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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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장 아파돔베 Fist of Justice 24
이강철!
어머니가 사라진 전날 밤에 종적을 감춘 하숙생, 그로 인해 어머니는 서방 무덤에 뗏장 덮기도 전에 남정네와 배 맞아 야반도주했다는 엄혹한 누명을 뒤집어썼다. 장씨와 화자가 소문을 퍼뜨리고 동네 사람과 친척들이 둘만 모이면 거품 물고 떠들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청상과부와 점잖은 하숙생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지만, 청상과부 충무댁과 하숙생의 이야기는 날이 갈수록 살이 붙어서 추잡해졌다.
사랑방 손님은 기차를 타고 떠났다. 옥희의 엄마는 풍금에 자물쇠를 채우고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라고 말한다. 사랑방 손님은 기차를 타고 떠났지만, 사랑방 공무원은 야반도주했다. 옥희 엄마는 옥희를 감싸안았지만 어머니는 여덟 살 난 아들을 두고 사라져버렸다.
지난 16년간 한시도 잊지 않은 이강철, 유년기와 소년기를 질척이는 시궁창으로 만들었던 이강철,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똑똑히 기억하는 이름이다. 이름을 듣는 순간 고압선에 감전된 듯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혹시 동명이인?’
이강철의 얼굴에 랜턴을 들이댔다. 일곱 달이나 지하에 감금되었던 사람이다. 숨만 붙어있을 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에 눈동자만 하얗게 빛났다. 이빨조차도 검게 변했다. 기억에 가물거리는 하숙생 이강철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
사헬의 칸마, 죽음의 천사도 어머니란 호칭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한 꺼풀 벗기면 여린 속살을 지닌 평범한 한국인 청년이고, 십수 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짚은다리의 개구쟁이였던 무쌍이 아니던가! 가슴이 찢어질 듯 아릿했다.
나이 삼십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 유난히 몸이 허약했던 어머니, 하숙생 셋과 일꾼 스무 명의 밥을 차리느라 손에 물기 마를 날이 없던 어머니, 밤늦게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무너지듯 드러눕던 어머니, 새벽이면 깨어나 아버지 두루마기를 하염없이 쓰다듬던 어머니. 잠든 아들의 얼굴에 눈물을 떨어뜨리던 어머니,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할 시기에 슬픔의 심연에 풍덩 빠진 어머니…….
철이 들고는 찝쩍대는 남자들과 동네 아낙들의 질시에 마음고생이 자심했을 어머니가 안타까웠다. 이강철은 찝쩍대는 남자 중에도 유별났다. 환심을 사려고 어린 자신에게 쏟은 노력과 선물 공세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와키르, 긴급 환자가 여럿이다.”
쌈디가 주의를 환기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블랙맘바가 시간을 확인했다.
05시 30분, 일출 시각이 45분 남았다. 외부 세계는 박명으로 훤할 시간이지만, 카당카는 여전히 캄캄했다. 지금 통신을 때리면 일출 시각에 맞추어 헬기가 도착할 수 있다. 인질 후송이 시급했다.
“쌈디, 위성전화기!”
쌈디가 익숙한 솜씨로 파라볼라 안테나를 펼치고 전화기를 개방했다. 블랙맘바가 암호화 통신 버튼을 누르고 베이스캠프를 호출했다.
-어미 도요새, 새끼 도요새다.
-새끼 도요새 고생 많다. 농 쁘라블렘?
-카무게의 담발라 게릴라 596명 클리어. 인질 15명 확보.
폴의 응답이 뚝 끊어졌다. 엔간히 놀랐나 보다.
-이봐 친구, 상처는 입지 않았나?
폴의 목소리에 걱정이 잔뜩 묻어났다.
-농 쁘라블렘, 허접한 게릴라였어. 브니아에 가젤 있나?
-허, 할 말 없게 만드는군. 부카브에 가젤 편대가 대기 중이다. 베이스캠프에는 비상용이 한 대있다.
-지금이 비상이야. 내 무기가 바닥났거든. 탄창과 탄환을 보내. 심장 세동기와 의료진이 급하다.
-부카브의 의료헬기와 지원헬기를 즉각 발진하겠다. 40분 뒤 도착한다. 보급품은 즉시 보내겠다. 30분 이내에 내가 직접 가겠다.
-좌표는 100-16-97, 28-39-41-47 이투리 강과 에플루 강이 합류되는 지점의 하중도다.
-더 필요한 것은 없나?
-여자가 필요해.
-흐흐, 침팬지와 고릴라 암컷이라도 보낼까?
-일없어. 롸저.
통신을 끝낸 블랙맘바는 실소가 나왔다. 진짜 여자가 필요한데 폴은 농담으로 들었다. 이래서 고기도 평소 먹던 놈이 먹는다.
