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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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장 각자 나름의 정의가 있다 1
“악트! 감사합니다.”
중위가 히로뽕 주사를 맞은 가미카제 소년병처럼 펄펄 살아서 뛰어갔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지쳤을 땐 채찍으로 때릴 게 아니라 당근을 먹여야 한다.
“젠장, 진짜 피곤한 거야? 피곤하다고 느끼는 거야?”
블랙맘바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깜둥이의 설명에 의하면 에피듐의 신체는 젖산과 같은 피로 물질을 생성하지 않는다.
좋은 면으로 보면 피로를 모르는 울트라 피지컬이고, 나쁜 면으로 보면 안전장치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다. 피로가 전적으로 정신적인 영역이거나 에피듐 인자가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에 희석되었을 수도 있다.
땀과 먼지, 피로 끈적해진 몸도 몸이지만, 신경이 북풍에 찢어진 행랑방 창호지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천성산 계곡의 맑은 물과 시원한 솔바람이 휘도는 영고석(詠孤石)이 그리웠다. 아니 사부님이 그리웠다.
“당연히 피곤하지. 공정연대를 투입해도 불가능한 일을 해 치웠지 않나. 자네가 나서면 단순해 보이던 사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깊숙이 숨겨진 왕건이가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올라온단 말이야. 업보려니 하게.”
폴이 놀리듯 빙글거렸다.
“친구, 그게 바로 능력의 문제고, 정부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이유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특별한 사건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컨설턴트가 뿌리를 들어내지 못하면 악의 꽃은 언제든 만개하네. 내가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일단 맡은 일은 철저하게 마무리 짓거든.”
“하긴, 지젠느나 공정대의 작전 완료와 블랙맘바의 작전 완료는 차원이 다르지. 필립 장군이 별명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었어.”
폴이 공감했다. 정보 세계는 첩보원의 공작 능력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삼류 첩보원 백 명이 일류 첩보원 한 명만 못하고, 일류 첩보원 백 명이 특급 컨설턴트 한 명을 당하지 못한다. 하물며 블랙맘바는 나쇼널 트레조르 급이다. 국방부가 계속 사건을 맡았다면 아레바 인질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았을 것이다.
상사가 올롱게와 키담바를 데리고 나타났다. 역시 짱박히는 실력은 피그미족이 최고다. 블랙맘바를 발견한 올롱게와 키담바가 날 듯이 뛰어오며 소리쳤다.
“우우, 뚜바이부르파 메이오!”
올롱게와 키담바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키작은 인간, 철이 들었구먼.”
쌈디가 비시시 웃었다. 할아버지인 올롱게 뒤통수를 때리고 민망했던 기억이 났다. 사람은 모름지기 버르장머리가 있어야 한다.
“야 우 수브 디힌다!”
“골 바이 와가야 룩소룩소 히 돈야돈야 이나.”
올롱게와 키담바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피그미족을 처음 보는 용병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졌다.
“답답해 미치겠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올룸보의 빈자리가 컸다. 블랙맘바가 쌈디를 돌아보았다. 쌈디가 난감한 얼굴로 어깨만 으쓱 올렸다. 자신인들 새처럼 지저귀는 피그미의 말을 알아들을 재간이 없다.
“카포랄, 노획한 AK 네 자루, 탄약 네 상자를 가져와.”
“옛 썰”
총과 탄약을 넘겨받은 올롱게와 키담바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블랙맘바를 쳐다보았다.
“너희 가족을 지켜라.”
“마하드 산타하이!”
올롱게와 키담바가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대충 의미는 전달되었다. 쌈디가 폴을 툭툭 쳤다.
“폴, 저 녀석들 수당 줘야 한다.”
폴이 난감한 얼굴로 주머니를 털었다. 10프랑 지폐 열 장이 나왔다. 동전이 짤랑거리지 않은 게 다행이다.
“거지냐?”
쌈디가 눈을 흘기고 매키시와 올랑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지가 되기 싫은 두 사람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이천 프랑을 내놓았다.
“이봐, 키 작은 친구들 수고했다. 여자들 예쁜 옷 사줘. 사타구니는 가려야 할거 아냐.”
쌈디가 올롱게와 키담바에게 500프랑씩 나누어주었다. 쌈디식 작별 인사다.
‘훗, 일천 프랑은 올룸보 수당이군.’
블랙맘바가 피식 웃었다. 피그미족은 돈이 뭔지도 모른다. 기념품 정도로 알 것이다. 올롱게와 손자 둘을 구해주고 코끼리도 통째로 주었다. 키담바 마을을 위협하던 괴물 악어와 표범을 처리하고 마을을 짓밟은 담발라도 휩쓸었다. 안내인 보수는 넘치도록 지급된 셈이다.
총기와 돈은 지젠느 작전팀 생존자와 유해를 찾은 보답이다. 아니 간혹 발동되는 블랙맘바의 변덕이다.
