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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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장 아파돔베 Fist of Justice 26
쏴아아~ 박하 향이 머릿속을 휘돌았다. 백열된 뇌가 순식간에 싸늘히 식었다. 스승이 수련 초기에 심어둔 정심공의 위력이다. 시침 뚝 따고 커다란 눈알을 수레바퀴처럼 굴리는 쌈디가 눈에 들어왔다. 저놈이 눈알을 굴릴 때는 난처할 때와 거짓말 할때다.
사부의 언질을 받았든 본인의 판단이든 늙은 여우가 따로 없다. 지난겨울에 하동댁 자매의 눈 뭉치 세례에 쩔쩔메는 시늉을 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인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약삭빠른 선우현보다 단수가 더 높아졌다. 사부가 뻣뻣한 통나무를 음흉한 늙은 너구리로 만들어 놓았다.
‘사부님!’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졌다. 천의무봉 연허합도에 이른 사부지만, 최소한의 곡기는 필요하다. 하동댁과 덕산댁이 챙기겠지만, 제자만큼이야 하겠는가. 단백질과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한창 녹음이 우거져 있을 암자가 그리워졌다. 천하의 블랙맘바도 사부 앞에서는 죽비로 머리통 얻어맞는 덜 떨어진 제자에 불과했다.
“잘했다.”
시퍼렇게 질린 쌈디의 얼굴이 활짝 풀렸다. 블랙맘바도 빙긋이 웃었다. 쌈디가 아니면 누가 자신을 제어하겠는가. 무송과 노지심이 수호지에서 쌍으로 튀어나와도 자신을 누를 수 없다. 애써 구한 인질을 다 죽일 뻔했다. 공터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후, 이게 무슨 꼴이야!’
널브러져 있는 인질들을 돌아보았다. 한바탕 지랄을 턴 자신이야 속이 가라앉았지만 죄 없는 인질들은 엔간히 놀랐을 것이다.
자신은 백 년을 수양해도 땡중이 되기는 틀렸다. 유전자에 각인된 에피듐의 마성은 봉인할 수는 있어도 뿌리 뽑을 수는 없다. 콘크레투스처럼 영혼을 뽑아서 아드라스로 육체를 갈아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저게 인간이야?’
이강철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긴 처음부터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상에 올라왔을 때 박살 난 게릴라 본거지와 시체 무더기를 보고 기함하지 않았던가. 게릴라 수백 명을 빗자루로 쓸 듯이 청소해버린 자가 인간일 수는 없다. 가위눌린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산전수전 겪으며 지천명에 이른 나이다. 포효에 담긴 비통함과 슬픔에 자신의 가슴도 흔들렸다. 초인도 슬픔을 느끼는가. 저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설마?
블랙맘바의 눈길이 이강철을 향했다. 붉은빛이 사라지고 분노가 번들거렸다. 흠칫한 이강철이 얼른 시선을 깔았다.
“이강철, 죄책감에 빠져 살았다고 했던가? 당연히 그래야지. 그날 김말순은 실종되었다.”
“뭣이? 그럴 수가!”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이강철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김말순은 짚은다리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말순 밥집은 퇴락하고 전답도 모두 남의 손에 들어갔지.”
블랙맘바가 신문기사를 읽듯이 덤덤하니 말했다.
“으으, 그럴 수가! 그녀는 어디로 간 거요?”
“알 수 없다. 어느 하늘 아랜가 떠돌고 계시겠지…….”
블랙맘바의 목소리가 축축해졌다.
“아들은? 어린 아들은 어찌 되었소?”
“닥쳐, 네놈은 모자의 행방을 물을 자격이 없다. 아들이 어떻게 되었냐고? 고아가 된 아홉 살짜리 아이가 행복하게 자랐겠나? 제루샤 애벗(주디, 진 웹스터의 소설 Daddy Long Legs의 주인공)처럼 키다리 아저씨가 몰래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기라도 했을까?”
