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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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장 이투리 Fist of Justice 27
1985년 초에 전두환이 봉고 대통령을 예방했다. 70~80년대는 북한과 한국이 유엔에서 지지표를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제3세계에 매달리던 시기다. 전두환의 방문도 지지표를 얻으려는 의례적인 정치적 방문이었다.
프랑스 대사관의 연락을 받아 대통령 수행단으로 참여한 한국전력은 아레바사의 무나나 우라늄광 탐사 프로젝트에 숟가락을 얹게 되었다. 자다가 떡이 생긴 한국 사절단은 환호했다.
개인이든 국가든 태도가 바뀔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게 되면 관계가 형성되고, 더 큰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보니파스가 없었다. 가봉 정부의 선물이 실제로는 프랑스의 선물이고, 그 배경에 블랙맘바가 있음을 짐작도 못 하고 제 잘난 맛에 취했다.
수행 정치인과 관료들은 본인들이 원자력 발전의 물꼬를 트고, 경제 협력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공치사하기에 바빴다. 언론은 전두환 대통령의 지도력에 감복한 봉고 대통령이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고 떠들었다.
블랙맘바는 실소하고 잊어버렸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도 생색내고 한자리 차지하려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초를 감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정치군인과 모리배들로 우글거렸지만, 기업은 해외 자원을 확보하려고 사력을 다했다. 석유와 마찬가지로 우라늄도 매장이 편중되어 있다. 전 세계 우라늄의 70%는 카자흐스탄, 캐나다, 호주에서 생산된다.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중앙아프리카가 그 뒤를 잇는다.
자이르는 개발되지 않았을 뿐 순도 높은 우라늄 광상이 폭넓게 분포된 국가다. 전두환 정권에 똑똑한 인간이 있다면 자이르의 가치를 알아보고 조사단을 파견했을 수 있다. 파독 광부나 중동땅의 건설 노동자처럼 아프리카 땅의 자원 탐사원도 애국자다. 생명의 무게가 다를 리 없지만, 안으로 굽는 팔은 어쩌지 못했다.
“한국인은 몇 명인가?”
“다섯 명인데 두 명은 죽고 세 명이 억류되어 있답니다.”
“오호, 셋이나!”
묘하게도 아프리카에서 작전을 진행할 때마다 동족을 만났다. 차드에서 선우현을 만나고, 이번엔 한국인이다. 필요한 정보도 얻었고, 인질 중에 한국인이 셋이나 끼어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쌈디, 저놈들이 필요할까?”
블랙맘바가 카룽고를 가리켰다.
“악취 나는 골칫덩이는 필요 없다. GPS와 피그미가 있으면 충분하다. 카룽고 저놈도 신체를 묶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약해빠진 안내인을 인질로 잡으면 곤란해진다.”
쌈디가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악취도 심하지만, 크란이란 제사장처럼 주문을 외워서 손발을 묶거나 표범처럼 빨리 움직이는 재주가 있는 놈이다. 생포하느라 진땀을 뺐다. 정보를 얻을 생각이 없었으면 죽여버렸을 것이다. 부두교 제사장 비슷한 놈을 살려서 번거로움을 자처할 이유가 없다.
“쌈디, 많이 똑똑해졌다.”
“헤헤헤, 주인보다 더 똑똑해지고 싶다.”
칭찬을 들은 쌈디가 몸을 꼬았다.
‘무서운 녀석!’
블랙맘바는 식은땀을 흘렸다. 순수한 놈이 더 무섭다더니, 실실 웃는 저 녀석이 정글을 샅샅이 뒤져서 담발라 스물셋을 쥐잡듯이 때려잡은 놈이다. 천진한 웃음 뒤에 숨겨진 냉혹한 킬러 본능이 섬뜩했다. 쌈디 말대로 GPS와 키담바가 있는데 혹을 달고 다닐 필요는 없다.
슈악- 쿠크리가 번쩍 손을 떠났다. 퍽- 카룽고의 귀 뒤쪽 풍부혈을 뚫고 들어간 칼날이 반대쪽 천정혈로 도첨이 튀어나왔다.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파고든 칼날이 운동중추와 신경중추, 척수를 한꺼번에 끊었다. 카룽고가 통나무 쓰러지듯 쿵 엎어졌다. 절명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포로를 죽일 수 있지만 과하게 손을 썼다. 올롱게와 키담바의 무분별한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총기보다 날붙이 연장을 더 위협적으로 받아들인다. 경험치의 현재화, 칼에 베인 경험은 있어도 총 맞은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총은 경험 없는 위협이고, 칼은 기명된 위협이다. 당연히 칼이 두렵다.
키담바와 올롱게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친숙해질수록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두려워하고 조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제멋대로 동물을 잡으러 가거나 열매를 채집하려고 나무를 탔다. 주의나 경고는 몇 시간 지나면 잊혔다. 기억력이 닭 수준이다.