“키 작은 친구들, 슬퍼하기 전에 먼저 분노해라.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려라. 돌아서서 슬퍼하지 말고 눈을 부릅뜨고 한발 나서라.”
피그미족은 소문과 달리 너무나 무기력하고 순했다. 외부의 위협에 도망만 치다가는 끝내 멸족할 것이다. 블랙맘바는 피그미족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으면 했다. 피그미족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있다. 그들은 이투리 정글에서 숲 사람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폴, 키 작은 친구들을 헬기로 마을에 데려다 줘.”
“그렇게 하지. 에프터서비스인가. 하하하”
폴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블랙맘바는 키담바 마을과 올롱게 마을의 좌표를 조종사에게 넘겼다. 그냥 두어도 잘 찾아가겠지만, 폴의 말대로 서비스차원이다. 이것도 블랙맘바의 변덕이다.
“골 바이 와카야 룩소룩소 실리앙 고뿌 두마 아 오 쿠 시가.(다음에 만나면 위대한 존재의 씨를 꼭 받겠다.)”
올롱게가 엉덩이를 툭툭 치고 앞뒤로 흔들었다. 블랙맘바가 찝찝한 표정으로 조종사를 따라가는 올롱게의 등을 바라보았다.
‘설마, 피그미 처녀를 올라타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야만인들, 이럴 수는 없어. 당신들 고소할 거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
째지는 목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쌈디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발리사리 기자다. 그녀는 집요하게 블랙맘바의 인터뷰를 따려다 괘씸죄에 걸렸다.
“그러게 약속만 하면 풀어준다지 않습니까.”
“취재원 선택은 기자의 권리예욧. 당신이 뭔데 하라 마라 지껄이는 거예욧.”
또다시 발리사리와 그녀를 지키는 용병의 말씨름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째 계속되는 그녀의 악다구니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저 물건의 취재 동행을 허락한 놈이 누구야?”
블랙맘바가 사나운 눈길로 매키시 과장을 노려보았다. 매키시의 고개가 쑥 들어갔다.
“쯧쯧! 얼굴에 홀렸구먼.”
쌈디가 혀를 찼다. 인간들은 천차만별이다. 천사와 선녀를 돌멩이로 보는 인간님이 있는가 하면 얼굴 껍질만 그럴듯한 치즈녀에 홀라당 하는 인간 놈도 있다. 치즈녀는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잘난척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쌈디만의 속어다.
“괜찮으려나. 언론은 복어와 비슷한데.”
폴이 걱정했다. 프랑스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개와 언론, 불법체류 외국인이다. 별것 아니지만 건드리면 침소봉대하고 독을 뿜는다. 과장되이 성질을 내고, 물어뜯기도 한다.
“저따위 물건을 보낸 정부가 감당해야지.”
“그건 그래. 저 기자도 대단하구먼. 자네를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풀어주겠다는데도 저러고 있네.”
“냅둬. 팔자대로 사는 거지.”
블랙맘바는 여자가 욕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 올룸보만 도착하면 지긋지긋한 이투리 정글은 안녕이다.
“백부댁 두엄 무더기와 다를 것 없네.”
블랙맘바가 시니컬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무더기로 쌓인 시체 더미가 백부댁 두엄 무더기를 닮았다. 틈날 때마다 풀과 나뭇잎을 바지게로 져다 나르고, 외양간 오물을 쳐내서 덮느라 허리가 휘었다. 눈앞의 유기물 무더기나 두엄더미나 자신이 힘들여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투투투투- 하늘에 까만 점이 나타났다. 동북 방향에서 먼저 나타나고, 연이어 동남 방향에서도 나타났다. 쌈디가 동북 방향에서 접근하는 헬기를 가리켰다.
“와키르, 올룸보가 온다.”
“많이 늦었는데…….”
블랙맘바의 얼굴에 살짝 구름이 끼었다. 가젤이 무려 한 시간 만에 돌아왔다. 윈치로 올룸보를 끌어올려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면 째진다.
“약해빠진 녀석이 오줌을 지리지 않았으려나.”
쌈디가 착륙한 헬기를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쌈디가 조종사와 중사를 데리고 왔다. 쌈디의 표정이 침울했다.
“와키르, 올룸보가 죽었다. 시체를 싣고 왔다.”
“으음, 일이 있었군.”
블랙맘바가 침음했다. 귀환이 늦을 때부터 기분이 찜찜했었다. 생존을 위한 모든 조처를 해두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죽을 이유가 없다.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리다.
화가 치밀었다. 올룸보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못했다. 허풍과 과장이 심하고 요리조리 눈치를 보는 모습이 서생원을 연상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실한 자세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호감이 갔다. 특별 수당도 약속하고, 장가도 보내준다고 약속했는데 헛방이 되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불쌍한 놈, 장가간다고 좋아하더니……. 이봐, 직접 설명해 드려.”
