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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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장 이투리 Fist of Justice 12
“임마, 인간은 너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아.”
‘위대한 분들이지만, 너무들 하네.’
올룸보는 눈물이 핑 돌았다. 마하두라카와 보둔의 한가한 대화가 물속에서 듣는 듯 아득해졌다. 보둔은 자신을 물건처럼 옆구리에 끼고 미친 듯이 질주했다. 발걸음 폭이 5~6m에 달했다. 바위를 훌쩍 뛰어넘고 웬만한 나무는 몸통으로 우쩍 밀어붙였다. 발걸음이 땅에 쿵 떨어질 때면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골이 두개골 속에서 달그락거렸다.
거인의 옆구리에 매달려서 흔들린 후유증은 컸다. 뼈가 해체되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암컷 침팬지가 아기를 훔쳐서 숲으로 달아나면 마을 사람들은 그냥 포기한다. 아기를 멀쩡히 찾아도 뼈가 으깨져 죽어있기 때문이다. 연약한 인간 아기의 뼈대는 무지막지한 침팬지의 힘과 속력을 견디지 못한다. 자신의 모습이 침팬지가 훔쳐간 아기 꼴이다.
‘그럼요. 나는 당신들 같은 괴물이 아니라고요.’
대정령 마하두라카를 까는 불경한 인식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까무룩 꺼졌다. 쿵- 올룸보가 맥을 놓고 뒤로 넘어갔다.
“어? 올룸보 저놈 진짜 약하네. 와키르 말이 맞다. 인간은 회복되기 전에 죽는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쌈디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역시 와키르는 항상 옳다. 큰 사부님은 다치지도 않고, 와키르와 자신은 다쳐도 금방 회복된다. 같은 인간인데 다른 인간들은 왜 약할까? 알다가도 모를 존재가 인간이다.
“올룸보, 올룸보!”
쌈디가 올룸보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올룸보의 머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임마, 목 부러져.”
블랙맘바가 버럭 했다.
“와키르, 올룸보는 엄살이다. 빨리 회복하는 방법 있다.”
쌈디가 숲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다복솔처럼 가지가 빽빽이 자란 관목을 찾아냈다. 연필처럼 생긴 마디가 산호처럼 빽빽이 연결된 양치류다. 식물백과사전에는 블루코랄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쌈디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블루코랄을 우두둑 뜯어서 숲을 빠져나왔다.
“흐흐흐!”
쌈디가 불길한 웃음을 흘렸다. 블루코랄 마디를 움켜쥐자 노란 수액이 흘러나왔다. 수액을 손가락에 찍어서 올룸보의 코에 밀어 넣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크악!”
기절해 있던 올룸보가 말벌에 쏘인 개구리처럼 펄쩍 뛰었다. 바늘 수백 개가 예민한 코 점막을 쑤시고 놀란 신경절이 뇌를 흔들었다. 불쌍한 올룸보는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더듬이 떨어진 개미처럼 맴돌았다.
쌈디가 웃음을 참느라 끅끅거렸다. 블루코랄의 수액은 김장 속을 채우려고 버무려둔 고춧가루 이상으로 맵고 자극적이다. 블랙맘바도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쌈디는 못마땅해하면서도 올룸보를 손찌검하지 않았다. 장난치는 좀비라니 얼마나 귀여운가.
“그게 뭐냐? 각성 효과가 있는 식물은 어떻게 알았나?”
“기억이 안 난다. 매콤한 맛이 쥑인다.”
쌈디가 손에 묻은 액체를 혀로 싹싹 핥아 먹으며 대꾸했다.
“그렇군!”
자신도 기억을 잃었을 때 산삼과 약초를 잘도 찾아냈다. 머리는 잊어도 몸이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과학은 뇌가 기억과 연산을 전담한다지만, 꼭히 그렇지는 않았다. 거머리의 체절 34개는 각각의 신경절을 가진다. 인간의 심장도 거머리의 신경절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지?’
강력한 자극에 외출했던 정신이 귀가했다. 올룸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기억도 못 했다. 머릿속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따끔따끔한 통증이 정신을 일깨웠다.
“억, 코끼리! 이놈이 왜 죽어있죠?”
머리가 부서진 코끼리를 발견한 올룸보가 화들짝 놀랐다.
“사오정 다리 긁는 소리 하네.”
쌈디가 콧방귀를 뀌었다. 주인이 허접한 이놈을 왜 끌고 다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들이 피그미 족인가?”
“예, 큰 나리!”
“피그미가 코끼리 공격을 받았다. 상황을 알아보도록.”
올룸보가 피그미 남자와 대화에 나섰다. 피그미족은 대부분이 자이르 동북지역과 동남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고유 언어를 상실한 이들은 인접한 흑인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투리 지역 언어는 반투어에 속하는 즐루어다. 농경 반투족인 올룸보와 피그미는 별 어려움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마하두라카!”
피그미족 남자가 소리 질렀다.
“쉿!”
올룸보가 얼른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피그미족 남자도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로로 얹었다. 올룸보는 피그미 남자와 대화를 계속했다.
