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nary Black Mamba RAW novel - Chapter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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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 웬 떡이야! 6
보니파스는 평소에도 미 국방부의 신기술 개발 능력을 부러워했다. 양키의 무기 개발 시스템은 정부와 민간기업의 이인삼각이다. 혹자는 군산복합체의 폐해를 성토하지만, 자신이 보기엔 폐해 이상으로 시너지 효과가 크다.
미 국방 신기술의 상당수가 실리콘 밸리에서 나왔다. 일반인은 벤처캐피털이 실리콘 밸리를 키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실리콘밸리의 산파는 미 국방부다. 실리콘밸리를 키운 보모도 미 국방부다.
현재의 실리콘밸리 신화는 국방부의 후원을 받는 민간 기업이 1948년부터 모여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레이더 개발에 필이 꽂힌 미 국방부의 후원을 등에 업은 마이크로파 개발업체들이 모여들었고, 마이크로웨이브 밸리로 불렸다.
1958년 설립된 미 국방부의 연구개발 조직인 다르파(DARPA, 첨단방위연구개발국)가 실리콘밸리 일대의 민간 기업, 대학과 산학협동을 통해서 기술개발을 주도하면서 첨단 산업단지로 성장했다.
다르파의 집중적인 자금 지원을 받아서 집적회로(반도체)가 개발되었고, 인텔, 휴렛팩커드같은 첨단 기업이 출현했다. 반도체, 인터넷, 레이더, GPS(내비게이션) 등은 국방부가 개발해서 보급한 대표적인 기술이다. 프랑스 병기창은 미 국방부의 다르파에 비하면 노인정이고 시궁창이다. 병기창을 개혁하지 않고는 국방 예산을 늘려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찡- 인터폰이 울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보니파스가 흠칫했다.
“뭐야?”
-아레바사 자베르 회장님이 도착했습니다.
써펀드에 잡아먹힐세라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한 듀렌달 비서의 목소리다. 보니파스가 벽시계를 흘끗 올려보았다. 약속된 면담 시간을 깜박했다.
“오 분 후 만나겠다.”
-알겠습니다.
“매키시는 자이르 동부 지역의 휴민트 조직 재건에 착수하고, 아리바는 맘바사 일대에 작전부 요원을 투입해서 양키와 마이마이 반군의 동태를 조사하도록.”
서둘러 실무 책임자를 내보낸 보니파스가 깡마른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블랙맘바가 휘저은 이투리와 르웬조리 지역에서 피 냄새와 돈 냄새가 물씬 풍겼다.
“에구, 이번에는 꿍쳐놓은 회사 비자금까지 탈탈 털리게 생겼네. 떡을 시루째 들고왔는데 쪼잔하게 굴 수야 없지.”
보니파스가 알루미늄 케이스의 숫자를 정렬해서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보고서 첫 장에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콜네임 수당 산정 기본 자료]1. GIGN 생존자 3명 구출
2. GIGN 인질 구조팀과 하파스 대 테러팀 유해 64구 및 유류품 수거
3. 인질 14명 구출, 희생자 유해 3구 회수
4. 담발라 694명 사살, 포로 6명
5. 인간 생체병기(메카닉 혼터) 사체와 통제 칩
6. ADS 시스템 통제 컴퓨터
7. 레이저 연동 사격 통제 시스템과 기관총 3정
8. 키메라형 생체병기 3개체 말살 및 통제 칩 3세트 회수
9. 유전자 조작 실험 장비 350점 및 관련 자료
10. 중국 공작팀 말살
……
보니파스는 마지막 줄에 오셀롯 말살이라 주기 했다.
“휘유, 이거야 원! 나쇼널 트레조르 답다고 해야 하나, 자연재해라 해야 하나. 아니, 그 친구가 들려준 북해의 대붕이 딱 맞겠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일단 움직이면 초대형 성과가 쏟아진다. 블랙맘바는 단순히 전투력 강한 콜네임이 아니다. 그가 움직이면 본래의 작전 목적이 지엽적 활동으로 여겨지는 착시 현상이 생긴다. 정의의 주먹 작전은 유일무이한 초특급 컨설턴트 블랙맘바가 국보적 진가를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다.
블랙맘바가 오뜨 뀌진 자리에서 장자라는 동양의 고대 사상가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북녘 검푸른 바다에 곤이라는 큰 물고기가 사는데 크기가 수천 킬로미터다. 때가 되면 곤이 붕이라는 새로 변신한다. 붕의 날개 길이는 수천 킬로미터다. 붕이 한번 날개를 치면 수만킬로미터의 높이로 날아오른다.]
황당한 허풍에 질려서 한마디 쏘아 주었다.
“블랙, 지구 지름이 겨우 6,400km야. 수천 킬로미터의 물고기가 살아갈 바다는 없어. 붕이란 새가 날개를 치면 지구 생물이 몽땅 멸종당한다고. 차라리 그리스 신화가 더 현실적이다.”
