 382
제40장 이투리 Fist of Justice 4
전국시대 오자 병법의 저자인 오기(吳起)는 현대식으로 말하면 퍼포먼스의 달인이었다. 군사를 끌고 전장에 나선 오자는 등에 종창이 난 병사의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냈다. 감격한 병사는 미친 듯이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병사는 죽었고, 오기는 상국이 되었다.
초나라 대부 굴원은 불타는 애국심과 높은 이상을 가진 우국지사다. 그는 아첨꾼에 둘러싸인 어리석은 군주와 강대국인 진나라에 빌붙은 매국노 무리로 인해 자기 뜻을 펴지 못했다. 파직당한 그는 굴욕과 부조리를 참지 못하고 멱라강에 몸을 던졌다.
[내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모든 사람이 더러운데 나만 깨끗했기 때문이고, 모든 사람이 취했는데 나만 깨어 있었기 때문이다.]굴원이 남긴 말이다. 오기와 굴원의 고사는 틀리다 맞다의 개념이 아니라 다르다의 개념이다. 평가도 후세 역사가들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블랙맘바는 오기가 종창을 빨아준 병사도 아니고, 애국심을 주체못한 우국지사 굴원도 아니다.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은 준다. 전속 요리사를 보내준 외인부대 사령관의 호의는 호의일 뿐이다. 감격할 이유도 없고, 감격할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
“폭탄마 장쒼이 생각나는군. 그 녀석의 타조 요리는 일품이었지. 저 친구 요리는 맥도날드 수준이야.”
폴이 목소리를 낮추고 입맛을 다셨다. 그의 표정이 그리움으로 물들었다. 광음이 교차하면 블랙맘바는 지치고 두려움에 떠는 동료를 위해 사냥에 나섰다.
별이 쏟아지고 알지 못할 동물의 긴 울음이 어둠을 가르는 사막의 밤, 동료들과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대검으로 잘라먹었던 타조 고기는 천상의 맛이고 낭만이었다.
타조 고기가 설익고 그을음만 가득했다는 사실과 프롤리나트 정찰병이 볼세라 방수포로 불빛을 가렸던 구차함은 잊혔다. 기억은 재구성되고 미화되어 추억으로 되살아났다. 이 또한 개체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비밀이다.
“전갈과 풍뎅이도 그 친구의 손에 들어가면 미슐랭 등급으로 변했었지. 맥도날드 따위와 비교하면 장쒼이 십팔자작도(중국식 네모난 식칼)를 들고 달려올 거다.”
블랙맘바가 맞장구쳤다. 친구가 편안한 이유는 공유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만인의 먹는 즐거움을 위해 만인이 싫어하는 살생을 하는 사람이다. 생선회를 즐기는 아가씨가 자신이 먹을 물고기를 죽여야 한다면? 삼겹살을 즐기는 아저씨가 돼지 멱을 따야 한다면? 차라리 회와 삼겹살을 포기할 것이다. 요리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직업이다.
“요리사가 있으면 뭐해. 기껏해야 방부제를 듬뿍 처바른 비레이션이나 조리할 텐데. 기름이 쪽 빠진 바비큐가 그립다.”
폴이 투덜거리며 블랙맘바의 눈치를 슬쩍 봤다. 생고기는 적도 정글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한나절이면 부패한다. 차량에 냉장고를 싣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리, 부템보는 큰 도시입니다. 잡화점에서 쇠고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요.”
올룸바가 끼어들었다.
“부템보의 인구가 얼마나 되나?”
“이천 명이 넘을 겁니다. 온갖 물건을 파는 잡화점과 대장간이 있고, 병을 고쳐주는 주술사도 있습니다요.”
“이곳에서 거리가 얼마나 되나?”
“30km쯤 됩니다.”
“임마, 곧 어두워질 텐데 30km를 어떻게 왕복하나.”
폴이 낙담했다. 아프리카의 30km는 프랑스의 300km보다 더 멀다. 지친 부하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먹여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아니 천하제일의 사냥꾼이 있다. 블랙맘바만 움직이면 해결된다.