계약 관계를 모르는 원시 부족의 특징일 수도 있고, 자유로운 삶이 몸에 밴 탓이라고 이해했지만 지체되는 시간이 문제다. 그렇다고 블랙맘바의 성격에 죄 없는 피그미족을 위협하고 때릴 수도 없다. 결국, 한번씩 보여주는 무력과 단호함으로 그들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쌈디는 주인이 포로를 잔인하게 죽인 의도를 바로 읽었다. 퍽- 쌈디의 발차기에 맞은 담발라 병사의 머리통이 수박 터지듯 터졌다. 공포 분위기 조성 퍼포먼스다. 올롱게와 키담바의 검은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위대한 분들이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깜박했다.
‘으윽!’ 올룸보는 헛구역질을 결사적으로 참았다. 구역질했다간 보둔이 무서운 칼로 자신의 목을 뎅겅 잘라 버릴 것 같았다.
“칼 가져와!”
쌈디가 3일 굶은 수사자처럼 으르릉거렸다. 올룸보가 떨리는 목소리로 통역했다. 올롱게와 키담바는 덜덜 떨었다. 피그미 둘은 쌈디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쯧!”
무쌍이 혀를 찼다. 의도는 통했지만, 인간을 위력으로 억압하는 상황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지자면 피그미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스럽게 살아온 피그미를 억압하는 자신이 악당이다. 악당이 되기엔 많이 모자란 블랙맘바다.
“올룸보, 시체를 마을에 두면 전염병이 퍼진다. 전부 마을 밖으로 내다 버려라.”
“옙, 큰 나리.”
올룸보의 대답에 기합이 잔뜩 들어갔다.
“메이다카 드로파!”
올룸보가 고함을 질렀다. 숨어있던 피그미족들이 몰려나왔다. 여자와 어린애까지 달려들어서 시체를 숲 속으로 옮겼다. 시체는 흰개미 집 근처에 버려졌다. 이투리 정글의 흰개미는 최고의 청소부다. 의복과 탄띠까지 먹어치우고 집 짓는 재료로 활용한다.
시체는 자연이 해결한다. 피 냄새를 맡은 표범과 하이에나가 몰려들어 만찬을 즐긴다. 날짐승들이 뼈를 파먹고, 남은 유기체는 온갖 청소 동물과 벌레들이 달려들어 말끔히 해 치운다. 굵은 뼈는 수염수리가 집 짓는 재료로 물고 간다. 카무게의 별동대 44명의 흔적은 3일이면 깨끗이 증발된다.
“큰 나리,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 일찍 출발하시지요. 아파돔베로 들어가는 길은 강 지류가 거미줄처럼 엉켜있고, 홍수림과 늪이 많습니다. 지형도 험악합니다.”
잔뜩 주눅이 든 올룸보가 쌈디의 눈치를 보았다. 블랙맘바가 뜨악한 눈으로 올룸보를 쳐다보았다. 여정이 더 힘들어진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이투리는 맛보기란 말인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겁쟁이 녀석, 그까짓 늪과 독충이 뭐가 무서워. 당장 출발 준비해.”
블랙맘바의 눈길을 오해한 쌈디가 백 팩을 멨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올룸보의 얼굴이 컴컴해졌다. 잠시 후면 해가 진다. 무지막지한 보둔은 밤낮을 가리지 않지만, 자신은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하지. 열흘이란 날짜에 목멜 필요 없다. 카무게는 인질을 쉽게 해치지 못한다.”
“알았다. 와키르는 항상 옳다.”
쌈디는 두말하지 않고 마을 공터에 텐트를 치고 해먹을 걸었다. 주인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블랙맘바가 위성 전화기를 열었다. 납치범이 부두교 제사장 카무게가 이끄는 르완다 후투족 무장 광신도 집단이라는 정보, 피그미 마을을 유린한 카무게의 별동대를 전멸시킨 전과, DGSE가 납치범 수장으로 파악한 카룽고가 별동대 대장에 불과하다는 정보, 카무게 반군 숫자가 500명으로 추정된다는 정보 등을 베이스캠프의 폴에게 알려주고 통신을 마감했다. 성소라 부르는 납치범들의 본거지가 아파돔베라는 사실은 여전히 밝히지 않았다.
“와키르, 시레이션이 달랑달랑한다.”
비박 준비를 마친 쌈디가 백 팩을 흔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쌈디의 백 팩이 홀쭉했다.
“임마, 고기 먹고 싶다고 해.”
“헤헤, 시레이션 맛없다. 새끼 돼지는 연하고 노린내도 별로 나지 않는다.”
쌈디가 뒤통수를 득득 긁었다. 예민한 청각이 새끼를 데리고 나온 멧돼지를 포착했다. 야들야들한 살코기와 걸쭉한 핏물이 급 당겼다.
“어미를 따라가는 놈이 다섯 마리나 되네. 어미에게 너무 부담되겠지?”
블랙맘바도 동의했다. 시레이션이 질리기도 했지만, 비상식량으로 아껴야 한다. 충분히 준비했지만, 인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쌈디 말대로 재고가 부족했다.
“쌈디도 그렇게 생각한다. 새끼가 많으면 튼튼하게 자라지 못한다.”
