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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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 웬 떡이야! 3
폴이 선망의 눈초리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지부티에서 휴식을 취하자고 운을 띄우긴 했지만, 대뜸 허큘리스 항로를 바꿀 줄은 몰랐다. 역시 대단한 친구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대통령이든 DGSE 총국장이든 백안시할 수 있는 강자의 여유가 부러웠다.
엠무소뚜 이샘기땜(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했던가?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할 수 있는 자는 세속의 명리에 초연한 수도승이나 세상이 적대시해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절대 강자다.
숫사자는 느긋하니 초원을 활보하지만, 영양이나 얼룩말 따위는 잠시도 눈치를 늦추지 못한다. 인간도 다를 바 없다. 수컷으로 태어난 자 누군들 수컷답게 당당히 살고 싶지 않겠는가. 먹고 살자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다. 장삼이사는 세파에 밀리다 보면 절로 눈 딱 감고 살아가게 된다.
“친구, 눈이 빠지라 기다리는 오케오필라 스마라그디나는 어쩌고?”
폴이 장삼이사다운 걱정을 했다.
“킁, 필요하면 지부티로 오겠지.”
블랙맘바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투리 정글에서 보낸 시간만 꼬박 15일이다. 심신이 지치기도 했지만, 보름 동안 태양을 본 시간을 다 합쳐도 기껏 서너 시간에 불과했다. 이투리 정글의 온갖 기괴한 포자와 꽃가루가 켜켜이 몸에 쌓였다. 동충하초가 되기 직전의 몸뚱이가 뜨거운 태양을 갈구했다.
타격대 팀장인 올랑드는 소령급이다. 하급자인 폴이 대놓고 타박할 수 없지만, 특별군사고문의 경호원인 쌈디 상사는 거칠 게 없다. 상사 계급은 블랙맘바의 계급이 마조르(준위?)이기에 붙였을 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
“쓰읍, 버르장머리!”
쌈디가 핏발선 눈으로 올랑드를 노려보았다. 흠칫한 올랑드가 조용히 찌그러졌다. 올랑드의 간덩이는 호랑이보다 더 살벌한 맹수와 그보다 더 맹수 같은 인간의 눈길을 버틸 만큼 불량스럽지 못했다.
1985년 6월 25일, 자이르 동부에서 납치된 아레바사 인질 14명과 희생자 3명, 동양인 인질 한 명이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내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뤄야 할 공항 라운지는 한산했다. 정부로부터 강력한 엠바고 협조를 부탁받은 까날 쁠리가 입을 봉했기 때문이다.
DGSE 요원들이 상황을 장악한 가운데 공항 주기장에 대기 중이던 SAMU 헬기가 인질들은 발데그라스 육군병원으로 급송했다. 이강철은 다른 인질과 달리 응접실이 딸린 특실을 배정받았다. 매키시 과장은 블랙맘바의 부탁을 허투루 처리할 만큼 간덩이가 크지 못했다.
“흥, 좋아! 나를 괄시했다 이거지. 콜네임이 외부에 알려지면 국가적 손실이 크다고? 그래서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난 그렇게 못해. 국가가 내게 뭘 해줬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몽땅 까발려 주지. 호호홋!”
공항에서 인질 호송대를 놓친 발리사리는 이를 갈았다. 콩고에서 특종을 잡았지만, 그리즐리 곰보다 더 큰 흑인 녀석 때문에 대어도 놓치고 잡어도 놓쳤다. 덕분에 취재노트가 텅 비었다. 뒤늦게 이삭이라도 줍기 위해 드골 공항을 찾았지만 지붕 쳐다보는 개꼴이 되었다.
그녀는 까날 쁠리의 악어라 불릴 정도로 집요한 르뽀 기자다. 카당카에서 블랙맘바를 취재하려다 나무에 매달리는 수모까지 당했기에 독이 잔뜩 올랐다.
사실 그녀가 아는 내용은 피상적인 곁가지뿐이다. 콜네임이 실존하고, 정의의 주먹 작전을 수습하기 위해 이투리 정글에 투입되었고, 그가 광신도 집단을 쓸어버리고 인질을 구출했다는 정도다. 팩트가 부족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줄거리만 있으면 살은 붙이면 된다. 원래 대중은 팩트보다 가공된 픽션을 좋아하는 법이다.
“발리사리, 괜찮겠어? 프랑스 법정은 국민의 알 권리와 중대한 국익의 침해라는 가치 충돌이 발생하면 늘 정부의 손을 들어줬어. 정부와 언론의 묵계를 깨면 다쳐.”
사진 기자 피뇰이 얼굴을 찡그렸다. 발리사리는 다 좋은데 너무 나대는 경향이 있다. 데스크의 주의와 경고도 그때뿐이다.
“피뇰, 나를 무시하고 나무에 매달은 동양인 새끼 사진이나 잘 챙겨 둬. 데스크가 내 기사를 씹으면 샤를리 엡도에 팔아먹을 거야.”
“뭐? 너 미쳤냐?”
피뇰이 펄쩍 뛰었다.