“툭하면 마누라의 눈을 피해서 인간 여자와 바람이나 피우는 찌질한 신보다 얼마나 통쾌한가! 일신의 평안함만 추구하는 자를 어찌 남자라 하겠나. 남자라면 모름지기 꿈이라도 크게 꾸어야 하지 않겠나.”
“자네 꿈은 한국식 집을 짓고 미조 수프(된장찌개)를 먹으며 마루에 목침 베고 누워서 독서를 하는 것 아니었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군. 그런데 그게 나라를 세우기보다 더 어렵다.”
자신의 이죽거림에 대답하는 블랙맘바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최강의 인간도 슬픔이 있을까? 문득 블랙맘바의 바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불길처럼 일었다.
찌링- 인터폰이 울렸다. 상념에서 퍼뜩 깨어난 보니파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총국장님, 1분 후 아레바 회장님 면담 시간입니다.
“알았다.”
보니파스는 골루즈를 커터로 잘라내고 창문을 열었다. 센강에서 불어온 강바람이 담배 연기를 몰아나갔다. 아레바는 프랑스 시민 12만 명을 먹여살리는 중추 기업이다. 자베르는 부를 창출하는 기업인이고 자신은 부를 소모하는 공무원이다. 당연히 대우해야 한다.
코듀로이를 쓴 반백의 깡마른 남자가 집무실에 들어섰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및 정비 분야의 세계 1위 기업 아레바를 이끄는 자끄 자베르 회장이다. 듀렌달이 소리 없이 문을 닫고 사라졌다.
“반갑습니다. 회장님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뻔했습니다.”
보니파스는 약속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주제에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자베르를 맞았다.
“면목이 없습니다. 내 실책으로 인해 국가에 큰 손실을 끼쳤습니다. 아까운 젊은이들의 영혼이 주님의 품에 평안히 잠들기를 기도합니다.”
자베르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으로 인해 아까운 인재가 일곱이나 희생되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희생된 인질이 안타깝습니다.”
보니파스도 눈을 감고 묵념했다. 정의의 주먹 작전은 블랙맘바가 깔끔히 마무리했지만, 큰 상처를 남겼다. 작전에 투입된 특공대의 인명 손실만 GIGN 타격대 3개 조를 포함해서 397명이다.
DGSE 요원도 38명이나 희생되었다. 이투리 정글은 일천 명이 넘는 인간을 꿀꺽 삼켜서 자양분을 보충했다. 자베르와 보니파스는 도멘느 드 베끼뇰(단맛이 강한 프랑스 초콜릿)로도 씻지 못할 쓴맛을 본 셈이다. 덕담과 위로가 오가고 본론에 들어갔다.
“현상금 때문에 회장님이 직접 어려운 걸음을 하지 않았을 테고 어쩐 일입니까?”
“총국장님의 면담을 요청한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자베르가 테이블에 종이 한 장을 올려놓았다. 발리사리가 뿌린 호외다.
‘빌어먹을 년!’
발리사리의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보니파스는 써펀드답게 표정 관리를 했지만, 순간적으로 욕설을 뱉을 뻔했다.
“이게 뭡니까?”
보니파스가 시침을 뚝 땄다.
“나는 다른 건 관심 없습니다. 콜네임에 관심 있습니다.”
“사회 혼란을 노린 나치 잔당의 부추김에 넘어간 얼빠진 부역자가 쓴 소설입니다. 민족반역자는 헌병대가 색출 완료해서 구금 중입니다.”
“총국장님, 나는 아레바의 회장입니다.”
자베르가 한마디 뱉고 입을 꾹 다물었다. 보니파스는 노 기업가의 말에 들어있는 자부심과 애국심을 읽었다. 무시하기엔 자베르의 위상이 낮지 않다.
“전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야기해 보시지요.”
보니파스가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자베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총국장님과 약속한 현상금은 착수금 3천만 프랑에 인질 한 사람당 백만 프랑입니다. 생존자 14명에 유해까지 17명이니 4,700만 프랑이군요. 5,300만 프랑을 추가하겠습니다. 콜네임을 소개해 주십시오.”
“뭐 뭐라고요?”
어지간한 보니파스도 펄쩍 뛰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요청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했다. 한편으론 사람 한 번 만나자고 5,300만 프랑을 내놓는 자베르의 배포에 질려버렸다.
“안 됩니다. 콜네임의 신분은 극비입니다. 콜네임의 신상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보안 등급자는 다섯 명에 불과합니다. 수상과 국방부 장관도 오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콜네임을 만나려는 이유도 묻지 않는군요. 정보 유출을 염려하는 겁니까”
자베르의 얼굴에 자존심이 상했다는 시그널이 떠올랐다.
“당연합니다. 나는 DGSE 수장입니다. 죽은 자만이 입을 열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요. 회장님이 콜네임을 만나려는 이유야 뻔하지요.”