블랙맘바가 버럭 했다. 막장에서 동바리를 들고 기어 다니고, 음식점 잔반으로 배를 채웠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한바탕 울분을 털어낸 덕분에 그나마 평정을 유지했다.
“으윽!”
이강철은 이를 악물었다. 썩기 시작한 잇몸이 뭉그러져 통증이 골수를 흔들었다.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믿어지지 않지만, 눈앞의 초인이 김말순의 아들이다.
병아리 품는 암탉처럼 김말순을 챙기던 그놈, 정보를 얻으려고 과자를 준다, 돈을 준다 해도 눈도 깜짝 않던 아이같지 않은 아이, 자신의 머리꼭대기에서 놀던 영악한 그놈, 무쌍이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으흐흐, 난 몰랐소. 이듬해 당제터널 공사가 끝나고 서울로 복귀했소. 한시도 그녀를 잊지 못했지만 소심했던 나는 차마 찾아볼 생각도 못 했소. 당시의 일을 아는 사람은 안방에서 마주친 세 사람뿐이오. 한 명을 추가한다면 김말순씨의 어린 아들이오. 당신이 날 죽여도 할 말 없소. 사랑했던 여자를 그 꼴로 만들고 내가 무슨 면목으로 살겠소. 당신이 손끝만 까딱해도, 아니 눈짓만 해도 저 친구가 나를 끝장내겠지요. 염치없지만 시간을 주시오. 나도 자식이 있소. 결혼할 생각도 못 하고 살아가던 중에 사십이 넘어 중매 결혼했소. 외동인 탓에 대를 이어라는 부모님 성화를 이기지 못했던 거요. 일곱 살난 아들과 다섯 살이 된 딸이 있소. 이 지옥에서 버틴 것도 자식을 두고 죽을 수 없었기 때문이오. 어린 것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재산을 처리할 시간이라도 주시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파렴치한 부탁을 하는 나는 짐승입니다. 으흐흐흑!”
이강철이 굵은 눈물을 흘렸다.
‘후우, 저것이 한국 아버지의 모습인가?’
프랑스인들도 부정(父情)이 있지만, 한국의 아버지들처럼 무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숨을 몰아쉬며 어린 자식의 손을 으스러지라 움켜쥐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쌍아, 엄마를, 엄마를 부탁한데이~]가래에 막혀 간신히 뱉어낸 마지막 말이 귀에 쟁쟁 울렸다. 어머니가 실종된 후로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날마다 가슴을 쑤셨다.
‘지랄! 죽지 말고 자기가 보살피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기 마누라를 아들에게 맡기고 덜컥 죽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묵묵히 듣고만 있던 쌈디가 부스럭부스럭 백 팩을 뒤져서 납작한 금속 케이스를 꺼냈다. 정교한 은제 케이스는 파리를 떠날 때 에밀이 챙겨준 코히바지골로다. 기분이 꿀꿀해지면 한 대 땡겨야 한다.
시커먼 손이 슬그머니 눈앞에 나타났다. 기관총 총신만큼이나 굵은 손가락에 끼인 하얀 궐련이 강렬한 보색 대비로 두드러졌다. 블랙맘바가 말없이 담배를 뽑아 물었다.
쌈디가 비시시 웃으며 터보 라이터를 척 켜서 불을 붙여주었다. 블랙맘바와 쌈디의 입술 꼬리가 동시에 스윽 올라갔다. 좀비판 이심전심, 염화시중이다.
구수한 연기가 목구멍을 탁 때리고 폐를 휘돌아서 후두부를 통과했다. 연보라빛 연기가 분노를 끌고 사라졌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된 그때부터 바깥 세상은 이빨을 드러냈다. 날마다 물어뜯긴 상처를 핥으며 분노하고, 신음했다. 이강철의 어린 자식이 무슨 죄가 있다고 고아로 만들겠는가. 블랙맘바의 사나운 눈이 부드러워졌다.
