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87
x 387
제40장 이투리 Fist of Justice 9
표범의 주특기가 나무타기다. 나무 위에 잠복해 있다가 무심코 지나가는 사냥감을 습격하면 성공률은 거의 100%다. 올룸보는 아무것도 모르고 쌈디를 따라가기 바빴다. 흑표의 목이 쭉 늘어났다. 공격신호다.
“그렇게는 안되지.”
20m 후방에서 뒤따르던 블랙맘바가 슬그머니 락샤샤 자루를 잡았다. 흑표의 은신과 습격은 완벽했지만 뒤따르는 인간이 최고의 포식자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흑표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네 발을 활짝 펼치고 몸을 젖힌 완벽한 낙하 자세다. 카스텔노다리의 고공 강하 교관인 뱅샹이 감탄할 만큼 완벽했다. 블랙맘바는 감탄 대신에 채찍을 선사했다.
쐑- 락샤샤가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타고 벼락 치듯 떨어졌다. 올룸보 머리 위 1m 허공에서 락샤샤가 흑표의 낙하 속도를 따라잡았다.
휘리릭- 송이 뱀이 휘감듯 흑표의 목을 두 바퀴 감고 크래커로 달린 표창이 척수와 연결된 연수를 파고들었다. 흑표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허파에 들어찬 공기가 기도를 급하게 통과하는 킥하는 소리만 울렸다.
블랙맘바의 손목이 툭 꺾였다. 표범을 휘감은 락샤샤가 윙하고 허공을 한 바퀴 휘돌았다. 퍼억- 땅바닥에 태질 당한 흑표범은 뒷다리를 쭉 뻗고 혀를 빼물었다. 이투리 정글에서 인간을 먹이로 삼아온 흑표는 인간의 손에 최후를 맞았다.
“우라, 레오빠!”
털썩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올룸보가 후다닥 뒷걸음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인간아, 왜 사니?”
어느새 되돌아온 쌈디가 올룸보를 흘겨보았다.
“주 죽었다.”
올룸보는 목에서 피를 벌컥이는 표범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표범에 희생당한 마을 주민이 한둘이 아니다. 이투리 표범의 이빨과 발톱은 두께 50mm 하마의 피부를 찢어낼 만큼 날카롭다.
면도날 같은 발톱은 인간의 연약한 목을 일격에 잘라낸다. 방금 자신은 죽음의 강을 건넜다가 되돌아왔다.
“큰 나리, 감사합니다.”
올룸보는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붙였다.
“무슨 짓이야. 내가 동료의 위험을 두고 볼 리 있나.”
“그러문입쇼. 동료의 위험을 외면하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고 말고요.”
올룸보는 벌떡 일어나서 설레발쳤다. 보둔을 하인으로 부리는 큰 나리의 정체는 대정령이다. 심심풀이로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대정령 마하두라카는 인간이 자신을 알아보면 화를 낸다. 자칭 똘똘한 울룸보는 자신이 대정령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악명만큼 크지는 않구먼. 아직 덜 자랐나?”
표범은 의외로 덩치가 작았다. 낙동강변에서 때려잡았던 셰퍼드보다 한 둘레 큰 정도에 불과했다. 표범의 아가리를 벌려서 송곳니를 확인했다. 맹수는 송곳니 마모 상태를 보면 성체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표범의 어금니에 자잘한 금이 가고 이뿌리가 검었다. 체구는 작지만 성체다.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수컷 표범의 평균 체중은 약 70kg이다. 이투리 표범은 그보다 한 둘레 작지만, 송곳니와 발톱은 섬뜩할 정도로 크고 날카로웠다.
“이투리에 서식하는 동물은 대체로 크기가 작습니다. 작은 기린 오카피, 난쟁이하마, 난쟁이 코끼리도 있습니다.”
“햇볕이 부족해서 뼈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겠지. 역시 다윈이 옳았어. 환경이 아종을 만들었다고 해야겠지.”