“흥, 한여름밤의 꿈을 종장까지 낭송할 만큼 멀쩡하니까 염려 놓으셔. 정부는 까날 쁠리의 악어를 무시한 대가를 단단히 치를 거야.”
“안돼, 무슨 일을 당하려고 그래. 써펀드가 DGSE 신임 총국장이 되었단 말이야. 넌 평생 감옥에서 썩을 거야. 아니 암살당할지도 몰라.”
피뇰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이 여자는 몇 번의 성공에 취하더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
“피뇰, 사내새끼는 두 가지가 커야 해. 뭔지 알아? 간덩이와 페니스야. 페니스가 작으면 간이라도 커야지. 안 그래?”
발리사리가 비시시 웃으며 피뇰의 아랫도리를 흘끔거렸다. ‘망할년, 썩은 주둥이 하고는. 이거 안 되는데. 저년은 한 번 물면 놓치 않는 악어인데. 난리났네.’
피뇰이 전 부치는 가마솥 뚜껑에 오른 왕개미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특종이 터졌지만, 프랑스 언론은 조용했다. DGSE가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DGSE는 제르맹 국방장관과 카바에 부장의 삽질을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틀어막았다.
이투리 정글에 동행한 까날 쁠리 기자단 5명은 국가 기밀 엄수 각서를 써야 했다. 언론사에는 강력한 엠바고 재갈을 물렸다. 프랑스 언론은 자유분방하지만, 중대한 국익이 관련되면 정부에 기꺼이 협조하는 속성이 있다.
이튿날 정오 뉴스 시간, 미테랑이 직접 국영 TV 방송에 출연했다. 미테랑은 다소 거만한 자세로 제4차 특공대가 벌인 전격적인 인질 구출 작전을 발표했다. 물론 보니파스가 작성한 시나리오다.
공정대와 레종 에뜨랑제가 연합한 숫자 미상의 프랑스 특공대가 제4차 정의의 주먹 작전을 수행했다. 납치범은 사악한 부두교 광신도 무장집단이다. 정의의 주먹 팀은 악마의 숲을 횡단해서 정글 깊숙이 위치한 납치범의 본거지를 영격했다.
정의의 주먹은 무장집단을 격멸하고 인질을 구출했다. 22명의 인질 중 생존자는 14명이며 이들은 전원 구출되었다. 작전 중에 인명 손실은 없으며 사살당한 무장 광신도 숫자만 698명이다.
작전이 대성공한 배경엔 프랑스군의 뛰어난 무기체계와 작전능력, 정보전 능력이 있다. 무엇보다 정부를 믿고 기다려준 시민의 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미테랑은 정부의 능력과 도덕성을 강조하고, 높은 시민의식을 찬양했다.
미테랑의 발표는 엄청난 반향을 불렀다. 프랑스 전역에서 환호와 찬사가 쏟아졌다. 일부 언론과 시민이 무장집단 700명을 사살한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는 점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음모론은 환호에 묻혀 사라졌다.
미테랑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거듭된 작전 실패로 인해 땅바닥에 떨어졌던 정부와 군부의 신뢰도 급격히 회복되었다.
특종을 놓친 언론은 이를 갈았다. 미테랑 정부가 엠바고를 요청해놓고 뒤통수를 친 것이다. 화난 기자들이 병원, 대통령궁, 국방부,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석간과 이튿날 조간의 기사도 정부 발표와 별 괴리가 없었다. 프랑스라고 해서 무한정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기자들은 인질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인질의 치료와 안정이 우선이라는 보안 당국의 명목에 힘없이 밀려났다. 그렇게 블랙맘바의 정체는 묻히는가 했다. 사건은 다음날 터졌다.
DGSE 본부 8층, 수영장이라 불리는 총국장실, 둔탁한 마호가니 테이블의 명패가 바뀌었다. 피엘 라고스의 명패가 사라지고 베르늬에 보니파스라는 이름이 떡 자리 잡았다. 회전 의자를 차지한 남자는 당연히 비대한 라고스가 아닌 대나무처럼 바짝 마른 남자, 전임 작전부장, 혈관에 찬 피가 흐른다는 써펀드다.
“망할 영감탱이, 끝까지 똥을 싸지르고 가는구먼.”
보니파스는 샤를리 엡도의 호외를 한 손에 들고 카바에 부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발리사리는 기사가 데스크에서 씹히자 장담대로 폭로전문 언론인 샤를리 엡도에 기사를 팔아넘겼다.
정보부장 카바에의 목이 쑥 들어갔다. 겉으론 기자를 동행시킨 제르맹을 욕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들으라는 욕이다. 발리사리를 비롯한 까날 쁠리팀의 취재 허가 요청서에 사인한 정본인이 바로 자신이니 말이다.
‘빌어먹을 년!’
가슴을 쳤다. 빠른 후회란 없다. 후회란 단어에는 이미 사건이 벌어졌다는 의미가 들어있기에 아무리 빨라도 늦어진다.