“회사의 이익 때문임을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그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합치된다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습니까?”
“불가합니다. 회장님의 제안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보니파스는 딱 잘랐다. 블랙맘바는 그림자다. 빛을 받으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발리사리가 싼 똥을 치우기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블랙맘바는 심기가 상해있다. 사적인 만남을 주선했다가 똥집이 틀어지면 돈이 문제가 아니다.
“총국장님의 고심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결정은 후회로 남을 듯합니다.”
“후회해도 내가 합니다. 회장님의 청을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자베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보니파스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내 정신 보게. 늙으니 깜빡깜빡하는군.”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들던 자베르가 지갑을 꺼냈다.
“콜네임에게 전해주시오. 소중한 아레바의 재산을 찾아준 보답이오. 총국장 취임을 축하합니다.”
수표 두 장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베르가 집무실을 나갔다.
“후회한다고?”
보니파스는 뭔가 찝찝했다. 자베르 회장급의 인물은 말 한마디도 가볍게 내뱉지 않는다. 결코, 근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인생 자체가 후회인데 한 개 더 늘어난들 뭔 대수야. 어떻게 되겠지.”
보니파스도 어느새 블랙맘바의 ‘어떻게 되겠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는 찝찝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수표 금액을 확인했다.
“헐! 떡밥 한번 대단하구먼.”
어지간한 보니파스도 헛바람을 뿜었다. 3,900만 프랑은 자베르 회장이 약속했던 현상금의 잔금이다. 또 한 장의 수표는 5,300만 프랑이다. 자베르 회장은 5,300만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떡밥을 뿌려놓고 간 것이다. 보니파스 본인의 연봉이 220,000프랑이다. 보니파스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채신없는 짓이지만 호기심이 앞섰다.
“허, 명색이 DGSE 총국장인데 꼬박 400년 뺑이쳐도 부족하네. 블랙맘바가 호박이면 나는 도토리구먼. 아니 붕과 참새라고 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자베르 회장의 배포와 블랙맘바의 가치를 알아본 눈이 놀라웠다.
‘이유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호기심이 생겼지만,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끝나야 한다. 자베르 유형의 인간은 넘겨짚기의 귀신이다. 이유를 묻는 순간부터 상대방의 의도에 말려들어 가게 된다. 나라를 구하지 않는 이상 블랙맘바를 양지에 내놓을 어떤 이유도 없다. 인터폰을 들었다.
“듀렌달, 팰컨 일정을 잡아라. 모레 오전 10시 출발, 목적지는 지부티 13연대다.”
-알겠습니다. 언론이 난리입니다.
“난리? 듀렌달, 자네가 언론 담당인 줄은 알지만, 모호하고 자극적인 단어는 피하게.”
-옙, 죄송합니다. 신문 잡지 방송할 것 없이 콜네임을 찾아서 난리 났습니다.
“어허! 또 난리?”
-앗, 거듭 죄송합니다. 난리가 아니라 콜네임에게 공식적인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르 피가르가 5분 인터뷰에 2백만 프랑, 프랑스 웨스트지는 3백만 프랑, 떼 에프 엉, 까날 쁠뤼, 디헥 윗 등의 민영 TV 방송사도 3백만 프랑에서 500만 프랑까지 걸고 방송 출연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년!”
보니파스가 숱이 줄어들기 시작한 주변머리를 뽑을 듯이 움켜쥐었다. 발리사리의 동행 취재를 허용한 제르맹과 카바에를 감옥에 처넣고 싶지만, 현행법상 부여된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했으니 법적 처리는 불가능이다. 애꿎은 머리카락에 화풀이다.
“듀렌달, 지부티 13연대의 장 폴 대위를 연결해.”
-옙, 알겠습니다.
“빌어먹을, 담배 끊기는 틀렸군.”
재떨이에 놓여있는 허리 잘린 골루즈를 노려보았다. 끊지는 못해도 흡연량을 절반 줄이겠다는 결심이 두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참다가 암 걸리겠네. 아무리 공무원이지만 세금을 쓰기만 해서야 되나 납부도 해야지.”
애써 구실을 찾은 보니파스가 기어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지부티는 말썽 많은 소말리아의 북쪽 끝,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병목 지점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해협 북쪽은 예멘, 홍해 쪽으로 아프웨르키의 고향인 에리트레아, 아프리카 내륙으로 이디오피아, 아덴만 쪽으로 소말리아와 국경을 마주한다.
지부티는 경기도 면적의 두 배에 불과한 소국으로 1970년대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국토가 좁은데다 인구도 적고, 경제력도 형편 없는 탓에 한국보다 더 존재감이 없는 몇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다.
레종 에뜨랑제 13연대가 뜯어먹을 것 없는 지부티에 주둔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폭이 32km에 불과한 바브엘만데브 해협 보호다.