‘저 자식은 역시 허풍쟁이구마.’
폴과 안내인의 대화를 듣던 블랙맘바는 한숨이 나왔다. 올룸보란 놈이 파리 유학을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이다. 파리에서 생활해본 놈이 주술사를 언급하고, 콧구멍만 한 마을을 큰 도시라고 할 리 없다. 사헬에서는 유능하고 충직한 옴부티가 있어 편했다. 얼치기 안내인을 믿고 이투리에 잠입해야 하는 자신이 불쌍했다.
“깨비텐, 신선한 재료가 좀 필요한데.”
눈치를 보던 폴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깨비텐은 폴이다.”
어리둥절해진 블랙맘바가 폴을 쳐다보았다.
“이번 작전의 캡틴은 블랙맘바다. 나는 쫄따구다. 너는 지시하고 나는 움직인다. 크크크!”
폴이 예전에 블랙맘바가 했던 말을 흉내 내며 킬킬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한 번 캡틴은 영원히 캡틴이다.”
폴은 친구 이전에 뛰어난 지휘관이다. 간섭할 필요 없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한다.
“울라, 솜씨를 보여주겠나?”
“이 많은 인원이 먹으려면 오카피나 마운틴고릴라 정도의 덩치를 잡아와야 할 텐데.”
“그건 보호 동물이다. 유네스코와 동물보호단체에서 자네를 오븐에 집어넣는다.”
“젠장, 굶어 죽는 인간이 지천인데 동물이 문제야?”
“당연하지. 사람 숫자는 수십억이지만 오카피와 고릴라 개체 수는 일천에도 못 미치거든. 원래 희귀한 것은 대접받는 법이라고. 그래서 자네도 대접받는 거야. 사하라에서 타조와 에닥스도 잡았는데 정글은 껌이지. 큼직한 놈으로 부탁하네.”
폴이 수십 명의 부하가 있음에도 블랙맘바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적도 정글에는 치명적인 독충과 독사가 너무 많다. 그 모든 위험성을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이 블랙맘바다. 또한, 그가 천부적인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총기와 사격 실력이 좋다고 사냥을 잘할 수는 없다. 야생 동물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다. 사냥꾼은 총이나 덫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 감각이 뛰어나고 자연과 동물을 잘 아는 사람이다. 블랙맘바야말로 최고의 사냥꾼이다.
“죽은 놈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친구의 소원을 외면할 수야 있나. 가자고.”
블랙맘바가 MP5를 들고 엉덩이를 들었다.
“오랜만에 친구 솜씨를 보겠구먼. 바비큐 재료는 멧돼지가 최곤데 말이야.”
폴도 따라나섰다. 쌈디가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용병 둘과 정보부 요원 둘이 뒤를 따랐다. 정글은 사막만큼이나 이방인을 반기지 않았다. 인적을 감지한 콜로부스원숭이가 우짖고, 앵무새들이 퍼드덕 날아올랐다.
지원팀 인원은 30명이 넘는다. 작은 짐승은 잡아봐야 코에 붙이지도 못한다. 블랙맘바는 감각을 활짝 열었다.
‘대단하네!’
끝없이 펼쳐진 광대한 녹색의 세계가 묵직한 압박감으로 다가섰다. 사막은 사막대로 적막하고, 숲은 숲대로 적막했다. 숲은 고요했지만 수많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큰 사슴벌레가 포차이라 껍질을 기어가는 소리, 덤불 속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뱀, 거대한 자이언트헤더 가지 속에 몸을 숨긴 침팬지, 어슬렁어슬렁 덤불속으로 사라지는 고릴라, 늪 가장자리에서 음흉한 눈을 번득이는 악어, 이방인의 침입을 받은 숲속의 생물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르웬조리 초입의 수목 지대는 관목과 덤불이 우거진 늪지대다. 교목의 밀집도는 그리 높지 않다. 숲은 늪지와 원식생(原植生, original vegetation)의 방해를 받아 발을 옮기기조차 쉽지 않았다.