“큰 나리, 이들은 음부티계 피그미족으로 부자지간입니다. 아버지 이름은 올롱게, 아들은 초촘바입니다. 이들은 나이 개념이 없어서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습니다. 올롱게는 37세, 두 아들은 십 대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미친 코끼리로부터 구해주어서 고맙다고 합니다. 그동안 미친 코끼리가 마을을 짓밟고 행패를 계속 부렸답니다. 올롱게가 신의 전사님께 은혜를 갚고 싶답니다.”
“신의 전사?”
“예, 피그미족은 체구가 크고 힘센 인간을 존경합니다. 쌈디 나리를 존경하고, 큰 나리님을 두 번째로 존경한답니다. 쌈디 나리님이 큰 나리님의 하인이라고 알려주자 큰 나리님이 대정령이냐고 물었습니다. 소인이 신의 전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올롱게는 나 잘했지요라는 얼굴이다.
“잘했다. 은혜랄 거야 있나. 올롱게가 당분간 안내를 맡았으면 좋겠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올롱게는 소인보다 백배는 이투리를 잘 압니다.”
“잘됐군. 코끼리는 순한 동물이다. 이놈이 왜 사람을 죽이려 했지?”
“이놈은 무리에서 쫓겨난 미친 수컷입니다.”
올롱게가 뻣뻣이 내밀어 진 거대한 성기와 정수리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거무죽죽한 액체를 가리켰다.
“짝짓기 철에 욕정을 해소하지 못한 수컷 코끼리는 반쯤 정신이 나갑니다. 코끼리 두목은 암컷에게 들이대는 떠돌이를 두들겨서 쫓아냅니다. 무리와 떨어진 코끼리 수컷은 정신이 이상해집니다. 올롱게는 재수없이 미친 수컷 코끼리의 눈에 띈 거지요.”
“안됐군! 손가락이 있었으면 해결했을텐데.”
블랙맘바는 짠했다. 미친다는 말은 본능과 구분되는 이성이 있다는 소리다. 이성이 있든 없든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암놈과 응응 한 번 못하고 코끼리 몽달귀신이 된 녀석은 동정받을 만했다. 코끼리가 인간처럼 손가락으로 해결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엉뚱한 방향에서 죽은 코끼리를 안타까워하는 블랙맘바다.
“큰 나리, 사냥을 못 해서 마을에 식량이 없답니다. 배고픈 사람이 많답니다.”
“고기는 푸짐하겠군. 저 덩치를 어떻게 옮기나?”
“마을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허락만 하시면 됩니다. 옮기는 거야 피그미가 할 일이죠.”
“신의 전사로서 허락한다.”
블랙맘바가 거만한 태도로 허락했다. 피그미족은 힘센 놈에겐 무조건 복종한단다. 존경받을 이유는 충분했다.
“나이야붕가!”
피그미족 남자가 허리를 숙였다. 허락은 받은 피그미족 셋이 코끼리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칼을 휘둘러서 살을 잘라냈다. 얼마나 서두르는지 다치지 않은 게 용했다. 피그미 부자는 큼직하게 떼어낸 근육을 덩굴로 묶어서 등에 짊어졌다.
피그미 마을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일행이 마을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대부분이 벌거벗은 몸이다. 어른은 140cm 내외, 여자는 그보다 조금 더 키가 작았다. 하교 시간에 아이들이 쏟아져나오는 국민학교 교문 풍경에 다름 아니다.
올롱게와 아이들로부터 코끼리 고기를 받아 든 여자들이 환성을 질렀다. 여자 몇몇이 뛰듯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올롱게는 남자들에 둘러싸여서 침을 튀기고, 여자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어린애 둘은 연신 블랙맘바와 쌈디를 가리키며 떠들었다. 얼마나 열심히 떠드는지 입꼬리에 거품이 부걱거렸다.
“올룸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
“쌈디님이 코끼리를 죽이고 자신을 구해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코끼리에 맞섰다고 허풍을 떨고 있습니다.”
“하하하, 남자의 허풍은 본능이었어.”
블랙맘바가 껄껄 웃었다. 피그미족도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이다. 원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은 현대인보다 훨씬 순진한 종족이다.
“나이야붕가, 알 우쿠피알레.”
“시프로빠스, 우쿠쿠레켈레.”
피그미족이 일제히 블랙맘바와 쌈디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고함을 질렀다.
“미친 코끼리를 잡아 주어서 고맙답니다. 신의 전사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낯 간지럽게 무슨 찬양이야. 와키르는 위대하지만 나는 아니야.”
쌈디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올롱게보다 더 나이 먹어 보이는 피그미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엘판트 일드라?”
블랙맘바가 올룸보를 쳐다보았다.
“마을 사람이 먹기에 고기가 부족하답니다.”
“죽은 코끼리를 달라는 건가? 이미 허락했다. 맘대로 하라고 해.”
“직접 허락하셔야 합니다. 피그미는 흑인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매번 속았기 때문이지요. 은쿨룽쿠르 임붐버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은쿨룽쿠르 임붐버!(신의 전사가 허락한다!)”