블랙맘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투리 표범은 어두운 이투리 정글에 적합한 아종으로 진화했다. 피그미족의 작은 키도 종족적 특성이 아니라 환경 적합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종이 출현할 정도라면 이투리 정글은 최소 몇만 년간 현재의 환경이 유지되었다는 소리다. 블랙맘바는 이투리 정글이 평범한 밀림이 아님을 상기했다. 하등 동물일수록 환경에 쉽게 적합화 된다. 가스트로니스 같은 괴물 새나 아르트로 플레어 같은 대형 지네가 존재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상상하지 못할 동물이나 독충이 있을 수 있다는 소리다.
이런 곳을 19세기에 탐험한 스탠리란 인간이 대단했다.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까지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참혹한 역사의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트 2세와 미국인 스탠리는 탐욕에 가득한 군주와 협잡꾼의 만남이다. 그들의 식탁에 오른 콩고는 피 한 방울 살점 한조각까지 뜯어 먹혔다.
일개 모리배에 불과한 스탠리는 중고교 교과서에 영웅으로 수록되어있다. 쓸개 빠진 지식인들이 미국의 자료를 베껴 쓴 오류다. 잘못된 사료가 어디 그뿐이랴. 국사 교과서의 오류는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사대주의와 친일의 망령은 지겹게 들러붙어 있다.
일몰 한 시간 전, 블랙맘바는 이동을 멈추고 GPS를 확인했다. 4시간 동안 20km를 이동했다. 쌈디는 시간당 5km를 이동하라는 블랙맘바의 주문을 성실히 소화했다. 철벽 이투리도 쌈디의 무식한 돌파를 막지 못했다.
올룸보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검은 얼굴이 노랗게 변한 올룸보는 기어이 엎어져서 토하기 시작했다.
“약해빠진 놈!”
쌈디가 못마땅한 듯 웩웩대는 올룸보를 흘겨보았다. 블랙맘바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옴부티와 장쒼의 데자뷰다. 루키 장쒼은 전장 정리를 할 때마다 토했고, 옴부티는 장쒼을 마구 갈구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할 문제다. 시간은 전장의 루키를 베테랑으로 만들고 동료를 형제처럼 끈끈한 정으로 묶는다.
“올룸보, 오늘은 쉰다. 내일은 속도를 더 올린다.”
일몰이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계속 달렸다간 반투족 청년 한 명을 잡을 판이다. 올룸보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일의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된다.
올룸보가 솜씨 좋게 해먹 세 개를 걸고 휴대용 모기장을 쳤다. 블랙맘바는 고단한 몸을 해먹에 눕혔다. 늘 그렇듯 육체보다는 정신이 지쳤다.
모기장 바깥에 이름 모를 날벌레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었다. 안력이 지나치게 좋아도 탈이다. 피를 빠는 뾰족한 주둥이와 나란히 붙은 혈액 용해제 투입 관이 또렷이 보였다. 사헬에서 모기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던가. 작은 흡혈귀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기가 질렸다.
‘망할 놈의 흡혈귀!’
이투리 정글의 숲 모기와 늪 모기에 물리면 단순히 가려움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말라리아, 뎅기열, 필라리아시스, 황열병, 뇌염 등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각종 질병과 기생충에 감염된다. 예방 접종 중에 삼분지 일은 모기와 관련된 질병 예방용이다.
모기 종류도 많다. 날파리 보다 작은놈이 있고, 등에보다 큰 놈도 있다. 큰놈에게 한 방 찔리면 주삿바늘에 찔렸다고 착각할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짚은다리의 모기가 생각났다. 팬티만 걸친 채 평상에서 잠들었다간 이튿날 예외 없이 온몸이 울긋불긋해진다. 가려워 득득 긁으면 엄마는 익모초 달인 물을 온몸에 발라주곤 했다. 코끝에 싸한 익모초 냄새가 풍겼다. 올룸보가 바싹 마른 고비 비슷한 식물을 한 아름 안고 나타났다.