빽빽한 관목과 덩굴 식물이 시야를 차단하고 발을 묶었다. 인간이 이동하기엔 관목지대가 교목지대보다 훨씬 불리하다. 쌈디가 마체테를 양손에 들고 풍차 돌리듯이 휘둘러서 길을 열었다.
앞서 가던 쌈디가 거대한 림발리 부근(扶根)을 둘러싼 자이언트 소철을 손으로 가리켰다.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폴은 안력을 집중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블랙맘바가 손바닥을 펴서 아래로 두 번 눌렀다. 은신해서 기도비닉을 유지하라는 신호다. 용병들이 자세를 바짝 낮추었다.
쌈디가 두 발을 반원으로 휘젓는듯한 묘한 걸음으로 덤불에 접근했다. 고사목을 밟고 도약하는 순간, 소철 무더기 뒤에서 커다란 짐승이 튀어나왔다. 은신을 포기한 짐승은 늪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뛰는 모습이 그리 날렵하지는 못했지만 사람에 비길바는 아니었다. 쌈디가 튀어나가는 짐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덤불속으로 몸을 날렸다.
“저런!”
블랙맘바가 혀를 찼다. 불안정한 기가 덤불 속에 남아있다. 짐승의 어린 새끼다. 어미는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몸을 드러냈다. 맹수의 사냥 본능은 새끼나 약한 놈을 노린다. 쌈디는 사냥 본능이 이성적 판단을 앞섰다.
“내가 잡아오지.”
블랙맘바가 소리도 없이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빽빽한 가시덤불과 관목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머리를 치켜든 뱀과 다름없다.
“진짜 블랙맘바가 울겠구마.”
폴이 감탄했다. 친구는 또 달라졌다. 인간은 신체 구조상 지면과 20도 각도를 유지해서 뛸 수 없다. 머리, 등, 엉덩이, 다리를 연결하는 관절이 굴신 한계를 넘었다.
짐승과 오래 실랑이 벌일 생각은 없다. 슛 슛- 예리한 파공음이 울렸다. 손을 떠난 표창 2개가 30m 앞에서 달리는 짐승의 엉덩이에 꽂혔다. 끼에에- 구슬픈 비명이 울렸다.
똥침을 맞은 짐승의 달리기가 더 빨라졌다. 타격을 줘서 속력을 늦추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짐승은 맷집이 좋았다. 추적 속도를 높일 때 짐승이 펄쩍 뛰어올랐다. 첨벙- 물이 튀어 올랐다.
“헐!”
늪이 짐승의 바로 앞에 있을 줄은 몰랐다. 나뭇잎과 수생식물로 뒤덮인 늪은 평지와 구분되지 않았다. 르웬조리와 이투리의 늪이 대부분 그렇다고 들었다. 짐승은 늪 속에 몸을 담그고 코만 내놓았다.
“쀠텡, 놓쳤군.”
뒤따라 달려온 폴이 혀를 찼다. 아프리카 정글의 늪에는 악어, 독사, 기생충, 독충이 득시글거린다.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장 잡아오겠습니다.”
뒤따라 나타난 용병이 늪으로 돌진했다. 단순무식의 대명사인 용병다운 행동이다.
“바보 자식!”
폴이 부하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포티, 정신을 팔아먹었나? 이곳의 늪은 피레네 산맥의 맑은 호수가 아니야.”
욕을 얻어먹은 용병이 녹조류와 거품으로 뒤덮인 불길한 늪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와키르! 죄송하다.”
뒤늦게 나타난 쌈디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함지박 같은 손에 목을 잡혀 대롱거리는 짐승은 토끼보다 조금 큰 영양 새끼다. 쌈디는 할 말이 없었다. 큰 짐승을 두고 새끼를 잡은 이유를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죄송할 일이 아니다. 새끼가 이미 죽었으니 할 수 없군.”