정보를 다룬 지 30년, 검은돈 한 푼 먹지 않고 무리한 청탁도 들어준 적도 없다. 유일한 약점은 껄떡대는 아랫도리였다. 제르맹이 보낸 기자 파견 요청 공문은 정부를 홍보할 기회였지만, 간단히 허락할 문제가 아니었다. 작전 종결자가 콜네임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갈등하다가 제르맹의 협조 공문을 일단 보류했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결려왔다. 까날 쁠리에 근무하는 미모의 30대 르포 기자이자 자신의 정부, 사랑하는 발리사리였다.
[몽 아무흐(내 사랑) 국방부 명단 봤나요? 오늘 밤에 로열 생제르맹 어때요?]새벽녘에 뿌리는 봄비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한 마디에 홀린 듯 공문을 찾아서 명단을 확인했다. 발리사리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좀비처럼 몽블랑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순간의 애욕은 토네이도로 돌아왔다. 언론사의 엠바고 협조를 받아 수습되었다고 방심한 찰나에 엉덩이에 뿔 난 년이 제대로 사고 쳤다. 30년 공직생활 최대의 위기다. 카바에는 자진 납세하기로 결심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다.
“총국장, 할 말이 없소. 자체 요원과 헌병을 총동원해서 인쇄물을 수거하고, 발리사리 기자를 국가 기밀 누설죄로 구금했소.”
억장이 무너졌다. 부장 3명 중 자신이 최고참이다. 밥그릇을 따지면 보니파스는 까마득한 후배다. 최고위층의 신임도 두터웠다. 라고스의 후임이 자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호사다마인가. 콘크리트처럼 굳건하던 자리가 블랙맘바의 등장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음흉한 써펀드가 블랙맘바를 업고 질주했다. 미테랑이 블랙맘바를 나쇼널 트레조르로 칭하는 순간 자신의 꿈도 사라졌다. 예약된 회전의자를 네다바이 당한 원인은 순전히 블랙맘바 때문이다. 지금 당하는 수모도 블랙맘바 때문이다.
‘빌어먹을 꼬레앙!’
노란둥이 한 놈 때문에 출셋길이 막혀버렸다. 카바에도 사건의 파문을 모르지 않았다. 보니파스가 총국장 자리에 앉은 그때부터 욕심과 질투에 눈이 돌아갔다. 소인배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하다. 자신을 돌아볼 줄도 모른다.
“카바에 부장, 저 문구를 잊었소?”
보니파스가 벽에 걸린 긴 액자를 가리켰다.
[정보는 정부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비판이나 찬양의 대상이 아니다.]미테랑이 SDECE를 DGSE로 확대 개편할 때 했던 말이다. 카바에는 얼굴이 화끈했다. 보니파스는 자신의 일탈 행위를 이미 알고 있다. 공무원으로서 비정상 기능, 즉 까날 쁠리의 발리사리에 준 특혜를 비난하는 소리다. 프랑스는 아랫도리 문제에 관대하지만, 수면으로 떠오르면 그보다 곤혹스런 일이 없다.
“혹시 대통령이?”
“그렇소. 대통령은 똥물을 마신 기분일 거요. 빌어먹을 년이 콜네임 단독 투입을 폭로하는 바람에 미테랑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블랙맘바의 신분도 드러날 위험에 처했소.”
“샤를리 엡도는 등사판으로 호외를 제작했소. 기껏해야 일천 장이오. 전량 회수할 수 있소. 대통령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일은 없을 거요.”
정보 수장으로서 궁색한 변명이다. 요령부득의 구차한 변명을 해야 하는 카바에는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 확실히 자신이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귀신에 홀린 듯 머리가 둔해졌다.
“샤를리 엡도는 마이너 언론이오. 아니면 말고 식의 한탕주의 기사로 몰면 대통령의 체면 추락은 막을 수 있소. 문제는 블랙맘바요. 타국 정보기관이 그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면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보았소?”
“알고 있소. 등사판과 등사원지를 압수하고 뿌려진 인쇄물도 90% 이상 회수했소.”
‘빌어먹을 늙은이! 맛이 갔구먼. 에볼라에 감염되었나?’
보니파스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정보부 부장이란 인간이 할 말이 아니다. 이렇게 멍청한 인물이 아닌데 갑자기 이상해졌다. 바이러스에 뇌를 파먹히지 않고는 저럴 수 없다. 영리한 보니파스도 질투에 함몰된 늙은 남자의 퇴행적 심리까지 읽지는 못했다.
“카바에 부장, 얼빠진 년을 구금하고 인쇄물을 거둬봐야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요. 호외는 이미 아담의 손에 들어갔을 거요. 제르맹과 당신이 이투리 취재를 허용할 때부터 문제는 심각해졌소.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취재 요청서에 사인한 이유가 뭐요?”
“미안하오!”
할 말이 없어진 카바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애인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어서 사인했다고 말할 수야 없지 않은가.
“블랙맘바가 귀환을 거부하고 지부티로 떠나버렸소.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거요?”
보니파스가 샤를리 엡도의 호외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탕 쳤다. 블랙맘바는 단순히 햇볕이 그리워서 지부티로 향했지만, 보니파스는 삐쳐서 개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루만 작전당시에도 수당 단위를 착각하는 바람에 3억 프랑을 뜯기고 쓴 웃음을 지은 바 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류가 애꿎은 카바에를 수렁에 밀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