“큰 나리, 모기보다 더 조심해야 할 놈은 독나방입니다. 모기에 물린다고 죽지 않지만, 독나방 가루를 흡입하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태워야 하나?”
올룸보는 마하두라카의 시치미에 웃음이 나올뻔 했다. 그는 전능한 마하두라카가 인간 유희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태우면 고약한 냄새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합니다. 주위에 그냥 널어놓으면 독나방이 접근하지 않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요.”
“으이그, 미치겠네.”
블랙맘바가 비명을 질렀다. 단 하루 만에 이투리가 징글징글해졌다. 뼈조차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는 마라푼타 개미는 들었지만, 사람을 골로 보내는 독나방은 금시초문이다.
날파리처럼 작은놈들이 기어이 모기장 코를 비집고 들어왔다. 스프레이를 뿌려도 그때뿐이다. 오 분만 지나면 모기장이 모기 양식 우리로 변했다. 밤새 모기와 싸움을 벌인 블랙맘바는 여명이 틀 즈음에야 단잠에 빠졌다.
햇빛이 캐노피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왔다. 블랙맘바답지 않게 늦잠을 자고 부스스 일어났다. 그는 햇볕에 직격당한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에 버티고 선 시커먼 기둥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쌈디, 밤새 그 짓을 했나?”
블랙맘바가 황당한 눈으로 쌈디를 올려다보았다. 모기 퇴치용 스프레이를 든 쌈디가 비시시 웃었다. 발치에도 DDT 유기인제 캔 두 개가 뒹굴고 있다.
“버르장머리 없는 모기 몰살시켰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투다.
“으이그, 내가 앓느니 죽는다. 올룸보, 뭐해! 후딱 먹고 달려야지.”
블랙맘바는 뒷목을 잡았다. 사헬에서는 옴부티가 극성을 떨더니 이투리에서는 쌈디가 극성이다. 민망해진 블랙맘바가 애꿎은 올룸보를 다그쳤다.
올룸보는 시레이션 열 개를 준비하고 휴대용 버너로 물을 끓였다. 참으로 간단한 식사준비다. 블랙맘바는 꽁지에 불붙은 듯 길을 재촉했다. 울룸보는 지천으로 널린 과일 한 개 따먹을 기회도 얻지 못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쌈디를 앞세운 죽음의 질주가 다시 벌어졌다. 정글 내부로 들어갈수록 지형이 험악해졌다. 깎아지른 수십 미터 절벽이 앞을 막는가 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계곡이 발길을 묶었다.
“나리, 나리!”
올룸보가 앞서 간 쌈디를 목이 터지라 불렀다.
“약해빠진 놈, 뭐야?”
되돌아온 쌈디가 삐딱하니 물었다.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요.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어떻게 알았나?”
블랙맘바가 물었다.
“거머리가 수면에 올라오면 3시간 이내에 아무런 예고 없이 폭우가 쏟아집니다요.”
올룸보가 웅덩이 수면에 까맣게 올라온 거머리를 가리켰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쌈디가 눈을 부라렸다.
“일리 있는 말이다.”
블랙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 기억이 났다. 낙동강의 물고기가 수면에 올라와서 입을 뻐금거리면 소나기가 쏟아졌다.
콩고 북부와 남부는 건기와 우기가 있지만, 적도 부근은 언제 폭우가 쏟아질지 모른다. 대기 중의 기압이 낮아지면 수중의 용존 산소량이 감소한다. 호흡이 불편해진 거머리는 수면으로 올라온다.
34개의 체절에 독자적인 신경절을 가진 거머리는 엄청나게 예민한 생물이다. 19세기 중반에 영국의 조지 메리웨더는 거머리를 이용해서 정교한 폭풍 예측기를 만들었을 정도다. 올룸보는 과학적 지식이 없지만, 경험상 알고 있다.