새끼가 살아있으면 어미를 살려주려고 했지만 늦었다. 전투복 상의 포켓에서 에밀이 선물한 아미 로프를 꺼냈다.
“그곳도 너에겐 안전한 피신처가 못 되는구나. 미안하다,”
피쓕- 로프 끝에 달린 표창이 석양빛을 받아 반짝했다. 퐁- 표창이 입수하는 순간, 블랙맘바가 손목을 툭툭 꺾었다. 손목 움직임을 따라 로프가 짐승의 목을 서너 바퀴 휘리릭 감았다.
끼에엑- 로프를 당기자 짐승이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버텼다. 줄다리기는 싱겁게 끝났다. 블랙맘바가 손목을 탁 잡아채자 커다란 짐승이 허공을 날아서 블랙맘바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물속에서 천마충소로 솟구친 짐승이 팔보등공으로 허공을 가로질러 육지에 떨어진 듯한 상황이다.
짐승은 단말마도 남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강력한 힘에 경추가 순간적으로 부러지고 기도가 협착되었기 때문이다. 짐승의 목을 감은 가느다란 로프가 블랙맘바의 손아귀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술이다!”
폴은 무덤덤했지만, 지원팀 대원 넷은 넋이 빠졌다. 그들의 표정은 파리 시내에서 소설 속의 소서러를 만난 듯했다.
폴은 쌈디가 휘두른 괴물 삽과 블랙맘바가 사용한 로프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이해 안 되는 일을 자꾸 이해하려고 하면 미친놈이 된다.
“이건 뭐라는 짐승이지?
폴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늪에서 끌려 나온 짐승은 체중 100kg을 가뿐히 넘기는 거구다. 뿔이 있고, 발굽이 길게 갈라졌다. 머리를 보면 영양인데 발굽을 보면 소다.
“부시벅인가?”
블랙맘바가 아는체했다.
“아니다. 비슷하지만 부시벅은 이놈보다 작다.”
“뱃속에 들어가면 부시벅이든 아니든 똥 된다.”
“크흐흐, 쌈디 똑똑하다.”
블랙맘바가 낄낄 웃었다. 쌈디 말이 맞다. 어차피 배속에 들어갈 놈이다. 구분할 실익이 없다.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얻어진 사회적인 본능일 뿐이다. 블랙맘바가 잡은 영양은 늪 영양이라 불리는 시타퉁가(Sitatunga)영양이다. 시타퉁가는 아프리카 동부의 늪지에 많이 서식한다. 부시벅과 비슷하지만 한 둘레 크다.
“더 필요하나?”
“조금 부족할 것 같다.”
블랙맘바는 순식간에 정육량을 계산하고 뚝 잘랐다.
“돼지냐? 대충 먹어!”
한우 도축 시 생체 중 대비 도체 중은 평균 64% 내외다. 나머지는 머리, 내장, 발굽, 가죽이다. 도체중에서 뼈, 꼬리, 지방을 뺀 정육율은 70% 내외다. 생체중의 45%가 정육으로 산출된다고 보면 된다. 돼지는 지방층이 두텁고 다리가 짧은 탓에 정육율이 52% 내외로 높은 편이다.
우제류는 정육율이 대개 비슷하다. 100kg의 시타퉁가에서 얻어지는 정육은 45kg이다. 고기 45kg이면 건장한 남자 40명이 그럭저럭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정보부 요원이 목봉으로 쓸 나무와 기생 덩굴을 잘라냈다. 용병 둘이 시타퉁가 발을 묶고 목봉을 꿰어서 어깨에 멨다.
“쌈디, 혼란스럽나?”
블랙맘바답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다.
“주인, 아니 와키르, 내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마음에 두지 마라. 사냥 본능이 이성적 판단을 앞섰을 뿐이다. 맹수는 본능적으로 새끼나 약한 놈을 사냥한다. 힘좋고 덩치좋은 사냥감은 바로 옆에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내가 야수 인간이란 말인가?”
쌈디가 침울하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