“이곳은 악마의 숲이라 불리는 이투리 정글이오. 벗어날 자신은 있고?”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면 정부에서 구조대를 보내겠지요.”
“컬컬컬! 이 양반 보게. 눈앞에 닥친 저승사자도 눈치 못 채는 주제에 물고기 가시로 빗질하는 소리 하네.”
쌈디가 벼락처럼 손을 휘저었다. 쌈디의 손아귀 잡힌 거대한 파충류가 몸부림쳤다. 이강철이 기대앉은 나무를 슬금슬금 타고 내려오던 블랙맘바다.
“이봐, 이놈은 다른 뱀과 달라. 무조건 공격하거든. 당신은 방금 요단강을 건널뻔 했다고. 그래도 독이 강한 만큼 맛은 별미란 말이야.”
쌈디가 5m에 이르는 거대한 뱀을 산채로 우둑우둑 씹어먹었다.
“허!”
이강철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게릴라에게 납치당해서 끌려올 때 블랙맘바가 얼마나 무서운 독물인지 보았다. 아가리 시커먼 저 뱀에 물린 게릴라 두 사람이 순식간에 죽었다. 현존하는 즉각적인 위험에 가슴이 덜컹했다. 블랙맘바를 씹어먹는 거구의 용병이 더 무섭긴 했지만…….
블랙맘바는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승기류가 캠프 쪽에서 진한 피비린내를 몰고 왔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갑갑함은 걷힐 줄 몰랐다.
나쇼널 트레조르라는 허울이 무슨 소용인가. 억만장자가 된들 무슨 소용인가. 천번지복할 능력이 무슨 소용인가. 피를 덮어쓰는 이런 인생을 원치 않았다. 어머니와 저녁 식탁에 앉아 돌아가신 아버지 흉을 보며 오손도손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싶었다.
문득 미혹을 밝히려고 애써봐야 말짱 헛짓거리라던 사부의 말이 생각났다. 역시 대단한 영감태기다.
‘사부님, 이래서 서두르지 말라고 그렇게 말리셨습니까!’
큰 소리로 울고 싶었다. 어머니와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두 인간은 복수 운운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 삶을 사는 인간에게 무슨 복수를 하겠는가. 후욱- 블랙맘바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한국은 국민을 아끼지 않는 나라요. 구출팀을 파견하려면 벌써 했겠지요. 당신은 의제사망 처리되었을 거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지요? 패혈증이 장기와 골수까지 진행되었소. 한국의 의술 수준으로는 당신을 치료할 수 없소. 내가 군용기 편으로 프랑스 싸무로 보내 주겠소. 치료 후 한국으로 보내주겠소. 싸무는 수준 높지만 비싼 의료비가 문제요. 공무원 박봉으로 감당이 안될거요. 치료비는 내가 부담할테니 걱정마시오.”
“뭐 뭐라고요!”
블랙맘바의 말을 듣고 있던 이강철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내게 왜 이런 큰 은혜를 베푸십니까? 나는 당신의 원수요. 어린 당신을 고아로 만들었고 당신 어머니를~”
“그만, 동족인 탓이라고 해 둡시다. 아니 당신 아들딸 때문이라고 합시다. 또 다른 무쌍을 만들 수는 없지 않소.”
“으흐흐흑, 고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이강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을 줄이야.
“낯 간지러운 소리 하지 마시오. 보다시피 나와 내 동료는 보통 인간이 아니오. 나에 관해서는 영원히 입을 다무시오.”
“알겠습니다. 귀국하면 전국의 행정 자료를 뒤지고 전 재산을 들여서라도 김말순씨를 찾겠습니다.”
이강철은 이를 악물었다. 젊은 시절의 무분별한 열정으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과 어린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남은 생이라도 후회 없이 살고 싶었다.
“그러지 마시오. 나는 당신 가정이 흔들리기를 원치 않소. 자식을 잘 키우시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강철의 백태 낀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어린아이가 이렇게 큰 인물이 되다니, 저간의 고통과 슬픔은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고아가 된 무쌍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모진 인생 역정에 억장이 무너졌다.