블랙맘바는 쌈디의 백팩에서 바람막이 형 방수포 세 벌을 꺼냈다. 정글에서 체온이 떨어지면 체력이 급격히 깎인다. 쌈디와 자신의 전투복은 방수 기능이 있지만 제한적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스며든다.
“올룸보 고지대로 올라간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언덕 위로 올라간 세 사람은 거대한 림발리 고목의 부근(扶根) 속으로 들어갔다. 지름 5m는 너끈해 보이는 거대한 고목은 안쪽이 텅 비었다. 트렁크는 이미 죽었지만, 액세서리 뿌리가 거구를 거뜬히 버텨주고 있다. 맛없는 식사를 끝내고 올룸보가 커피를 끓일 즈음에 서늘한 바람이 한차례 지나갔다.
검은 숲이 일순간 백색으로 물들었다. 수백 수천 줄기의 번개가 무차별로 떨어졌다. 뒤이어 꽈다당하고 숲을 떨어 울리는 폭음이 울렸다. 꽈당- 꽝- 그르르- 폭음과 맷돌 가는 소리가 연속 터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양탄자처럼 돌돌 말린다는 이슬람식의 종말을 생각나게 하는 법석이다.
“으으으! 쁘리에흐 뒤 시노예 제수 노트흐 뻬흐 끼 에 당 레 시외, 끄 라 생떼떼 드 똥 농 스와 흐꼬뉴…….”
올룸보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주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녀석이 프랑스물을 먹기는 먹었다.
쏴아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숲이 폭풍우 치는 바닷가 해안처럼 으르렁거렸다. 번개가 번쩍 지나가면 눈앞에 하얀 잔상이 남았다. 숲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열차 지나가듯 우르릉거렸다.
폭풍우가 캐노피를 두드리는 소리가 천지를 뒤집을 듯 울렸다. 숲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정글은 비가 직접 들이치지 않는다. 두께 10m 내외의 캐노피가 폭우를 흡수해서 지표로 쏟아붓는다. 비가 아니라 폭포인 셈이다.
숲 속은 순식간에 수증기와 안개로 가득 찼다. 꽈다당 소리가 울릴 때마다 환해진 숲은 순식간에 다시 어두워졌다. 명암이 교차하는 가운데 수백 수천 줄기 폭포가 떨어졌다. 번개가 칠 때마다 물안개는 분홍색으로 빛나고, 숲은 귀신의 호곡인양 웅웅 울어댔다. 블랙맘바와 쌈디는 넋을 잃었다. 인세가 아닌 이계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발을 딛고 있는 느낌이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소란은 두 시간 후 거짓말처럼 그쳤다. 예고 없이 시작된 광란이 예고 없이 멈추었다. 하늘을 뒤덮은 적란운이 한순간에 흩어지고, 햇살이 화살처럼 숲을 뚫고 들어왔다.
“엄청나군!”
블랙맘바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날뛰어봐야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장엄함에 비하면 개미 뒷발 차기다.
“헉, 이럴 수가! 클났다.”
림발리 부근(扶根)을 벗어난 쌈디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블랙맘바와 올룸바의 눈도 쟁반처럼 커졌다. 숲이 한순간에 기괴한 호수로 변해버렸다. 물 위로 드러난 고사목, 거대한 교목, 흐느적거리는 관목과 풀줄기, 수면 위를 빙빙 도는 이름 모를 나비와 비행 곤충들, 너무나 생소한 광경이다. 인간 셋은 졸지에 고립되었다.
“저건 뭐야?”
끝없이 펼쳐진 흑갈색 수면 상공에 수십 미터 높이의 시커먼 구름이 이리저리 흘러다니고 있다. 블랙맘바의 안력은 검은 구름이 좁쌀보다 작은 수천만 마리의 비행 곤충임을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