블랙맘바는 공진을 끌어 올려서 외쳤다. 묵직한 음성이 피그미 마을을 우르르 울렸다. 그는 속 편하게 신의 전사가 되기로 했다. 피그미족에게 논리적인 이해를 시키려다간 날 샌다.
“쉬라, 쉬라!”
“우와와!”
피그미들이 함성을 질렀다. 여자들은 집안으로 뛰어들어가서 대나무로 짠 커다란 망태기를 들고 나왔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백여 명에 가까운 피그미가 마을 밖으로 몰려 나갔다.
“헐, 저거 머하는 기고?”
“코끼리 고기를 가지러 갑니다.”
“활기차서 보기는 좋구마.”
세상은 넓고 희한한 일도 많다. 벌거벗은 피그미족이 개떼처럼 몰려가는 광경은 볼수록 코믹했다. 정글은 지겹지만, 아프리카는 재미있는 곳이다.
“아에슴!”
“엘판트 메꼬 메꼬이.”
고기를 이고 진 피그미족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부분 나무껍질 멜빵으로 코끼리 고기를 묶어서 안거나 등에 졌다. 여자들은 이마에 멜빵을 걸고, 남자들은 어깨에 멜빵을 걸었다. 대나무 바구니를 가진 여자도 멜빵을 이마에 걸었다.
“힘들게도 운반하는구먼. 두 사람이 목도를 메면 많은 양을 편하게 운반할 수 있을 텐데.”
블랙맘바는 답답했다. 지게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원시 부족도 목도는 사용할 줄 안다.
“미개한 족속이라 그렇습니다.”
올룸보의 말에 쌈디가 눈을 부라렸다.
“닥쳐, 두 사람이 목도를 메고 이동하면 덩굴과 억센 가시나무에 걸리적거려서 더 힘들어진다. 함부로 미개하다는 말을 하지 마라.”
“헉, 소인이 말을 잘못했습니다.”
올룸보의 목이 쑥 들어갔다.
“쌈디, 사부님께 많이 배웠구나.”
기꺼워진 블랙맘바가 쌈디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녀석의 사고력은 일일신우일신이다. 좀비가 되기 전에는 무지 똑똑했을 놈이다.
이투리 정글의 지표 식생 밀집도는 살인적이다. 오래된 숲인 만큼 지상은 석송류, 고사리류, 나르두같은 양치류가 점령했다. 양치류는 수억 년간 자기 방어 기제를 진화시켰다. 질기고 독성이 있는데다 소화도 되지 않는다. 초식동물은 먹기 좋은 속씨 식물이 있는데 먹기 힘든 양치식물을 뜯어먹을 이유가 없다. 이투리 정글은 자연히 중생대 숲과 비슷해졌다.
피그미족의 운반법은 거칠고 억센 이투리 정글의 특성에 적응한 운반법이다. 이들을 미개하다고 말할 수 없다. 미개라는 말은 18세기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넓힐 때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남발한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싸잡아 미개하다고 말했다. 그 습성은 현대에도 이어졌다. 문화는 환경과 역사를 통해 적합한 형태로 발전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타 문화를 미개하다고 말할 어떤 근거도 없다.
보신탕을 먹는 한국의 음식 문화는 미개하고, 개구리와 달팽이를 먹는 프랑스 음식 문화는 선진 문화인가?
선진 문화란 없다. 다른 문화가 있을 따름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릇된 문화는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인신공양이 대표적이다.
“작은 사람들, 행복해 보인다.”
쌈디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코끼리 고기를 잔뜩 얻은 피그미족은 난리법석이다. 서로 얼굴을 비비고, 손을 잡고 빙빙 돌았다. 인간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쌈디는 새처럼 지저귀는 작은 인간들의 소란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블랙맘바의 얼굴도 밝았다. 피그미족의 행태는 시골 운동회 비슷했다. 교사의 통제를 지지리도 따르지 않는 국민학생들이 보일법한 풍경이다. 블랙맘바의 예민한 감각은 피그미족 마을에서 어떤 형태의 음습함이나 살기도 느끼지 못했다.
인간 문화는 친숙한 유대 관계로부터 본능적인 위안과 집단 정의를 이끌어 내면서 경쟁 집단과 차별화가 시작된다. 오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고기에 만족하는 피그미족이 장래의 이득을 얻으려고 백인을 죽일 이유가 없다. 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보면 피그미족은 집단적 이기주의 전 단계에 속한다. 쉽게 말하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모습이다.
“올룸보, 이들에게 마이마이 반군의 정보를 얻어라. 백인들의 소재지, 게릴라들의 본거지도 확인하도록.”
“넵!”
올룸보는 나이 든 피그미 남자들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큰 나리, 총을 든 흑인을 세 번 보았답니다. 이들은 날짜 개념이 없어서 언제 보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보름달이 뜰 때 보았고, 코끼리가 새끼를 낳을 때 보았다는 식입니다. 숫자는 많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손가락 숫자보다 많으면 그냥 많다고 합니다.”
“헐, 성질 급한 놈은 복장 터져 죽겠다.”
쌈디가 가슴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