이강철은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모른다. 프랑스어로 능숙하게 통화하는 블랙맘바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서아프리카와 중부 아프리카의 공용어는 프랑스어다. 영어는 별 쓸모가 없었다.
“공무원 나리, 나이가 몇이오?”
이강철은 뜨악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한국인으로 짐작되는 용병은 처음부터 적대적인 감정이 배어있다. 옆에 서 있는 거한은 아차 하면 한 대 칠듯한 얼굴이다.
“마흔일곱이오.”
이강철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상대는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다. 또한, 광신도 게릴라 수백 명을 지워버린 엽기적 살인마다. 똥집을 건드려서 동티를 낼 마음은 전혀 없었다.
“마흔일곱?”
블랙맘바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대충 나이가 맞다. 당시 어머니에게 찝쩍거리던 이강철은 삼십 대 초반이었다.
“십육 년 전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 근무했지요? 칠곡 구미 구간쯤 될 거요.”
“히끅!”
소스라치게 놀란 이강철은 딸꾹질이 나왔다. 부카브에서 납치되어 끌려온 이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프리카 내륙 깊숙한 지구 최고 최악의 오지다. 이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다 당신은 누구요?”
“흐흐흐!”
웃음이 절로 새나왔다. 이강철의 반응만으로 충분했다. 짚은다리 ‘말순 밥집’의 하숙생 이강철이 맞다. 쇠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녀야 할 인간을 어이없이 상면했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어있다.
“지금부터 나는 묻고 당신은 대답한다. 반문하거나 성실히 대답하지 않으면 상당한 불편이 따르게 될 거요.”
블랙맘바의 말이 끝나자 쌈디가 떡판 얼굴을 이강철의 눈앞에 들이밀고 씩 웃었다.
“손가락은 없지만, 발가락은 남았잖아.”
끔찍스런 말이다. 평범한 공무원인 이강철이 언제 쌈디 같은 흉신악살을 만나보았겠는가. 수레바퀴처럼 구르는 핏발선 눈알을 보는 것만으로 기가 질렸다.
“아 알았소. 너무 겁주지 마시오. 당시에 나는 칠곡 12공구에서 감독관으로 일했소.”
블랙맘바는 눈을 감았다. 역시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도 놓치는 법이 없다. 이강철은 어머니 실종의 키를 쥐고 있는 인간이다. 그날 저녁의 상황을 수백 번 수천 번 재구성했다. 결론은 백부와 이강철이다.
“중곡마의 말순 밥집을 기억합니까? 당신이 하숙했던 하숙집 말이요.”
“허억!”
이강철은 다시 소스라쳤다. 평범하게 살아온 세월이다. 나름으로 열심히 일했고, 남들처럼 결혼하고 자식 낳고 내집 마련하고 그렇게 살았다. 유일하게 가슴 저린 시간이자 후회스런 시간의 한 토막이 왜 이곳에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다 당신은 누구요?”
“알 것 없다. 이제부터 반문하면 발가락을 자른다. 거짓말하면 팔을 자른다. 발가락이 부족하면 돌출부를 골라서 자른다. 그동안 아프리카가 어떤 곳인지 뼈저리게 겪었겠지. 성기와 혀까지 잘리고 싶지 않으면 성실히 거짓 없이 대답하도록.”
‘으, 이 인간은 도대체 뭐야?’
이강철은 몸서리쳤다. 용병의 몸에서 드라이아이스 증기처럼 싸늘한 기운이 뿜어졌다.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얼음조각이 가슴에 쿡쿡 박히는 느낌이다. 기가 질려서 감히 항변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상대의 말투가 반말로 바뀐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알았소, 기억합니다. 기억하고 말고요.”
“이야기가 길어지겠군.”
블랙맘바가 중얼거렸다.
“와키르, 대화는 편안한 소파가 필요하다.”
쌈디가 자신의 말대로 3인용 소파 크기의 바위를 번쩍 들어서 이강철 옆에 쿵 내려놓았다. 조계사 대웅전 주춧돌보다 더 큰 바위다. 블랙맘바가 바위를 툭 차서 방향을 돌려놓고 앉았다.
“흐으~”
이강철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서 색칠한 바위가 아니라면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하숙집 아주머니도 기억나겠지?”
이강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평생을 가슴속에 담고 살아온 여인이 김말순이다.
“당연하지요. 짚은다리 같은 깡 시골에 그런 미인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소, 대뜸 짐을 싸서 하숙을 옮겼으니 말이요.”
“사랑했나 보군.”
“한눈에 반했소. 나는 총각이었고, 그녀는 사내아이가 딸린 과부였지만, 그 정도 흠결은 아무것도 아니었소. 빼어난 미인이기도 했지만, 죽은 남편을 사랑하는 그 마음에 반했소. 그런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블랙맘바가 주절거리는 이강철의 말을 막았다.
“그만!”