“죄송합니다. 염치가 없습니다. 흑흑!”
이강철의 흐느낌이 그치지 않았다.
“늙은이가 쪽 팔리게시리…….”
쌈디가 슬그머니 돌아섰다. 전투복 주머니에서 장미꽃이 수 놓인 하얀 손수건을 꺼내서 슬쩍 눈물을 훔쳤다. 노바토피아를 떠날 때 뚜바이부르파를 잘 지켜달라면서 에델 아가씨가 준 선물이다.
‘바보 같은 주인, 물러터진 주인!’
백번 양보해도 이강철이란 인간은 주인의 원수다. 목을 뽑아버리지 않고 무슨 쓸데없는 자비란 말인가! 그런데 왜 주인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까?
“응무소주 이생기심!”
쌈디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음 가는 대로 행하고 거리낌을 남기지 말라는 큰 사부의 가르침을 조금 알 듯했다.
투타타타- 요란한 로터 소리가 새벽을 흔들었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쪽 하늘에 까만 점이 나타났다. 브니아에서 날아온 가젤이다. 쌈디가 메그에 마그네슘 신호탄을 꽂았다. 펑- 쉬이이 휜 연기를 끌고 올라간 신호탄이 300m 상공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헬기에서 용병 둘과 사파리 복장의 남자 셋이 내렸다. 앞장선 건장한 체격의 용병은 폴이다. 폴을 뒤따르는 이쑤시개처럼 깡마른 인간은 DGSE 정보부 분석과장 플로베르 매키시다. 그들은 참혹한 전장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신음했다.
“휘유! 끔찍하군. 죽음의 천사가 연출한 지옥인가!”
매키시가 휘파람을 불었다. 폭우가 화재를 제압했지만, 불탄 자리는 더 끔찍했다. 갈가리 찢긴 시체, 반쯤 불탄 시체, 목이 떨어진 시체 수백 구가 켜켜이 쌓여있다.
피가 빠지고 물에 퉁퉁 불어서 허여멀건 해진 시체 무더기에 어지간한 용병과 정보부 책임자도 학을 떼었다. 툭하면 블랙맘바가 언급하는 늙은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들의 입이 쩍 벌어지게 생겼다.
폴은 인질과 시쳇더미에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노처럼 돌진했다. 블랙맘바를 안고 번쩍 들어 올렸다.
“깔끔하군. 내 친구답다.”
“자네가 준 호신부 덕분이지. 목걸이 받게.”
블랙맘바가 목에 건 미스바하를 벗었다.
“그냥 가져.”
“자네 어머니 유품 아닌가?”
“됐어. 지부티 시내에서 10프랑 주고 산 싸구려 미스바하야.”
“뭐?”
블랙맘바가 전차에 받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모든 건 마음에 달렸다고 자네가 늘 말하지 않았나.”
폴이 큰 소리로 웃었다. 블랙맘바도 피식 웃었다. 농담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폴도 많이 변했다.
“캡틴, 고맙다.”
“캡틴은 자네야. 부상은 없나.”
“거머리에게 엄청나게 뜯겼다. 가려워 미치겠다.”
“엄청난 부상을 당했구먼. 하하하”
폴이 또 큰 소리로 웃었다. 죽음의 천사 아즈라일 블랙맘바를 감당할 자 누가 있겠는가!
“특별고문님, 오랜만입니다.”
매키시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총국장의 엉덩이를 걷어찰지언정 아쥐레머의 똥집을 건드리지 마라.’ DGSE 간부 누구나 아는 경구다.
“매키시 과장이 여긴 웬일인가?”
“이곳 정보원들의 책임자가 본관입니다. 제대로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매키시는 바짝 엎드렸다. 그는 백린을 덮어쓰고 타죽은 정보부 미구엘 과장의 후임이다. 성질 더러운 블랙맘바의 똥집을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