멧돼지 가족이 원하지 않을 걱정을 늘어놓고 거구가 바람같이 마을 밖으로 사라졌다. 쌈디는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돌아왔다. 옆구리에 새끼 돼지라기엔 지나치게 큰 멧돼지가 끼어 있다. 다른 손엔 큼직한 바나나 두 송이를 들었다.
쌈디가 올룸보와 키담바를 흘끗 쳐다보았다. 블랙맘바가 픽 웃고는 쿠크리를 던졌다.
“직접 해라.”
농사를 짓는 올룸보는 사냥물을 다룰 줄 모른다. 올롱게는 동물을 능숙하게 다루지만 불결하다. 피그미족은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피부병이 심했다. 아무리 배고파도 피그미가 요리한 음식은 먹고 싶지 않았다.
쌈디가 능숙한 솜씨로 껍질을 벗기고 배를 갈랐다. 심장과 간을 올롱게와 키담바에 던져주고 뽁뽀기 봉을 연결해서 몸통을 꿰었다.
‘내가 미쳤지.’
모닥불을 피우던 올룸보가 부르르 떨었다. 부두교도의 목을 자르고 머리를 관통했던 흉물로 태연히 먹거리를 준비하는 모습에 지독한 공포를 느꼈다. 확실히 사람이 아니라 보둔이다. 마하두라카가 다정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굴었다. 올룸보는 정신없이 모닥불을 후후 불었다.
정글에 밤이 찾아왔다. 어둠이 몰려들자 무거운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블랙맘바는 돌판에 구운 멧돼지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모기장이 달린 텐트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군단급으로 몰려든 모기가 모기장에 빼곡히 달라붙었다. 모기장이 없었으면 떠메고 갈 기세다. 헬멧형 두건은 버린 지 오래다. 벌레를 막을 용도였지만 높은 습도와 고온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
정글이 깨어났다. 원숭이를 뒤쫓는 표범이 으르렁대는 소리, 영역을 다투는 침팬지 무리의 아우성, 올빼미에게 사냥당한 노랑 앵무새가 퍼덕이는 소리, 키히히히- 정신 나간 여자 웃음은 하이에나 울음소리다.
하이에나는 아프리카 어디나 서식한다. 사헬의 황무지에도, 보델레 저지에도, 사하라 사막에도 하이에나가 돌아다닌다. 이투리 정글에도 예외 없이 서식했다. 호랑이는 뽀대나는 맹수지만 서식지가 한정된 탓에 멸종으로 치닫고 있다. 하이에나는 온갖 욕을 먹는 맹수지만 사막이든 초원이든 정글이든 어디든 존재한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종이 아니라 살아남는 종이 강한 놈이다. 피그미족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이에나 울음이 신호인양 피그미족들이 마을 중앙의 공터로 몰려나왔다. 대략 100명쯤 되는 인원이 모닥불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다.
부우웅- 바순 비슷한 저음을 내는 악기가 길게 울렸다. 피그미족이 중요한 행사를 치를 때 사용하는 루마(luma)라는 굵은 대나무 피리다.
“호이 호이!”
여자들이 울기 시작했다. 장례식장의 곡소리와 비슷했다.
“크흐 크흐!”
남자들도 울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곡소리가 차츰 커졌다. 인간들의 곡소리 사이에 하이에나의 울음이 끼어들어 기괴한 리듬이 만들어졌다.
곡소리가 루마의 울림에 맞추어 낮아졌다 높아졌다 일정한 가락을 탔다. 모닥불은 타닥거리며 밤하늘에 불씨를 날려보내고, 피그미족의 음울한 울음소리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간간이 부웅 울리는 이름 모를 악기가 음울함을 더했다.
루마가 베이스에서 알토로 넘어갔다. 백여 명의 피그미족들이 모닥불을 빙빙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히히 호호 추임을 넣으며 발을 구르고 손을 앞뒤로 흔들며 열광적으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모닥불에 비친 눈동자가 하얗게 반짝였다. 트랜스 상태다.
“피그미족의 장례 절차인가!”
설핏 잠들었던 블랙맘바가 돌아누웠다. 문화는 틀려도 의식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 만장을 앞세운 애달픈 곡성이 아니라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추고 있지만, 망자를 떠나 보내는 의식이다.
피그미족은 아이를 많이 낳는다. 신부의 가치는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70호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마을 사람은 대략 400명이 넘는다. 300명이 카무게 반군에게 잡혀갔거나 살해되었다. 친인을 잃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망자를 환송하는 축제는 공터를 비추던 달이 검은 숲 너머로 껌벅 넘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부우웅- 길게 끄는 루마 소리와 함께 추임새와 춤이 끝났다. 두꺼운 어둠과 무거운 적막, 하이에나 울음이 피그미 마을을 다시 찾아들었다.
“레 미제라블!”
블랙맘바가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다. 사교에 현혹되어 피그미족을 죽이고 카니발을 벌인 담발라들도 불쌍하고, 깊은 밤에 망자를 애도하는 매가리 없는 피그미족도 불쌍했다. 졸지에 광신도 집단에 억류된 아레바사 인질도 불쌍하고, 이역만리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자신도 불쌍하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쌈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블랙맘바는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웃고는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