쌈디가 함께 온 용병을 돌아보았다.
“악트, 중사 리옹입니다.”
“수고했다.”
블랙맘바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트너 브레송 병장과 함께 페스트 로프를 타고 정글 캐노피에 내렸습니다. 산악 로프를 이용해서 나무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보마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원주민 흑인의 시체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추락으로 인한 장기파열과 경추골절에 의한 쇼크로 판단됩니다. 시체를 뜯어먹는 하이에나를 사살하고 수거해 왔습니다.”
“보마가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블랙맘바의 눈이 커졌다. 보마는 쌈디가 피그미족과 함께 설치하고 자신이 확인했다. 표범에 대비해서 튼튼하게 만들고 단단히 고정했다.
“위, 대파되었습니다.”
“으음!”
“문제는 전투 흔적입니다. 브레송, 그거 가져와!”
병장 계급장을 단 거구의 흑인이 서류가방 크기의 수지 팩을 들고왔다.
“악트, 병장 브레송입니다.”
브레송이 유류품 수거용 비닐 팩을 건넸다. 내용물 확인을 마친 블랙맘바의 눈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수류탄 파편 한 조각, 9mm 파라블럼탄 탄피 12개, 5.56mm 탄피 32개, 피부 연고 두 개가 들어있다. 올룸보가 격전을 치른 흔적이다.
9mm 파라블럼탄은 권총과 기관단총에 공통으로 사용된다. 정글에서 탄피를 12개나 회수할 정도면 MP5가 사용되었다는 소리다. 5.56mm*45 표준탄은 나토군의 돌격소총과 경기관총 공용 탄환이다.
거지 수준의 게릴라가 MP5나 미니미 같은 고급 총기를 사용할 리 없다. 올룸보가 특수군이나 첩보원의 공격을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놈들이다.”
쌈디가 이를 갈았다. 싸이킥 혼터냐고 물었던 양키, 루이스 중위가 자신의 동료들이 데빌 스프링으로 향했다고 했다.
“아마도!”
블랙맘바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불의의 사건 사고는 발생한다. 그래서 종교가 니치를 확보할 수 있는지도…….
“안됐군, 제2의 옴부티가 될 가능성이 높은 놈이었는데……. 재수도 없지. 쯧쯧.”
폴이 혀를 찼다. 올룸보는 푼수기와 과시욕이 있는 놈이지만, 그 정도는 블랙맘바와 함께하면 저절로 치유된다. 좋은 기회를 잡은 놈인데 안타깝게 되었다.
“시체를 확인하겠다.”
“위!”
리옹과 브레송이 헬기에서 시체 보관용 부직포를 내려서 자크를 열었다. 목불인견의 시체 한 구가 드러났다. 짐승이 근육을 뜯어낸 흔적에 불구하고 추락사 흔적이 역력했다. 복부가 터져서 장기가 흘러나오고, 축대뼈와 대퇴골이 부러졌다. 블랙맘바가 끊어지다시피 덜렁거리는 목을 노려보았다. 무지막지한 힘이 목을 짓눌러서 박살 냈다.
“폴, 성체 고릴라의 힘이 얼마나 셀까?”
“글쎄, 팔심은 성인 남자 다섯 배라고 들었는데…….”
폴이 자신 없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자료에 의하면 성체 수컷 고릴라의 악력은 350kg입니다. 성인 남성의 악력은 평균 50kg입니다.”
브레송이 대답했다.
“대략 7배인가. 그 정도면 경추를 박살 내겠군.”
“고릴라는 허세가 심할 뿐 공격적인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을 선제공격한 사례도 없고, 이미 저항능력을 상실한 인간을 추가 공격할 만큼 잔인한 동물이 아닙니다.”
브레송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자네가 고릴라 박사일 줄 몰랐군.”
블랙맘바가 뜻밖이라는 눈으로 브레송을 바라보았다.
“동물 행동학을 전공했습니다. 특별군사고문님께 도움이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놈, 출세할 놈일세.’
폴은 브레송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힘 있는 인간을 파악하고 자신의 능력을 적시에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브레송은 충분히 출세할 놈이다.
블랙맘바는 문득 응앵가 호숫가에서 처리한 키메라가 생각났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무지막지한 존재, 51구역에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괴물이 올룸보를 죽인 범인이다.
“불쌍한 놈, 장가 밑천이 저승 노잣돈이 되었네.”
쌈디가 부릅뜬 올룸보의 눈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삥뜯은 일천 프랑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넣었다. 은근히 주인의 결단을 종용하는 행사다.
블랙맘바 역시 올룸보의 희생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세노테에 남은 괴물 두 마리를 처리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일단 현장을 확인한다.”
블랙맘바의 말에 폴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