찔끔한 이강철이 결혼할 수 있었다는 말을 꿀꺽 삼켰다. 블랙맘바는 다른 남자의 입에서 어머니가 언급되는 상황에 이빨이 갈렸다. 스승님 슬하에서 마음을 닦지 못했으면 이강철의 강냉이를 왕창 뽑아버렸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어머니는 눈깔 제대로 박힌 남자라면 누구나 욕심낼 여자였으니 말이다.
“실수란 게 뭐요?”
블랙맘바가 말꼬리를 잡았다.
“내가 왜 그런 이야기까지 해야 합니까?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개인의 사생활까지 캐물을 건 없지 않소.”
이강철은 두려움을 누르고 항변했다. 젊은 날의 분별없는 열정과 객기는 평생의 후회로 남았다.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내 경고를 무시했군. 당신은 도덕도 법도 없는 아프리카 정글에 누워있다.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고 껍질을 홀랑 벗길 수도 있다.”
핏핏- 쿠크리가 번쩍거렸다. 얼굴을 덮은 수염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버버!”
놀란 이강철이 입을 딱 벌렸다. 칼날이 한치만 잘못 움직였어도 목이 잘렸다. 생을 포기한 지난 7개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목숨이다. 두 손이 사라졌지만, 공무원은 불구라고 내치지 않는다. 25년 이상 근무했으니 연금도 나온다. 부쩍 생의 애착이 강해졌다.
“폭력은 본래 정당한 이유가 없다. 나는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다.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진실을 말해야 한다. 먼저 실험을 하겠다. 당신 자녀는 몇인가?”
“난 자식이 없소.”
“거짓말이군.”
“딸 하나 아들 둘이요.”
“진실이군.”
이강철은 두려운 중에도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 탐지기 놀이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도깨비놀음인지.
“당신 아버지 나이는?”
“칠십이오.”
“거짓말이군.”
“칠십 셋이오.”
“또 거짓말이군.”
“아버님은 십 년 전에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소.”
“진실이군.”
이강철은 입을 딱 벌렸다. 거짓말 탐지기도 오판율이 30%를 넘는다고 들었다. 이자는 진짜로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다.
“당신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신체 일부를 떼겠다. 결국은 죽겠지. 정글에 버려진 사체는 표범과 하이에나가 뜯어 먹는다. 남은 찌꺼기도 24시간 이내에 흰개미와 송장벌레의 배속에 들어간다. 개죽음은 개죽음일 뿐이지. 당신은 김말순을 사랑했나?”
“그렇소,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소.”
이강철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녀를 사랑한 마음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당신은 김말순을 강간했나?”
자식으로서 차마 못 할 질문이다. 블랙맘바의 얼굴이 썩어 문드러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내가 그녀를 왜 강간한단 말이오.”
놀란 이강철이 버럭 했다. 사람은 죄짓고 못산다더니 단 한 번의 오판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만, 고글과 부니 햇에 가려져 코 아랫부분만 보였다.
블랙맘바는 헷갈렸다. 뇌파는 안정적인데 혈류가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참과 거짓이 섞였다는 의미다. 그는 뭉뚝한 이강철의 두 팔을 내려다보았다. 부러뜨릴 손가락이 없다. 극도로 쇠약해진 몸은 툭 치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16년 전 당신은 하숙집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당신은 김말순을 강간하고 도주했다. 그렇지 않나?”
“뭐라고? 당신은 누구요? 어떻게 그런 일을 다 알고 있소?”
핏- 빛이 반짝했다. 표창이 이강철의 새끼발가락을 자르고 땅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끄윽!”
블랙맘바의 뒤에 묵묵히 서 있던 쌈디가 키토산 응고제를 뿌리고 압박붕대로 묶었다. 이강철은 몸서리쳤다. 이자는 악마다.
“반문하면 발가락을 자르겠다고 했다. 나는 오늘 598명을 죽였다. 가능하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 그날 당신의 행적을 소상하게 말하라.”
이강철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반듯이 누웠다. 퀭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동쪽에서부터 어둠이 주욱 밀려나고 있다. 길고 긴 어둠이 지나가고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매달렸던 당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힘들었지만 그때가 좋았다. 동트는 새벽처럼 희망이 있었다. 두 팔을 들어 올려 손이 사라진 팔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망할 놈의 장의원 때문에 두 손을 잃었다. 자신의 인생은 끝장났지만 가족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죽더라도 한국에 돌아가서 죽고 싶었다.
“당시 나는 상공부 말단 공무원으로 서른둘의 총각이었소. 김말순 씨는 나와 나이가 비슷했소. 그녀는 아이가 딸렸지만, 미인이고 현숙한 여자였소. 나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소. 호감을 사려고 별별 수단을 다 부렸지요. 달걀로 바위 치기였소. 그녀로부터 ‘식사 하이소’ 라는 말 외에는 들어보지 못했소. 그날은 보름달이 떴지만 구름이 짙게 깔린 날이었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컥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